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9년 2월 17일, 토스카나의 대공 페르디난도 1세 데 메디치 (Ferdinando I de’ Medici, 1549 ~ 1609) 별세
페르디난도 1세 (Ferdinando I de’ Medici, 1549년 7월 30일 ~ 1609년 2월 17일)는 토스카나의 대공이다.

– 페르디난도 1세 데 메디치 (Ferdinando I de’ Medici)
.출생: 1549년 7월 30일, 피렌체
.사망: 1609년 2월 17일 (59세), 피렌체
.가문: 메디치 가문
.부모: 부) 코시모 1세, 모) 레오노르 데 톨레도
.배우자: 크리스틴 드 로렌
.자녀: 코시모 2세, 마리아 마달레나, 카테리나, 오스티아 주교 카를로, 오스트리아 대공부인 클라우디아
.종교: 로마 가톨릭교회
* 토스카나 대공
.재위: 1587년 10월 17일 ~ 1609년 2월 3일
.전임: 프란체스코 1세 / 후임: 코시모 2세
코시모 1세와 톨레도의 엘레오노라의 아들로, 본래는 가톨릭 교회의 추기경이었으나 1587년 형 프란체스코 1세의 급사로 그의 뒤를 이어 대공의 자리에 올랐다.
앙리 2세의 손녀이자 로렌 공작 샤를 3세의 딸 로렌의 크리스티나와 결혼해 아홉 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는 메디치 가문과 토스카나 대공국의 마지막 부흥기를 장식한 군주로, 그의 아들 코시모 2세 대에 이르러 대공국은 쇠퇴의 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 페르디난도 1세 (재위: 1587 ~ 1609)
프란체스코 1세에겐 정실부인 조안나와 사이에 아들 하나를 두었지만 일찍 죽었고, 딸 마리아 (Maria de’ Medici)는 후에 프랑스 국왕 앙리 9세 (Henry IV)와 결혼해 왕비가 된다. 메디치 가문이 배출한 두 번째 프랑스 왕비다.
프란체스코 1세가 아들 없이 죽자 동생인 페르디난도 1세 (Ferdinando I de’ Medici)가 38세의 나이에 투스카니 대공작에 올랐다. 그는 형의 죽음에 얽힌 온갖 소문을 부인하고 자연사라고 강조하며 많은 시간을 로마에서 보냈다.
페르디난도 1세는 메디치 가문과 투스카니 공국의 마지막 부흥기를 장식한 군주로 평가를 받는다. 그는 15세에 추기경이 되어 종교에 심취했다. 그는 대공 지위를 물려받은 후 2년간 추기경 직을 보유하다가 공작으로서 후손을 낳기 위해 추기경직을 버리고 결혼했다. 부인은 프랑스 앙리 2세의 손녀이자 로렌 가문의 크리스티나 (Christina of Lorraine)였다.
그는 형과 기질이 달랐다. 형 프란체스코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가신처럼 행동했지만 그는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피렌체와 투스카니의 독립을 유지하려 했다.
페르디난도는 우수한 행정가를 영입해 내정을 맡기고 정부의 부패를 척결하고 재정을 안정시켰다. 무역과 농업도 번성했다. 피렌체에 병원이 세워지고 피사에 대학을 설립했다. 리보르노 (Livorno)에는 유럽의 지식인들이 몰려왔다.
그는 종교적 편견도 불식시켜 유태인들에게도는 자유를 주었다. 리보르노는 스페인에서 박해받은 유태인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가난한 처녀들에게 지참금을 나눠줬고, 수재민들을 구호했다.
예술과 학문 발전에도 후원했다. 우피치 미술관을 확장하고 이집트와 페르시아의 고서적을 사들여 메디치 도서관에 기증했다. 그는 최초의 오페라로 알려진 자코포 페리 (Jacopo Peri)의 다프네 (Dafne)를 지원했다.
그는 60살이 되던 1609년에 사망했다.
○ 자녀
코시모 2세(1590~1621) 토스카나 대공
엘레오노라(1591~1617)
카테리나(1593~1629) 만토바 공작 부인
프란체스코(1594~1614)
카를로(1595~1666) 추기경
필리피노(1598~1602)
로렌초(1599~1648)
마리아 막달레나(1600~1633)
클라우디아(1604~1648) 오스트리아 대공비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