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8월 11일, 체코의 지휘자 겸 작곡가 라파엘 쿠벨릭 (Rafael Jeroným Kubelík, 1914 ~ 1996) 별세
라파엘 예로님 쿠벨리크 (체: Rafael Jeroným Kubelík, 1914년 6월 29일 ~ 1996년 8월 11일)는 체코 출신의 지휘자, 작곡가이다.

– 라파엘 쿠벨리크 (Rafael Kubelík)
.본명: 라파엘 예로님 쿠벨리크 (Rafael Jeroným Kubelík)
.출생: 1914년 6월 29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비호리
.사망: 1996년 8월 11일 (82세), 스위스 루체른주 카스타니엔바움
.국적: 체코 – 스위스
.직업: 지휘자
.수상: 덴마크 소닝상 (1983), 영국 로열 필하모닉 협회 명예 회원 (1990), 체코슬로바키아 토마시 가리구에 마사리크 훈장 1급 (1991), 영국 로열 필하모닉 협회 금메달 (1995)
바이올리니스트 얀 쿠벨리크와 헝가리 백작 부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여섯 번째 아이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바이올린을 배웠으며 14세에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하는 연주를 듣고 감명을 받아 지휘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프라하 음악원에서 작곡, 바이올린, 지휘를 공부했다. 음악원을 졸업한 1934년 체코 필하모니 관현악단의 지휘자로 취임, 데뷔했다.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버지의 연주 여행에 반주자로서 동행하며 유럽을 순회하기도 했다. 귀국한 뒤에는 1939년 브르노의 국립 가극장 음악감독이 되었고 1942년에는 체코 필하모니 관현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취임했다. 쿠벨릭은 지휘 외에도 교향곡, 실내악곡, 가곡 등을 쓰는 작곡가로서의 작업을 했으며 1940년에는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는 레퀴엠도 썼다. 1946년 에드바르트 베네시 대통령의 후원으로 체코 필하모니 창설 5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제의 지휘를 맡았는데 이것이 프라하의 봄 음악제의 시작이다. 쿠벨리크는 체코에 공산당 정권이 들어서자 매우 낙심했고, 1948년 에든버러 음악제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의 지휘자로 초빙된 것을 기회로 영국으로 망명해 1990년까지 체코로 돌아오지 않았다. 망명 후 시카고 교향악단의 음악감독, 코번트 가든 왕립 가극장의 음악감독,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음악감독 등을 지내며 커리어를 쌓았다. 1986년 건강상의 이유로 지휘자 자리에서 은퇴했지만 1989년 체코가 벨벳 혁명으로 민주화되자 이듬해인 1990년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의 요청으로 프라하의 봄 음악제에 출연해 전야제에서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을 지휘했다. 1996년 스위스의 루체른에서 별세했으며 체코 프라하의 비셰흐라드 묘지에 묻혔다.

○ 생애 및 활동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령이었던 보헤미아 (체코어로는 체히)의 비호리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얀 쿠벨릭 (1880 ~ 1940)은 당대 최고 수준의 바이올리니스트였으며, 어머니는 헝가리의 백작 부인인 화려한 배경의 부모 밑에서 자라났다. 이 때문에 어릴 적부터 음악을 자연스럽게 익히기 시작했는데, 심지어 쿠벨릭 자신의 회고에 따르면 읽고 쓰는 것보다 악보 읽는 것을 먼저 배웠다고 한다.
본격적인 음악 교육은 아버지에게 바이올린 교습을 받는 것으로 시작했고, 이후 프라하 음악원에 입학해 바이올린과 작곡, 지휘 세 개 분야를 동시에 전공하는 충공깽의 재능을 보여주었다. 1933년에 졸업할 때도 어느 하나 포기하지 않고 졸업 연주회를 치러 세 분야에서 모두 학위를 따며 주목받았을 정도. 정식 전공은 아니지만 피아노 실력도 수준급이어서, 종종 아버지의 공연 때 반주자로 같이 무대에 서기도 했다.
하지만 바이올린은 이미 넘사벽인 아버지가 존재했던 탓도 있어서, 지휘와 작곡으로 영역을 바꾸어 활동하게 되었다. 이미 열네 살 때 프라하를 방문한 두 레전설 지휘자들인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브루노 발터의 공연을 직접 보고 지휘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프라하 음악원을 졸업한 지 1년이 채 안된 1934년에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지휘자로 공식 데뷰했다.
이후 체코 필을 비롯한 체코 각지의 관현악단과 오페라극장에서 객원 지휘를 맡으며 경험을 쌓아갔고, 1939년에는 브르노 오페라극장의 음악 감독에 부임했다. 하지만 2년 뒤인 1941년에 나치 독일이 극장을 강제 폐쇄하면서 해임되었다. 이듬해인 1942년 바츨라프 탈리히가 나치에 의해 강판당하면서 공석이 된 체코 필의 상임 지휘자로 취임했다.
하지만 쿠벨릭도 탈리히와 마찬가지로 나치에 동조하지 않았고, 체코 총독으로부터 나치식 경례와 바그너의 음악 지휘를 강요받았지만 모두 완강하게 거부하면서 점차 높으신 분들의 눈밖에 나게 되었다. 결국 1944년에는 게슈타포의 체포령을 피해 시골 마을에서 은거하며 전쟁 후반기를 보내야 했고, 1945년에 제2차 세계 대전이 종전되자 음악계에 복귀했다.

