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5년 5월 26일, 이탈리아의 가톨릭 사제로 오라토리오회의 설립자 필리포 네리 / 필립보 네리 (Philip Neri, 1515 ~ 1595) 선종
필리포 네리 / 필립보 네리 (Philip Neri, 1515년 7월 22일, 이탈리아 중부 피렌체 ~ 1595년 5월 26일)는 이탈리아의 가톨릭 사제로 오라토리오회의 설립자이다.

– 필리포 네리 / 필립보 네리 (Philip Neri)
.출생: 1515년 7월 22일, 이탈리아 중부 피렌체 (Firenze)
.선종: 1595년 5월 26일
.축일: 5월 26일
.신분: 신부, 설립자
.활동연도: 1515 ~ 1595년
.같은이름: 네리오, 네리우스, 비리버, 필리뽀, 필리뿌스, 필리포, 필리포스, 필리푸스, 필립, 필립부스, 필립뽀, 필립뿌스, 필립포, 필립푸스
르네상스의 발상지인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가난한 공증인의 아들로 태어난 필립보 네리는 산 마르코 (San Marco)의 도미니코회에서 교육받고 부유한 상인인 백부의 양자로 들어가 로마에서 살았다. 항상 낙천적이고 명랑, 활발한 성격으로 ‘피포 부우노’ 즉 ‘착한 피포’라는 애칭을 얻은 그는 가난한 이와 병든 이웃을 돕고 기도에 힘쓰는 단체에 가입했으며 사제로서의 자질을 키워나가면서 그 자신이 주변 젊은이들을 모아 종교단체를 결성하기도 했다.
이 단체는 정규 성직자 단체의 규칙에 기반을 둔 것으로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성가를 부르며 구체적이고 활발한 자선사업을 전개해 수많은 젊은이들로부터 크게 호응을 얻었다. 소년과 남자들을 위한 신심 단체인 오라토리오회 (Oratorians)가 창설된 것이다. 음악의 한 형식인 오라토리오가 생겨난 것도 이 때부터이다.
필립보 사제의 친구들 중에는 당대의 유명한 종교인들이 많은데 이냐시오, 카롤로, 카밀로, 프란체스코 디 살레스 그리고 당시의 교황이 그들이다. 가난한 이들과 병든 이웃 그리고 미천한 사람들을 향한 사랑과 자선이 넘치는 참된 종교적 삶은 기쁨이 넘치는 영혼으로부터 탄생한다.
참회를 해야 하거나 혹은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일 때에도 성찬식의 ‘환희의 찬가’는 우리에게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해주고, 우리가 비록 죄인이라 할지라도 우리를 ‘축복받은 사람들’로 확신하게 해주면서 성스러운 잔치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

○ 생애 및 활동
필리푸스 네리 (Philippus Neri, 또는 필립보 네리)는 1515년 7월 22일 이탈리아 중부 피렌체 (Firenze)에서 공증인인 프란체스코 디 네리 (Francesco di Neri)와 루크레지아 다 모스키아노 (Lucrezia da Mosciano)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피렌체에서 유명한 산마르코 (San Marco)의 도미니코회 수도자들에게 교육을 받았다.
18세 때에 그는 실업가인 큰아버지의 양자가 되어 산 제르마노 (San Germano, 오늘날의 카시노 Cassino)로 가서 사업 경력을 쌓으려고 노력했으나, 자기 뜻과는 달리 신비체험을 하게 되면서 수도 생활에 정진하기로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
그는 큰아버지의 신임을 얻었고 그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도 있었지만, 1533년 로마( Roma)로 가서 두 해 동안 피렌체 출신 귀족의 집에서 가정교사로 지내며 은둔 생활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
그리고 1535년부터 사피엔차 (Sapienza)와 산타고스티노 (Sant’Agostino)에서 철학과 신학을 4년 정도 공부했다. 그러나 학기 말년에 학업을 포기하고 책을 판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 뒤에 길거리나 시장바닥에서 로마인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했다.
그의 모습은 신앙생활에 지극히 미온적이었던 로마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로마의 영성적 삶을 부흥하고자 했던 성 필립보 네리는 병원, 은행, 가게, 상점 등을 방문하며 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러던 중 1544년에 로욜라 (Loyola)의 성 이냐시오 (Ignatius, 7월 31일)를 만나 친분을 맺게 되었다.
그리고 1548년 성 필립보 네리는 자기의 고해신부인 페르시아노 로사 (Persiano Rossa) 신부와 함께 ‘가장 거룩한 삼위일체회’ (The Confraternity of the Most Holy Trinity)를 설립했다.
그는 이 단체를 통해 기도 생활을 널리 전파하고 어려운 처지의 순례자들과 병자들을 돌보며 활발한 봉사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동료 평신도들과 함께 봉사하며 ‘40시간’ 신심을 전파하는 데도 힘썼다.
거의 17년을 로마에서 평신도로서 활동한 성 필립보 네리는 고해신부의 충고로 사제품을 받을 결심을 뒤늦게 하였다.
그는 1555년 5월 23일 사제품을 받고 고해신부로 널리 알려졌다. 특히 젊은이들을 사랑했던 그는 그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많은 사람이 그를 만나 고해성사를 보고 도움을 얻기 위해 그와 동료 사제들이 생활하고 있는 산 지롤라모 델라 카리타 (San Girolamo della Carita)로 찾아왔다.
그는 수많은 개종자를 얻는 일뿐만 아니라, 자신을 도와줄 사제들을 확보하는 데에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필립보 네리는 수도 생활에 대한 꿈을 실현하고자 자신과 뜻을 함께하는 사제들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고 본격적으로 영적 권고와 고해성사 및 청년 사목에 전념하였다.

