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6년 2월 8일, 러시아의 차르 이반 5세 (Иван V, 1666 ~ 1696) 타계
이반 5세 (러: Иван V, 1666년 9월 6일 ~ 1696년 2월 8일)는 루스 차르국의 차르 (재위: 1682년 ~ 1696년)이다.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와 그 첫 번째 아내 마리아 밀로슬라프스카야의 아들이다. 형제로는 소피아, 표도르 3세, 표트르 1세 등이 있다.

– 이반 5세 (Иван V)
.출생: 1666년 9월 6일, 모스크바 루스, 차르국 모스크바
.사망: 1696년 2월 8일 (29세), 모스크바, 루스 차르국 모스크바
.왕조: 로마노프 왕조
.가문: 로마노프가
.부모: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마리아 밀로슬랍스카야
.배우자: 프라스코비아 살티코바
.자녀: 마리아 이바노브나, 표도시아 이바노브나, 메클렌부르크슈베린 공작부인 예카테리나, 러시아 여제 안나, 프라스코바 이바노브나
.종교: 러시아 정교회
*루스 차르국 로마노프 왕조 제4대 차르
.재위: 1682년 5월 7일 ~ 1696년 2월 8일
.대관식: 1682년 6월 25일
.전임: 표도르 3세 알렉세예비치 / 공동재위자: 표트르 1세 알렉세예비치 / 후임: 표트르 1세 알렉세예비치
표도르 3세의 사후 차르 계승 문제를 둘러싸고 귀족들 사이에서 첫 번째 황후 소생인 이반을 지지하는 세력과 두 번째 황후 소생이 표트르를 지지하는 세력이 대립한 결과 이반이 차르로서 즉위하고 표트르는 공동통치자가 되었다.
몸이 병약하고 장애를 가지고 있었던 이반 대신 누이 소피아가 섭정이 되어 대부분의 정무를 돌보았다.

○ 생애 및 활동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와 첫 번째 아내 마리야 일리니치나 밀로슬라프스카야의 5남으로 태어났다.
1682년 동복형 표도르 3세가 자녀 없이 죽게 되자 이후 벌어진 왕위계승전에 의해 이복 동생 표트르 1세와 공동 차르로 즉위하게 되었다.
하지만 몸이 약하고 괴혈병을 앓고 있어서 누이 소피아 알렉세예브나가 정권을 장악하고 이복 동생 표트르 1세는 소피아의 눈을 피해 시골마을로 내려가게 된다.
소피아는 1689년 축출되었고 표트르 1세가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왔는데 이반 5세는 표트르 1세에 우호적이었던 이유로 그는 죽을 때까지 차르의 자리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국정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다.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 패배로 소피아가 귀족들의 신임을 잃게 되자 표트르는 1689년 정권을 장악했고 이반은 1696년 남자 후계자를 두지 못한 채 죽었다.
황후 프라스코비아 살티코바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다섯 명의 딸들 중 넷째딸 안나는 1730년 러시아의 여제로 즉위했다.

- ‘그림자 차르’로서의 삶
표트르 1세가 서구화 개혁과 군사 훈련에 매진하는 동안, 이반 5세는 주로 종교 의식이나 궁정 의례에 참석하는 상징적인 역할에 머물렀다.
수동적 태도: 동생인 표트르 1세와 갈등을 빚지 않았으며, 표트르가 실권을 장악한 뒤에도 그는 명목상의 차르 자리를 유지했다.
가정 생활: 1684년 프라스코비야 살티코바와 결혼하여 다섯 딸을 두었다. 그중 넷째 딸이 훗날 러시아의 여제가 되는 안나 이바노브나다.
- 유산
1696년, 30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이미 20대 후반에 노인처럼 보일 정도로 쇠약해졌다.
표트르의 단독 통치: 그의 사후 표트르 1세는 명실상부한 단독 차르가 되어 러시아를 제국으로 탈바꿈시키는 대대적인 개혁을 시작한다.
역사적 평가: 비록 무능한 군주로 비춰지기도 하지만, 그의 존재는 표트르 대제가 자리를 잡기까지의 과도기적 정통성을 유지해 주는 역할을 했다.

○ 가족
– 부모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마리아 밀로슬랍스카야
– 배우자
프라스코비아 살티코바
– 자녀
마리아 이바노브나
표도시아 이바노브나
메클렌부르크슈베린 공작부인 예카테리나
러시아 여제 안나
프라스코바 이바노브나
프라스코비아 살티코바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