1946년에는 프라하의 봄 국제음악제 창설에 참가해 개막 콘서트를 지휘했고, 영국의 HMV (이후 EMI)나 체코 국영 음반사인 수프라폰 등에서 녹음 활동도 재개했다. 하지만 1948년 2월에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이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하여 조국이 공산화되자 결국 그는 고국을 탈출하여 자유 세계로 망명하기로 결심했다.
1948년 9월 쿠벨릭은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가족들과 출국한 후 곧바로 영국에 망명을 요청했다. 이후 미국과 서유럽을 주요 활동 무대로 삼아 활동했다. 이미 뉴비 시절에 체코 필을 이끌고 유럽 순회 공연을 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기 때문에, 망명 직후 BBC 교향악단과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동시에 러브콜을 보내는 등 일찌감치 주목받기 시작했다.
1950년 쿠벨릭은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가 되었다. 원래 푸르트벵글러가 맡을 예정이었지만 미국 내 유대인 음악인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대신 천거되는 식으로 부임했다. 하지만 부임한 직후 쿠벨릭은 푸르트벵글러가 천거해준 인물이라며 푸까 성향의 음악 평론가들에게 디스 당하기 시작했고, 현대음악을 너무 자주 공연한다면서 보수적인 후원자들과 경영진들로부터도 까이는 등 순탄치 못한 역정을 보여주다가 1953년에 사임해야 했다.
시카고에서 물러난 이후 1955년부터 1958년까지는 영국의 코벤트 가든 왕립 오페라극장의 음악 감독으로 재임했고, 여기서는 야나체크의 ‘예누파’ 등 모국의 오페라들을 상연해 화제가 되었다. 1957년에는 상연에 네 시간 이상이 걸리는 베를리오즈의 오페라 ‘트로이 사람들’ 을 무삭제로 전곡 공연하는 등 대규모 오페라의 지휘에도 숙련된 실력을 보여주었다.
1961년에는 전년도에 퇴임한 오이겐 요훔의 뒤를 이어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부임했고, 여기서 1979년까지 거의 18년 동안 장기 재임하며 악단 입장에서나 자신의 입장에서나 리즈 시절을 누렸다. 특히 이 시기 동안에는 말러의 교향곡 전곡을 공연하고 도이체 그라모폰에 녹음도 했으며, 이외에도 야나체크와 드보르자크, 스메타나, 마르티누 등 고국의 작곡가들이 남긴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해 이들 작품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1971년에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 신임 극장장으로 부임한 스웨덴 출신 음악 행정가 요란 옌텔레의 요청을 받아 음악 감독으로 부임할 예정이었는데, 불과 1년 뒤 옌텔레가 이탈리아에서 휴가를 보내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하면서 큰 충격을 받고 부임을 미뤘다. 1973년 가을 시즌에 임기를 시작했지만, 결국 6개월을 간신히 채운 뒤인 이듬해에 바로 사임했다.
1970년대 후반 들어서는 지병인 만성 관절염으로 인해 지휘 활동에 불편함을 겪기 시작했고, 결국 1979년에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의 직책을 사임한 뒤 객원 지휘 위주로 활동하면서 조금씩 스케줄을 줄여나가다가 1985년에 공식 은퇴 선언을 했다. 이후 작곡 활동을 하면서 여생을 보내려고 했지만, 1989년에 고국 체코에서 벨벳 혁명이 일어나 공산당 정권이 붕괴되자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의 초청을 받았다. 쿠벨릭은 1990년에 이 초청을 수락했고, 42년 만에 귀국해 체코 필과 프라하의 봄 음악제에서 스메타나의 6부작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 전곡으로 복귀 콘서트를 개최했다.
1년 뒤인 1991년에도 같은 음악제의 개막 공연 무대에 올라 모차르트의 교향곡 제38번과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제9번 두 곡을 지휘했고, 음악제 종료 직후에는 체코 필의 일본 순회 공연에도 동행해 오사카와 도쿄에서 ‘나의 조국’ 전곡을 재차 무대에 올렸다. 이 공연을 끝으로 쿠벨릭은 완전히 지휘 무대에서 은퇴했고, 귀국 후 자작곡 두 곡을 스튜디오 녹음한 뒤 스위스의 카스타니엔바움 자택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1996년에 82세로 세상을 떠났다. 유해는 화장되어 프라하의 비셰흐라드 묘지에 있는 아버지 얀의 묘소에 같이 안장되었다.