그들은 신자들을 오라토리오 (Oratorio, 방)에 모아놓고 영적 권고와 고해성사를 주었기 때문에 ‘오라토리언’ (Oratorians)이란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그러나 실제로 ‘오라토리오회’가 설립된 연대는 1564년이다.
이때 필립보 네리는 산조반니 (San Giovanni) 성당의 주임신부였고, 다섯 명의 제자들이 사제품을 받았다.
이 새로운 수도회는 1575년에 교황으로부터 공식 승인을 받았는데, 이때는 그가 이미 로마의 명사로 널리 알려진 때였다.
교황 그레고리오 13세 (Gregorius XIII)는 오라토리오회를 승인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발리첼라 (Vallicella)에 있는 산타 마리아 (Santa Maria) 성당을 맡겼다.
필립보 네리는 교황과 성 가롤로 보로메오 (Carolus Borromeo, 11월 4일)와 다른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오래된 성당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성당을 지었는데, 이 성당은 ‘키에사 누오바’ (Chiesa Nuova, 새로운 성당)로 불렸고 오라토리오회의 본원이 되었다.

1577년부터 오라토리오회는 ‘키에사 누오바’에 거주했지만, 필립보 네리는 1584년까지 산 지롤라모 (San Girolamo)에 머물렀다.
이미 ‘로마의 사도’로 알려진 그는 교황과 추기경은 물론 권력자들과 일반 시민들로부터도 큰 존경을 받았다.
그는 뛰어난 영적 지혜와 환시를 통해 부자와 가난한 자, 권력자와 힘없는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도와주었다.
특히 그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탈혼과 환시 같은 신비체험을 여러 번 경험했고, 기적까지 행했으며, 예언의 은사도 받았다.
그는 교황 그레고리오 4세로부터 추기경 직위를 받았으나 끝내 이를 거절했다.
1593년에 오라토리오회의 장상을 맡기도 했으나 건강이 나빠져 장상 직분을 내려놓고 작은 기도실 안에서 미사를 드리는 특별 허락을 받았다.
그는 1595년 5월 25일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에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방문자들을 맞이하고 고해성사를 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인 5월 26일, 괴테가 유머가 많은 성인으로 칭송했던 그는 병상에 누워 주위에 모인 영적 아들들에게 벽에 걸린 십자가를 가리키며, “주님께서는 고통스럽게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시는데, 나는 편안한 침대에 누워 친절한 사람들의 간호를 받고 있으니 얼마나 염치없는 노릇입니까?” 하고 말한 후 그들에게 십자가를 그어 축복한 후 선종했다.
그의 유해는 로마의 ‘키에사 누오바’에 안치되어 공경을 받고 있다.
필립보 네리는 1615년 5월 11일 교황 바오로 5세 (Paulus V)에 의해 시복되었고, 1622년 3월 12일 교황 그레고리오 15세에 의해 청소년들의 아버지요 ‘기쁨의 성인’으로 성인품에 올랐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5월 26일 목록에서 성 필립보 네리가 젊은이들을 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로마에 오라토리오를 설립하고 그곳에서 영적 독서와 노래와 자선활동을 수행했다고 기록했다.
또한 그가 이웃 사랑, 복음의 단순함, 마음의 기쁨, 모범적 열성과 하느님을 섬기는 열정으로 그 모든 일을 이루었다고 칭송하였다.
그는 라틴어로 필리푸스 네리우스 (Philippus Nerius, 또는 필립보 네리오)로도 불린다.
- 참고자료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 (하) – ‘성 필립보 네리 사제’, 서울 (가톨릭출판사), 2004년, 493-496쪽.
엘레나 베르가다노 저, 이종범 역, 필립보 네리, 서울 (성바오로), 1993년.
최홍준 저, 무한을 향해 자신을 던지고 – ‘필립보 네리 신부’, 대구 (가톨릭신문사), 1999년, 212-234쪽.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2권 – ‘네리, 필립보’, 서울 (한국교회사연구소), 1995년, 1348-1349쪽.
헤수스 알바레스 고메스 저, 강운자 편역, 수도생활 역사 III – ‘첫 사도생활단-로마 오라토리오’, 서울 (성바오로), 2005년, 193-199쪽.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성필립보 네리 사제’, 서울 (성바오로), 2002년, 127-128쪽.




참고 = 가톨릭신문사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