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6년 11월 29일, 프랑스 철학자 ‘프랑스 유심론의 시조’ 멘 드 비랑 / 마리 프랑수아 피에르 고티에 멘 드 비랑 (Marie François Pierre Gontier Maine de Biran, 1766 ~ 1824) 출생
마리 프랑수아 피에르 고티에 멘드비랑 (Marie François Pierre Gontier Maine de Biran, 1766년 11월 29일 ~ 1824년 7월 20일)은 프랑스의 철학자이다. ‘프랑스 유심론의 시조’로 불린다.
칸트 및 피히테의 학설에 영향을 받아 외감 (外感)에 대한 내감 (內感)의 의의를 강조하고, 프랑스 유심론 철학의 길을 열었다. 저서에 ‘인류학의 새로운 시론’ 따위가 있다.

– 멘 드 비랑 (Maine de Biran)
.본명: 마리 프랑수아 피에르 고티에 멘 드 비랑 (Marie François Pierre Gontier Maine de Biran)
.출생: 1766년 11월 29일, 프랑스 베흐쥬학
.사망: 1824년 7월 20일, 프랑스 파리
.국적: 프랑스
.학력: 푸아티에 대학
.영향을 준 인물: 르네 데카르트, 에티엔 보노 드 콩디야크,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등
.저서: 인류학의 새로운 시론
베르주라크 출신으로 파리에 나와서 근위사관이 되었고 나폴레옹 치하에서는 베르주라크 군수를 지냈으며, 왕정복고 시대에는 하원의원과 참의원으로 활약하였다.
사상가로서는 프랑스 관념학에서 출발하여 습관을 수동적 습관과 능동적 습관으로 구별해 정신의 능동성·자발성을 인정함으로써 관념학의 유물론적인 경향을 반대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정신의 작용을 기본적 사실로 하여 의식의 중심을 ‘노력’이라는 원시적 사실에서 구해 “나는 욕구하고 일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여기에서 심리학을 떠나 이 개별적 자아를 그 형이상학적 본질에서 포착하여 주의주의적 내성철학 (主意主義的 內省哲學)에 의하여 인간을 형이상학적으로 규정한다고 하는 독특한 유심론을 전개하였으며, 결국은 그리스도교적 신비주의에 이르렀다.

○ 멘 드 비랑 (Maine de Biran)
1.비랑의 삶과 철학
비랑은 시민혁명과 공화정, 나폴레옹의 독재와 제국주의 그리고 왕정복고의 교체를 경험하면서 삶의 많은 부분을 변화의 중심부에서 살아왔다. 비랑은 어린시절부터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종종 경이감을 느꼈다고 말했을 정도로 매우 예민한 감각의 소유자였고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의 철학은 어떤 외적인 영향보다도 자기 내면에 대한 끊임없는 관찰과 탐구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비랑의 철학은 고뇌에 찬 내적 관찰의 기록이다. 이 기록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주제는 수동성과 능동성의 대립이다. 즉 비랑은 생리 작용이나 심리상태에 매우 민감했으며, 수동성 (정념에의 노예상태)과 능동성 (인간의 자유의지)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의 이원성에 대해 큰 관심을 가졌다. 이러한 점에서 비랑은 인간의 근본적인 내적 성향 또는 원리에 의해 현시되는 구체적인 의식 사실의 연관성을 발견하고자 하는 내적 발견의 형이상학을 전개했다. 그에게 있어 인간은 한편으로는 생명성에 종속되어 있는 존재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의지적 노력을 하는 존재이다. 이렇게 비랑은 인간의 수동적인 삶과 능동적인 삶이 분리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결론은 그가 인간의 이원성을 끝까지 밀고 나감으로써 도출한 것이 다. 