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7월 14일, 일본의 불교학자 우이 하쿠주 (宇井伯寿, 1882 ~ 1963) 별세
우이 하쿠주 (일: 宇井伯寿, 1882년 6월 1일 ~ 1963년 7월 14일)는 일본의 조동종 (曹洞宗) 승려로, 인도 철학 연구자이자 불교학자이다. 일본 학사원 회원이다.

– 우이 하쿠주 (宇井伯寿)
.출생: 1882년 6월 1일, 일본 아이치현
.사망: 1963년 7월 14일
.직업: 승려, 불교학자
.분파: 일본의 조동종 (曹洞宗)
.학력: 도쿄대, Keihoku 고교, 아이치 중학교, 아이치 고등학교
.자녀: Michio Ui
.주저: 인도철학연구 전6권
12세 때 호이 군의 조동종 사찰인 도센지 (東漸寺)에서 출가하였다. 도쿄 대학 인도철학과에 입학하여, 다카쿠스 준지로에게 사사하였다.
졸업 후 조동종 제1중학림 (曹洞宗第一中学林), 조동종 대학 (지금의 고마자와 대학)에서 강사로 일하였고, 1913년부터 독일의 튀빙겐 대학,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에 유학하였다.
1920년대부터 30년대에 걸친 일본의 인도철학, 인도불교는 동시대에 나온 두 사람의 연구자가 리드했다. 한 사람은 기무라 다이켄 (木村泰賢)이고, 또 한 사람은 우이 하쿠주이다. 두 사람은 도쿄제국대학을 동시에 졸업하였고, 재학할 때부터 같은 전공을 공부하는 라이벌이었다.
하쿠주는 독일과 영국에서 학업하고 귀국한 뒤에는 교수가 되어 도쿄 대학, 도호쿠 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1년에 도쿄 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41년 조동종 본청 (曹洞宗本庁)에 의해 고마자와 대학 학장에 임명되었고, 1945년에는 제국학사원 회원에 선출되었다.

○ 생애 및 활동
1882년 아이치현 호이 군 (宝飯郡) 미토 정 (御津町)에서 태어나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12세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조동종 (曹洞宗) 도우젠지 (東漸寺) 주지 가쯔잔만주 (活山卍壽)에게 사사해서 득도 (得度)를 했다. 호는 활옹 (活翁), 이름을 하쿠주 (伯壽)로 했다. 이어 조동종 승려로서 교육을 받기 위해 아이치 중학림 (中學林)에 입학하고, 그 후 도쿄의 게이호쿠중학교 (京北中學校)에 편입했다.
졸업한 후 제일고등학교 (현재의 도쿄대학 교양학부)에 입학하고, 1906년 (25세)에는 도쿄제국대학 문과대학에 진학하여 타카쿠스 준지로 (高楠順次郞)의 지도를 받아 인도철학을 전공했다.
1909년 (28세), 대학원에 진학하고 1913년 (32세)에는 조동종 해외유학생으로 독일에 가서, 츄빈겐대학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만난 갈베 교수는 인도문화를 역사적으로 연구한 사람으로서 육파철학 (六派哲學)의 대가였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독일에서 영국으로 피신해 옥스포드 (Oxford) 대학, 캠브리지 (Cambridge) 대학에 머물면서 연구를 계속했다.
그리고 1917년 (36세)에는 영문으로 된 〈승종십구의론 (勝宗十句義論)〉을 영국 왕립 아시아 협회로부터 출판했다. 같은 해 영국을 떠나 11월에 귀국했다.
귀국 후에는 조동종 대학을 비롯해 도쿄내의 불교계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1919년 (38세) 기무라 다이켄이 유럽에 유학을 떠나, 그를 대신하여 도쿄제국대학 문학부 강사가 되었다.
1921년 (40세)에는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23년 (42세)이 되자 센다이 (仙台, 동북지방)에 토호쿠제국대학 (東北帝國大學)이 설치되면서, 법문학부 (法文學部)가 만들어졌다. 법문학부는 종교학과와 인도학과가 설치되어 종교학에는 스즈키 소추우 (鈴木宗忠)가, 인도학에는 우이 하쿠주가 각각 주임교수가 되었다. 이래 8년간, 하쿠주는 센다이에서 생활했다. 이 시기에 맹렬하게 연구를 해서 그의 중심적인 실적인 〈인도철학연구 (印度哲學硏究)〉를 저술했다.
