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4월 26일, 대한민국의 이승만 대통령이 국회에 출석하여 하야 성명서 발표해 4.19 혁명 완수
이승만 (李承晩, 1875년 3월 26일 ~ 1965년 7월 19일)은 대한민국의 개화파·독립운동가·언론인·정치인·교육자,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자 마지막 주석이었다.
대한민국의 제1·2·3대 대통령이었다.
1960년 제4대 대통령에 선출되었으나 3.15 부정선거로 촉발된 4·19 혁명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 하야했고, 하와이로 망명한 후 귀국하지 못하고 그곳에서 별세했다.
1960년 제4대 대통령 선거에 부통령 후보 이기붕과 러닝메이트로 출마하였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이 선거 중 사망해 무투표 당선되었다.
그러나 3·15부정선거로 4·19혁명이 발발했다.
4·19 혁명 (四一九革命) 또는 4월 혁명 (四月革命)은 1960년 4월 19일 대한민국 제1공화국 자유당 정권이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개표조작을 하자, 이에 반발하여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는 학생들의 시위에서 비롯하여 전국의 대규모 시민에게 확대된 반독재투쟁이자 혁명이다.
3·15 부정 선거의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던 3·15 마산 의거에 참여한 1960년 전라북도 남원 금지중학교를 졸업하여 마산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한지 얼마 안된 학생 김주열이 실종된 지 27일 후인 4월 11일 아침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왼쪽 눈에 경찰이 쏜 최루탄이 박힌 채 시신으로 떠오른 것이 부산일보를 통해 보도되면서 시위는 전국적으로 퍼지며 격화되었다.
4월 19일 경찰이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로 몰려드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였고, 발포 이후 시위대는 무장하여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며 맞섰다.
이에 4월 26일 이승만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났으며, 경무대를 떠나 이화장 (梨花莊)에 잠시 머물다 5월 29일 하와이로 망명하였다.
1965년 7월 19일 하와이 호놀룰루 요양원에서 사망하였다.
같은 해 7월 27일 가족장으로 영결식이 있었고,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