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9년 7월 1일, 프랑스의 사회운동가 레옹 주오 (Léon Jouhaux, 1879 ~ 1954) 출생
레옹 주오 (프: Léon Jouhaux, 1879년 7월 1일 ~ 1954년 4월 28일)는 프랑스의 노동 조합 지도자로, 195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 레옹 주오(Léon Jouhaux)
.출생: 1879년 7월 1일, 프랑스 제3공화국 팡탱
.사망: 1954년 4월 28일 (74세), 프랑스 파리
.성별: 남성
.국적: 프랑스
.경력: 프랑스 노동 총동맹 사무총장
.직업: 노동 조합 지도자
.소속: 프랑스 노동 총동맹-노동자 전선
.상훈: 노벨 평화상
레옹 주오는 프랑스의 노동 운동가로, 프랑스노동총연맹 (CGT)의 사무총장을 역임하며 8시간 노동제, 노조 대표권, 단체 교섭, 유급 휴가 등 노동자 권리 신장에 기여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나치에 저항했으며, 전쟁 후에는 노동자 연합(CGT-FO)을 결성했다.
국제노동기구(ILO) 설립에 기여하고 국제 노동 운동에 참여했으며, 195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1954년 사망 후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에 안장되었다.

– 생애 및 활동
레옹 주오는 1879년 7월 1일 프랑스 센생드니주 팡탱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는 오베르빌리에의 성냥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파업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임금을 받을 수 없게 되었고 주오 또한 학교에서 퇴학당한다.
16세 때부터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노동 조합의 중심적인 인물로 부상하기 시작했지만 1900년 그의 아버지를 실명시킨 계기가 된 백린 사용에 항의하는 파업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쫓겨나게 된다.
1906년 프랑스 노동 총동맹 (Confédération générale du travail)의 지역 대표로 선출되었으며 1909년에는 잠정적 회계 담당자로 선출되었고 1909년부터 1947년까지 사무총장을 맡았다.
노동 총동맹의 목표는 1일 8시간 노동과 단결권, 단체 교섭권, 단체 행동권 보장, 휴일 임금 지급 등 초기의 노동 운동에 가까웠으며 1936년 마티뇽 협정을 체결하는 등 인민 전선이 활동하는 동안에도 노동 환경의 향상에 큰 공헌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이전까지는 전쟁에 반대하는 단체들을 설립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이후에는 나치 독일의 승리가 유럽의 민주주의를 파괴할 것이라고 믿고 프랑스를 지원했으며 이로 인해 나치 독일의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에 수감되고 만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전 이후에는 프랑스 노동 총동맹에서 분리된 사회민주주의적 단체인 프랑스 노동 총동맹-노동자 전선 (CGT-FO)을 설립했으며 195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1954년 4월 28일 별세했다. 향년 74세
그의 묘는 파리 페르 라셰즈 묘지에 안치되어 있다.
국제적으로 그의 활동은 후일 국제노동기구(ILO)와 세계노동조합연맹(WFTU)의 설립으로 이어졌다고 평가받는다.
프랑스의 아비뇽, 그르노블, 리옹, 제나, 빌프랑슈쉬르소안과 파리에 있는 레옹 주오 거리 (rue Léon Jouhaux 뤼 레옹 주오)는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프랑스 노동조합이 다른 노동조합들보다 평화 투쟁에 더 큰 중요성을 부여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그들은 분명 평화 투쟁을 더욱 마음에 새긴 듯했습니다.” – 레옹 주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