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7년 7월 25일, 카를 마르크스 (Karl Marx, 1818 ~ 1883)가 ‘자본론 1권‘ (Capital: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완성
‘자본: 정치경제학 비판’ (Capital: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독: Das Kapital: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또는 단순히 자본론 (資本論, 독: Das Kapital)은 카를 마르크스 (Karl Marx)가 독일어로 집필하고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편집한 방대한 정치경제학 논문으로서 1867년에 제1권이 출간되었다.

– 자본론 (Das Kapital, Kritik der politischen Ökonomie)
.저자: 카를 마르크스 (Karl Marx)
.국가: 독일
.언어: 독일어
.주제: 정치경제학
.발행일: 1867년, 1885년, 1894년
《자본론》은 주로 영국의 고전파 경제학 및 자본주의와 영국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데, 내용은 1859년 발간된 마르크스의 저서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1권은 자본의 생산과정, 2권은 자본의 유통과정, 3권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이 부제로 붙어 있다. 1권은 1867년 나왔으며 2, 3권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유고를 모아 집필, 각각 1885년과 1894년 발간되었다.
– 출간
자본론은 1867년 1권이 간행되었으며, 마르크스의 사후 프리드리히 엥겔스에 의해서 유고가 정리되어 2권을 1885년에, 1894년에 3권을 출간하였다. 현재의 자본론으로 불리는 것은 앞서 말한 3권의 책이다. 카를 요한 카우츠키가 1905 ~ 1910년에 4권을 편집하여 《잉여가치학설사》 (剩餘價値學說史, Theorien über den Mehrwert)로 간행하였고, 1956 ~ 1962년 소련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소에 의해서 자본론의 속편을 이루는 것이라 하여 새로 편집, 간행되었다.
– 내용
현대사회에서 생산은 분업에 의해 이루어지고 생산물은 거의 모두가 상품이라는 형태를 취한다. 상품은 인간에 유용하기 때문에 생산, 판매되며, 상품은 가격을 갖고 있다. 그 가격은 대체로 그 상품을 생산할 때 사회적으로 평균하여 어느 만큼의 노동시간이 필요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화폐도 원래는 상품이지만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누구나 구하는 상품으로서 매개 역할을 한다 (지폐는 상품이 되는 화폐, 예컨대 금화와 언제나 바꿀 수 있기 때문에 화폐를 대신한다). 그러므로 상품이 화폐를 매개로 교환된다는 것은 사실 인간의 노동이 교환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생산하는 데 10시간 걸린 A라는 상품을 팔아 마찬가지로 10시간 걸린 B라는 상품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낳은 노동자라는 인간은 살기 위해서는 자기의 몸=정신적·육체적 능력=’노동력’ 이외에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했으므로 이 유일한 소유물=’노동력’을 팔아서 임금을 얻고 그것으로 자기와 자기 가족의 생활을 유지해야 한다. 노동자의 노동력마저 상품으로 매매된다는 데에 자본주의 사회의 특유한 현상이 있다. 이 노동력이라고 하는 상품의 가치, 곧 임금도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이를 생산하기 위한 가치 (비용)에 의해 결정된다. 노동력을 생산하기 위한 비용은 바로 노동자와 그 가족의 생계비인 것이다. 사들인 상품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은 구매주의 권리이다. 따라서 노동력을 산 주인(자본가)은 임금이 회수될 수 있을 만큼 노동자를 부리는 동시에 반드시 그 이상으로 노동자를 노동시킨다.
임금을 회수하기 위한 노동이 ‘필요노동 (必要勞動)’이며, 이를 초과한 노동은 ‘잉여노동 (剩餘勞動)’이다. 잉여노동은 자본가가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자기 몫으로 만드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를 ‘착취’라고 말했다. 잉여노동이 생산하는 생산물의 가치가 ‘잉여가치’이다. 자본가가 노동력을 사는 목표는 사실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잉여가치가 없으면 자본가는 살아갈 수조차 없다. 따라서 잉여가치의 생산은 불가결의 것이다. 자본주의는 사실은 ‘자본가에 의한 노동자의 착취’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노동의 착취)라는 ‘인간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자본가는 이 관계를 확대하기 위해 잉여가치를 전부 소비하지 않고 일부분을 축적하여 생산의 확대에 돌린다. 자본의 축적이 진척되면 기계 등이 사용되어 생산력이 증대한다. 그 결과 자본 중에서 생산수단 (원료 · 도구 · 기계 등)을 위해 투하되는 부분과 임금에 투하되는 부분의 비율이 달라진다. 곧 전자의 후자에 대한 비율이 증가한다.