○ 음악 성향
전반적인 음악 스타일은 악보를 존중하면서도 성부 별로 균형있게 울리는 음향을 추구해 이전 시대 지휘자들보다 좀 더 화려하고 단단한 느낌의 연주를 끌어내는 것으로 유명했고, 이 때문에 비록 이후 대세가 되는 시대연주와 비교하면 좀 구티가 나지만 헨델 같은 바로크 작품에서도 당시 기준으로 산뜻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쿠벨릭 사후에는 유족들의 동의를 얻어 그 동안 바이에른 방송국을 비롯한 유럽과 미국의 방송국에서 실황 녹음된 테이프들이 오르페오나 타라 등의 음반사를 통해 속속 정발되고 있어서, 그 동안 주로 스튜디오 녹음으로만 들을 수 있던 쿠벨릭의 라이브 연주를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쿠벨릭의 음반은 DG 스튜디오 음반과 오르페오 라이브 음반 모두 퀄리티가 훌륭하지만 스튜디오 정규 음반은 근거리 마이킹으로 인해 잔향이 적고 고음 성향의 선명한 음질을 추구한 반면 바이에른 방송국의 음원은 실황 녹음의 특성상 원거리 마이킹으로 인해 선명함은 덜하지만 대신 바이에른 방송향의 상주홀인 헤르쿨레스잘 특유의 풍부한 잔향이 잘 살아있기 때문에 정규음반과는 또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다민족 거주지였던 보헤미아 출신답게 상당히 광범위한 레퍼토리를 다뤘는데, 물론 그 중심에는 체코 음악이 있었다. 망명 후에도 이들 체코 음악은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제작한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전집 녹음으로 그 동안 좀처럼 듣기 힘들었던 7번 이전의 교향곡들을 재조명할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스메타나의 경우에도 무려 여섯 번이나 전곡 녹음했던 ‘나의 조국’ 외에 다른 관현악 작품들도 적극적으로 공연하고 음반화하는 등 열성적으로 보급에 힘썼다.
물론 정통 독일/오스트리아계 레퍼토리에도 정평이 나 있었다. 모차르트, 베토벤, 슈만, 브람스, 브루크너, 차이콥스키, 말러의 교향곡들을 음반으로 들을 수 있다. 그의 평가에 보면 항상 고향인 체코 음악과 연관지어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그의 음악 인생에서 가장 중심이 된 것은 독일 오스트리아의 정통 레퍼토리들이었고 이 정통 레퍼토리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지휘자로 성공가도를 걷게 된 것이다.
특히 말러 교향곡 전곡은 당시 최초의 말러 교향곡 전곡 가운데 하나였는데, 작곡가와 같은 보헤미안 동향 출신으로서의 동질감이 깊이 묻어 나오는 명연으로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베토벤 교향곡 전집의 경우 도이체 그라모폰에 ‘각 아홉 곡마다 세계 유수의 관현악단 하나씩을 배정해 녹음하고 싶다’ 는 의향을 전달해 그대로 실행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슈만의 교향곡은 베를린 필과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바이에른 방송향과 콜럼비아 (CBS, 현 소니 BMG) 에서 두 차례 전집을 만들었다.
브람스 교향곡 전집도 각각 빈 필 (데카), 바이에른 방송향 (오르페오)에서 한 개씩 제작했다.
브루크너 교향곡도 전곡은 다루지 않았지만, 3번과 4번, 6번, 8번, 9번 다섯 곡의 스튜디오 녹음과 실황 녹음들을 들을 수 있다.
차이콥스키는 후기 교향곡인 4번과 5번, 6번 세 곡을 빈 필과 EMI에서 취입한 스튜디오 녹음을 비롯해 이런저런 실황 녹음들이 있다.
정통 콘서트 레퍼토리들 외에 오페라도 여러 편 다뤘다. 기본적으로 그는 당시 유럽 지휘자들 중에서는 다소 이례적으로 오페라 지휘자가 아닌 콘서트 지휘자로 곧바로 데뷔하여 성공한 편이다. 또한 이후 그의 커리어도 콘서트 오케스트라 위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영국 망명 이후 오페라 지휘에도 활약했으며, 오페라 음반도 남겼다. 오페라 지휘 빈도 자체가 많기 않았기에 오페라 녹음 편수도 많지는 않지만 그중에서 바그너 연주들은 상당한 퀄리티를 가진다. 로엔그린과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파르지팔의 전곡 녹음을 만들기도 했는데 모두 수연으로 꼽힌다.
이외에 베버의 마탄의 사수와 오베론도 전곡 녹음을 했고, 베르디의 리골레토도 밀라노의 라 스칼라 오페라단과 녹음한 바 있다. 근현대 오페라들 중에는 피츠너의 팔레스트리나와 힌데미트의 화가 마티스의 녹음이 있다.
현대음악도 활동 초반부터 비교적 적극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도 여러 녹음을 남겼는데, 힌데미트와 쇤베르크, 베르크, 하르트만 등의 작품을 공연했다. 망명 전에는 쇼스타코비치나 프로코피에프 같은 소련 작곡가들의 작품도 이따금 공연했지만, 망명한 이후에는 공산당 독재에 대한 강한 반감 때문이었는지 거의 무대에 올리지 않았다.
지휘 외에 피아노 연주를 들을 수 있는 녹음도 수가 매우 적지만 존재하고 있는데, 스튜디오에서 남긴 본격적인 녹음은 스위스 출신의 테너 가수 에른스트 헤플리거와 협연한 야나체크의 연가곡집 ‘어느 사라진 이의 일기’뿐이다. 그 밖에도 바흐의 3~4대의 클라비어를 위한 협주곡들을 동료 지휘자들인 프리츠 리거, 루돌프 켐페, 볼프강 자발리슈와 함께 연주한 진귀한 녹음도 있는데, 아직 정판은 없고 해적판만 발매되어 있다.

