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그리스·터키, 한국 방문기 (5)
시드니인문학교실에서는 지난 2019년 10월 22일~11월 1일 (그리스·터키, 10박 12일), 11월 2일~4일 (한국 강진 다산 유배지와 안동 퇴계 유적지, 2박 3일)에 ‘2019 인문학여행’을 26인이 동행해 실시했다. 이에 방문지인 그리스와 터키, 그리고 한국 일정중의 단상을 나누고자 한다. _ 편집자 주.
메테오라 방문 후 터키로
10월 28일, 이른 아침 호텔조식 후 기암절벽에 세워진 천상의 수도원들이 위치한 메테오라로 이동했다. 특히 이곳은 007 영화 시리즈 중 하나인 “For Your Eyes Only (1981)” 촬영 장소로 유명하다. 이 영화는 로저 무어가 제임스 본드로 나왔으며, 시나 이스턴이 ost를 담당했다. 오늘은 메테오라 방문 후 그리스 북쪽을 지난 터키로 이동한다.
오늘 일정은 메테오라를 방문하고 올림푸스산을 지나 데살로니키, 드라마 인근 카발라에서 중식, 이어 알렉산드로폴리를 거쳐 그리스-터키 국경에서 출•입국 심사, 안작부대 (호주•뉴질랜드 연합군)의 대 희생지인 겔리볼루를 거쳐 차낙칼레해협을 페리로 건너 아이발릭 숙소에 도착하는 장거리 일정이다.


메테오라 (Meteora) 수도원공동체
10월 28일, 새벽부터 메테오라 (Meteora) 수도원공동체를 순례했다. 산으로 산으로 오르는 버스는 이레 산꼭대기에 이르렀다. 위에서 바라본 메테오라의 수도원들은 공중에 달려있는 듯 했다.
메테오라는 그리스에서 아토스 산 다음으로 정교회 큰 수도원이 많이 밀집한 지역이다. 가장 가까운 도시는 칼람바카이다. 여러 수도원이 자연 사암 바위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위치상 중부 그리스의 핀도스 산맥과 페네이오스 강 근처의 테살리아 평야의 북서쪽 끝이다.
메테오라에는 여섯 수도원이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메테오라 (Meteora)는 그리스어로 ‘공중에 떠 있다’라는 뜻이다. 이 수도원들은 독특한 예술 작품이며, 어떤 장소를 수행, 명상, 기도의 장소로 만든 건축적 변형 중 가장 독특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메테오라는 뛰어난 수도원 건축 양식을 보여 준다. 또한 14세기와 15세기에 토스카나 (Tuscany) 지방과 같은 서구 세계와 동방정교회 (Orthodox Church)에서 초기 기독교의 이상적인 은둔자 생활을 회복했을 때 수도원 공동체의 모습도 보여 준다.
메테오라의 거주지는 길이 없고 접근도 불가능해 보이는 곳에 있으며, 금방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여도 지금까지 굳건히 버텨 왔다. 하지만 긴 세월이 지나면서 취약해졌다. 발람(Varlaam) 수도원이 자리한 계곡 절벽에서 용감한 순례자들을 수직으로 373m나 올리는 데 사용되었던 그물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수도원들은 원래 삼각주였던 메테오라의 바위 봉우리 위에 지어졌는데 이 바위 봉우리들은 테살리아 (Thessalian) 평원에 있는 페네아스 (Peneas) 계곡과 칼람바카 (Kalambaka)라는 작은 도시에 400m 이상 우뚝 솟아 있다. 이 봉우리들은 화학적 분석을 통해 약 60,000,000년 전인 제3기 (Tertiary period)에 강에서 원추형으로 나타난 후 지진 활동으로 변형되면서 생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테오라는 사암 (sandstone)과 역암 (conglomerate)이 강물에 의해 침식되어 생겨난 거대한 잔괴 (residual masses)이다. 지진 활동으로 단층선과 균열 (fissure)의 수가 늘어나 형체가 일정하지 않은 덩어리로 절단되면서 개별적으로 가파른 암벽이 생겼다.
은둔자와 수행자들은 11세기부터 이 지역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12세기 말에는 파나기아 두피아니 (Panaghia Doupiani)라고 하는 공주수도단지 (skete, 수도자들이 공동생활을 하는 마을)와 작은 교회가 ‘하늘의 기둥’에 있는 한 기슭에 들어섰는데, 이곳에는 이미 수도사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정치가 상당히 불안했던 14세기에 테살리아의 수도원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봉우리 위에 조직적으로 건축되었고, 15세기 말에는 그 수가 24개에 달했다. 수도원은 17세기까지 계속 번성했다. 현재는 아기오스 스테파노스 (Aghios Stephanos) 수도원, 아기아 트리아스 (Aghia Trias) 수도원, 발람 수도원, 메테오론 (Meteoron) 수도원 네 곳에서만 종교 공동체를 수용하고 있다.
이 지역에는 언덕과 강변 계곡에 버즘나무 (Platanus orientalis) 숲이 있으며, 코니스코스 (Koniskos) 마을 근처에서 발견된 고유종인 수레국화 속의 두 종이 서식하고 있다. 가장 가까운 보호 지역은 1979년에 만들어진 트리칼라 (Trikala) 휴양림 (면적 28㏊)으로서 알레포소나무 (Pinus halepensis)와 사이프러스 (Cupressus sempervirens)가 식재되어 있다. 잠재적인 식생은 초지중해 (supra-Mediterranean) 식생형인데, 참나무속 (Quercus) 식물과 새우나무속 (Ostrya) 식물, 700m 이상의 고도에 있는 유럽너도밤나무 (Fagus sylvatica) 숲이 극상을 이룬다.







