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5월 1일,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Empire State Building) 완공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Empire State Building)은 미국 뉴욕주 뉴욕 맨해튼섬 5번가와 34블록 일대에 위치하고 있는, 1931년에 지어진 울워스 고딕 양식의 건물이다.
–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Empire State Building)
.이전의 최고층 건물: 크라이슬러 빌딩 / 이후의 최고층 건물: 세계 무역 센터
.위치: 미국 뉴욕주 뉴욕 맨해튼
.기공: 1930년
.건축: 1930 ~ 1931년
.착공: 1930년 3월 17일
.완공: 1931년 4월 11일
.개장: 1931년
.높이: 안테나/첨탑 – 443.2m, 지붕 – 381m
.층수: 102층
.연면적: 254,000 m2
.건축가/건축회사: 시어브, 램 앤 하몬
.계약자: 스타렛 형제, 에켄
.소유주: 헬름슬리 스피어
.웹사이트: http://www.esbnyc.com/
지상 102층에 높이는 381m이며 1953년에 설치된 안테나 탑을 포함할 경우 443m이다. 86층의 콘크리트 건물 위의 16층 짜리 철탑은 본래 비행선의 계류탑을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나 바람이 심해 비행선 정박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거의 사용되지 않았으며 현재는 전망대와 방송용 안테나만이 위치해 있다.
또한 영화 ‘킹콩’에서 킹콩이 안테나 탑에서 벌이는 장면으로도 유명하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는 73개의 엘리베이터가 있으며 모두 합친 길이는 무려 11km나 된다. 또한 102층까지 1,860개의 계단이 있으며 6,500개의 창문이 있다.
건물에는 약 940개의 회사와 약 20,000명의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세계 무역 센터가 지어지기 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9.11 테러로 세계 무역 센터가 붕괴되고 나서는 다시 뉴욕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되었다.
이 빌딩을 정점 (頂點)으로 하는 마천루군은 20세기 전반 (前半) 뉴욕의 비즈니스 기능의 집중을 단적으로 대변해 주는 상징이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1931년부터 1972년까지 세계 최고층 건물이었다.
○ 역사
1929년 기공식을 통해 공사를 시작하였고, 2년 뒤인 1931년에 공사를 마쳤으며, 1953년 최종적으로 안테나 탑이 설치되었다.
그래서 약 1년 동안 세계 최고층 마천루 자리를 지킨 크라이슬러 빌딩을 눌러 약 41년 동안 세계 최고층 마천루 자리를 지켰다.
그동안 뉴욕에서 3번째로 높은 마천루였으나 9·11 테러로 세계 무역 센터가 파괴되어 2012년까지는 뉴욕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2013년 신 세계무역센터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541.32m로 공사가 완료되어 뉴욕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되었으며, 미국 내에서는 뉴욕의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 (541.32m)와 센트럴 파크 타워 (472.4m), 시카고에 위치한 윌리스 타워 (442m), 뉴욕에 위치한 원 밴더빌트 (427m), 432 파크 애비뉴 (425.5m), 시카고에 있는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 앤 타워 (423.2m), 뉴욕에 위치한 30 허드슨 야드 (395.5m) 다음으로 8번째다.
○ 이모저모
- 최고층 마천루의 경쟁
이 건물을 지을 무렵 미국에서는 초고층 건물 건축경쟁이 붙어, 1930년에서 1931년 사이에 세계최고층 빌딩의 순위가 3번이나 바뀌었다.
제일 처음 1930년 초 세계 최고층 빌딩인 트럼프 빌딩 (40 월 스트리트)가 맨해튼에 세워졌으나 그 직후 크라이슬러 빌딩이 완공되며 2위로 밀리고, 다시 그 다음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세워지며 크라이슬러 빌딩이 2위로 밀린다.
그래서 1931년, 대공황의 첫머리에 뉴욕에는 세계 최고층 빌딩 1, 2, 3위가 나란히 위용을 뽐내는 광경이 벌어졌다.
이 세 건물의 착공시기가 모두 1928년에서 1929년으로, 대공황 직전이란 것도 공통점. 그래서 마천루의 저주의 교과서적 사례로 꼽힌다.
- 공실률
이렇게 지어진 마천루들은 완공과 함께 대공황 세례를 받고 상당기간 입주하는 회사가 없어 어려움을 겪게 된다.
공실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던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도 1930년대에는 Empty State Building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거의 모든 층에서 임대가 이뤄지지 않았다. 일부러 빈 층에 불을 켜놓아서 임대가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려는 꼼수까지 썼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1950년대가 되어서야 이들 마천루들은 정상적인 운영이 가능해졌다.
원래 있던 월도프 애스토리아 호텔을 헐어내는 데만 80일이 걸렸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당시 유행하던 울워스 고딕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전체 102층에 높이 381m로 그때 당시 최고층이었던 크라이슬러 빌딩을 누르고 약 41년 동안 세계 최고층 건물이었다가 제1 세계무역센터에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참고로 제1 세계무역센터의 경우 2년만에 시카고의 윌리스 타워 (시어스 타워)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 1945년의 비행기 사고
1945년 7월 28일 오전 9시 40분, 메사추세스 주의 렉싱턴 육군 비행장을 이륙해 뉴어크 리버티 국제공항으로 향하던 미합중국 육군 소속 B-25 폭격기 한 대가 안개 때문에 시야 확보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항로를 변경하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해당 폭격기에는 조종사 윌리엄 F. 스미스 (William F. Smith) 육군 중령과 크리스토퍼 도미트로비치 (Christopher Domitrovich) 육군 중사, 앨버트 페르나 (Albert Perna) 해군 항공 기관 부사관 3명이 타고 있었다.