이런 점에서 비랑은 인간의 이원적인 모순을 극복하고 내면의 평정과 진정한 행복을 찾는 것을 철학의 목적으로 삼았다고 간주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철학은 일종의 스피노자적인 내적 필연성의 철학 일종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비랑은 인간의 능동성과 수동성이라는 두 세계의 상관성을 밝히지 못하고 결국 이원성은 극복될 수 없는 한계라고 결론 맺는다. 비록 비랑의 이원론적 시도가 일관된 체계를 이루지 못한 채 끝났지만, 비랑의 형이상학은 비랑 이후 베르그송 등으로 유명한 프랑스 특유의 정신주의 철학전통을 낳았다. 근대철학에서 멘 드 비랑이 차지하는 위상은 흔히 ‘프랑스의 칸트’로 단순하게 표현된다. 비랑 철학이 무엇보다 인식론적이었다는 점과 두 철학자 모두 나름대로 기존의 철학적 입장을 종합하여 새로운 출발을 했다는 점에서 이 둘을 비교할 수 있다. 그러나 멘 드 비랑이 택한 방법과 그 결론은 칸트의 것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칸트가 비판적 반성을 중요시한데 비해 비랑은 실재를 있는 그대로의 상태로 받아들이는 경험의 방법을 취한 후 그것을 면밀하게 분석하고자 했으며, 결국 물 자체와 인간의 오성을 구별하는 칸트의 관념론적 입장과는 달리 비랑은 인간의 육체와 정신의 연관성을 중시하는 실재론적 결론에 도달했다.
2. 초기 사상 : 《습관에 관한 논고》를 중심으로
2.1 선대 사상가들의 영향
이 저작은 당시 프랑스 철학계를 이끌던 꽁디약과 이데올로그들에 (데스뛰 드 트라씨가 관념의 기원과 발생을 연구한 자신의 작업을 규정한 용어지만, ‘이데올로그’라는 말은 나폴레옹이 당시 빠리 학사원의 철학자들을 부를 때 사용한 것으로 여기에는 관념들만을 가지고 공허한 논의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냉소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꽁디약은 본유관념주의에 반대하고 로크의 경험주의를 받아들이면서 인식론과 심리학적 문제들을 다룬 《감각론》 이라는 저서를 1754년에 출간했다. 그는 경험론의 전제를 받아들인 후 감각경험으로 부터 인식과 인식기능의 발생을 탐구하고자 했다. 감각경험에서 출발한 꽁디약이 외적 대상의 인식을 설명하는데 있어 주목한 주제는 촉각운동이었다. 꽁디약에 따르면 감각은 정신의 수동성을 전제로 단지 외적 자극을 받아들이는데 지나지 않는 반면, 촉각은 능동적으로 신체기관을 움직임으로써 대상을 지각한다. 물질의 연장성은 시각이 아니라 촉각이 느끼는 저항의 감각에 의해 비로소 공간적으로 인식된다. 게다가 촉각은 다른 감각들과 긴밀히 연합되어 있기에, 꽁디약은 이러한 감각습관에 의해 외적 세계의 인식이 가능하다는 실재론적 입장을 견지한다.
이후 등장하는 데스뛰 드 트라씨와 까바니스는 꽁디약의 입장을 계승하는 한편 두 가지 측면에서 이를 보완하고자 하였다. 데스뛰 드 트라씨에게 중요한 것은 능동적으로 운동하는 촉각이 아니라 운동 그자체이다. 왜냐하면 촉각이란 운동하고 있지 않을 때는 수동적이기 때문이다. 데스뛰 드 트라씨는 운동감각을 노력의 감각이라 불렀다. 단순히 촉각을 통해 얻얻어지는 감각은 수동적, 주관적 감각이다. 이는 촉각이 운동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직 저항의 감각만이 촉각의 능동적 기능, 즉 노력에 의해 얻어지며 객관 세계의 존재를 드러내준다. 따라서 저항과 운동의 감각이 중요한 요소로 부각된다. 생리학자인 까바니스는 앞의 두명이 외적감각에만 의존한다고 비판하면서, 통증과 같은 유기체 내부의 작용에서 오는 감각들돠 본능적 감각들을 통틀어 내적 감각이라 부르고, 데스뛰 드 트라씨의 운동감각과 더불어 꽁디약의 외적 감각의 이론을 보완하는 두 요소로 보았다.
