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6월 17일, 이집트의 법학자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Mohamed ElBaradei, 1942 ~ ) 출생
무함마드 모스타파 엘바라데이 (Mohamed ElBaradei, 1942년 6월 17일 ~ )는 국제 원자력 기구 사무총장을 지낸 이집트의 법학자이자 외교관이다.

–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Mohamed ElBaradei)
.출생: 1942년 6월 17일, 이집트 카이로
.국적: 이집트
.수상: 노벨 평화상, 인디라 간디상, 외 개
.형제자매: 라일라 엘바라데이, 알리 엘바라데이, 모나 엘바라데이, 타렉 엘바라데이
.설립 조직: Constitution Party, National Association for Change
.정당: Constitution Party
1942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태어나 1962년에 카이로 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74년에는 뉴욕 대학교 로스쿨에서 법률과학박사 (J.S.D.) 학위를 받았다.
1997년과 2001년, 2005년 세 번에 걸쳐 국제 원자력 기구 사무총장을 지냈다.
“원자력 에너지가 군사적으로 전용되는 것을 막고 평화적으로 사용되도록 공헌”한 데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와 함께 2005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2007년에는 대한민국의 건국대학교에서 명예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 생애 및 활동
엘바라데이는 1942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무스타바 엘바라데이는 이집트 변호사협회장을 20년간 역임한 저명한 법률가였다.
그는 카이로 대학을 거쳐 미국 뉴욕 대학에서 국제법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64년 외교관의 길로 들어섰으며, 1981년부터 6년간 母校인 뉴욕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부인은 오스트리아 빈 국제학교의 유치원 교사였던 아이다 엘카셰프이며, 변호사인 딸 라일라와 음향공학자인 아들 무스타파를 두고 있다.
엘바라데이가 IAEA에 합류한 것은 1984년이다. 對外관계 담당 副사무총장을 거쳐, 1997년부터 한스 블릭스 前 총장의 뒤를 이어 사무총장직을 맡아 왔다.
그가 처음부터 미국과 갈등을 빚었던 것은 아니다. 1997년 사무총장에 첫 선출될 당시 미국은 그를 적극 지원했다.
그러나 이란을 비롯한 核보유 국가 처리에 있어 「사찰과 검증을 통한 평화적 해결」이라는 원칙을 고수하는 엘바라데이와, 더욱 강경한 정책을 원하는 미국은 갈등을 피하기 어려웠다.

그가 미국에 「미운 털」이 박힌 결정적인 원인은 이라크戰 반대에 있다. 미국은 2003년 이라크 전쟁의 명분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보유한 대량살상무기와 核무기 제조 계획을 들었으나, 엘바라데이는 『이라크의 核무기 프로그램은 1990년대에 모두 폐기됐다』고 강하게 맞섰다.
그러나 그는 이라크戰 발발을 막을 수 없었다. 엘바라데이는 최근 『내 인생에서 가장 슬펐던 날은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날』이라고 했다.
그가 불과 2년 전까지 「노벨평화상을 절대 받지 못할 대표적인 부적격자」로 거론된 것은, 이라크戰을 막지 못했다는 꼬리표가 붙었기 때문이다.
엘바라데이는 미군의 이라크 침공 이후 대량살상무기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했다.
급기야 부시 행정부는 눈엣가시인 엘바라데이의 축출에 나섰다. 대표적인 강경파인 존 볼턴 당시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 담당 차관의 주도로 새로운 사무총장감 물색을 시작했으며, 엘바라데이의 허점을 찾기 위해 뒷조사를 했다.
지난 2004년 12월 「미국 정부가 엘바라데이를 퇴진시킬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그와 이란 외교관들 사이에 오간 전화통화 수십 건을 도청했다」는 워싱턴포스트의 보도가 터져 나왔다.

결국 콘돌리자 라이스 美 국무장관은 지난 2005년 6월 엘바라데이를 워싱턴으로 초청해 연임 지지 의사를 밝혔다.
단, 「이란 核문제에 대해 좀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는 지난 9월 35개국 회원국 만장일치로 임기 4년인 사무총장직 3選에 성공했다.
엘바라데이가 이란의 核 제재에 소극적인 이유를 전혀 다르게 보는 시각도 있다.
지난 2005년 6월 「엘바라데이의 아내 엘카셰프가 이란人이어서 아내의 눈치를 보느라 이란 核 문제에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IAEA의 대변인은 『사실과 다른 억측』이라고 부인했으나, 엘바라데이 부인의 국적에 대해서는 정확한 답변을 거부했다.
엘바라데이는 「북한이 5~6기의 核무기를 제조할 능력을 갖고 있다」고 보고 있으며,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 核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해 왔다.
2002년 12월 북한이 IAEA 사찰단원 2명을 추방한 후 『나는 세계를 완전히 무시하는 한 국가에서 심각한 위기를 보고 있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1997년과 2001년, 2005년 세 번에 걸쳐 국제 원자력 기구 사무총장을 지냈고, “원자력 에너지가 군사적으로 전용되는 것을 막고 평화적으로 사용되도록 공헌”한 데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와 함께 2005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2007년에는 대한민국의 건국대학교에서 명예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