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7월 16일, 프랑스 비평가 에드몽 드 공쿠르 (Edmond Louis Antoine Huot de Goncourt, 1822 ~ 1896) 별세
에드몽 루이 앙투안 휘오 드 공쿠르 (Edmond Louis Antoine Huot de Goncourt, 1822년 5월 26일 ~ 1896년 7월 16일)는 프랑스의 비평가로서 동생 쥘 드 공쿠르와 힘을 합하여 글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에드몽 드 공쿠르 (Edmond Louis Antoine Huot de Goncourt)
.출생: 1822년 5월 26일, 프랑스 낭시
.사망: 1896년 7월 16일, 프랑스 드하베이
.형제: 쥘 드 공쿠르
.대표작품: 제르미니 라세르퇴
.업적: 공쿠르상 제정
이들 형제를 추모하기 위하여 에드몽이 사망한 후 오늘날 프랑스의 가장 값진 문학상으로 손꼽히는 공쿠르상이 빛을 보게 되었다.
동생 쥘 알프레드 위오 드 공쿠르 (Jules Alfred Huot de Goncourt, 1830년 12월 17일 ~ 1870년 6월 20일)도 프랑스의 비평가로서 형 에드몽 드 공쿠르와 함께 집필 활동을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사망하기 전까지 주로 쥘이 글을 쓰고 에드몽은 옆에서 도와 준 것으로 전해졌다.
쥘이 형보다 날카로운 비판력을 가졌다고 조르주 상드는 그녀의 일기에서 회고하고 있다.
당시 명문가 출생으로 형 에드몽은 내향적인 공상가였고, 동생 쥘은 정열적인 활동가였다.
이 형제는 동생이 죽을 때까지 합작의 형식으로 작품을 썼고, 주로 형이 작품을 구상하면 동생이 문체를 다듬었다. 그들은 “역사가는 과거를 이야기하고, 소설가는 현재를 이야기한다”라고 주장하면서, 정밀한 찰기록에 입각한 소설을 썼다.
섬세하고 날카로운 묘사, 생물학적 접근으로 자연주의 문학의 선구자라고도 평가받으며, 특히 실제 파리 하녀의 삶을 그린 『제르미니 라세르퇴』는 자연주의 문학의 시작을 고하는 서문과 묘사가 인상적이다.

○ 생애 및 활동
에드몽 드 공쿠르 (Edmond Louis Antoine Huot de Goncourt, 1822년 5월 26일 ~ 1896년 7월 16일)는 프랑스의 소설가이다.
그는 동생 쥘 드 공쿠르와 합작으로 글을 썼다.
형 에드몽이 작품을 구상하고, 동생 쥘은 문체를 다듬었다고 한다.
때문에 이들 형제를 따로 떼어내어 평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들 형제는 처음엔 18세기의 역사를 연구해 ‘대혁명 시대의 프랑스 사회사’, ‘18세기의 여성’ 등을 발표했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에서인지 모르지만 “역사가는 과거를 이야기하고, 소설가는 현재를 이야기한다”며 작가로서의 입장을 밝힌 뒤 소설로 방향을 튼다.
하지만 글을 쓰는 형식만 바꿨을 뿐 글을 쓰는 방법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
상세한 관찰과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하는 역사 연구 방법을 소설 창작에 적용한다.
그래서 이들은 19세기 후반 사실주의 ·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거듭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사실주의와 자연주의를 연결한 작가로서, 자연주의 문학을 창시한 인물들로 평가 받는다. 자연주의 문학은 에밀 졸라에 의해 완성된다.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문학은 구분이 쉽지 않아 종종 혼용된다.
하지만 이 둘은 조금 다르다.
자연주의는 사실주의를 이어받아 인간의 삶과 사회 현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되, 생리학적·생물학적 관점이 도입되어 작가가 실험 관찰자라는 엄밀한 시선을 통해 작중 인물과 그를 둘러싼 환경을 보다 객관적으로 서술한다.
자연주의적인 작품들은 배신, 질병, 빈곤 같은 인생의 어두운 면을 주로 드러냈다.
공쿠르 형제의 대표작 ‘제르미니 라세르퇴’엔 이런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요소가 잘 배합되어 있다.
이 작품은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다 생을 마감한 여성 노동자의 40년 인생을 그리고 있다.
우리가 잘 아는 공쿠르상은 형 에드몽의 유지에 따라 1903년 제정된 것이다.