.유네스코 등재
거의 접근하기 어려운 사암 (sandstone) 봉우리로 이루어져, ‘하늘의 기둥 (columns of the sky)’ 이라고 불리는 지역으로, 11세기부터 수도사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수도사들은 엄청난 난관에도 불구하고 15세기에 이상적인 은둔자의 모습을 보여 주며 수도원 24개를 세웠다. 이곳에 있는 16세기 프레스코화를 보면 후기 비잔틴 회화의 발전상을 알 수 있다.
유네스코 등재기준은 I, II, IV, V, VII항에 해당된다.
.기준 (ⅰ) : ‘공중에 떠 있는’ 이 수도원들은 독특한 예술 작품이다. 그리고 어떤 장소를 수행, 명상, 기도의 장소로 변모시킨 건축적 변형 중 가장 독특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기준 (ⅱ) : 크레타 섬 출신의 테오파네스(Theophanes)가 1527년에 제작한 이곳의 프레스코화들은 도상학(iconographic)의 참고 자료로 오랫동안 영향을 끼쳤다.
.기준 (ⅳ) : 메테오라는 수도원 건축 양식의 뛰어난 예이다. 또한 14세기와 15세기에 토스카나 지방과 같은 서구 세계와 동방정교회에서 초기 기독교의 이상적인 은둔자 생활을 회복했을 때 수도원 공동체의 모습도 보여 주어 역사적으로 중요한 단계를 나타낸다.
.기준 (ⅴ) : 메테오라의 거주지는 길이 없고 접근도 불가능해 보이는 곳에 지어졌으며, 금방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여도 지금까지 굳건히 버텨 왔다. 하지만 긴 세월이 지나 취약해졌다. 발람 수도원이 자리한 계곡 절벽에서 용감한 순례자들을 수직으로 373m나 감아올리는 데 사용되었던 그물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그리스 메테오라에서 터키로 향하며 지난 지역들
메테오라 수도원공동체 방문후 우리 일행은 드디어 터키로 향하는 여정에 올랐다. 올림푸스산을 지나 데살로니키, 드라마 인근 카발라에서 중식, 이어 알렉산드로폴리를 거쳐 그리스-터키 국경에서 출•입국 심사, 안작부대 (호주•뉴질랜드 연합군)의 대 희생지인 겔리볼루를 거쳐 차낙칼레해협을 페리로 건너 아이발릭 숙소에 도착하는 장거리 일정이다.

.올림푸스산
올림포스산 (Όλυμπος)은 그리스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마케도니아 지방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리스 제2도시인 테살로니키에서 100km 정도 떨어져 있다. 주봉인 미티카스 (Μύτικας)의 높이는 2,919m로 그리스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인 스콜리오는 2,912m이다.
올림포스 산 기슭에 위치한 리토코로 (신들의 도시란 뜻이다)에서 등산로가 시작된다. 그리스 신화의 무대로 유명하다.

.데살로니키
테살로니키 (Θεσσαλονίκη, 또는 테살로니카, 살로니카)는 아테네 다음으로 큰 그리스 제2의 도시이자 그리스령 마케도니아 지방의 중심 도시이다. 이 도시는 명예 지명으로 그리스의 ‘공동 수도’ (Συμπρωτεύουσα)라고 일컫기도 하며, 비잔티움 제국 때에는 ‘공동 황제 수도’ (συμβασιλεύουσα)라 일컫기도 하였다.
기원전 315년 마케도니아의 왕 카산드로스가 건설한 이 도시는 그의 부인이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누이의 이름을 따서 테살로니카라는 이름을 붙였다. 기원전 168년 마케도니아 왕국이 로마 공화정에 의해 멸망하자, 테살로니키는 로마 속주였던 마케도니아 속주의 수도가 되었고 그때부터 1913년까지 2천년 이상 로마 제국, 오스만 제국 등의 지배를 받았다.