비랑은 꽁디약의 이론을 수용하지만 오직 감각경험의 축적에 의해서만 인식과 정신기능을 설명하는 것이 인위적이라고 생각한다. 비랑은 까바니스가 발견한 생리적, 본능적 감각을 느끼는 생리적 감수성과 데스뛰 드 트라씨가 발견한 의지적, 운동적 노력이라는 두 가지 내적 활동을 원리로 삼아 감각의 관찰과 분석을 시도 했다. 요컨대 비랑은 생리적, 본능적 감각을 느끼는 생리적 감수성과 데스뛰 드 트라씨가 발견한 의지적, 운동적 노력이라는 두 가지 내적 활동을 원리로 삼아 감각의 관찰과 분석을 시도한다.
2.2 인상의 구분
그는 선대 경험론자들이 ‘감각’이라고 이름지은 개념을 인상이라는 용어로 대체하고 능동인상과 수동인상으로 구분한다. 비랑에 따르면 개별적인 감각들은 각각에 상응하는 생리적 구조, 즉 감각기관에 의해 나타난다. 이는 다르게 말하자면 각 감각기관에는 각자의 작용에 따라 상이한 인상이 나타난다고도 할 수 있다.
다양한 인상들에는 기본적으로 수동적이거나 능동적인 두 가지 특성이 있다. 후각, 미각, 수동적 촉각 등 감각기관에 의한 대부분의 인상은 수동인상이다. 예컨대 ‘나‘가 단순히 부드러움이나 아픔의 감각을 느낄 때 나는 완전히 수동적이다. 이때 나는 감각기관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병형되어 느껴진 감각 자체와 동일시된다.
그러나 ‘나‘가 스스로 신체의 일부를 움직일 때는 이러한 변형을 창조한 것은 나이기 때문에 여기서 의식은 능동성있고 자명한 것으로 드러난다. 즉 ‘나’라는 주체가 스스로의 의지로 신체의 일부를 움직이며 특정한 변형을 창조함으로써 발생시키는 인상, 요약하자면 인간이 의식적·의지적으로 느끼는 인상이 능동인상이다. 즉 어떤 단단한 물체가 ‘나’의 손을 누를 경우, 나는 그 물체 표면에서 나의 감각기관으로 주어지는 수동인상 (예컨대 차가움)을 느낀다. 동시에 나는 나의 힘과 대립하는 또 다른 힘의 존재를 느끼며, 나아가 손으로 이 물체를 쥐는 경우 나는 내 운동에 저항하는 대상의 존재를 인식한다 (능동인상).
2.3 능동성의 의식
비랑은 능동인상을 느끼는 인간의 의식상태를 ‘능동성의 의식’이라고 칭하며 그의 철학의 중요한 탐구주제로 삼는다. 비랑에 따르면 능동성의 의식 속에 있는 인간은 ‘의지적 노력’이라는 느낌을 가진다. ‘의지적 노력’이란 운동하는 주체와 이에 저항하는 대상이 만날 때 생기는 느낌이다. 선술한 능동인상의 예시에서 ‘나’는 저항하는 대상에 대해서 그것이 어떤 존재인가에 관한 인식은 갖지 못한다 해도, ‘이것은 내가 아니다’라는 최소한의 판단 (능동인상)에는 이를 수 있다. 이 판단 혹은 능동적 느낌이 바로 ‘의지적 노력’이다. 비랑철학에 있어서 의지적 노력은 인간의 능동적 인식 혹은 의지적 의식상태에 관한 탐구의 출발점이다. 즉 내가 의지적 운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자유자재로 되지 않고 강제성에 부딪힌다는 자명한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야 말로 모든 능동적 인식의 근원이 되는 제1의 인식이다. 이런 이유에서 관념론자들에게 시각이 가장 중요한 감각이었다면, 비랑에게 있어서는 촉각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인상이다.
