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2년 4월 20일, 프랑스혁명 전쟁 (French Revolutionary Wars, 1792 ~ 1802) 시작
프랑스 혁명 전쟁 (French Revolutionary Wars, 프: Guerres de la Révolution française)은 프랑스 혁명으로 탄생한 프랑스 공화국 정부와 공화제에 반대하는 오스트리아 · 프로이센 · 영국 · 러시아 · 프랑스 왕당파 등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 프랑스 혁명 전쟁 (French Revolutionary Wars)
.프랑스 혁명의 일부
.날짜: 1792년 4월 20일 ~ 1802년 3월 25일
.장소: 유럽, 이집트, 중동, 카리브 해, 대서양, 지중해
.결과: 프랑스의 승리 – 프랑스 제1공화국의 생존, 프랑스 영토와 예속 공화국의 확대, 뤼네빌 조약과 아미앵 조약을 체결, 나폴레옹 전쟁 개시, 네덜란드와 프랑스가 영국에 각각 실론과 토바고 할양, 스페인이 루이지애나를 프랑스에 반환
.교전국: 프랑스 왕국 · 프랑스 입헌왕국과 연합국들 / 신성로마제국과 연합국들
.지휘관: 프 – 루이 16세, 자크 피에르 브리소 외 다수, 폴 – 얀 헨리크 동브로프스키, 덴 – 크리스티안 7세 외, 마 – 티푸 술탄 외, 무 – 샤 알람 2세 외, / 신 – 프란츠 2세, 파울 크라이 외 다수, 영 – 조지 3세, 윌리엄 피트 외 다수, 프 – 프리드리히 3세,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외, 오 – 셀림 3세, 지자르 파샤 외, 이 – 무라드 베이, 러 – 파벨 1세, 알렉산드르 수보로프, 스 – 카를로스 4세, 마누엘 데 고도이 외, 포 – 마리아 1세, 페드루 3세, 네 – 빌럼 공, 로렌스 스피에겔, 사 – 카를로 에마누엘레 4세, 양 – 페르디난도 4세, 프 왕 – 루이스 조제프, 몰 – 에마누엘 비탈레, 코 – 파스콸레 파올리, 아 – 투생 루베르튀르, 장자크 드살린 외 다수, 미 – 존 애덤스, 조지 워싱턴 외 다수, 그 외 제임스 월러스

프랑스 혁명 전쟁은 오스트리아의 프랑스 혁명에 대한 간섭을 계기로 프랑스 혁명 정부 (지롱드파 내각)가 오스트리아에게 선전 포고 (1792년 4월 20일)를 함으로써 시작되어, 프랑스 북부와 동부 · 네덜란드 · 벨기에 · 북부 이탈리아 · 이집트 · 일부 식민지 등이 주요 전쟁터가 되었다.
오스트리아-프로이센의 공격은 1792년 9월 20일 발미에서 중단되지만 (발미 전투), 1793년 혁명의 좌경화 (루이 16세의 처형)와 혁명군의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 (현, 벨기에) 침투에 따라 1793년에는 영국 · 오스트리아 · 프로이센 · 스페인 등을 중심으로 제1차 대프랑스 동맹이 결성되어, 국내의 반란과 함께 프랑스는 위기에 빠졌다.
하지만 프랑스는 혁명의 열기에 의해 초래된 국가적인 전쟁에 참가, 국가 총동원 체제의 정비와 사단 편성의 도입을 비롯한 군사 혁신을 단행함으로써 반격을 가하였고 모든 정치적 · 경제적 · 군사적 역량을 동원하여 일련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
1796년 제1차 이탈리아 원정에서 프랑스 총재정부는 라인 방면에 2개 군, 북이탈리아 방면에 1개 군을 배치해 오스트리아를 포위 공략하는 작전을 시도했다.