- 사생활
1943년에 바이올리니스트 루드밀라 베르틀로바와 첫 번째 결혼을 했고, 3년 뒤에 아들 마르틴이 태어났다. 망명 후에는 스위스에 거처를 마련했는데, 1961년에 아내 루드밀라가 교통사고로 비명횡사하는 뼈아픈 시련을 겪었다. 작품 목록에 있는 ‘아내를 기억하며’도 첫 번째 아내에게 바치는 진혼곡이었고, 2년 뒤인 1963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소프라노 가수 엘지 모리슨과 재혼했다.
성품은 기본적으로 온화한 편이었지만, 음악에 관해서는 다소 완고한 면도 있었고 반관료적인 사고관도 지니고 있었던 탓에 종종 보수적인 악단과 극장의 행정가들과 심한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상임 시절에도 대규모 편성의 작품이나 현대곡을 너무 많이 넣는다며 방송국 측으로부터 볼멘소리를 듣자 때려치겠다고 강경하게 나가 데꿀멍시킨 전력도 있었을 정도였다.
1973년에 스위스 국적을 취득했고, 이후에도 계속 스위스에서 살았지만 ‘내 육신은 외국에 있을 지언정 마음은 체코에 있다’고 할 정도로 애향심이 강했다. 다만 체코가 공산당 독재 하에 있었을 때는 정부의 온갖 회유 공작에도 불구하고 귀국을 완강하게 거부했고, 1968년에는 프라하의 봄이 바르샤바 조약 기구에 의해 무력 진압되자 자신이 창설한 음악제인 프라하의 봄 음악제를 보이콧하는 시위에 참가하기도 했다. 물론 민주화 혁명 이후에는 그 음악제에 다시 초빙되었고, 유해도 체코에 묻혀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완전히 귀환했다.
- 기타
지휘를 할때 연미복이 흔들리지 말라고 옷깃 끝부분을 핀으로 고정시키고는 했다. 이유야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지휘를 함으로써 연미복이 흔들리는걸 방지하기 위함일 가능성이 높다.
지휘동작을 보면 역동적이다. 물론 앞의 설명과 같이 옷깃을 핀으로 고정시킨 탓으로 그의 지휘동작이 유연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고향이 체코라서 그런지 체코와 관련된 곡을 많이 연주했다.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이나 모차르트의 교향곡 38번 “프라하”가 대표적. 특히 나의 조국이나 프라하 교향곡은 쿠벨릭의 장기로 꼽혔다.

○ 작곡 활동
비록 지휘 활동에 가려 지금은 존재감이 별로 없지만, 쿠벨릭도 선배 푸르트벵글러처럼 자신을 작곡가로도 여기고 있던 만큼 꽤 여러 작품들을 남겼다. 아직 미출판 작품들도 많아 정확하게 집계되고 있지는 않지만, 대표작을 모아 보면 다음과 같다.
[ U: 우니베르잘 에디치온(오스트리아) 출판작, P: 에디치온 페터스(독일) 출판작 ]
- 관현악곡
단악장의 교향곡 (Sinfonie in einem Satz) P
현악 합주를 위한 네 가지 형식 (Quattro forme per archi) U
관현악 모음곡 ‘코르넬리아(Cornelia)’ P (같은 이름의 오페라에서 편집함)
연속 (Sequenzen) P
오르피콘 (Orphikon) P
오르간과 관현악 ‘교향 급전환(Sinfonische Peripetie)’ P
- 실내악
현악 4중주 제2번 P
현악 4중주 제6번 P
- 피아노곡
피아노 소나티나 P
- 합창곡
혼성 합창, 어린이 합창, 대화 합창과 관현악 ‘우리(Libera nos)’ U
바리톤 독창, 어린이 합창, 혼성 합창과 관현악을 위한 진혼곡 ‘아내를 기억하며(Pro memoria uxoris)’ U
혼성 합창과 관현악 ‘초혼(Invocation)’ P
혼성 합창과 관현악을 위한 ‘무언의 칸타타(Kantate ohne Worte)’ P
소프라노와 남성합창을 위한 미사 P
소프라노 독창, 혼성 합창과 실내 관현악 ‘슬픔의 성모(Stabat Mater)’ P
- 오페라
코르넬리아 (Cornelia) P
======== 부 록 =========

○ 체코 태생의 지휘자 라파엘 쿠벨릭 (Rafael Kubelik, 1914 ~ 1996)
라파엘 쿠벨릭 (본명 라파엘 예로님 쿠벨릭)은 1914년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얀 쿠벨릭 (Jan Kubelík, 1880 ~ 1940)의 아들로 체코 비호리 (Býchory)에서 태어났다.
라파엘의 어머니는 헝가리의 백작 부인이었던 안나 줄리 마리 셸 폰 베세니외 (Anna Julie Marie Széll von Bessenyö)이다.
안나는 의사와 오페라 가수를 부모로 두었지만 얀 쿠벨릭과 결혼 전 헝가리 귀족과 결혼해 후작의 칭호를 얻고 있었다.