2.4 감성적 활동성과 운동적 활동성
비랑에 따르면 인상들의 수동성과 능동성을 구분은 근본적으로 인간 본성의 원리, 즉 인간의 내적 감관 의해 가능하다. 비랑은 인간의 본성을 이루는 두가지 요소인 감성적 활동성과 운동적 활동성을 구분한다. 감성적·생리적 활동성은 “생리적·본능적 감각을 느끼는 생명체로서의 원리”이며, 운동적·의지적 활동성은 “인간만이 갖는 능동적 원리”이다. 즉 근본적 차원에 있어서, 감각은 감성적 활동성에 근거하는 수동적인 인식이다. 반면 지각은 운동적 활동성에 근거하는 능동적인 인식이다.
2.5 감각과 지각
수동인상과 능동인상은 근본적 차원에서는 형식적으로 완전히 다르게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비랑은 현실적으로 인상들은 언제나 섞여서 나타난다는 점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인간이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촉각기관에도 언제나 수동적 감각의 상태가 수반된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비랑은 현실적인 수동인상과 능동인상의 구분 방법으로서 ‘정도의 차이’를 제시한다. 비랑은 한 인상의 내부에서 주체의 운동성이 우세한 경우는 ‘능동인상’으로, 그것을 인식하는 것은 ‘지각’이라고 정의한다. 예컨대 촉각기관인 손은 그것의 능동적 움직임에 의해 대상의 형태를 파악하며, 시각은 눈의 조리개 운동에 의해, 청각은 미세한 근육섬유의 운동 외에도 성대기관과의 연합에 의해 운동성을 전달받아 대상을 명료하게 지각한다. 이렇듯 모든 능동인상에는 운동성이 작용하고, 그것은 지각이라는 것이 비랑의 견해이다. 반면 비랑은 운동성이 약화되어 수동성이 우세한 경우는 ‘수동인상’으로, 그것을 인식하는 것은 ‘감각’이라고 정의한다.
요컨대 본성적으로 수동인상과 능동인상의 구분은 각각 다른 인간 본성의 원리인 활동성에서 유래하는 것이나, 현실적으로는 운동성이 개입하는 정도에 따라 인상의 명료성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감각과 지각의 차이는 운동성의 비율로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2.6 습관
감각과 지각은 결과적 측면에서 현저한 대조를 보인다. 비랑에 따르면 생명체는 자신의 존재를 항구적으로 유지하는 생명원리에 지배받는다. 또한 외적 자극은 이 생명체의 항구성을 위협하는데, 이런 점에서 생명원리는 반복되는 자극을 약화시켜 생명체를 본래의 상태로 되돌리는 역할을 한다. 이것이 바로 감각습관이다. 즉 감각들은 습관에 의해 약화되는 경향이 있다. 생명체는 온도와 기후 변화에 잘 적응한다. 이것은 최초의 자극이 점차 완화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감각적 쾌락도 반복되면 감소한다.
허나 지각습관은 반복됨에 따라 더욱 신속, 정확, 용이해지면서 하나의 견고한 체제를 구성한다. 지각 습관은 운동적 활동성을 훈련시키기 때문이다. 지각이 감각의 수동성을 극복하고, 감각이 반복됨에 따라 최초에 들였던 운동적 노력이 점차 약화되면서 지각은 일종의 자율성을 갖게 되는데, 학습효과는 바로 이러한 지각습관에 기인하는 것이다. 오성은 이렇게 형성된 지각 습관이 상상력과 결합 할 때 무한히 발달 할 수 있다. 감각 습관과 지각습관이 대조적인 것은 감성적 활동성과 운동적 활동성의 차이 때문이다. 감성적 활동성은 생명체로서의 인간이 다른 생명체들과 공유하는 생명적 원리이며 의지적, 운동적 활동성은 인간만이 독특하게 갖는 능동적 원리이다.

3. 중기 사상
비랑주의의 확립 비랑은 생리학과 심리학의 결합 혹은 생리학과 형이상학의 결합이라는 더 관점에 주목하며, 그의 철학의 중심을 내적 관찰의 방법을 통한 심리학 혹은 형이상학으로 옮겨나갔다. 비랑의 심리학은 내적 세계의 관찰에 근거한 존재와 인식의 기초를 세우는 것으로서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적 작업에 가깝다. 그러나 비랑은 구체적 의식사실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실증적 정신주의의 길을 택했다고 볼 수 있다.
