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4월 28일, 대한민국의 화가 • 작가 나혜석 (羅蕙錫, 1896 ~ 1948) 출생
나혜석 (羅蕙錫, 1896년 4월 28일 ~ 1948년 12월 10일)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화가이자 작가, 시인, 조각가, 여성운동가, 사회운동가, 언론인이다.
본관은 나주 (羅州)이고 아명 (兒名)은 나아지 (羅兒只), 나명순 (羅明順)이며, 아호는 정월 (晶月)이다.
– 나혜석 (羅蕙錫)
.출생: 1896년 4월 28일, 미국 로드아일랜드
.사망: 1948년 12월 10일, 원효로동
.부모: 나기정, 최시의
.배우자: 김우영 (1920년–1931년)
.자녀: 김건, 김진, 김선
.학력: 죠시 미술대학 (1913년–1918년), 진명여자고등학교 (1910년–1913년)
.예술 사조: 근대 미술
일본의 여자미술전문학교에 유학하여 서양화를 전공했다. 귀국 후에는 정신여학교 미술교사를 지내기도 했고, 김일엽과 함께 잡지 <신여자 (新女子)>를 창간, 발행하기도 했다.
○ 생애 및 활동
나혜석(羅蕙錫, 1896년 4월 28일 ~ 1948년 12월 10일)은 조선 인천부 수원군 수원면 신풍리 (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 출생으로 수원 삼일소학당과 서울 진명여학교를 졸업했다.
일본 도쿄 여자미술학교 유화과에 유학하ㅕ 서양화를 공부한 뒤 1918년 귀국하여 화가, 작가로 활동하였으며 여성운동가, 사회운동가로도 활동하였다.
1918년에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경성부로 돌아와 잠시 정신여학교 미술교사로 지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이후 1918년 12월부터 박인덕 등과 함께 만세 운동을 준비, 1919년 3·1 만세 운동에 참가하여 5개월간 투옥되었다가 풀려났다.
그 뒤 1920년 김우영과 결혼, 그와 함께 만주와 프랑스 등을 여행하였으며 그림, 조각, 언론, 문필, 시 등에서 활동했다.
1927년 유럽과 미국 시찰을 가게 된 남편과 함께 여행길에 올라 ‘조선 최초로 구미 여행에 오른 여성’이라는 칭호를 얻게 됐다.
프랑스에 체류하던 중 야수파, 인상주의, 표현파 등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체류 중 최린과 염문설이 돌았고 곧 귀국 후 그림 활동에 매진하였으나, 결국 외교관 최린과의 염문으로 이혼하게 된다. 그러나 뒤에 최린과도 헤어지게 된다.
1935년 정조 취미론을 발표, 순결과 정조(貞操)는 ‘도덕도 법률도 아닌 취미’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자신의 아내, 어머니, 누이, 딸에게는 순결함을 요구하면서 다른 사람의 아내나 어머니, 누이, 딸에게는 성욕을 품는 한국 남자들의 위선적인 행동에 대한 비판과 자유 연애론을 주장하였고, 당사자들의 의견이 존중되지 않고 집안의 뜻에 따라 결혼하는 것에 대한 비판, 가정폭력을 일삼는 남성들에 대한 비판 등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의 유명한 신여성으로, 뛰어난 그림, 글, 시 등 다방면에 재주를 갖춘 근대 여성이었으며, 여성 해방, 여성의 사회 참여 등을 주장하였다.
박인덕, 김일엽, 허정숙 등과 함께 이혼 후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으로 유명하였다.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의 한사람으로 꼽힌다.
문재 (文才)도 뛰어났으며, 일본 유학 때부터 여권신장의 글을 발표한 여권운동의 선구자이기도 하였다. 연기자 나문희 (본명 나경자)의 고모할머니이기도 하다.
– 학력
수원 삼일여자고등보통학교 수료
경성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 졸
일본 도쿄 여자미술학교 유화과 전문학사
– 수상
1925년 제4회 조선미술전람회 3등
1926년 제5회 조선미술전람회 특선
1931년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 특선
○ 추모 활동
1998년 나혜석 기념사업회가 공식 발족되었다.
2000년 1월 16일부터 2월 7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나혜석 전시회가 열렸다.
