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6년 9월 24일, 서울 성곽 (한양도성, 漢陽都城) 완공
한양도성 (漢陽都城)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그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태조 5년 (1396), 백악(북악산) · 낙타(낙산) · 목멱(남산) · 인왕의 내사산 (內四山) 능선을 따라 축조한 이후 여러 차례 개축하였다. 평균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르는 한양도성은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랫동안 (1396~1910, 514년) 도성 기능을 수행하였다.
한양도성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두었다. 4대문은 흥인지문 · 돈의문 · 숭례문 · 숙정문이며 4소문은 혜화문 · 소의문 · 광희문 · 창의문이다. 이 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멸실되었다. 또한 도성 밖으로 물길을 잇기 위해 흥인지문 주변에 오간수문과 이간수문을 두었다.

– 개관
서울 한양도성 (漢陽都城, Fortress Wall of Seoul)은 조선 시대 한양을 둘러싼 도성 (都城)이다. 좁은 의미로는 서울을 둘러싼 성곽과 문을 지칭하나, 넓은 의미로는 성곽과 그 안의 공간을 말한다. 조선 시대에는 줄여서 한성 (漢城)으로 불렸으며, 사적으로서의 명칭은 지정 당시 서울성곽으로 정했다가 2011년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한양도성은 1396년 태조에 의해 축조되었고, 세종, 숙종, 순조 시기에 보수 공사를 거쳤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상당한 구간이 훼손되었으나, 1974년 박정희 정권 시기부터 복원사업이 진행돼 2013년 기준으로 총길이 18,627m 중 약 70% 구간이 남아 있다. 2012년 11월 23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신청자격이 부여되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었으나, 2017년 3월 등재 불가 통보를 밟으면서 무산되었다.
– 서울 한양도성 (漢陽都城), Hanyang City Wall, Seoul)
.사적: 대한민국의 사적 제10호 (1963년 1월 21일 지정)
.면적: 문화재구역 : 22필지 1,311.15m2
.문화재보호구역 : 95필지 40,563.47m2
.시대: 조선 초기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누상동 산1-3번지 외

– 축성과 개수
1395년(태조 4년) 한양(지금의 서울)을 방위하기 위한 도성을 쌓으려고 도성축조도감(都城築造都監)을 설치하고 정도전에게 명하여 성터의 조사 측정을 실시하였다. 이듬해 음력 1월 9일 전국에서 징발한 장정 11만 8천 7백여 명을 동원하여 축성을 시작하였는데, 길이가 9970보(步 : 1보는 6자)이고 높이가 40자 2치인 도성을 97구간으로 나누어 각 구간마다 천자문에 따른 번호를 하늘 천(天) 자부터 조상할 조(弔) 자까지 붙였다. 전후 98일 만에 북악산·낙산·남산·인왕산을 따라 성벽의 축조를 완료하였다.
1396년(태조 5년) 음력 9월 24일 성문을 모두 완성하였다. 정북(正北)쪽에는 숙청문(肅淸門), 동북(東北)쪽에는 홍화문(弘化門), 정동(正東)쪽에는 흥인문(興仁門), 동남(東南)쪽에는 광희문(光熙門), 정남(正南)쪽에는 숭례문(崇禮門), 소북(小北)쪽에는 소덕문(昭德門), 정서(正西)쪽에는 돈의문(敦義門), 서북(西北)쪽에는 창의문(彰義門)을 두었으며, 수문 1소(所)를 두었다.
1422년(세종 4년)에 흙으로 쌓은 곳을 모두 돌로 다시 쌓는 등 봉족(奉足)과 잡색(雜色) 32만 2천 4백 명을 동원하여 38일 만에 대대적으로 성곽을 고쳤다. 1451년(문종 1년)에도 성을 고쳤지만 임진왜란 때 일부가 부서졌다. 1616년(광해군 8년)에 개수하였으나 병자호란 때 다시 부서졌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 맺은 약조 중에 성벽을 쌓지 않고 보수도 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어 부서진 채로 방치되다가, 1704년(숙종 30년) 이조판서 이유(李儒)의 주장으로 5군문(五軍門)의 장정을 동원하여 1711년(숙종 37)까지 수축하였으며, 1743년(영조 19년)에 다시 고쳤다. 그밖에도 효종·현종·영조·순조 시대에 부분적인 개수를 행했으나 현재 남아 있는 서울의 성곽은 대체로 태조·세종·숙종·순조 때의 것이다.
태조 시기에 지어진 성은 자연석을 거칠게 갈아서 사용하였으며, 아래쪽은 큰 돌을 사용하고 위로 갈수록 작은 돌로 축성하였다. 세종 시기에 지어진 성은 좀더 직사각형의 모습을 띠고 있으나, 돌과 돌을 갈아 자연스럽게 이으려 하였다. 숙종 또는 순조 시기에는 직사각형으로 돌을 잘라서 축성하였다.