3.1 원초적 사실
반성의 방법을 통해 비랑은 인간에게 주어진 최초의 사실, 즉 ‘원초적 사실’로서의 내적인 의식사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주장했다. 이 내적 사실이란 “내가 의지적·운동적 노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랑에 따르면 이 사실은 인간 의식 속에서 가장 확실한 것으로 나타나는 사실로서,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외적 사실과 마찬가지로 구체적이며 관찰 가능한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비랑은 이 내적 사실이 나의 존재와 인식을 정초하는 유일하게 명증한 사실로서 제1원리라고 주장한다. 즉 데카르트에게 있어서 제1명제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면, 비랑에게 있어서 제1명제는 “나는 의지한다. 고로 존재한다.”이다.
3.2 인간의 의지적 활동성과 신체
비랑의 의지적·운동적 노력은 일반적으로 노력이 의미하는 순수하게 정신적인 내적 결의같은 것이 아니라, 신체 근육의 운동을 행사하는 자아의 힘 정도로 간주할 수 있는 개념이다. 즉 노력이란 물리적 운동과 자아가 결부되어야만 인지되는 것이며, 물리적 운동과 자아는 노력의 불가분한 두 요소이다. 근육수축이라는 운동의 결과와 자아의 의지는 근원적 상관성을 이룬다. 비랑이 근육운동을 자아에 끌어들인 것은 노력의 의식이 주체와 대상의 상관관계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의지적·운동적 노력은 자아의 존재를 근거 짓는다고도 볼 수 있다.
3.3 비랑주의적 인식론의 세 원칙
비랑은 인식론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세가지 원칙을 확보함으로써 자신의 철학을 정립한다. 첫째, 의지적·운동적 노력은 물리적 인과성에 대립하는 내적·심리적 인과성을 확보한다. 비랑은 심적 세계에서 운동을 야기하는 자아의 능동적 힘을 인과성, 즉 인과관계를 야기하는 힘으로 표현하는데, 이는 자연세계의 시간적 인과성과는 다른 개념으로서 능동적 힘의 실재성 느낌 자체이다. 왜냐하면 이는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원인과 결과가 나누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가 운동적으로 노력하는 그 순간 즉각적으로 결과가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능동적 힘을 원초적·직관적 사실로 인정하는 것이 바로 비랑의 철학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둘째, ‘나는 존재한다’라는 근본적 의식은 노력의 주체인 자아와 그것이 현시하는 신체근육의 저항에서 유래한다. 즉 원초적 사실은 신체성의 인식과 더불어 인식된다. 노력은 절대적인 정신의 힘이 아니라 그것의 행사를 신체에 빚지고 있는 상관적 힘이다. 그러나 이때의 신체성은 유기체의 생명적 욕구나 본능적 규정들과는 구분되는 능동적이고 의지적인 것이다. 이렇게 이해된 신체는 정신과 구분되지 않는 것으로, 좀 더 정확히 말해 정신과 신체를 분리해서 생각하기 이전의 자아의 근원적 존재방식이라 할 수 있다. 데카르트의 자아인식이 신체성을 배제한 추상적 자아를 파악하는 데 그쳤다면, 비랑에서는 신체성이야말로 참다운 의미에서의 내적이고 직접적인 자기인식이다. 이처럼 비랑에서 신체성의 의식은 밖에서 내 신체를 바라보는 관점과 판이하다. 비랑은 그러한 생리학적 관점이나 실증주의적 관념 등 외적 관념에서는 내적인 의지적 운동도 동물적 운동과 다를 바 없으며, 나아가 인간의 삶이 동물적 삶으로 환원되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셋째, 인간의 사고방식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관념들, 즉 원초적 관념의 근원은 자아의 존재방식에 있다. 흔히 ‘관념‘이라고 총체적으로 규정되는 어떤 개념들(추상관념과 일반관념 등) 중 에서는 ’단순한’ 관념들과는 달리 세계를 인식하는 인간의 사고방식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틀로서 작용하는 관념들이 있다. 실체, 힘, 인과성, 통일성, 자기동일성, 자유, 필연 등 도저히 부정할 수 없고 사고과정에서 배제할 수도 없는 몇몇 관념들이 그것들이다. 이러한 근본관념들은 칸트의 오성 분류 등에서 나타나듯이 전통적으로 철학자들의 큰 관심을 받은 연구분야였다. 그런데 비랑에 따르면 이 관념들의 근원은 자아의 존재 방식에 있다. 그에 따르면 인식의 범주는 선천적인 것도 외적으로 획득된 것도 아니며 자아의 실존과 동시적이어서, 의지적 노력을 하는 모든 존재자들의 존재구조에 기인한다. 즉 능동적 신체의 존재 방식에서 인식의 근원적 관념들을 연역해낼 수 있다는 것이 비랑의 생각이다.