○ 공쿠르 형제 ; 에드몽 드 공쿠르 (Edmond de Goncourt, 1822∼1896), 쥘 드 공쿠르 (Jules de Goncourt, 1830∼1870)
당시 명문가 출생으로 형 에드몽 (Edmond de Goncourt, 1822 ~ 1896)은 내향적인 공상가였고, 동생 쥘 (Jules de Goncourt, 1830 ~ 1870)은 정열적인 활동가였다.
두 사람 모두 병적일 정도로 날카로운 감수성의 소유자였다.
이 형제는 동생이 죽을 때까지 합작의 형식으로 작품을 썼고, 주로 형이 작품을 구상하면 동생이 문체를 다듬었다.
그들은 “역사가는 과거를 이야기하고, 소설가는 현재를 이야기한다”라고 주장하면서, 정밀한 찰기록에 입각한 소설을 썼다.
섬세하고 날카로운 묘사, 생물학적 접근으로 자연주의 문학의 선구자라고도 평가받으며, 특히 실제 파리 하녀의 삶을 그린 『제르미니 라세르퇴』는 자연주의 문학의 시작을 고하는 서문과 묘사가 인상적이다.
동생이 죽은 후로는 형이 단독으로 집필을 계속하여 소설을 썼다.
동생과 함께 썼던 『일기』는 19세기 후반기의 풍속과 문단에 관한 귀중한 자료이자 일기문학의 걸작이다.
‘공쿠르 상’은 에드몽의 유언에 의한 것으로 그들의 유산으로 1903년에 설립되었다.
매년 12월 파리의 드루앙 (Drouant) 레스토랑에서 ‘공쿠르 상’의 수상자가 발표되며, 수상자에게는 상금으로 50프랑을 수여한다.
2002년부터는 유로화로 바뀌면서 10유로로 결정되었다.
상금은 상징적인 액수에 지나지 않지만, 역대 수상작은 평균 60만 부 이상 팔리고 30여 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프루스트, 앙드레 말로, 시몬느 드 보부아르, 미셸 투르니에, 마르그리트 뒤라스 등 프랑스문학의 거장들이 공쿠르상을 수상했거나 공쿠르상 수상을 계기로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 공쿠르 형제의 작품들
이들의 처녀작인 소설 《18××년에 (1854)》가 실패했고 저널리스트·극작가로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 뒤 프랑스 18세기에 관한 문헌과 사료를 섭렵하여 《대혁명기의 프랑스 사회사 (1854)》, 《18세기의 미술 (1859∼75)》 등의 역사연구서를 썼고 특히 《마리 앙투아네트전 (1858)》으로 약간의 성공을 거두었다.
또 역사연구의 수법으로 《샤를 듀마이 (1860)》, 《수녀 필로멘 (1861)》 등의 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편 《제르미니 라세르 (1865)》, 《마네트 살로몽 (1867)》, 《제르베제부인 (1869)》 등 병리학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특이한 인물 특히 여성을 다루었고 자연주의의 선구적 수법이라 할 수 있는 관찰과 조사를 구사하였으며 두 사람이 <예술적 문체>라고 자부하는 독특한 문장을 썼다.
동생이 죽은 뒤 에드몽은 《매춘부 엘리자 (1877)》, 《장기노형제 (1879)》 등의 작품을 쓰기도 하였다.
이들이 남긴 《공쿠르일기 (1850∼96)》는 제2제정기 (帝政期)를 포함한 19세기 후반 프랑스 사회와 문단의 사정을 생생하게 나타내는 귀중한 자료이다.
*Works (by Edmond alone)
- Nonfiction
Catalogue raisonné de l’oeuvre peint, dessiné et gravé d’Antoine Watteau (1875)
Catalogue raisonné de l’œuvre peint, dessiné et gravé de P. P. Prud’hon (1876)
La Maison d’un Artiste (1881)
La Saint-Huberty (1884)
L’Art japonais du XVIIIe siècle, Outamaro. Le peintre des maisons vertes (1891)
La Guimard, d’après les registres des Menus Plaisirs, de la bibliothèque de l’Opéra, etc. (1893)
L’Art japonais du XVIIIe siècle, Hokousai (1896)
Le Grenier (1896)
- Novels
La Fille Elisa (1877)
Les Frères Zenganno (1878)
La Faustin (1882)Chérie (1884)
Goncourt Journals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