2000년 3월 9일부터 3월 26일까지 부산 경성대 미술관에서 ‘나혜석의 생애와 그림전’이 개최되었다. 5월 11일부터 5월 28일까지는 대전 교차로아트갤러리에서 ‘나혜석의 생애와 그림전’이 개최되었다.
2004년 10월 28일 오후 7시 조계종 용주사 수원 포교당 극락대원전 앞에서 제1회 나혜석 추모음악회가 개최되었다. 이후 매년 10월 나혜석 추모음악제가 개최되고 있다.
2008년 10월 2일부터 11월 30일까지 그의 60주기를 추모하는 ‘언니가 돌아왔다’라는 추모제전이 열리기도 했다. 여기에서는 나혜석의 유작들 외에 미술가 윤석남의 과거 작품들 일부와, 경기도 지역 여성 작가들의 작품들도 모였다. 윤석남, 안진우, 류준화, 박영숙, 송상희, 이순주, 장지아, 중국에서 활동하는 북한 국적의 손국연씨 등 국내외서 활동하는 여성 작가 26명이 참여했다. 유일한 남성 작가인 조덕현씨가 나혜석과 윤석남을 주제로 한 흑백 드로잉을 선보였다.
○ 저작
- 저서
나혜석전집 (羅蕙錫全集)
나혜석 작품집
나혜석 자서전(유고)
첫사랑의 무덤으로 신혼여행을 떠나다
이혼 고백서
자유 연애
해인사 풍광(기행문)
- 그림
자화상
파리 풍경
무희
나부 1
나부 2
선죽교
스페인 해수욕장
스페인 국경
해인사 홍류동
이화원 풍경
중국인 촌
수원 서호
수원성
염노장, 여승 초상화
- 판화
인천풍경
조조, 목판
개척자, 목판
- 소설
소설, 규원 (閨怨)
소설, 현숙 (玄淑)
소설, 경희 (瓊嬉)
소설, 정순
희생한 손녀에게
원한 (怨恨)
어머니와 딸
- 시
시 냇물
시 사 (砂)
노라를 놓아주게
○ 가족 관계
할아버지 : 나영완 (羅永完, 1825년 – 1890년)
백부 : 나기원 (羅基元)
백모 : 철원 송씨 (1848년 – 1929년)
사촌 오빠 : 나중석 (羅重錫, 1878년 – )
사촌 올케 : 충주 지씨
5촌 조카 : 나세균 (羅世均)
5촌 조카 : 나재균 (다른 이름은 정균)
백부 : 나기형 (羅基亨)
아버지 : 나기정 (羅基貞, 1863년 – 1915년 12월 10일)
어머니 : 최시의 (崔是議, ? – 1919년 11월 3일, 본관은 수원)
언니 : 요절?,
오빠 : 나홍석 (羅弘錫, 아들이 없던 큰아버지 기형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조카 :
손녀 : 나문희 – (본명은 나경자 <羅敬子>, 1941년 11월 30일 – ), 영화배우 겸 탤런트
오빠 : 나경석 (羅景錫, 1890년 – 1959년 12월 31일)
올케 : 배숙경
조카딸 : 나영균 (羅英均, 1929년 1월 1일 – , 작가 겸 소설가,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조카딸 : 나희균 (1932년 – , 화가)
조카사위 : 안상철 (1927년 – 1993년, 화가)
이종손 : 안우성 (1966년 – , 건축가)
조카 : 나상균 (1934년 – )
조카딸: 나정균
여동생 : 나지석 (羅芝錫)
서모 : 이름 미상
이복 언니 : 나계석 (羅稽錫, 서녀로 나혜석이 태어날 무렵 시집갔다.)
이복 형부 : 최기환
서모 : 이름 미상, 기생 출신으로 나혜석보다 1~2년 연상이었다.
남편 : 김우영
딸 : 김나열 (金羅悅, 1921년 4월 29일 – )
아들 : 김선 (金宣, 1924년 – 요절)
아들 : 김진 (金辰, 1926년 12월 19일 – , 대학 교수)
아들 : 김건 (金健, 1929년 6월 20일 – 2015년 4월 17일, 전 한국은행 총재)
조카 : 나사균 (羅姒均, 1914년 – )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