이처럼 비랑은 능동적 신체의 존재방식에서 인식의 근원적 관념들을 연역해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선천주의와 경험주의를 동시에 지양하고, 인식원리의 신빙성을 되물어 그것의 본성을 인간의 존재방식에서부터 해명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힘의 관념은 의지적 노력을 하는 주체의 의식 속에서 생겨나고, 실체성은 노력의 상관항인 주체와 대상이 외화되고 추상화되었을 때 생겨난다.
3.4 수동적 삶
비랑은 인간의 무의식적이고 생리적인 차원을 ‘수동적 삶’이라는 이름으로 명명한다. 이 수동적 삶은 인간의 고유한 존재방식을 구성하는 의지적 노력이 없을 때 드러나는 모호하고 감각적인 정념의 상태로서 동물적 차원의 삶을 의미한다. 모호한 정념, 잠과 꿈, 본능적 운동 등이 이러한 상태에 속한다. 예를 들어 모호한 심상만이 떠오르는 시각, 소리의 명확한 구분이 불가능하고 진동에 따른 신체자극만 느껴질 뿐인 청각, 의지적 노력이 끊어지고 생명을 유지하는 생물학적 원리에만 의존하는 순간인 잠, 내외의 자극에 의한 생리적 감각에 의해 생겨나며 시각적 영상과 기억들이 제멋대로 또는 일정한 규칙에 의해 결합되어 나타나는 꿈 등이 있다.

4 후기 사상 : 정신의 삶
의지적 노력을 원초적 의식사실로 보고 이에서 인식과 존재의 근거를 도출한 것은 어디까지나 의식에 나타난 현상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후기에 들어 비랑은 ‘현상의 배후에 진정한 존재의 근거가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여기서 그는 근대철학을 풍미했던 자신의 철학을 의식의 철학에서 존재의 철학으로 전환한다.
비랑에 따르면 의식의 명증성에 기초하는 존재에 대한 인식은 상대적일 수 밖에 없는 데 비해 존재 자체는 절대적이다. 따라서 상대적일 수 밖에 없는 인간 인식이 능동적으로 절대적 존재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존재는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다. 비랑 철학에서 신의 문제가 중요한 것으로 등장하는 것도 이 시기이다. 비랑은 생리적, 수동적 신체와 의지적 자아의 바깥에서 계시나 은총으로 드러나는 신비한 체험을 인정하고 이것을 정신의 삶이라고 불렀다. 정신의 삶에 대한 추구는 실상 비랑이 일생을 바쳐 연구한 인간의 탐구에서 본질적인 내용을 구성한다. 허나 수동적 삶의 이론과 의지적 노력의 철학의 관계가 그러했던 것처럼 세 번째 삶, 즉 정신의 삶의 추구도 인간성 안의 다른 차원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설명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다.
○ Works
Œuvres de Maine de Biran (edited by Pierre Tisserand, 1920–32)
Vol. I.
Vol. II.
Vol. III.
Vol. IV.
Vol. V.
Vol. VI.
Vol. VII.
Vol. VIII.
Vol. IX.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