– 철거와 복원
1907년(고종 44년) 6월에는 이완용 등의 주장에 의하여 도성을 철거하기로 정하였고, 이를 위하여 같은 해 7월 30일에 성벽처리위원회를 마련하였다. 1907년 9월부터 숭례문의 북쪽 성벽을 철거하고 남지를 매립하였으며, 1908년 3월에는 흥인지문의 좌우 성벽을 헐었다. 이는 전차 선로의 부설과 관련되어 있었다. 또 1908년 9월에는 소의문과 숭례문 좌우의 성벽 총 77간을 파괴하였다.
일제 강점기의 도시계획과 한국 전쟁으로 성문과 성벽이 많이 파괴되었다. 서대문과 청량리 사이의 전차를 부설하면서 서대문과 동대문의 일부를 헐어내었고, 광화문과 용산 사이의 전차를 부설하면서 숭례문 부근을 역시 헐어내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산성을 제외한 평지에 있던 성곽은 모두 헐리어 현재의 모습과 같이 되었다. 하지만 최근 6.25전쟁 때에도 평지의 도성이 남이 있었다는 사진이 등장하였다.
1974년 박정희 정권의 국방 유적 보존 및 정비 지시에 따라 구자춘 서울특별시장이 본격적으로 복원사업을 시작하였다. 1975년 광희문 문루 복원을 시작으로 훼손된 체성과 여장 복원, 주변 가옥 매입 등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1975년부터 삼청지구 (창의문~숙정문) 복원에 이어 2012년 9월까지 진행된 인왕산 정상 구간까지 총 길이 18,627m 중 69%인 12,771m의 복원작업이 완료되었다. 2013년 5월 4일 숭례문 복구 기념식과 함께 숭례문 남동측 광장구간 성벽 복원까지 마무리되었으며, 앞으로 남산 구간, 시장공관 구간이 추가로 복원될 예정이다.

– 한양도성에는 한국 역사 전체가 아로새겨져 있다
한양도성에는 우리 역사 전체가 아로새겨져 있다. 삼국시대 이래 우리 민족이 발전시켜 온 축성기법과 성곽구조를 계승하였으며, 조선시대 성벽 축조 기술의 변천, 발전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처음 축조 당시의 모습은 물론이고 후에 보수하고 개축한 모습까지 간직하고 있어 성벽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역사의 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특별한 문화유산이다.
한양도성이 처음 완공된 것은 약 620년 전이다. 태조 5년(1396) 음력 1월 9일부터 2월 28일까지 49일 간, 이어서 8월 6일부터 9월 24일까지 49일 간, 모두 98일 동안 전국 백성 19만 7천 4백여 명을 동원하여 쌓았다. 전체 공사구간(총 5만 9,500척)을 600척씩 97구간으로 나누고 각 구간을 천자문 순서에 따라 이름 붙인 뒤 군현(郡縣)별로 할당하였다. 태조 때 처음 축성할 당시 평지는 토성으로 산지는 석성으로 쌓았으나, 세종 때 개축하면서 흙으로 쌓은 구간도 석성으로 바꾸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성벽 일부가 무너져 숙종 때 대대적으로 보수 · 개축하였으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정비하였다. 성을 쌓을 때에는 일부 성돌에 공사에 관한 기록을 남겼는데, 태조 · 세종 때에는 구간명 · 담당 군현명 등을 새겼고 숙종 이후에는 감독관 · 책임기술자 · 날짜 등을 명기하여 책임 소재를 밝혔다.
한양도성은 근대화 과정에서 옛 모습을 상당 부분 잃어버렸다. 1899년 도성 안팎을 연결하는 전차가 개통됨에 따라 먼저 성문이 제 기능을 잃었고, 1907년 일본 왕세자 방문을 앞두고 길을 넓히기 위해 숭례문 좌우 성벽이 철거되었다. 이어 1908년에는 평지의 성벽 대부분이 헐렸다. 성문도 온전하지 못하였다. 소의문은 1914년에 헐렸으며, 돈의문은 1915년에 건축 자재로 매각되었다. 광희문의 문루는 1915년에 붕괴되었고, 혜화문은 1928년에 문루가, 1938년에 성문과 성벽 일부가 헐렸다. 일제는 1925년 남산 조선신궁과 흥인지문 옆 경성운동장을 지을 때에도 주변 성벽을 헐어버리고 성돌을 석재로 썼다. 민간에서도 성벽에 인접하여 집을 지으며 성벽을 훼손하였다. 해방 이후에도 도로 · 주택 · 공공건물 · 학교 등을 지으면서 성벽이 훼손되는 일이 되풀이되었다.
한양도성의 중건은 1968년 1·21 사태 직후 숙정문 주변에서 시작되었고 1974년부터 전 구간으로 확장되었다. 하지만 일단 훼손된 문화재를 완벽하게 회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에는 단절된 구간을 연결하는 데에만 치중하여 오히려 주변 지형과 원 석재를 훼손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서울시는 한양도성의 역사성을 온전히 보존하여 세계인의 문화유산으로 전승하기 위해 2012년 9월 한양도성도감을 신설하고, 2013년 10월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한양도성 보존 · 관리 · 활용 계획을 수립하였다.
한양도성은 전체 구간의 70%, 총 13.7km(2020년 기준) 구간이 남아있거나 중건되었다. 숙정문 · 광희문 · 혜화문을 중건하였지만 광희문과 혜화문은 부득이하게 원래 자리가 아닌 곳에 세워지게 되었다. 제자리를 찾아주기 위해 시민들의 지혜를 모아야 하며, 축성기술 등 무형의 자산을 제대로 발굴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