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2년 4월 23일, 잉글랜드 여왕 • 스코트인의 여왕 앤 (Anne, 1665 ~ 1714) 대관식
앤 (Anne, 1665년 2월 6일 ~ 1714년 8월 1일, 재위 1702년 4월 23일 ~ 1714년 8월 1일)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동군연합의 마지막 여왕이자 최초의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여왕 및 아일랜드의 여왕이다. 스튜어트 왕조의 마지막 군주이기도 하다. 브랜디를 좋아하여 ‘브랜디 낸 (Brandy Nan)’으로도 알려져 있다.
앤 (Anne, 1665 ~ 1714)은 1702년 4월 23일, 잉글랜드 여왕 • 스코트인의 여왕 대관식를 거행했다.
– 앤 (Anne)
.왕호: 앤 (Anne)
.출생: 1665년 2월 6일, 영국 런던 세인트제임스궁
.사망: 1714년 8월 1일, 영국 런던 켄싱턴 팰리스
.매장지: 웨스트민스터 사원
.가문: 스튜어트가
.부모: 부) 제임스 2세, 모) 요크 공작부인 앤 하이드
.배우자: 요르겐 애 단마르크 왕자
.자녀: 글로체스터 공작 윌리엄
.종교: 잉글랜드 성공회
*그레이트브리튼 여왕
.재위: 1707년 5월 1일 ~ 1714년 8월 1일
.전임: 신설 / 후임: 조지 1세
* 아일랜드 여왕
.재위: 1702년 3월 8일 ~ 1714년 8월 1일
.전임: 윌리엄 3세 / 후임: 조지 1세
* 잉글랜드 여왕, 스코트인의 여왕
.재위: 1707년 3월 8일 ~ 1707년 5월 1일
.대관식: 1702년 4월 23일
.전임: 윌리엄 3세 / 후임: 폐지
마지막 잉글랜드 국왕, 스코틀랜드 국왕이자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초대 국왕이다.
제임스 2세의 차녀이자 메리 2세의 동생, 명예혁명 이후 후계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한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 공동국왕의 뒤를 이어 왕으로 즉위하였다. 군주로서의 명성은 다른 왕들만큼 높지 못하지만, 그녀의 재위 당시 잉글랜드에는 중요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다.
앤은 재위 기간 내내 선왕이자 형부이며, 사촌오빠였던 윌리엄 3세에 의해 사실상 개입하게 되었던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을 치렀는데, 이 전쟁의 결과 위흐레흐트 조약을 통해 지브롤터 등을 확보하면서 영국은 해군력에서 상당한 우위를 점하게 된다. 그리고 이 때부터 영국의 유명한 세력 균형책이 시작되었다. 또한 즉위 이후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반란을 진압했고, 1707년 통합법에 의해 동군연합이었던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을 통합한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성립하였다. 한편 앤이 즉위하면서 윌리엄 3세 때 결성된 잉글랜드와 네덜란드의 동군연합은 1대 만에 해체되었다. 네덜란드의 왕위 자리는 ‘침묵공’ 빌럼 1세의 동생의 후손이 이어받았다.
재위 기간동안 앤은 토리당과 휘그당의 불화를 이용하여 왕권을 유지하였으며, 토리당과 휘그당을 번갈아 중용한 후에 한 세력이 너무 강해진다 싶으면 실각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1708년에 남편이 사망한 후 큰 충격을 받아 건강이 매우 악화되었으며, 사망 1년 전인 1713년부터는 걷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병상에 누워서도 국정을 돌보다가 1714년 8월 1일에 사흘동안 이어진 어전 회의를 버티지 못하고 뇌졸중으로 서거했다. 이에 대해 여왕이 동생인 제임스 2세의 아들과 접촉하여 그를 복권시키려 하자 주위의 반대파들이 두려워해 여왕을 암살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정황상 암살의 가능성은 없다.