이 충돌의 여파로 79층과 80층의 외벽이 파손됨과 동시에 불길이 치솟았고 사고 현장에 있던 천주교 산하기관 직원 11명과 폭격기에 탑승한 군인 3명 전원, 총 14명이 사망하였다. 의외로 사망자가 적은 것은 위에서 언급된 당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가공할 공실률 덕분이었다. 또한 당시 B-25는 단순한 훈련 비행 중이었기 때문에 폭탄 등을 탑재하지 않아서 추가 유폭으로 인한 피해는 없었던 것도 한몫했다.
구조작업 중에도 사고가 터졌다. 폭발의 충격이 승강기 운전 계통을 건드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당시 사람들은 미처 하지 못했는지 소방 당국은 구조된 부상자들을 승강기로 실어나르려 하였다. 결국 승강기는 80층에서 갓 구조된 화상 환자 1명을 태우고 내려가다가 75층에서 케이블이 끊어지면서 지하까지 그대로 낙하하였고, 안에 타고 있던 사람은 놀랍게도 치유 가능한 골절상만 입은 채 지하층에서 발견되어 또다시 구조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이는 승강기 추락사고의 생존 사례 중 가장 극단적인 사례이다. 이들 소방대는 구조작업 중 사고가 난 80층보다 위쪽에 고립된 어느 여인이 절망에 빠져서 패닉 상태가 되었을 때 창 밖으로 던져버린 결혼반지까지 찾아내서 돌려주었다고 한다.
이 사고는 이후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한 뒤 회자되기도 했다. 고층 빌딩에 항공기가 충돌한 사고라는 유사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외벽에 손상을 입었지만 건물 자체는 멀쩡했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공법과 결국에는 무너져버린 세계무역센터 건물의 공법을 대비시키며 이후 고층건물들이 메가칼럼을 중심에 지니는 형태로 대거 바뀌게 되었다.
물론 9.11 테러와는 달리 이 일은 엄연히 ‘사고’였고, 사고의 진행 과정 및 배경도 차이가 났다. 당장 9.11 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한 보잉 767은 무게도 200t이 넘는데다가 충돌 당시 속도도 800 km/h에 달했다. 폭탄이나 다량의 연료 등을 싣고 있지도 않았고 크기도 작고 느린 프로펠러기인 미첼 폭격기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 특징
초고층 빌딩의 상징같은 건물이라 수많은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했다. 영화 ‘킹콩’에서 킹콩이 빌딩 꼭대기로 올라가는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장면이고,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는 두 주인공 남녀의 사랑이 시작되는 곳이며, 뉴욕 야경을 배경으로 빌딩 외벽에 하트가 그려지는 엔딩씬이 유명하다.
86층의 콘크리트 건물 위의 16층짜리 안테나는 동시기에 지은 크라이슬러 빌딩보다 높으려고 올렸다. 원래는 비행선 계류라는 야심찬 계획을 시도했지만, 결국 강풍으로 인해 위험이 커서 사용되지 않았다. 이후로는 전망대와 방송용 안테나로 사용되고 있다. 요즘은 라이벌 건물들이 다 사라져서 전망대로써 신나게 돈을 버는 중. 기본 요금을 내면 86층까지 올라갈 수 있고, 돈을 더 내면 안테나 밑까지 올라갈 수 있다. 사실 86층이나 더 위층이나 경관은 비슷하다고 한다.
건축 당시를 촬영한 1,000여 장의 흑백 사진이 꽤 유명하다. 이 사진들은 당시 주지사가 루이스 하인이라는 사진작가에게 모든 과정을 기록해달라 부탁한 덕분에 매우 많은 자료가 남아있다. 해당 사진과 같이 당시의 건축 현장의 노동 환경은 매우 열악해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안전장치 없이 철골 위를 다녔다.
특히 철강 노동자 중에는 캐나다 출신의 모호크족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고소공포증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런 근무환경 때문에 당시 가장 중요했던 안전수칙은 바로 철골 위에 기름이 흘러있나 확인하는 것이었다. 건설기간 동안 총 6명이 사망했다. 5명은 인부였으며, 1명은 지상에서 걸어가던 보행자였다. 3500명 가량의 노동자가 동원되었으며 건물을 짓는데 10만 개의 리벳이 사용되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건축사진 하면 노동자들이 지리는 높이의 H빔에 앉아 쪽점심을 먹는 사진인 ‘마천루 위에서의 점심식사’도 유명하다. 같은 장소의 다른 사진에선 이 노동자들이 아예 H빔 위에서 낮잠까지 자면서 쉬기도 한다.
허나 이 두 사진들은 실제 점심식사 및 휴식 장면은 아니고 사진작가 찰스 C. 에벳 (Charles C. Ebbets)와 토마스 켈리 (Thomas Kelly), 윌리엄 레프트위치 (William Leftwich)가 공동으로 연출한 작품이라고 한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