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1년 12월 13일, 포르투갈왕 마누엘 1세 (Manuel I de Portugal, 1469 ~ 1521) 타계
마누엘 1세 드 포르투갈 (포: Manuel I de Portugal, 1469년 5월 31일 ~ 1521년 12월 13일)은 포르투갈 아비스 왕조의 제5대 국왕이다. 행운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성장기 때부터 즉위할 때까지 그리고 재위 중에도 일생토록 많은 행운이 따랐다고 볼 수 있다. 선왕 주앙 2세의 해양 개척 사업을 계승하여 인도 신항로 개척 (1498)과 브라질 발견 (1500)에 이어 유럽-인도를 잇는 해상무역에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였다.

15세기 초 엔히크 왕자 (1394~1460) 시절부터 꾸준히 추진해 온 아프리카 서안, 대서양 탐사가 드디어 결실을 맺어 치세 중 포르투갈에 경제적인 풍요를 듬뿍 안겨다 주었다. 이베리아 반도의 통일을 꿈꾸며 친 (親)에스파냐 정책의 일환으로 정략결혼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고 이에 따라 선대왕들의 정책과 반대로 종교순혈주의에 입각하여 유대인과 무슬림의 강제개종과 추방을 추진하였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1506년에 리스본에서 유대인 대학살 사건이 발생하여 치세에 큰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약 7,000명의 유대인이 희생되었다. 재위 기간 중에 건축되며 꽃피운 르네상스 건축장식은 ‘마누엘 양식’이라 불린다.
- 주요 업적
1498년 – 신항로 개척 (by 바스코 다가마)
1500년 – 브라질 발견 (by 가브랄)
1501년 – 래브라도 발견 (by 가스파르와 미겔)
1505년 – 초대 인도 총독 임명 (알메이다)
1515년 – 인도양 무역의 주요 거점 점령, 고아 (1510), 말라카 (1511), 호르무즈 (1515)
- 사망
1521년 12월, 흑사병에 걸리자 리베이라궁 안에 격리되었다. 12월 4일부터 심한 열이 발생하였고 12월 13일 5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가 죽은 다음날인 12월 14일, 그의 시신은 검은 벨벳으로 덮인 관에 담긴후 리스본의 벨렘 지구로 이송되었고, 추모객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그는 레스텔로 교회에 임시로 안장되었다.
그의 유해는 아라곤의 두 번째 부인 마리아와 함께 1551년에야 제로니무스 수도원으로 옮겨졌다.

○ 가계
부 : 페르난두(두아르테 1세의 삼남)
모 : 베아트리스(두아르테 1세의 조카)
이모 : 이자벨(카스티야의 왕비, 후안 2세와 결혼)
사촌(겸 장모) : 이사벨 1세
누나 : 비제우의 레오노르
매형(겸 사촌) : 주앙 4세
.첫 번째 아내 : 아라곤의 이사벨(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 1세의 장녀)
아들 : 미겔(1498~1500)
.두 번째 아내 : 아라곤의 마리아(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 1세의 삼녀)
아들 : 주앙 3세(1502~1557) 포르투갈 국왕
딸 : 이사벨(1503~1539), 신성 로마 제국 카를 5세의 황후, 스페인 펠리페 2세의 생모
딸 : 베아트리스(1504~1538) 사보이 공작 부인
아들 : 루이스(1506~1555) 베자 공작
아들 : 페르난두(1507~1534) 구아르다 공작
아들 : 아폰수(1509~1540) 추기경
딸 : 마리아(1511~1513)
아들 : 엔리케(1512~1580) 추기경
아들 : 두아르테(1515~1540)
아들 : 안토니오
.세 번째 아내 : 레오노르(펠리페 1세와 카스티야의 후아나의 딸, 이사벨 1세의 손녀)
카를로스(1520~1521)
마리아(1521~1577)

참고 = 위키백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