스튜어트 왕조의 직계가 제임스 2세 이후로 끊어졌기 때문에, 영국에는 그녀의 즉위 이전부터 왕조 교체가 예정되어 있었다. 앤의 사후 왕위계승법에 따라 제임스 1세의 외손녀 소피아 공주의 후손인 하노버 선제후국의 조지 1세가 영국 왕으로 즉위함으로써 하노버 왕조가 시작되었다.
참고로 앤 여왕과 메리 2세의 이복남동생인 제임스는 제임스 3세를 자칭하며 계속 영국 왕위를 주장했고, 그의 후손도 마찬가지였다.
영국 역사상 국왕의 거부권을 행사한 마지막 군주이다. 1708년 영국 의회를 통과한 Scottish Militia Bill 1708라는 법안에 대해 앤 여왕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해당 법안은 스코틀랜드 민병대 (구 스코틀랜드 군대)를 강제 해산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당시 영국 내각 신하들은 여왕한테 해당 법안을 승인 (Royal Assent)하면서 잉글랜드에서 스코틀랜드 민병대를 무장해제시킬 경우, 프랑스가 스코틀랜드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영국을 침공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따라서 앤 여왕은 해당 법안을 거부하고 프랑스가 영국을 침공할 명분을 없앴다. 스코틀랜드의 민병대 (군대)를 해산하는 것은 빅토리아 여왕 때 가서 성사된다.
1708년에 행사된 이 거부권 이후 지금까지 영국 국왕은 내각과 의회를 통해 입법된 법안들에 대해 단 한 번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조지 5세가 1912년 아일랜드 자치 법안에 대해 승인을 보류 (Postpone)한 적은 있다.
○ 생애 및 활동
– 즉위 이전
.성장시기
1665년 요크 공작 제임스 (나중의 제임스 2세)와 그 아내 공비 앤의 차녀로 태어났다. 언니는 메리 2세이다.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 신자로 자랐지만 교육은 그다지 많이 받지 못하였고, 독서나 예술보다는 스포츠나 승마를 좋아했다. 요크 공작 궁정의 궁녀로 후에 말버러 공작부인이 되는 사라 제닝스는 소녀 시절부터 친한 친구였다.
.불행
1683년 7월 28일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5세의 남동생인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왕자 요르겐과 결혼했다. 앤은 남편과의 사이에서 모두 19명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14명이 유산 (또는 상상임신)이나 사산으로 죽었고 2명은 태어난 그 날 중에 사망하였으며 나머지 3명도 10살까지 살지 못하는 불행을 겪었다.
.명예혁명
1688년 명예 혁명에서 형부인 네덜란드의 오라녜 공 윌리엄이 잉글랜드에 상륙하자 윌리엄에게 투항했다. 제임스 2세가 추방되어 언니 메리와 그 남편 윌리엄이 메리 2세와 윌리엄 3세로서 공동 통치자로 즉위하였지만, 사이가 나빴던 두 사람 사이 아이가 없었으므로 일찍부터 왕위 후계자로 주목받았었다. 그러나 1692년 제임스 2세가 총애했던 장군 말버러 백작 존 처칠이 옛 주인 제임스와 극비리에 통신한 의혹 받고서 투옥되었을 때 말버러가 앤의 친구 사라의 남편이었으므로 앤은 그 투옥에 반대하여 메리 여왕과 사이가 벌어졌다. 이 사건 이후 앤은 메리 여왕과 관계를 끊었다.
– 재위 기간
.즉위
메리 2세는 1694년 이미 사망했고, 1702년에 단독 통치를 계속하고 있던 윌리엄 3세가 죽으면서 앤이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여왕으로 즉위했다. 즉위식 때 “나의 모든 정성을 오로지 영국을 위해 바치겠노라”고 하여 국민의 갈채를 받았다. 부군이었던 덴마크의 조지는 여왕의 배우자로서의 지위가 주어져서 통치자로서의 군림은 실시하지 않았다.
