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8년 5월 3일, 프랑스군의 마드리드 학살사건 발생
1807년 나폴레옹은 이베리아 반도로 진군한다. 이유는 대륙봉쇄령 위반. 영국을 군사력으로 제압하지 못한 나폴레옹은 유럽의 모든 나라들이 영국과 통상을 못하도록 대륙봉쇄령을 내렸다. 하지만 영국 상품은 끊임없이 대륙 국가들에 유통되었다. 밀수가 성행한 것. 분노한 나폴레옹은 포르투갈을 점령한 후 곧바로 스페인을 침공했다.
당시 스페인의 내정은 불안했고 왕실은 무능했다. 페르난도 7세가 반란을 일으켜 왕위를 차지했지만 무능하긴 마찬가지였다. 나폴레옹은 페르난도 7세와 왕족을 유폐시키고 마드리드를 점령한 뒤 새 스페인 국왕에 자신의 형 조제프 보나파르트를 임명했다. 그러자 숨죽여 지내던 마드리드 민중들이 반기를 들고 일어났다. 민중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힌 프랑스군은 무력을 동원한 강제 진압에 나섰다. 이틀 만에 400여 명이 살육당했다.

이때의 학살 사건을 화가 고야가 그림으로 남긴 것이 ‘1808년 5월 3일’이란 작품이다. 1808년 5월 3일 새벽 마드리드 프린시페 피오 언덕에서 시민들이 프랑스군에 총살당하는 장면을 그린 이 그림은 인간의 잔악행위를 가장 통렬하게 고발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마드리드의 봉기는 반도전쟁이라 불리는 스페인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병력과 무기에서 열등한 스페인 민중들은 게릴라전을 벌이며 프랑스군을 괴롭혔다. 게릴라는 스페인어로 ‘소규모 전투’를 뜻하는 말로 이때부터 일반화되었다. 스페인은 웰링턴 경이 지휘한 영국군과 연합해 치고 빠지는 기습작전으로 프랑스군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전쟁기간 6년 동안 하루 평균 100명의 프랑스 병사가 사살되었다고 한다. 결국 1813년 프랑스군은 철수해야 했고, 나폴레옹은 몰락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