.드라마
드라마 (Δράμα)는 그리스 북동부에 위치한 도시로 동마케도니아 트라키주에 속하는 현인 드라마 현의 현청 소재지이며 면적은 833.0km2, 높이는 115m이다.
드라마라는 도시를 지나며 그 어원을 생각해 보았다.
현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드라마’라는 용어는 ‘행동하다’라는 뜻의 동사인 그리스어 ‘dran’과 ‘결과’를 뜻하는 명사 어미 ‘ma’의 합성어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즉 드라마는 행동한 결과라는 뜻이 있다.
그러므로 드라마는 극장에서 우리가 듣고 보는 것의 근원으로 드라마는 인쇄된 책 안에서 주로 대화 (dialogue) 배우가 말하게 되는 연속적으로 배열된 말들로 이루어져 있다.
무대 위에서 주고받는 대화는 종종 우리가 친구들과 평소에 나누는 대화와 비슷하게 여겨진다. 셰익스피어의 무운시나 그리스 비극의 복합적인 운문시로 보건데, 연극의 대화는 보다 형식적이다.
그러나 무대에서 나누는 대화는 극작가가 창조하고 배우가 말한다는 점에서, 일상적인 대화와 크게 구별된다. ‘공연 가능성’ (Perfomability)은 극작가의 말과 배우의 대사를 연결시켜 준다.
그리스에서는 1년에 한두 번 국민의 단결과 화합을 위해 신을 위한 축제를 벌였는데 이때 드로메논이라는 연극을 상연했다. 이 말이 변해서 지금의 드라마가 된 것이며 드라마는 연속극이나 연극 등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어떤 극적인 사건”을 가리켜 드라마라고도 한다.
고대 희랍에서는 주신 ‘바카스’의 제례 때 행사의 하나로 희극 또는 비극을 경연했었는데 그로 말미암아 트래지디 (비극), 코메디 (희극) 등 갖가지 연극 용어가 전해지고 있으며 드라마 역시 그 중의 하나로 ‘연출되는 것’이란 뜻이다. 지금은 연극 전반을 가리키지만, 본래는 종교적 사회적 리크리에이션으로 부족의 기분을 일신하고 새로운 활력을 부여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카발라
카발라 (Καβάλα)는 그리스 북부 에게 해 연안에 위치한 도시로, 동마케도니아 트라키주에 속하는 현인 카발라 현의 현청 소재지이며 면적은 112.6km2, 높이는 0 ~ 53m이다. 그리스 북부 지방에서 2번째로 큰 도시이며 테살로니키에서 동쪽으로 160km, 드라마에서 남쪽으로 37km, 크산티에서 서쪽으로 56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역사적으로 로마 제국과 비잔티움 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당시에는 드라베스쿠스 (Δράβησκος, Drabescus)라고 부르기도 했다. 1371년 오스만 제국에 정복되었고 1912년 제1차 발칸 전쟁 이후에는 불가리아에 편입되었다. 1913년 제2차 발칸 전쟁 이후에 체결된 부쿠레슈티 조약에 따라 그리스에 넘어갔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중이던 1941년부터 1944년까지 불가리아가 이 곳을 점령하기도 했다.

.알렉산드로폴리
알렉산드루폴리 (Αλεξανδρούπολη)는 그리스 북동부 서트라키아 지방에 위치한 도시로 동마케도니아 트라키주에 속하는 현인 에브로스 현의 현청 소재지이며 면적은 642.245km2이다. 그리스 북동부의 주요한 항구 도시다.
오스만 제국 시대인 19세기부터 데데아아치 (Dedeağaç, Δεδεαγάτς)라는 이름으로 불렀던 도시이다. 데데아아치는 튀르키예어로 “할아버지의 나무”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데데’ (dede)는 터키어로 “할아버지”를, ‘아아치’ (ağaç)는 “나무”를 뜻한다.
러시아-튀르크 전쟁 시기에 러시아 제국 군대에 점령되면서 러시아 군인들이 이주했다. 당시 러시아군은 군대를 빠른 속도로 진격하기 위한 차원에서 도시 확장 계획을 실시했지만 종전 이후에는 다시 오스만 제국에 반환했다.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조그마한 교역 중심지에 불과했지만 철도역 건설과 함께 파샤가 관할하는 행정구로 승격되었다.
1912년 11월 8일 제1차 발칸 전쟁에서 그리스와 동맹을 맺은 불가리아가 데데아아치를 점령했지만 1913년 7월 11일 제2차 발칸 전쟁에서 불가리아와 적대 관계에 있던 그리스에 점령되고 만다. 그리스의 데데아아치 점령은 짧은 기간 동안 지속되었고 1913년 8월 10일 부쿠레슈티 조약이 체결되면서 데데아아치는 서트라키아 지방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불가리아에 편입된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국에 패한 불가리아는 1919년 11월 27일에 체결된 뇌이 조약에 따라 서트라키아 지방을 그리스에 넘겨주는 대신 에게 해를 경유하는 데데아아치 항 사용권을 계속 소유했다. 1920년 5월 14일 불가리아 위병과 그리스 위병 사이에 교대식이 열렸으며 도시 이름 또한 그리스 왕국의 알렉산드로스 국왕에서 유래된 알렉산드루폴리로 바뀌게 된다.


임운규 목사 (시드니인문학교실 회원)
호주성산공동체교회 시무, 본지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