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7년 11월 22일, 7년 전쟁 : 브레슬라우 전투 (1757년 11월 22일 ~ 25일) 시작
브레슬라우 전투는 7년 전쟁 중인 1757년 11월 22일 브레슬라우에서 프로이센군 28,000명과 오스트리아군 84,000명이 맞붙은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프로이센은 6,000명을 잃고, 오스트리아는 5,000명을 잃었다. 그날 저녁 프로이센군이 퇴각함으로써 브레슬라우의 수비대는 방어할 수가 없어 오스트리아에 11월 25일 항복했다.
블레슬라우는 현재의 브로츠와프이며, 폴란드 실레지아에 있는 도시다.

프로이센군은 이 전투에서 150명의 장교와 약 6,000명의 병사를 잃었다. 프리드리히 루트비히 폰 클라이스트 소장은 전사했고 카스퍼 에른스트 폰 슐츠 장군, 페테르 에른스트 폰 페나바아르 장군, 요한 루트비히 폰 잉거슬벤 장군은 치명상을 입었다. 게다가 5가지 깃발과 22명의 장교, 600명의 병사, 대포 29문이 적에게 포획되었고 3,800명의 병사들은 탈영했다. 반면 오스트리아군은 44명의 장교와 649명의 병사들이 전사하고 235명의 장교와 4,460명의 병사들이 부상당했으며, 5명의 장교와 454명의 병사들이 실종되었다.
이후 베베른 공작은 브레슬라우 요새로 진군하는 적을 살펴보고자 정찰을 나갔다가 그만 적 경기병대에게 사로잡혔다. 베베른 공작은 빈으로 옮겨졌지만 마리아 테레지아의 모친이 그와 사촌지간이었기 때문에 몸값을 지불하는 일 없이 돌려보내졌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그가 의도적으로 적에게 사로잡혔다고 여겼고, 그가 돌아오자 다음과 같이 명령했다.
“슈테틴으로 가서 평화로운 시간을 만끽하라! 거기에 있는 쓸모없는 수비대를 통솔하라. 너에게는 그보다 더 나은 자리도 없을 것이다.”
총사령관이 적에게 사로잡힌 상황에서 더 이상의 저항은 무리라고 판단한 브레슬라우 요새 수비군은 철수했고, 오스트리아군은 11월 28일 브레슬라우를 함락시켰다. 이에 프리드리히 대왕은 서둘러 군대를 이끌고 이동해 12월 5일 로이텐 전투를 치른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