1204년 12월 13일, 중동 스파라드 유대인 사회의 철학자이자 랍비 모세 벤 마이몬 (Moshe ben Maimon, 1135 ~ 1204), 마이모니데스 (Maimonides) 별세
랍비 모세 벤 마이몬 (히: משה בן מימון Moshe ben Maimon, 1135년 3월 30일 ~ 1204년 12월 13일)은 중동 스파라드 유대인 사회의 철학자이자 의사로, 중세에 가장 영향력을 끼친 토라 연구자이자 다작 저술가이다. 유럽식 표기법인 마이모니데스 (그: Μαϊμωνίδης, 라: Maimonides)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 모세 벤 마이몬 (Moshe ben Maimon) / 마이모니데스 (Maimonides)
.본명: 아부 임란 무사 빈 마이문 빈 압둘라 알 쿠르투비 알 이스라일리 (Moshe ben Maimon, Abu Imran Mussa bin Maimun ibn Abdallah al-Qurtubi al-Israili)
.출생: 1135년 3월 30일, 코르도바
.사망: 1204년 12월 13일, 이집트
.성별: 남성
.직업: 철학자, 의사, 랍비, 천문학자, 물리학자
.종교: 유대교
당대에는 두드러지는 천문학자이자 물리학자이기도 했다. 유대인 사회에서는 람밤 (히: רמב״ם)이라고도 불리는데, “우리의 랍비 모세 벤 마이몬” (Rabbeinu Mōšeh bēn Maimon)을 뜻하는 히브리어의 약자 네 글자를 읽은 것이다.
1135년 또는 1138년, 당시 무라비트 왕조가 다스리던 오늘날 에스파냐의 코르도바 지방에서 태어났고, 모로코와 이집트에서 물리학자이자 철학자, 랍비로서 일했다. 1204년 12월 이집트에서 타계하였으나 그의 유해는 갈릴리 지방으로 옮겨져 티베리아스 마을에 묻혔다.
그에 대해 유대인 역사가들의 높은 평가를 차치하고서, 이슬람의 역사와 아랍의 과학 분야에서도 마이모니데스는 중대한 위치를 차지하며 연구에서 자주 인용된다.
그는 무함마드 알 파라비와 아비세나라고도 알려진 이븐 시나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며, 아베로에스라고 알려진 이븐 루시드와는 동시대인이었다.
그 역시 아랍의 무슬림 철학자 및 과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한 마디로, 그는 유대인 사회와 이슬람 세계 모두에서 저명한 철학자이자 박식가로 여겨진다.

○ 생애 및 활동
1135년 또는 1138년 에스파냐의 코르도바에서 태어났다.
당시 코르도바를 지배하던 무와히드 왕조의 유대교, 기독교 탄압을 피해 1165년경 카이로로 이주하였고 그 곳에서 의사로 일하였다.
그러던 도중 살라흐 앗 딘에게 발탁되어 그와 그의 아들 알 아프달의 주치의가 되었다.
그 후로 카이로의 유대교단을 지휘하였다.
모로코와 이집트에서 물리학자이자 철학자, 랍비로서 일했다.
1204년 12월 이집트에서 타계하였으나 그의 유해는 갈릴리 지방으로 옮겨져 티베리아스 마을에 묻혔다.
– 의학적 업적
그는 할례법을 개선하였으며, 치질은 변비에서부터 생긴다고 하여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채소를 주식으로 하는 가벼운 식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저술활동
그의 의학 관련 저서 중에서는 《의학원리집》이 가장 유명하다.
《방황하는 자들을 위한 안내서》는 아리스토텔레스파의 아랍 철학자의 견해를 취하여 유대교 신학을 합리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저술에는 주로 아랍어를 사용하였지만, 이는 이후 히브리어, 라틴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그의 저서는 유럽의 철학계에도 영향을 주었다.
유대교의 법과 윤리에 관한 마이모니데스의 저술은 그의 살아 생전에 많은 유대인들에게 읽혔고 크게 환영받았다.
예맨과 이라크 지방의 유대인 공동체에도 그의 저작이 알려졌다. 그는 이집트의 유대인 공동체에서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기도 했다. 물론 그의 저술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았는데, 특히 에스파냐에서 그랬다.
그럼에도 그는 할라카를 해석하여 유대인 사회의 법적 분쟁을 중재한 랍비이자 철학자 중 가장 뛰어난 석학으로 유대인의 역사 속에서 인식되고 있으며, 그의 풍부한 저술은 유대 학문의 초석이 되고 있다.
14권으로 이루어진 그의 저작 《미슈나 토라》(Mishneh Torah)는 아직까지도 탈무드 법을 편찬할 때 중대한 규범적 권위를 지닌다.

– 사상
초기 교부 철학이 테르툴리아누스 이래 지속된 ‘아테네와 예루살렘’이라는 구분, 즉 ‘이성’을 대변하는 그리스 철학과 ‘계시’에 기초한 기독교 신앙이 가지는 긴장에 포커스를 둔 것에 비해서, 마이모니데스는 성서를 이해하고자 하는 목적이 ‘신앙’이나 ‘교리’가 아니라 ‘율법’에 맞추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율법과 철학은 필연적으로 융합되어야 하는 것이며, 철학의 고유한 목적은 율법에 합리적인 확증을 주는 점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러한 믿음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근거하여 구약성서와 쿠란을 합리화하려고 시도하였다.
마이모니데스는 한편으로는 ‘계명’에 대한 이성적 ‘추론’으로 율법의 법적 지위를 확립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구전된 ‘율법’의 타당성을 ‘계시’가 아니라 ‘이성적 판단’으로부터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이는 ‘이성적 판단’으로 성경의 말을 이해하고 추론할 수 있으며, 나아가 성경 속 ‘계시’의 불명확한 점을 ‘이성적 판단’으로 채워나갈 수 있음을 말한다. 그는 경전에 표현된 신에 대한 묘사가 인간의 언어가 갖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합리주의적 해석을 하려는 시도 때문에, 한 때 유대교 신학자들로부터 이단으로 몰렸었다.
하지만 계시를 이성으로 해석한 방법론은, ‘이성’을 통하여 성경을 진보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후대의 유대인 역사가들은 중세 철학에 끼친 마이모니데스의 영향을 아베로에스와 비견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한다.
○ 저서
《미슈네 토라 (Mishneh Torah)》- 유대교 율법을 정리한 할라카 법전이다. 이스라엘의 극우집단인 카하네주의자들이 이스라엘의 국법을 마이모니데스가 정리한 미슈네 토라를 기반으로 재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바 있다.
《방황하는 자들을 위한 안내서 (The Guide for the Perplexed)》
《기질론》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