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2년 12월 6일, 프랑스의 의사•화학자 니콜라 르블랑 (Nicolas Leblanc, 1742 ~ 1806) 출생
니콜라 르블랑 (프: Nicolas Leblanc, 1742년 12월 6일 ~ 1806년 1월 16일)은 프랑스의 의사, 화학자이다.

– 니콜라 르블랑 (Nicolas Leblanc)
.출생: 1742년 12월 6일, 프랑스 Ivoy-le-Pré
.사망: 1806년 1월 16일, 프랑스 파리
.직업: 의사, 화학자
.자녀: César-Nicolas-Louis Leblanc
.업적: 비누 발명, 르블랑 공정 발명
니콜라 르블랑은 1742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프랑스의 화학자이다.
파리의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는데, 나중에 화학을 연구하였다.
1789년 소금에서 탄산나트륨을 만들어 내는 르블랑 공정을 발명하였다.
이것은 근대 화학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하였다.
외과 의사로 활동하다가 1791년 소금, 황산, 석회석, 목탄을 이용한 2단계 르블랑 공법을 개발했다.
이 공법으로 소다회 대량 생산의 길을 열었지만, 프랑스 혁명으로 공장이 몰수되고 경제적 어려움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1806년 자살했다.
르블랑 공법은 19세기 초 유럽 각지로 퍼져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 생애 및 활동
니콜라 르블랑 (Nicolas Leblanc)은 1742년 12월 6일, 프랑스 Ivoy-le-Pré에서 출생하였다.
파리의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는데, 나중에 화학을 연구하였다.
1789년 소금에서 탄산나트륨을 만들어 내는 르블랑 공정을 발명하였다. 이것은 근대 화학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하였다.
비누를 발명하여 위생상태를 개선시켜 통계적으로 비누 보급인구의 수명이 평균 20년 연장 되었다.
오를레앙공의 군의 (軍醫)로 있었는데 화학에 소양이 있었으므로 소다의 현상에 응모하려고 연구를 계속하여 1787년에 르블랑법을 완성시켰다.
오를레앙공의 자금 원조를 받아 1790년에 파리의 근교 상 드니에 소다공장을 세웠으나 조업이 만족하게 진행되기 전에 혁명이 격심하여져 오를레앙공이 처형되고 말았다.
소다공장은 귀족의 재산이라 하여 몰수되고 르블랑법과 특허까지도 국가의 이익으로 공표되고 말았다.
파산한 르블랑은 1806년 1월 16일에 구빈원 (救貧院) 에서 자살하고 말았다.
비누의 대량 생산을 고안해낸 르블랑은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제대로 뜻을 펼쳐 보지도 못하고 눈을 감게 된다.
르블랑이 죽은 후에, 그의 특허는 세상에 공개되어 섬유, 비누, 유리, 제지 등 다양한 산업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르블랑이 고안한 방법으로 비누의 공장이 대거 세워지게 되고, 각 지역에서 비누를 생산해내기 시작했다.
최초로 비누 대중화를 이뤄냈던 르블랑 덕에 비누의 단가는 획기적으로 줄어 모든 사람들이 쓸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비누로 씻기 시작하고 이로 인해 질병 전염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비누의 대중화는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인 셈이다.
개인 청결에 혁명을 가져다준 비누. 현재까지도 많은 의학자들이 가장 많은 인류를 구한 물품 1위로 비누를 꼽고 있다.