부부는 5명의 딸, 3명의 아들을 두었고 지휘자가 된 라파엘 이외에 라파엘의 누나인 아니타 (1904년생)도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었다.
소년 쿠벨릭의 음악적인 환경은 더 바랄 나위가 없었다.
글을 읽고 쓰게 되기 전에 먼저 악보를 읽을 줄 알게 됐다.
그는 부모를 졸라 베토벤 교향곡 전곡의 악보를 구입했다.
그리고 학교 수업 중이나 늦은 밤 자기 전에 침대에서 악보를 읽으며 소년 시절을 보냈다.
쿠벨릭은 13세 때 정식으로 작곡을 배우기 시작했다.
지휘자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전 1934년부터 1936년까지 아버지 얀 쿠벨릭의 반주 피아니스트로 유럽과 미국 연주 여행에 동행했다.
이 무렵 라파엘은 아버지가 10편의 콘서트에서 30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는 시리즈 콘서트에서 지휘를 맡기도 했다.
쿠벨릭이 지휘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14세 때였다.
푸르트뱅글러가 지휘하는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4번>과 브루노 발터가 지휘하는 말러의 <교향곡 1번>을 듣고 큰 감명을 받은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이들 외에 쿠벨릭이 영향을 받은 지휘자로는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클레멘스 크라우스, 펠릭스 바인가르트너 등이었다.
이후 쿠벨릭은 프라하 음악원에서 바이올린과 작곡, 지휘를 배웠다.
1934년 자신이 직접 작곡한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환상곡>을 완성시켜 작곡과를 졸업하고, 드보르작의 <오텔로> 서곡을 지휘해 지휘과를 이수했다.
또 파가니니의 작품을 연주해 바이올린과 수업을 각각 마쳤다.
그리고 그해 스무 살의 나이로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데뷔했다.
쿠벨릭은 1939년 브르노 국립극장 (Národní divadlo Brno)의 음악 감독에 취임했고, 1942년, 체코 필 수석 지휘자에 취임했다.
체코의 명지휘자 바츨라프 탈리히 (Vaclav Talich, 1883 ~ 1961)가 나치 정권에 저항해 해임된 뒤 공석이었던 자리를 그가 메운 것이다.

같은 해, 쿠벨릭은 체코의 바이올리니스트인 류드밀라 (라라) 베르틀로바 (Ludmila Bertlova, 1914 ~ 1961)와 결혼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 194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을 중심으로 공산주의 정권이 성립되자 체코의 공산화를 반대하는 입장이었던 쿠벨릭은 고민에 빠졌다.
한 번 더 나치와 같은 정치적인 격랑에 휩쓸리기는 싫었다.
에든버러 음악제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 Don Giovanni>를 지휘하고 있었던 쿠벨릭은 그대로 영국에 머물며 돌아가지 않았다.
쿠벨릭은 영국, 멕시코, 남미에서 지휘하고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와 좋은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쿠벨릭은 1949년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미국 청중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쿠벨릭은 시카고 심포니의 음악 감독을 맡았다.
원래 시카고 심포니는 음악 감독직을 푸르트뱅글러에게 제안했었다.
그러나 미국 클래식 음악계를 이끌어가던 토스카니니, 루빈슈타인, 호로비츠 등의 반대로 푸르트뱅글러의 취임은 실현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나치와 무솔리니에 대한 반감이 적지 않았던 분위기 탓이다.
푸르트뱅글러는 자기 대신에 쿠벨릭을 추천했다.
이 때문에 쿠벨릭은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후에도 푸르트뱅글러의 안티였던 시카고 트리뷴의 여성 음악평론가 클로디아 캐시디 등에게 계속해서 호된 비판을 받았다.
쿠벨릭이 부임하기도 전인 1949년, 캐시디는 스코틀랜드에서 쿠벨릭의 지휘를 듣고 “피상적이고 레퍼토리가 한정돼 있다”고 악평을 퍼부었다.
쿠벨릭이 레퍼토리를 넓히면 난해한 현대음악을 많이 연주했다고 공격 당했다.
인종차별이 심했던 시절이어서 흑인 아티스트를 초청했다고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시카고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쿠벨릭은 마음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게다가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안에서 쿠벨릭은 적을 많이 만들었다.
1951년 한해에만 4명의 수석주자들을 해고하고 네 명의 단원을 강등시켰다.
시카고 심포니와 결별하며 바그너의 <파르지팔, Parsifal>을 마지막으로 무대에 올린 쿠벨릭은 에두아르트 반 베이눔 (Eduard van Beinum, 1901 ~ 1959)과 공동으로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의 미국 투어를 이끌었다.
1957년과 1958년 두 해동안 뉴욕 필하모닉을 지휘하기도 했다.
1955년부터 1958년까지 런던 코벤트 가든 로열 오페라의 음악감독을 맡은 쿠벨릭은 야나체크 (Leoš Janáček, 1854 ~ 1928)의 오페라 <예누파, Jenůfa>를 영국 초연했고, 상연하기 힘들기로 유명한 베를리오즈의 대작 오페라 <트로이 사람들, Les Troyens>을 무대에 올리며 기염을 토했다.
베르디의 <오텔로, Otello>,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Die Meistersinger von Nurnberg>도 대단한 호연이었다.

