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4년 7월 28일, 피렌체 공화국과 피사 공화국의 카시나 전투 (Battle of Cascina, 1354년) 발발
1354년 7월 28일, 피렌체 공화국이 아르노 강변의 카시나에서 치른 피사 공화국 군대와의 카시나 전투 (Battle of Cascina, 1354년)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한편 세월이 흘러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년 3월 6일 ~ 1564년 2월 18일)는 카시나 전투 (Battle of Cascina)를, 레오나르도 다빈치 (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 1452년 4월 15일 ~ 1519년 5월 2일)가 앙기아리 전투 (Battle of Anghiari)를 그릴 예정이었다. 레오나르도는 미켈란젤로보다 빨리 의뢰를 받아서 우선 프레스코화를 그리고 있었으나, 뜨거운 숯과 화로로 빨리 건조시키려는 과정에서 왁스가 녹아내려 험난한 과정을 겪고 있었다. 미켈란젤로는 초안을 그리던 와중 바티칸에서 교황 율리우스 2세 (Julius II)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의뢰를 받고 떠나버렸다. 이후 조르조 바사리를 돕던 리비오 아그레스티 (Livio Agresti)가 매너리즘 양식의 벽화, 피렌체가 피사와 시에나를 상대로 거둔 승리를 그렸다.
천장의 패널은 모두 39개이며, 코시모 1세의 일생의 일화 소재로 그렸다. 벽은 세례자 요한의 일상 등을 담은 태피스트리가 장식되어 있고, 빈첸초 로시 (Vincenzo de’Rossi)의 헤라클레스 조각상 등일 늘어서 있다.
회의장 북쪽 방향에는 코시모 1세가 영접 받던 단상 우덴차 (Udienza)가 바르톨로메오 반디넬리 (Bartolommeo Bandinelli)에 의해 제작되었고, 뒤쪽 벽에 반디넬리가 조각한 교황 레오 10세 (Leo X), 교황 클레멘트 7세 (Clement VII)에게 왕관을 받고 있는 샤를 5세 (Charles V) 조각이 있다. 남쪽 벽감에는 미켈란젤로가 율리우스 2세 무덤을 장식하기 위해 만든 대리석 군상 <승리의 인간>을 바르젤로 박물관에서 가져다 놨다.

*그림설명 : 미켈란젤로는 1504년 피렌체 시청으로부터 의뢰받은 거대한 벽화 [카시나 전투 (Battle of Cascina)]를 그리는 데 동의하였는데, 이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막 시작한 건너편 벽화 앙기아리 전투 (Battle of Anghiari)와 한 쌍을 이루게 되어 경쟁하게 되었다. 두 벽화 모두 피렌체의 군사적 승리를 다룬 것이었지만, 각각은 그 도시가 가장 자랑하는 예술가의 특이한 솜씨를 과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복사본과 부분적인 예비 습작 (習作)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