사회 전체의 자본에 대해 볼 때, 사회 전체의 자본이 증대함에 따라 임금에 할당되는 비율은 누진적으로 감소된다. 그래서 노동자가 남아돌게 된다. 게다가 대기업 때문에 중소기업자가 몰락하여 노동자가 되고 실업자는 증가한다. 그러므로 한쪽의 극 (자본가 계급)에서의 부의 축적은 다른 쪽의 극 (노동자 계급)에서의 빈곤, 노동고 (勞動苦)· 예속· 불안· 무지· 도덕적 타락의 축적인 것이다. 물품을 생산하는 노동자의 노동 자체가 노동자 자신을 점점 더 불행하게 만들고 더욱더 비인간화하며, 거꾸로 착취하는 자본가를 더욱더 강력하게 만든다. 자본이 지배하는 한 이 모순은 계속되고 확대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주장이다. 그러나 학대받는 상황 속에서 노동자들은 일어나고, 그들에 대한 억압· 착취, 그들의 빈곤· 예속· 퇴폐가 증대하면 할수록 그들의 반역도 증대한다. 부르주아 계급은 자신의 무덤을 팔 사람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파리에서 프로이센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쓰다가 프랑스에서 추방되어 벨기에 브뤼셀로 이주했다. 이 무렵 ‘철학의 빈곤’ ‘자유무역에 대하여’의 원고를 썼다. 1847년 파리에 거주하는 독일 출신 노동자를 중심으로 생겨난 조직 ‘정의 동맹’의 요청을 받고 강령에 해당되는 글을 작성했다. 바로 ‘공산주의 선언’이다. 프랑스를 시작으로 유럽 전역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파리로 잠시 피신했다가 쾰른으로 돌아갔다. ‘신라인신문’으로 이름을 바꾸고 신문을 재발행하기 시작했다. ‘임금노동과 자본’은 노동자를 일깨우기 위한 글로, 이 신문에 다섯 편으로 나뉘어 실렸다. 정부 탄압을 받던 ‘신라인신문’은 이내 기소당해 마르크스는 추방 명령을 받고 영국 런던으로 망명했다. 이곳에서 어려운 생계를 꾸리며 경제학을 연구했다.
1851년 유럽 특파원으로서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의 사정을 분석하는 기사와 사설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이후 몇 년간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정치경제학 비판’ 등을 집필했다. 49세 되던 해 ‘정치경제학 비평’이라는 부제를 달고 ‘자본론’이 출간됐다. 프랑스 파리에서 최초의 사회주의 자치정부인 파리 코뮌이 수립됐으나, 정부군 진압과 학살로 무너졌다. 마르크스는 파리 코뮌의 기록과 의의를 적은 ‘프랑스 내전’을 썼다. 국제노동자연맹을 이끌며 아나키스트파와 내분을 겪기도 하고, 독일사회주의 노동자당의 강령을 비판하는 등 사회적 활동을 이어 갔다. 1883년 3월, 엥겔스가 잠시 자리를 비운 새 조용히 사망했다.
마르크스의 생애는 그의 사상이기도 하다. 그의 생애만큼 이론과 실천의 변증법적 통일을 증명해 주는 사례도 없을 것이다. 그는 평생 자신이 처해 있는 시대적 상황을 치밀하게 연구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시대적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한 실천에 문자 그대로 혼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에게 이론은 실천을 위한 도구였고 실천은 이론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장(場)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처음부터 과학적 인식이 완벽한 형태로 갖추어져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가 살았던 역사적 상황과 함께 그의 실천 방식이 끊임없이 변화했듯이 그의 사상 또한 부단한 변화를 겪으면서 발전 과정을 거쳤다. 마르크스의 사상적 발전 과정 자체가 마르크스 유물론의 산증인인 셈이다.
* 카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년 5월 5일-1883년 3월 14일)는 독일의 철학자, 경제학자, 역사학자, 사회학자, 정치이론가, 언론인, 공산주의 혁명가다.
트리어 출신으로대학에서 법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1843년 예니 폰 베스트팔렌과 결혼했다. 정치성 다분한 저술활동으로 인해 마르크스는 무국적자 신세로 수십년 간 영국 런던에서 처자식과 함께 망명생활을 했다. 런던에서 마르크스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합작, 대영박물관 열람실에서 연구하며 주요 저작을 남겼다. 그의 대표작은 1848년 출간된 소책자 ‘공산당 선언’과 3권짜리 ‘자본론’이다. 마르크스의 정치사상과 철학사상은 그 이후의 사상사, 경제사, 정치사에 거대한 영향을 남겼으며, 마르크스주의라는 일대 학파를 이루어 그 이름은 보통명사, 형용사화되었다.
마르크스의 사회경제정치이론을 집합적으로 마르크스주의라 한다.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인간 사회가 계급투쟁을 통해 진보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계급투쟁은 지배계급인 부르주아와 피지배계급인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투쟁으로써 나타난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를 가르는 기준은 생산수단을 통제하는지 여부다. 생산수단은 부르주아에 의해 통제되며, 프롤레타리아는 부르주아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 임노동자로 부려먹힌다. 소위 사적유물론이라는 비판이론에 의해 마르크스는 과거의 사회경제체제들이 그러했듯 자본주의 체제 역시 내재된 결함에 의해 내부적 긴장이 발생할 것이며 그 긴장에 의해 자멸하고 사회주의 체제라는 새로운 체제로 대체될 것이라 예측했다. 자본주의 체제는 이런 불안정성과 위기취약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계급적대가 발생하고, 노동자들이 계급의식을 가지게 된다. 의식화된 노동자들은 정치권력을 쟁취하고, 마침내 계급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체로 구성된 공산주의 사회를 이룩할 것이라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의 골자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예측이 현실화되기를 앉아 기다리지 않고, 노동계급이 혁명적 행동으로써 자본주의를 거꾸러뜨리는 사회경제적 해방을 추구해야 한다고 선동하는 저술·출판작업에 평생 매진했다.
마르크스를 긍정하는 입장에서나 부정하는 입장에서나 모두 마르크스가 인류사상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 중 하나임을 전제한다. 그의 경제학 저술은 오늘날의 노동 및 노동과 자본의 관계에 대한 이해 대부분의 기초를 놓았다. 셀 수 없이 많은 학자, 노동조합, 예술가, 정당이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았고, 마르크스의 사상을 각자 재독해, 변형, 변용했다. 일반적으로 마르크스는 근대 사회학의 뼈대를 세운 인물 중 하나로 여겨진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