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목사의 특별기고

침묵이 아이를 가르칩니다
얼마 전 한 부모가 조심스럽게 제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아이가 ‘아기는 어디서 나와요?’라고 물었는데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많은 부모들이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자녀에게는 무엇이든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면서도, 유독 성교육 앞에서는 입을 다물게 됩니다. 무엇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고, 혹시 잘못 이야기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어떤 부모는 자신 역시 부모에게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었고, 또 어떤 부모는 자신의 과거 경험 때문에 자녀에게 성을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상담 현장에서 수많은 가정을 만나며 확신하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건강한 성을 발달시키는 데 가장 큰 적은 무지가 아니라 침묵입니다.
부모가 침묵하면 아이는 다른 곳에서 답을 찾습니다. 친구에게서 배우기도 하고, 인터넷과 SNS, 유튜브와 각종 미디어에서 정보를 얻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 정보가 항상 건강하거나 올바른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곡된 성 가치관, 자극적인 콘텐츠, 인간을 소비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문화는 아이들의 마음속에 성에 대한 잘못된 그림을 심어 줄 수 있습니다.
기독교 상담학자 로렌스 클렙(Lawrence Crabb)은 “결혼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이 대화라면, 그 다음은 성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성은 인간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영역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가장 적게 이야기하며 살아갑니다. 성경은 성을 부끄러운 것으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세기 2: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은 하나님께서 결혼 안에서 허락하신 거룩한 선물이자, 사랑과 신뢰를 표현하는 아름다운 언어입니다. 문제는 성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왜곡하고 오용하는 인간의 죄성입니다.
흥미롭게도 한자 ‘성(性)’은 마음을 뜻하는 ‘심(心)’과 삶을 의미하는 ‘생(生)’이 결합된 글자입니다. 비록 문자학적으로 모든 해석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설명은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성은 단지 몸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과 인격이 함께하는 관계의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건강한 성은 사랑과 책임, 존중과 헌신을 전제로 합니다.
그렇다면 성교육은 언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많은 부모들은 사춘기가 되어야 성교육을 시작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훨씬 이전부터 시작됩니다. 두세 살 무렵부터 아이들은 자신의 몸을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가장 먼저 가르쳐야 할 것은 생식기의 이름보다 자신의 몸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속옷으로 가려지는 부분은 아주 소중한 곳이란다. 다른 사람이 보거나 만지려고 하면 안 되고, 그런 일이 생기면 반드시 엄마나 아빠에게 이야기해야 해.” 이처럼 짧고 분명한 교육은 아이를 성 학대로부터 보호하는 중요한 안전망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성교육은 따로 시간을 정해 한 번 하고 끝나는 수업이 아닙니다. 아이가 질문하는 순간, 뉴스나 드라마 속 이야기를 함께 보게 되는 순간, 가족과 대화를 나누는 모든 순간이 성교육의 기회가 됩니다. 아이가 “아기는 어디서 나와요?”라고 묻는다면 당황하거나 얼버무리지 말고, 아이의 나이에 맞는 언어로 사실에 근거하여 설명해 주십시오. 부모가 자연스럽게 이야기할수록 아이는 성을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이해해야 할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남겨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무엇일까요? 저는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자녀가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도록 돕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자신의 존재 가치와 삶의 목적을 배우게 됩니다. 둘째는 건강한 성 가치관을 갖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성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책임질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과정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성에 관한 정보는 넘쳐나지만, 성에 관한 지혜는 점점 사라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모든 답을 알고 있어서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질문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안전한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에 부모를 신뢰합니다.
오늘도 혹시 성이라는 주제를 불편하다는 이유로 피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침묵은 중립이 아닙니다. 부모가 침묵하면 세상이 대신 아이를 가르칩니다. 오늘 부모가 내는 작은 용기가 자녀의 평생을 지켜 줄 수 있습니다.

김훈 박사 (호주카리스대학 학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