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하람맘의 두서없는 이야기(73)
파마
나는 한 번도 머리를 길게 길러 본 적이 없다. 한국에서 영양사를 하던 시절에는 긴 머리가 위생상 안 좋고 늘 머리 망을 해야 하는 불편함도 있어 짧게 잘랐다. 그러다 호주에 왔으니 한 번쯤 길러볼 법도 한데 성격이 못되고 참을성이 부족해 잠시를 참지 못하고 자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짧은 머리를 유지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아침마다 고정적으로 출근을 하게 되었는데 머리손질에 시간이 꽤 걸리는 것 이다. 짧으니 더 손이 많이 간다는 단점이 있었다. 더군다나 반 곱슬 머리라 비가 오거나 조금이라도 습하면 한때 유행했던 모 탤런트의 바람머리가 되버려 한번 길러볼까 하는 마음이 살짝 생겼다. 그리고 주변 분들께 여쭤보니 긴 머리가 오히려 더 편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결정적인 것은 무엇보다 더 늙기(?) 전에 길러봐야 후회가 없다는 말에 드디어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냥 무작정 기르기는 힘드니 파마를 해보라는 권유에 호주에 와서 거의 처음으로 파마를 하러 미용실에 갔다. 사실 나는 굉장히 소심한 편이라 정보 없이 무작정 가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마침 한 미용실이 밖에 가격을 정확하게 게시해 두고 있어 고민 없이 들어갔다. 앞으로 머리를 기를 예정이고 너무 곱슬거리는 것은 싫으니 그냥 손질하기 편하게만 해달라고 부탁 드렸다. 그런데 얼마 만에 미용실에 오는 거냐고 되려 묻는다. 조금 머쓱하기는 했지만 파마는 거의 처음이고 시간이 없어 미용실에는 자주 못 온다고 했더니 머리가 많이 상했다고 트리트먼트를 하는 것은 어떤지 권유를 하셨다. 머리에 영양을 주는 것 인데 머릿결도 좋아지고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는다는데 사실 나는 그것보단 준비하지 못한 갑작스런 상황과 가격에 고민이 되었다. 그래도 얼마나 하겠나 싶어 (진짜는 거절을 못해서 이다) 알겠다고 하고는 드디어 트리트먼트와 파마를 시작했다. 같이 온 하람이는 슬슬 지겨워 지기 시작했는지 왔다 갔다 하며 언제 끝나느냐고 닥달한다. 그렇게 어렵사리 파마를 끝내고 계산을 하는데 아우! 트리트먼트 가격과 파마가격이 동일하다. 생각지도 못한 2배의 가격에 엄청 놀랐지만 일단 티 안 나게 계산을 했다. 나오자마자 마음이 무겁고 괜히 했나 하는 후회가 마구 밀려왔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이니 앞으로 일주일 동안 장 안보고 살면 괜찮을 꺼야 라고 나름 위로를 하긴 했지만 솔직히 거의 1주일간 감아도 감아도 머리에서 나는 파마 약 냄새를 맡을 때마다 후회를 엄청 했다는 사실. 이게 벌써 몇 달 전 일인데 살짝 만 해달라고 했던 파마의 웨이브는 아직도 넘실넘실 살아 있고 볼 때마다 나한테 어울리는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무슨 일 이든지 장단점이 있게 마련인데 머리가 길어지니 짧을 때에 비해 머리 감을 때마다 정말 곤욕스럽다. 시간도 배로 걸리고 샴푸도 많이 들어가고 드라이기로 한참이나 말려야 하니 말이다. 시간이 없어 감고 그냥 출근 하는 날이면 마치 예전 미스코리아 대회 때 그 풍성한 사자머리처럼 변해 있다. 무엇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잘 어울리지도 않는데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려고 애쓰는 사람처럼 보이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다시 머리를 할 자신이 없고 이미 결심 했으니 내 생애 한 번쯤은 긴 머리를 해보자 하고 격려하며 참는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약간 차면서 상쾌한 초 가을의 날씨가 너무 좋았는데 단 며칠 만에 기온이 뚝 떨어지더니 드디어 집에서도 수면양말을 신어야 하는 계절이 돌아 온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난방텐트에서 나오면 집안의 냉랭한 공기에 나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게 된다. 따뜻한 잔치국수랑 유부우동, 샤브샤브가 그리워지는 이때, 긴 머리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될 일이 있었다. 추워도 답답한 게 싫어 겹쳐 입기나 목도리 같은 것을 하지 않는데 어느 날 어깨에 닿는 머리카락이 너무 포근하게 내 목을 감싸고 있는 것이다. 거추장스러워 머리를 묶었더니 싸한 한기가 목에 스쳐 지나가는 것 이다. 남들처럼 비싸고 좋은 털목도리는 아니지만 풍성한 내 머리카락이 천연 목도리가 되어주는 것을 경험 하다니…정말 신기한 일이다. 이래서 머리는 기르나 싶을 정도이다. 그렇게 머리를 잘 길러가고 있는 요즘 자꾸 흰머리가 눈에 띈다. 꽤 많다. 혼자서 셀프로 염색하기에는 좀 많다. 뽑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꾸 삐죽삐죽 솟아오르는 흰 머리카락이 영 보기에 안 좋아 신경이 쓰였다. 어느 날은 하람이가 뭐하느냐고 묻길래 흰머리가 많이 생겨 뽑고 있으니 앞으로는 엄마라 부르지 말고 할머니로 부르하고 했다가 하람이가 울고불고 난리 친 적이 있다. 엄마가 할머니가 되는 것은 싫었던가 보다. 나도 싫다. 늙어가는 것이, 하람이가 내 품을 떠나 커 가는 것이. 조금만 시간을 느리게 가도록 붙잡고 싶다. 이상하게 호주에서 시간은 더욱 빨리 흘러가는 것 같아 한편으론 불안하고 서글프다. 그럴 때면 따뜻한 긴 머리로 목을 포근하게 덮으며 다시 한번 이런 마음을 다 잡는다. 아무리 추워도 버티고 버티면 따뜻하고 향긋한 봄이 오듯 우리에게도 언젠가는 봄날이 올 것이라는걸 믿으면서 말이다. 아니 이미 우리는 그 안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단지 느끼지 못할 뿐. 겨울이든 봄이든 하늘의 해는 여전히 우리를 비추는 것처럼 말이다.
박은정 사모(시드니우리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