그러나 토머스 비첨 (Thomas Beecham, 1879 ~ 1961)의 고약한 여론몰이식 공격에 큰 마음의 상처를 받은 쿠벨릭은 3년 만에 사임하고 만다.
1960년 쿠벨릭은 ‘구스타프 말러 메달’을 수상하며 말러 해석의 권위자로 인정받았다.
1961년부터 1979년까지 수석지휘자로 재임한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에서의 활동은 쿠벨릭에게 가장 중요한 경력 중 하나다.
쿠벨릭의 임기 동안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은 일본 (1965)과 미국 (1968)으로 대규모의 해외 연주여행을 했다.
또 도이치 그라모폰, CBS 등에서 여러 편의 빼어난 녹음 작업을 통해 이 오케스트라를 세계적인 수준의 명악단으로 격상시켰다.
이 무렵 1963년 쿠벨릭은 호주 출신 소프라노 엘시 모리슨 (Elsie Morison)과 재혼했다.
엘시는 런던 코벤트 가든에서 스메타나의 두번째 오페라 <팔려간 신부, Prodaná nevěsta>에 주역을 맡았었다.
쿠벨릭이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남긴 말러 교향곡 전집 (DG) 중 교향곡 4번은 엘시의 마지막 녹음이었다.
1972년부터 쿠벨릭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음악감독을 겸임하게 됐다.
이 포스트는 메트의 매니저인 외란 겐텔레가 1971년 새롭게 마련해 쿠벨릭에게 요청한 것이었다.
겐텔레와 절친이었던 쿠벨릭이 메트에서 펼칠 다양한 오페라들이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1972년 겐텔레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나서 쿠벨릭이 메트에 있어야 할 이유는 점차 희박해졌고, 결국 1974년 메트 음악감독 자리를 사임했다.
시카고 심포니도 그렇고, 뉴욕 메트로폴리탄도 그렇고, 쿠벨릭은 미국과는 그리 좋은 인연이 없는 듯하지만, 그가 남긴 음반들은 애호가들에게 재평가 받고 있다.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 등 시카고 심포니 시절 쿠벨릭이 머큐리 레이블에서 녹음한 10장의 음반을 들어보면 거침없고 패기 넘치는 쿠벨릭 젊은 날의 초상을 엿볼 수 있다.
또 쿠벨릭은 보스턴 심포니와는 스메타나 <나의 조국, Má Vlast> (DG)이라는 걸출한 음반을 남겼다.
쿠벨릭은 1973년 스위스 국적을 얻었고, 이후 1986년 지병이던 관절염과 통풍이 악화돼 지휘대에서 은퇴했다.
작곡에 전념하고 싶은 마음도 은퇴를 재촉했다.
쿠벨릭은 두 곡의 오페라 <베로니카, Veronica>와 <코르넬리아 파롤리, Cornelia Faroli>, 3개의 교향곡, 바이올린 협주곡, 첼로 협주곡 3곡의 레퀴엠을 썼다.
세 번째 레퀴엠은 첫 부인이었던 류드밀라 베르틀로바의 죽음을 겪고 쓴 것이었다.
그러나 조국의 정치적인 상황이 운명적으로 쿠벨릭에게 손짓했다.
1989년, 체코에서 민주혁명이 일어나자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의 강한 요청으로 1990년 ‘프라하의 봄’ 음악제에서 42년만에 체코 필을 지휘해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을 연주했다.
체코 필하모닉의 종신 명예지휘자라는 영예를 얻은 쿠벨릭은 1991년 그 해 가을 체코 필 지휘대에 다시 등장해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를 지휘했다.
이 무대 전 같은 해 쿠벨릭은 시카고 심포니의 100주년 갈라 콘서트에 숄티, 바렌보임과 함께 등장하여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쿠벨릭은 1996년 8월 11일 스위스 루체른에서 세상을 떠났다.
라파엘 쿠벨릭의 지휘 세계는 강렬하고 다이내믹했다.
사려깊고 솔직하며, 명료하면서 애매하지 않은 해석이었다.
간혹 자연스러운 흐름을 표현하다가 리듬이 느슨해진다든지 과도해 보이는 루바토로 음악의 힘을 빼는 경우는 옥에 티였다.
조국 체코의 작곡가 스메타나와 드보르자크를 빼어나게 지휘했을 뿐만 아니라, 독일 오스트리아 음악의 해석에도 강했다.
옛 체코인 보헤미아를 무대로 하고 있는 베버 <마탄의 사수>라든지 체코에서 초연됐던 말러의 교향곡들은 빼어나다.
그의 레퍼토리는 신성로마제국의 광대한 영토와도 같았다.
특히 베토벤, 모차르트 등 독일 오스트리아 주류 음악의 해석에 있어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첼리비다케와 달리 쿠벨릭은 음반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음반은 종종 콘서트홀에서 들려오는 것 이상을 들려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쿠벨릭은 명 바이올리니스트인 아버지를 기리는 ‘얀 쿠벨릭 협회’를 설립해 누나인 아니타와 더불어 SP 시대 체코인의 연주를 복각하는 등 활동을 계속했다.