1930년 (49세), 기무라 다이켄이 협심증으로 급서했다. 하쿠주는 그 후임으로 도쿄제국대학의 인도철학제일강좌를 담임하게 되었다.
1931년 (50세)에는 〈인도철학연구〉가 제국학술원상 (帝國學士院賞)을 받았다.
1941년 (60세), 조동종 대학인 고마자와대학 (駒澤大學)의 학장으로 취임했지만, 곧바로 사직한 소동이 있었다. 먼저 조동종 종무총장이 하쿠주에 학장 취임을 의뢰했다. 하쿠주는 거부했지만, 거듭 부탁을 받았기 때문에, 조건을 붙여 승낙하기로 했다.
그 조건은 다음과 같다. 학장은 불사 (佛事)할 때 불전 (佛前)에서 대도사 (大導師)의 역할을 해야 되는 전통이 있었다. 그러나 하쿠주는 학자이므로 의례를 잘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학장은 맡지만, 대도사 역할은 다른 교수에 의뢰하도록 요청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 내부에서 맹렬한 반발이 일어났다. 그것은 역대 고마자와대학 학장은 장래의 조동종 관장 (管長, 종파의 최고 책임자)의 후보였기 때문에 대도사를 남에게 맡기는 것은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같은 반발로 인해 종무총장은 하쿠주를 사직시키로 했다. 이에 하쿠주는 맹렬하게 화를 내면서, 사직서 (辭職書)를 써서 조동종 관장에 보냈다. 나아가 학장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승적까지도 반납하여, 완전히 조동종과는 관계를 끊었다.
1943년, 도쿄제국대학 교수직을 정년 퇴임했다.
1945년, 은사인 다카쿠스 준지로가 세상을 떠나고, 장례식 때 문하생 대표로 조사 (弔辭)를 읽었다. 12월에는 제국 학술원 회원 (帝國學士院會員)이 되었다.
1946년 (65세) 1월, 궁중 고쇼하지메 (宮中御書始, 매년 1월에 각 분야의 대표적인 학자가 일왕에게 강의하는 전통행사)를 배명하여, 쇼오토쿠타이시 (聖德太子)의 ‘17조헌법 (十七條憲法)’을 진강 (進講)했다.
1953년 (72세)에는, 인도철학연구의 개척 및 발전의 공로로 일본 학계에서 최고 영예인 문화훈장 (文化章)을 받았다.
또 만년에는 나고야대학 (名古屋大學)의 인도철학과 설립에도 힘썼다.
1963년 82세로 별세했다.
제자로는 나카무라 하지메가 있다. 약리학자인 우이 미치오는 하쿠주의 다섯째 아들이다.

○ 평가
하쿠주의 학풍은 라이벌이었던 기무라 다이켄과는 대조적이었다. 다이켄은 종교학, 철학의 지식도 동원하면서 인도철학과 인도불교를 알기 쉽게 해설해 나가는 스타일이었는데 비해, 하쿠주는 문헌을 정밀하게 해독하여, 그 범위 내에서 사상을 서술하는 스타일이었다.
우선 하쿠주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된 것은, 1917년 (36세)에 영문으로 출판한 〈승종십구의론 (勝宗十句義論)〉의 번역이다. 이것은 인도철학 중 바이셰시카(Vaisesika) 학파의 텍스트이지만, 한역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이 한역이 난해하고, 제대로 된 한문이 아닌 부분 즉 산스크리트어 순서로 한자를 늘어놓았을 뿐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하쿠주는 이것을 다른 바이셰시카 학파의 산스크리트 텍스트를 참조하면서, 산스크리트 원문을 상정하면서 번역했다. 이것은 산스크리트어와 한문의 양쪽을 알아야 할 수 있는 작업이어서 서구 학자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와 같이 엄밀한 원전 독해를 기초로 해서 많은 실적을 쌓아 갔다. 대표적인 것이 〈인도철학연구〉 전6권이다. 이것은 인도철학이나 인도불교 중에서 문제가 되는 주제에 대한 논고를 모은 것이고 그의 해결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중의 몇 가지를 소개하면, 그는 부처님이 입멸한 연대, 즉 불멸연대론 (佛滅年代論)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과학적인 조사를 해서 제시했다. 인도, 중국에 전해지는 여러 기록을 정리하여 검토를 더한 결과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를 BC 466년 ~ 386년으로 추정했다. 또 불교 논리학에서도 큰 성과를 남겼다. 하쿠주 이전에는 무라카미 센쇼우 (村上專精)가 불교논리학을 전문으로 했지만, 그것은 한역 불전에 전해지는 인명 (因明)이었다. 이에 대해 하쿠주는 산스크리트 원본도 연구하고, 이것을 한역하고 같이 연구했다. 그래서 근대적인 학문으로서의 불교논리학연구의 선구자가 되었다.