1796년 10월 17일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체결한 캄포포르미오 조약에 의해 일단, 오스트리아가 전쟁에서 탈퇴했고, 이로써 제1차 대프랑스 동맹은 붕괴되었다.
1798년, 제2차 대프랑스 동맹이 결성되어, 오스트리아가 다시 참전하자 프랑스는 다시 열세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 아래, 이집트 원정에서 귀환한 나폴레옹이 최고 권력을 장악했다.
보나파르트의 반격으로 오스트리아는 1801년의 뤼네빌 조약으로 다시 강화하였고, 영국도 1802년 3월 25일 아미앵 조약에 응했다. 이것으로 프랑스 혁명 전쟁은 끝이 나게 되었다.
전쟁에서 승리한 프랑스는 혁명 정부의 국제적 승인과 대폭적인 영토 확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아미앵 조약 이후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고, 1803년에는 다시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 상태로 들어가, 유럽은 나폴레옹 전쟁 (1803~15)으로 돌입한다.
프랑스 혁명 전쟁에서 처음으로 근대적인 국민개병제가 실시되었으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프랑스의 주요 인물로 부각되었다. 또한 이 전쟁에서 보여준 공화제 프랑스의 성공적인 모습은 유럽 각 지역에 있던 공화주의자들의 활동이 더 활발해지는 계기가 된다.

○ 프랑스 혁명 전쟁 개관
프랑스 혁명 전쟁 (1792 ~ 1802년)은 프랑스 혁명으로 탄생한 공화국과 이를 저지하려는 유럽 군주 국가들 사이에서 벌어진 대규모 군사 충돌이다.
혁명 이념의 전파를 두려워한 열강의 개입으로 시작되었으나, 나중에는 프랑스의 영토 확장을 위한 정복 전쟁의 성격이 짙어졌다.
- 개요 및 배경
발발 원인: 프랑스 혁명 정신의 확산을 우려한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압박(필니츠 선언 등)과 이에 맞선 프랑스 혁명 정부의 선전포고로 시작되었다.
주요 세력: 프랑스 공화국 vs 대프랑스 동맹(영국,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 스페인 등).
종결: 1802년 아미앵 조약을 기점으로 프랑스 혁명 전쟁이 끝나고, 이후 1803년부터는 나폴레옹 전쟁으로 이어진다.
- 전쟁의 주요 단계
전쟁은 크게 두 차례의 동맹 전쟁으로 나뉩니다.
.제1차 대프랑스 동맹 (1792 ~ 1797)
초기 위기: 전쟁 초기 프랑스군은 훈련 부족으로 연패했으나, 1792년 발미 전투에서 프로이센군을 격퇴하며 전세를 역전시켰다.
국민 공세: 국가 총동원령 (1793)을 통해 대규모 병력을 확보한 프랑스는 벨기에와 라인란트 지역을 점령했다.
나폴레옹의 등장: 젊은 장군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원정에서 오스트리아를 격파하며 명성을 쌓았고, 캄포 포르미오 조약으로 1차 동맹을 해체시켰다.
.제2차 대프랑스 동맹 (1798 ~ 1802)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영국의 인도 항로를 차단하기 위해 이집트를 공격했으나 해전에서 패배하며 고립되었다.
권력 장악과 승리: 나폴레옹은 프랑스로 돌아와 쿠데타 (브뤼메르 18일)로 정권을 잡은 뒤, 마렝고 전투 (1800)와 호엔린덴 전투에서 승리하여 오스트리아를 굴복시켰다.
아미앵 조약: 1802년 영국과 평화 조약을 맺으며 약 10년의 혁명 전쟁이 일단락되었다.
- 전쟁의 영향
혁명 이념 확산: 자유와 평등이라는 혁명 원칙이 프랑스군이 점령한 유럽 곳곳에 전파되었다.
근대적 군사 체제: 징병제를 통한 대규모 군대 운용과 민족주의적 열기가 결합된 근대 전쟁의 효시가 되었다.
나폴레옹의 집권: 전쟁 영웅 나폴레옹이 군사적 승리를 바탕으로 독재권을 장악하고 훗날 황제로 즉위하는 발판이 되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