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하람맘의 두서없는 이야기(76)
Happy Mum
오늘 아침은 뜨거운 물로 머리를 감았다. 호주 날씨가 제법 쌀쌀해진 것이다. 뜨거운 물이 바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조금 틀어놓고 기다렸다. 미지근한 물로 감았던 요즘 뜨거운 물이 머리를 감싸니 뭔가 조금 노곤해 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머리를 다 감고 나서 다시 자고 싶다는 충동이 생겼다. “머리를 뜨거운 물로 감아? 그러면 머릿결 다 상해” 하는 남편의 작은 핀잔에 대답할 힘도 없다. 그렇게 머리를 감은 후 말리기 위해 세면대 거울 앞쪽에 섰는데 얼마나 뜨거운 물로 감았는지 욕실이 온통 습기로 가득 찼다. 거울 앞에 나도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그때 갑자기 습기가 차면서 거울 앞에 희미하게 글씨가 나타났다. Happy Mum. 누가 봐도 하람이가 쓴 글씨가 분명했다. 아마 혼자 이빨을 닦거나 세수를 하면서 마구 휘갈겨 썼으리라. 그런데 그 글을 읽는 순간 눈물이 솟구쳤다. 조금씩 나오는 눈물이 아니라 한 번에 바로 터져 나오는 눈물이었다. 사람 눈에서 어쩌면 이렇게 많은 물이 나올 수 있는 것인지 신기할 정도로 말이다.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빠르게 스쳐 지나가면서 동시에 가슴을 훓었다.
나는 늘 다른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행복하고 복 받은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가정 안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조금씩 지쳐갔고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바로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이 일상이 되어 있었다. 인생에 때때로 찾아오는 고비마다 나는 하람이 앞에서도 쉽게 우는 엄마이기도 했다. 그럴 때 마다 하람이는 나를 꼭 안아주고는 작은 손으로 쓰윽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런 나를 보며 하람이는 내가 정말 행복한 엄마이길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늘 웃고 재미있고 사랑이 넘치는 엄마 말이다.
거울 앞에 글씨 Happy Mum과는 다르게 거울에 비치는 나의 모습은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하람이에게 너무 미안하고 이렇게 변해가는 내 자신의 모습에 대한 서글픔으로 나는 감은 머리에서 떨어지는 물방울과 함께 한 바가지나 눈물을 쏟아냈다.
어느덧 2018년도 3월에 접어들었고 호주에서의 생활도 이제 10년이 넘어간다. 물론 감사하고 행복한 순간도 분명 있었다. 하람이가 태어나던 2008년 주일 아침. 나는 기다리다 새벽일을 하러간 남편대신 노란머리 간호사의 손을 움켜잡고 하람이를 낳았다. 소리도 한번 지르지 않고 참으로 독하게 아이를 낳으며 나는 절대 이 아이 만큼은 행복하게 해주리라 결심했다.
그리고 하람이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무지개 약속이라고 믿었다. 하람이가 초등학교에 입학 하는 날. 아이의 손을 놓고 학교 문을 뒤돌아 나오는데 서운함과 동시에 대견한 마음이 들면서 ‘하나님! 저는 지혜가 부족하여 이 아이를 잘 양육하기 힘드니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돌봐주십시오’ 하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꾸 쓰러지고 연약해지고 포기하고 싶어졌다. 하람이는 몸과 마음이 자라 가는데 상대적으로 나는 작아지고 있었다. 또한 근래에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을 겪으며 하람이에게 어느새 행복하지 않은 엄마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늘 나는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오랜만에 하람이가 좋아하는 김치전과 해물칼국수를 끓였다. 무엇보다 나에게도 탄수화물이 필요했다. 먹고 나면 우리 둘 다 기분이 좋아지리라 행복해 지리라.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기쁨을 찾아 누리리라. 하나님은 일한 만큼만 받는 이 세상의 기준과는 다르게 그저 하나님 안에 거하며 쉬고 받으라 하신다.
잠잠히 기다리며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다리는 시기가 찾아왔다. 나는 행복 하고 싶다. 행복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행복하게 일을 하며 행복한 신앙인이 되고 싶다. 무엇보다 행복한 엄마이고 싶다. 그러나 세상이 주는 행복은 분명 한계가 있으니 하나님 안에서 그분이 주시는 진정한 행복과 평안을 누려야 할 것이다. 그렇게 내 안에 3월이 흘러가고 있다.
박은정 사모(시드니우리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