쿠벨릭의 초기 HMV 레코딩 가운데는 체코 필을 지휘해 드보르자크, 스메타나, 야나체크를 녹음한 것이 있고,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과 드보르자크, 브람스 곡들과 바르토크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베토벤과 브람스의 <협주곡>들을 녹음했다.
초기 데카에서는 말러 <교향곡 1번>, 브람스 교향곡 전집,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 <9번>, <첼로 협주곡> 등을 발표했다.
이스라엘 필하모닉과의 녹음도 있다.
시카고 심포니 음악감독 시절은 머큐리 리빙 프레즌스 시리즈의 뛰어난 녹음기술로 보존됐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과 <6번>,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 브람스 <교향곡 1번>, 스메타나 <나의 조국>, 그 외 힌데미트, 바르토크, 야나체크, 쇤베르크, 블로흐의 작품들이 있다.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한 말러 교향곡 전집(DG)은 쿠벨릭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쿠벨릭의 말러는 아름답지 않다.
말러 음악에서 그의 주목을 끈 부분은 서정적이거나 내성적인 부분이 아니라 말러가 즐겨 쓰는 극적인 성격이었다.
쿠벨릭의 말러 해석은 표정이 풍부하고 예리해서 설득력을 가진다.
쿠벨릭은 데릭 쿡(Deryck Cooke) 버전의 말러 <교향곡 10번>을 녹음하지 않았다.
평소 작곡 중에 곡을 자주 바꾸는 말러의 태도를 보았을 때, 최종 버전은 상당히 달라져 있을 거란 이유에서였다.
쿠벨릭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 (DG)은 9개의 오케스트라를 따로따로 녹음해 화제가 됐다.
1번은 런던 심포니, 2번은 콘세르트허바우, 3번은 베를린 필 4번은 이스라엘 필, 5번은 보스턴 심포니, 6번은 파리 오케스트라 7번은 빈 필, 8번은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9번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녹음했다.
슈만 교향곡 전집 두 종(베를린 필 DG,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Sony), 브람스 교향곡 전집 두 종 (빈 필 Decca,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Orfeo), 드보르자크 교향곡 전집 (베를린 필, DG), 모차르트 후기 6대 교향곡, 브루크너 교향곡 3번, 4번 (Sony), 8번, 9번 (Orfeo)이 있다.
스메타나 <나의 조국>은 줄잡아 6종 이상의 녹음을 찾아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시카고 심포니 (1952, 머큐리), 빈 필 (1958, Decca), 보스턴 심포니 (1971, DG),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1984 실황, Orfeo), 체코 필 (1990 실황, 수프라폰/덴온, 1991실황 NHK/알투스) 등이다.
오페라로는 베버 <마탄의 사수>, <오베론>, 베르디 <리골레토>, 바그너 <로엔그린>,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파르지팔>, 그 외 서곡 전주곡집, 야나체크 <신포니에타>, <타라스 불바>, <글라골 미사> 등이 있으며, 아우디테 레이블 등에서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한 실황녹음이 계속 발매되고 있다.
이들 실황녹음은 스튜디오 녹음을 상회하는 뜨거운 열기가 있어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 글: 류태형 / 음악 칼럼니스트

○ 앨범
1.Bela Bartok – Music For Stringed Instruments, Percussion And Celesta • Ernest Bloch – Concerto Grosso For String Orchestra With Piano Obbligato / The Chicago Symphony Orchestra, Rafael Kubelik [Mercury Classics – MG 50001, 1951]
2.Brahms – Symphony No. 1 In C Minor, Op. 68 / The Chicago Symphony Orchestra, Rafael Kubelik [Mercury – MG 50007, 1952]
3.Dvorak – Symphony No. 5 In E Minor, Op. 95 (“From The New World”) / The Chicago Symphony Orchestra, Rafael Kubelik [Mercury Living Presence – MG 50002, 1952]
4.Tchaikovsky – Symphony No. 6 In B Minor, Op. 74 “Pathetique” / The Chicago Symphony Orchestra, Rafael Kubelik [Mercury – MG50006, 1952]
5.Moussorgsky – Pictures At An Exhibition (Orchestrated By – Ravel) / The Chicago Symphony Orchestra, Rafael Kubelik [His Master’s Voice – BLP 1002, 1952]
6.Tchaikovsky – Symphony No. 4 In F Minor, Op. 36 / The Chicago Symphony Orchestra, Rafael Kubelik [His Master’s Voice – ALP.1083, 1953]
7.Smetana – My Fatherland “Má Vlast” Symphonic Cycle / The Chicago Symphony Orchestra, Rafael Kubelik [Mercury Classics – OL-2-100, 1953]
8.Dvořák – Concerto In B Minor For ‘Cello And Orchestra, Opus 104 / Pierre Fournier, The Vienna Philharmonic Orchestra, Rafael Kubelik [London Records – LL-1106, 1954]
9.Mahler – Symphony No. 1 In D Major “Titan” / The Vienna Philharmonic Orchestra, Rafael Kubelik [Decca – LXT 2973, 1954]
10.Brahms – Symphony No. 1 In C Minor / The Vienna Philharmonic Orchestra, Rafael Kubelik [Decca – SXL 2013, 1958]
11.Dvořák – Symphony No. 5 In E Minor, Op. 95 (“From The New World”) / The Vienna Philharmonic Orchestra, Rafael Kubelik [Decca – SXL 2005, 1958]