- 르블랑 공정
르블랑 공정은 니콜라 르블랑 이 19세기 산업 혁명 중에 탄산 나트륨을 생산하기 위해서 만든 공정이다.
이 공정은 나중에 염산, 이산화 탄소, 황화 칼슘을 생성하지 않는 솔베이 공정으로 바뀐다.
이 과정에서 황산과 탄소는 필요가 없고 중간 촉매로 암모니아, 결과물로 염화 칼슘을 생성한다.
18세기 말, 탄산 나트륨(소다회)은 주로 목재 재에서 얻었으나, 수요 증가와 삼림 감소로 공급 부족 문제가 발생했다. 1775년,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는 소금(염화 나트륨)에서 소다회를 생산하는 공법에 대한 상금을 제안했다. 아카데미는 저렴한 염화나트륨으로부터 절실히 필요한 탄산 나트륨 생산을 장려하려 했다.
1791년, 니콜라 르블랑은 소금, 황산, 석회석, 목탄을 이용한 2단계 르블랑 공법 개발에 성공했다.
첫 번째 단계에서, 염화 나트륨은 800°C~900°C의 온도에서 농축된 황산과 혼합된다. 염화 수소 기체가 발생하고, 고체 황산 나트륨이 남는다.
두 번째 단계에서, 황산 나트륨은 분쇄되어 목탄, 석회석과 혼합된 다음, 다시 로에서 가열된다.
르블랑은 이 공법으로 상금을 받았고, 생드니에 연간 320ton의 소다회를 생산하는 공장을 설립했다.
르블랑 공법은 이후 솔베이 공법으로 대체되기 전까지 소다회 대량 생산의 주요 기술로 활용되었다.

○ 인류를 구한 물품 1위, 비누
코로나 19를 예방할 수 있는 열쇠는 바로 ‘이것’이다. ‘이것’은 인류가 겪어왔던 각종 피부병과 전염병을 기하급수적으로 줄여줬으며, 인류의 평균 수명을 20년 정도 늘린 위대한 발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바로 ‘비누’이다. 이 비누가 지금처럼 우리 일상과 함께하기 전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프랑스의 의사이자 화학자였던 니콜라 르블랑. 그는 외과의사로 근무하면서도 과학자의 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 화학 교수의 학생이 되면서 평생 꿈꾸던 과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당시에는 개인위생이 발달하지 않아 전염병이 한번 창궐하면 마을 단위로 떼죽음을 당하던 상황이었습니다. 1775년 프랑스 과학아카데미는 “소다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한 자에게 1만2000리브르(현재 가치로 약 6억원)를 상금으로 주겠다..”고 공모를 했다.
이에, 르블랑은 시행착오 끝에 소다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게 된다.
사실 2천년전부터 인류에게 비누는 존재했다. 하지만, 상당히 비싼 사치품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몸을 씻거나 빨래를 할 때에는 올리브유나 모래를 사용해왔다.
이런 방식은 사람의 몸을 청결하게 관리하기 어려워 여러 질병을 유행시키게 되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비누의 대중화였습니다.
당시에는 비누의 원료를 구하기 쉽지 않아 대량 생산에 어려움을 겪던 상태였다. 하지만 비누의 대량 생산을 고안해낸 르블랑은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제대로 뜻을 펼쳐 보지도 못하고 눈을 감게 된다.
르블랑이 죽은 후에, 그의 특허는 세상에 공개되어 섬유, 비누, 유리, 제지 등 다양한 산업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르블랑이 고안한 방법으로 비누의 공장이 대거 세워지게 되고, 각 지역에서 비누를 생산해내기 시작했다.
최초로 비누 대중화를 이뤄냈던 르블랑 덕에 비누의 단가는 획기적으로 줄어 모든 사람들이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비누로 씻기 시작하고 이로 인해 질병 전염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비누의 대중화는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인 셈이이다.
개인 청결에 혁명을 가져다준 비누. 현재까지도 많은 의학자들이 가장 많은 인류를 구한 물품 1위로 비누를 꼽고 있다.
바이러스로 인한 불안감을 비누로 깨끗이 씻어 보는 건 어떨까요?
니콜라 르블랑 (프:Nicolas Leblanc, 1742년 12월 6일 ~ 1806년 1월 16일)은 프랑스의 의사, 화학자이다. 파리의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는데, 나중에 화학을 연구하였다. 1789년 소금에서 탄산나트륨을 만들어 내는 르블랑 공정을 발명하였다. 이것은 근대 화학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하였다. _ 권오헌 기자 (세종경제신문)


참고 = 위키백과, 세종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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