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5년 9월 22일, 잉글랜드 헨리 8세의 4번째 왕비 아나 폰 클레페 공녀 / 클레페의 앤 (Anna von Kleve, 1515 ~ 1557) 출생
클레페의 앤 (독: Anna von Kleve, 1515년 9월 22일 ~ 1557년 7월 16일)은 잉글랜드의 헨리 8세의 4번째 왕비이다.

– 클레페의 앤 (Anna von Kleve)
.출생: 1515년 9월 22일, 독일 뒤셀도르프
.사망: 1557년 7월 16일, Chelsea Manor
.매장: 1557년 8월 3일, 영국 런던 웨스터 민스터 사원
.배우자: 헨리 8세 (1540 ~ 1540년)
.왕조: 튜더
.부모: John III, Duke of Cleves, Maria of Jülich-Berg
.형제자매: Amalia of Cleves, William, Duke of Jülich-Cleves-Berg, Sibylle of Cleves
클레베 공국의 요한 3세와 윌리히-베르크의 마리아의 딸이다.
독일어 이름은 안네 폰 클레베다.
헨리 8세의 4번째 왕비로 결혼하게 되었고, 안네는 영어식인 ‘앤’이라고 불리게 된다.

○ 생애 및 활동
앤은 뒤셀도르프에서 클레페 공작 요한 3세의 딸로 태어났다.
1539년 12월 27일에 영국에 도착했고 1540년 1월 6일에 헨리 8세 (1491 ~ 1547)와 결혼했다.
헨리 8세는 영국에 도착한 앤이 홀바인의 초상화와는 다르게 생겼다며 실망했다. 초상화를 그린 화가가 그녀의 얼굴과 몸매를 심하게 바꿔 그린 것이다. 클레베의 앤이 철저히 교육받은 첫번째 왕비 캐서린(1485-1536)이나 재기발랄하고 매력적이었던 두번째 왕비 앤 불린(1501-36)과는 달리 내세울 만한 특기도 없고 무지할 정도로 순진하다는 사실에도 불만을 표시했다. 결혼식 전 왕은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면 이런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왕은 클레베의 앤을 겉으로는 공손히 대했지만 신하들에게는 그녀를 “플란더스 암말”이라고 부르며 뚱뚱한 추녀라고 불평했다(아이러니하게도 당대 다른 기록은 클레베의 앤을 헨리 8세의 마지막 두 왕비 캐서린 하워드나 캐서린 파보다 훨씬 미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헨리 8세는 앤 왕비의 어린 시녀 캐서린 하워드에게 연정을 느끼고 앤과 이혼을 결심한다. 결혼식을 올린지 체 6개월도 되지 않은 시점인 1540년 6월에 클레베의 앤은 헨리 8세로부터 왕궁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는다. 영국에 서서히 적응해가고 있던 앤은 갑작스러운 이혼통보에 충격을 받았다. 헨리 8세는 클레베의 앤과 육체관계를 맺은 적이 없으니 결혼은 무효라고 주장했다.(초야를 치루지 않으면 혼인을 무효화 할 수 있는 관례가 있었다)
클레베의 앤은 처음에 이혼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완강히 버티다 결국 굴복했다. 앤은 왕의 이혼 결정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던 첫번째 왕비 캐서린이 비참한 말년을 보냈으며, 두번째 왕비였던 앤 불린은 모함을 뒤집어쓰고 참수당했다는 사실을 전해들었기 때문이다.
6개월후 1540년 7월 9일 헨리 8세와 클레베의 앤의 결혼은 무효가 선언되었다.
이유는 너무 못생겼다는 것이었는데 한마디로 헨리 8세의 입장에서 내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폐위후 귀국하지 않고 영국에 머물었고 헨리 8세로부터 넉넉한 연금과 정착지원을 받아 여유있는 생활을 했다.
그녀는 헨리 8세의 다른 왕비들보다 오래 살면서 헨리 8세의 자녀인 에드워드 6세와 메리 1세가 왕으로 즉위하는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녀와의 결혼을 추진했던 토머스 크롬웰은 앤이 폐위된후 정적들의 모함으로 1540년 7월 28일에 참수 당했다.




참고 = 위키백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