12.Bartók – Concerto For Orchestra • Two Portraits, Op. 5 / The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Rafael Kubelik [His Master’s Voice – ASD 312, 1959]
13.Schubert – Symphony No. 9 (“The Great”) /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Rafael Kubelik [Capitol Records – SG 7195, 1959]
14.Bach – Concerto In E Major • Mozart – Violin Concerto No.3 In G / Gioconda De Vito, London Symphony Orchestra, Rafael Kubelik [His Master’s Voice – ALP 1856, 1961]
15.Borodin – Polovtsian Dances • Symphony No. 2 In B Minor / The Vienna Philharmonic Orchestra, Rafael Kubelic [His Master’s Voice – ASD 422, 1961]
16.Mendelssohn-Bartholdy – Ein Sommernachtstraum / Chor und Sinfonie-Orchester Des Bayerischen Rundfunks, Rafael Kubelik [Deutsche Grammophon – SLPM 138 959, 1966]
17.Schumann – Symphonie Nr. 1 B-dur Op.38 & Symphonie Nr. 4 d-moll Op.120 / Berliner Philharmoniker, Rafael Kubelik [Deutsche Grammophon – 138 860 SLPM, 1963]
18.Robert Schumann – Symphony No. 3 In E Flat Major, Op. 97 “Rhemish” /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Rafael Kubelik [Deutsche Grammophon – 138 908 SLPM, 1964]
19.Georg Friedrich Händel – Wassermusik-Suite (Orchesterkonzert Nr.25) • Feuerwerksmusik (Orchesterkonzert Nr.26) / Berliner Philharmoniker, Rafael Kubelik [Deutsche Grammophon – 138799, 1964]
20.Robert Schumann • Edvard Grieg – Piano Concertos In A Minor / Géza Anda, Berliner Philharmoniker, Rafael Kubelik [Deutsche Grammophon – 138 888 SLPM, 1964]
21.Janáček – Tagebuch Eines Verschollenen (The Diary Of One Who Vanished) / Kay Griffel, Ernst Haefliger, Rafael Kubelik [Deutsche Grammophon – 138904, 1964]
22.Schoenberg – Gurre-Lieder / Inge Borkh, Hertha Töpper, Kieth Engen, Lorenz Fehenberger, Herbert Schachtschneider, Symphonie-Orchester Des Bayerischen Rundfunks, Rafael Kubelik [Deutsche Grammophon – 138 984/85, 1965]
23.De Falla – Nights In The Gardens Of Spain • Martinu – Fantasia Concertante / Margrit Weber, Bavarian Radio Symphony, Rafael Kubelik [Deutsche Grammophon – 139 116, 1966]
24.Gustav Mahler – Symphonie Nr. 9 / Symphonie-Orchester Des Bayerischen Rundfunks, Rafael Kubelik [Deutsche Grammophon – 139 345/46 SLPM, 1967]
25.Gustav Mahler – Symphonie NR.1 “Der Titan” / Symphonie-Orchester Des Bayerischen Rundfunks, Rafael Kubelik [Deutsche Grammophon – 139 331 SLPM, 1968]
26.Gustav Mahler – Symphonie Nr. 4 / Elsie Morison, Symphonie-Orchester Des Bayerischen Rundfunks, Rafael Kubelik [Deutsche Grammophon – 139 339 SLPM, 1968]
27.Gustav Mahler – Symphonie Nr. 2 (Auferstehungs-Symphonie · Resurrection) / Edith Mathis, Norma Procter, Chor Und Sinfonie-Orchester Des Bayerischen Rundfunks, Rafael Kubelik [Deutsche Grammophon – 139 332/33 SLPM, 1969]
28.Carl Maria von Weber – Oberon / Birgit Nilsson, Julia Hamari, Placido Domingo, Hermann Prey, Donald Grobe, Sinfonie-Orchester Des Bayrischen Rundfunks, Rafael Kubelik [Deutsche Grammophon – 2720 035, 1971]
29.Smetana – Die Moldau • Dvořák – Serenade For Strings, Op.22 / Boston Symphony Orchestra, English Chamber Orchestra, Rafael Kubelik [Deutsche Grammophon – 2538 313, 1971]
30.Beethoven – Symphony No. 7 / Bavarian Radio Symphony Orchestra, Rafael Kubelik [Deutsche Grammophon – 2535 252, 1971]
31.Gustav Mahler – Symphonie Nr. 8 & Symphonie Nr. 10: Adagio / Symphonie-Orchester Des Bayerischen Rundfunks, Rafael Kubelik [Deutsche Grammophon – 2530 240, 1971]
32.Mozart – The Six Last Symphonies 35 • 36 • 37 • 38 • 39 • 40 • 41 / Symphonie-Orchester Des Bayerischen Rundfunks, Rafael Kubelik [CBS Masterworks – D3 36930, 1981]
33.Bruckner – Symphonie No. 4 / Wagner – Siegfried Idyll / Symphonie-Orchester Des Bayerischen Rundfunks, Rafael Kubelik [CBS Masterworks – D 2 35 915, 1981]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