나아가 유식학 (唯識學) 연구 분야에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 하쿠주의 유식학 연구의 특징은, 진제 (眞諦)를 중심으로 한 것이다. 법상종 (法相宗)이라는 이름으로, 동아시아 유식의 정통으로 여겨지는 유식 사상은, 현장(玄)의 번역에 근거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하쿠주의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다. 유식 사상은 미륵 (彌勒), 무착 (無着), 세친 (世親) 등에 의해 형성되어 그것이 후대의 호법 (護法) 등에 의해 전개된다. 그리고 호법의 교학을 받은 현장이, 세친-호법의 계통을 잇는 것이 정통이다. 그러나 하쿠주는 현장의 번역에 의한 유식, 즉 호법의 교학과 무착이나 세친의 교학과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즉 하쿠주는 인도의 유식은 무착이나 세친에 의해 형성된 후, 여러 가지 발전의 형태가 있고 호법-현장의 계통도 그 중의 하나가 아닐것인가 라는 가설을 가졌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진제 및 진제가 번역한 경론을 연구하여, 현장의 번역 및 교학과의 차이를 밝히고 또 그것이 초기 유식과 가까운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하쿠주는 인도철학과 인도불교의 연구에 이어 중국불교와 일본불교의 연구도 했다. 그 가운데 중심적으로 연구한 것은 선종사 연구이다. 〈선종사연구 (禪宗史硏究)〉는 전3권이 간행되었다. 제1권은 달마 (達磨)로부터 홍인 (弘忍), 및 마조도일 (馬祖道一), 석두희천 (石頭希遷) 등의 연구이다. 그 중에서는 북종 (北宗) 연구에 역점이 두고 있다. 제2권은 육조혜능 (六祖慧能) 연구가, 그리고 제3권은 동산 (洞山), 조산 (曹山)의 연구가 중심이다. 이러한 선종연구에서도 그의 연구 방법은 인도철학 등과 같이, 원전의 교정, 주해 (註解), 그리고 연구로, 문헌에 엄밀한 것이었다.

○ 저서
宇井伯壽監修『仏教辞典』 大東出版社、1937年、新版1965年ほか
『印度哲学研究』1–6 甲子社、1924年–。岩波書店、、1965年
『印度哲学史』 岩波書店、1932年
『インド哲学史』書肆心水、2015年
『仏教論理学』大東出版社、1933年
『唯心の実践』大東出版社、1934年
『禅宗史研究』1-3 岩波書店、1939-43年、新版1966年、1982年
『仏教思想研究』 岩波書店、1943年
『仏教思想の基礎』 岩波書店、1944年
『仏教哲学の根本問題』 大東出版社、1947年
『仏教哲学の根本問題』書肆心水、2014年。大活文字版
『仏教思潮論』喜久屋書店、1948年
『仏教思潮論 仏法僧三宝の構造による仏教思想史』書肆心水、2014年
『大乗仏典の研究』 岩波書店、1953年
『大乗荘厳経論研究』 岩波書店、1953年
『実性論研究』 岩波書店、1953年
『瑜伽論研究』 岩波書店、1953年
『唯識三十論釈論』 岩波書店、1953年
『唯識二十論研究』 岩波書店、1953年
『釈道安研究』 岩波書店、1956年
『仏教経典史』 東成出版社、1957年
『仏教経典史』書肆心水、2014年。大活文字版
『陳那著作の研究』 岩波書店、1958年
『宇井伯寿著作選集』全6巻、大東出版社、1966-72年
『訳経史研究』岩波書店、1971年
『インド哲学から仏教へ』岩波書店、1976年
『禅者列伝 僧侶と武士、栄西から西郷隆盛まで』書肆心水、2015年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