.전쟁
앤 여왕이 즉위 했을 때 선왕의 생전시 시작된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 본격화되어 잉글랜드는 네덜란드와 함께 오스트리아와 동맹하여 프랑스 및 스페인과 싸우게 되었다. 앤 여왕은 친구의 남편 말버러 백작을 잉글랜드군 총사령관에게 임명하여 플랑드르·독일에 파견하였고 말버러 백작의 친구 시드니 고돌핀을 백작으로 임명하여 전쟁을 수행시켰다.
말버러 백작은 네덜란드 전선 (현재의 벨기에)에서 큰 전공을 세웠고, 앤 여왕은 그를 말버러 공작으로 서임했다. 1704년에는 말버러 공작은 남 독일에서 행해진 블렌하임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치는 대전과를 얻었고 그 후에도 플랑드르 방면에서 전승을 거듭했다.
또 스페인과의 싸움에서는 영국 함대가 스페인의 지브롤터를 함락 시켰다. 북아메리카의 식민지에서 펼쳐진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은 앤 여왕전쟁으로 불리고는 있지만 아직 통일된 용어는 아니다.
.스코틀랜드와의 합병
전쟁 중이었던 1707년 5월 1일에 잉글랜드 · 스코틀랜드 양국의 연합법이 체결되어 제임스 1세이래 100년에 걸쳐 동군연합으로 묶여 온 양국은 정식으로 통합된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되었고 앤 여왕은 그 최초의 군주가 되었다.
– 말년
.말버러 공작의 실각
말버러 공작 부인이 된 앤 여왕의 친구 사라는 여왕의 측근으로 남편의 대변자가 되어 계속해서 전쟁을 수행할 것을 여왕에게 조언했지만, 점차 여왕은 평화 추진파에게 마음이 기울기 시작하여 결국 사라를 싫어하게 되었다. 1710년 앤 여왕은 마침내 사라를 궁정으로부터 추방한다. 또 같은 해에 행해진 선거 결과 평화 추진파의 보수당이 정권을 차지했다. 이 사건의 결과로 말버러 공작의 군자금 횡령 의혹의 조사를 하였고 다음 해에 횡령이 보고되어 말버러 공작은 실각하였다. 주전론자 말버러의 실각으로 스페인 계승 전쟁은 평화교섭이 개시되어 1713년에 위트레흐트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으로 영국은 지브롤터 등의 여러 해외 영토를 획득하여 현재까지 영유하고 있다.
.후계자
또 앤 여왕에게는 성년의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앤의 즉위 전부터 장래, 왕의 후계자 문제가 되었다. 앤 여왕에게는 아버지 제임스 2세를 따라 프랑스에 망명한 이복 남동생 제임스가 있었지만 그는 로마 가톨릭 신자였으므로, 전제 부활을 경계하는 개신교도 중심의 의회 세력은 그의 즉위를 바라지 않았다. 그리하여 스튜어트 왕조의 피를 이을 개신교도인 제임스 1세의 외손녀 소피아 (하노버 선제후 왕비 조피, 앤 여왕에게는 내척되는 5촌 아주머니)의 자손이 계승자가 되어야 할 것을 정한 법률이 의회에서 제정되었다.
.죽음
앤 여왕이 1714년에 본태성 고혈압과 염증성 장질환으로 사망하자 내종오촌 아주머니 조피의 장남이며 앤 여왕의 먼 친척 오라버니뻘인 하노버 선제후 게오르그 루트비히가 조지 1세로 즉위함으로써 스튜어트 왕조는 단절되었다. 앤은 복부비만 체질로 어디를 가더라도 가마를 타고 다녔고 만년에는 전혀 걸을 수가 없을 정도로 비만이 진행되어 궁전 안을 이동할 때도 경비대장의 도움으로 휠체어를 사용하였다. 그리하여 1714년에 사망했을 때에 관이 정방형이었다고 전해진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