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9월 9일, 중화인민공화국 ‘티베트 자치구’ 성립 선언

티베트 자치구 (티: Bod-rang-skyong-ljongs) 또는 시짱 자치구 (西藏自治區)는 중화인민공화국 서남부의 티베트에 있는 자치구이다.
티베트 자치구는 중국의 자치구 중에서 유일하게 해당 민족이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이다.
다른 자치구들은 이름과는 달리 한족이 더 많거나 한족 숫자와 비슷하다.
그러나 지형의 험준함 덕에 티베트만은 유일하게 티베트인이 다수를 그간 차지할 수 있었다.
1950년대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에 합병되었으며 문화대혁명의 여파로 많은 사찰들이 파괴되기도 했다.
오랫동안 독립 투쟁을 벌이고 있으나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압으로 인해 번번이 진압되고 있다.

1912년부터 1950년까지 현재의 티베트 자치구(위창 지방과 서부 캄 지방)는 달라이 라마가 수장으로 있는 티베트 정부의 지배를 받았다.
역사상의 티베트의 다른 부분(동부 캄 지방과 암도 지방)은 20세기에 티베트 정부의 관할이 아니었다.
오늘날 티베트의 다른 부분은 칭하이성, 간쑤성, 쓰촨성, 윈난성에 분포되어 있다.
소비에트 연방의 전략에 따라 티베트 통치자 회의는 티베트족으로 이루어진 반면, 지역 공산당 위원회의 총서기들은 외지인, 대개 한족으로 구성되었다.
1950년 중공군은 최소한의 저항을 분쇄하고 창두 지역으로 침공했다.

1951년 중화인민공화국이 티베트에 무력으로 17개조 협정 조약을 체결하도록 하여 실지배자인 달라이 라마가 아닌 대신이 중국으로 가 정부의 인장조차 위조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의 티베트 통치권을 인정하는 십칠조협의에 서명하였다.
협정은 몇 달 후 라싸에서 비준되었다.
1959년 노부링카 궁 앞에서 중국에 대한 시민 봉기로 달라이 라마는 인도로 망명하고 인도에서 달라이 라마는 17개조 협정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의 강압에 체결된 협정이므로 폐기한다고 공포하였으며 독립된 티베트 정부 창설도 알렸다.
그 후 언론의 노출로 세계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마오쩌둥의 사망 후 자본주의적 역개혁의 필요성을 느낀 덩샤오핑과 현 14대 달라이 라마가 협상을 시도하였으나 중국 정부가 근본적 자치문제에 대해선 언급을 회피하여 협상이 매번 결렬되고 국제문제로 부상하게 되었다.

1989년 당시 티베트 자치구의 당 서기로 임명받은 후진타오는 병력을 티베트에 집결, 2년동안 티베트인들의 대항과 중국의 강경진압이 시작되었다.
1989년 12월 달라이라마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이후에도 달라이 라마는 비폭력 운동에 근거한 중국 내에서의 티베트의 진정한 자치를 목표로 티베트인들의 독립운동은 계속 되고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족들의 러시는 여기도 마찬가지라서 쓰촨성 출신 한족들이 라싸 근교에 들어서는 중국식 신도시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외곽 신도시만 가면 중국 타 지역과 별반 다를 바 없다.
특히 칭짱철도 개통 후 교통이 나날이 좋아지고 있는지라 지형의 험준함도 극복해 가고 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