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80년에 호주 시드니에 왔다. 그 해 12월 처음으로 크리스마스를 마지했다. 너무 더웠다. 섭씨 40도를 오르내렸다. 거리에서 들려오는 노래는 <써핑하며 파도 타고 오는 싼타 할아버지> 노래와 그런 카드들과 포스타들이 즐비했다. <흰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오는 싼타>가 아니었다. 삶의 콘텍스트가 변하니 그 전 까지 알고 노래했던 텍스트가 어색해졌다. 호주에서는 겨울철인 7월에 <Winter Christmas> 혹은 <July Christmas>를 축하하는 이들도 많이 있다. 한국에 선교사로 왔던 제 선생님 중 한분인 변조은(John Brown)목사님은 처음 한국에 와서 12월에 마지하는 추운 크리스마스에 적응하는 데는 퍽 긴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구의 북반구와 남반구는 크리스마스 만이 아니라 사계절이 꺼꾸로 간다. 나는 이곳에서 11월, 봄에 추수 감사주일 지키고 4월, 가을철에 부활절을 마지한다. 교회의 절기만이 아니다. 대부분 삶의 정황, 삶의 콘텍스트가 북반구인 한국에서 살던 때와는 전혀 다른 것을 경험하면서 50년 가까이 살아왔다.
우리가 하는 말이나 쓰는 글이나 행동은 대부분 <어떤 때, 어떤 자리에서, 누구에게, 어떤 이유 때문에> 그런 말을 하고 그런 글을 쓰고 그렇게 행동을 했는지, 구체적 정황이 있다. 그래서 한 사람의 말과 글과 행동을 오해 없이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말과 글과 행동의 구체적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그런 것을 가르쳐 우리는 <모든 텍스트는 콘텍스트의 산물>이요, <콘텍스트 없는 텍스트는 없다>라고 말한다. 호메로스와 단테,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가 그런 글을 쓴 그 시대, 그 나라, 그 상황과 역사적 배경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종교적 경전 까지도 어느날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구체적 콘텍스트 속에서 사람들에 의해서 쓰여진 것이다. 텍스트란 겉으로 드러난 말이나 글이나 행동을 이르는 것이고 콘텍스트란 그 텍스트가 만들어지게 된 상황과 배경을 가르키는 개념이다. 텍스트와 콘텍스트는 연동되어 있는 개념이기에 따로 따로 떼어놓고 보면 오해가 생기게 되어 그 명제가 지닌 본래의 뜻을 이해하기가 어려워 진다. 똑같은 말이라 할지라도 그 말을 한 상황에 따라 그 의미는 달라지게 마련이다. 콘텍스트를 초월하는 동서고금의 만고불변의 텍스트란 없다. 텍스트는 분명하고 확실하고 직접 앞에 보이는 정보와 지식이지만 콘텍스트는 유동적이고 상황에 따라 달리 보이는 정보와 지식의 공급처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라 하겠다. 나는 신학생 때 기원 후 3세기 경 치프리아누스(Cyprianus)가 했다고 전해진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Extra Ecclesiam nulla salus>는 그 유명한 명제가 던져졌던 처음 상황에 대해서는 묻거나 살피지도 않고 그냥 글자 그대로만 이해했었다. “교회 않다니면 구원을 받을수 없다./ 아무리 도덕적으로 선한 일을 한다 하더라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간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이해하고 받아드렸었다. 그런데 그후 좀 더 신학을 공부해 가면서 이 명제가 던져진 최초의 상황과 그 후 로마 카톨릭교회가 이 명제를 어떻게 달리 해석했던지를 알게 되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갖게 되었다. 교회사에서 기원 후 1, 2, 3세기는 기독교가 로마의 박해를 심하게 받던 시절이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사자의 밥이 되고 꺼꾸로 십자가에 달려 죽고 화형을 당하는 등 처참하게 순교를 당했다. 물론 이 무서운 형장에서 많은 성도들이 죽음을 선택하였지만 그 중 일부는 견딜수 없는 고통 속에서 그만 교회와 신앙을 부인하고 배교자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후 이들 한 때의 배교자들 중에서는 자신들의 불신과 배교를 깊이 깨닫고 참회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의 지하교회는 두 편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한편의 교우들은 ‘진심으로 회개한 심령들은 받아드려야 한다’는 포용주의적 입장을 지녔고 또 다른 사람들은 ‘배교자는 결코 받아드려서는 않된다. 한번 배교자는 또 다시 배교 할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그런 사람들과는 결코 함께 교회생활을 할수 없다면서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이것이 초대 그리스도교회에서 발생한 최초의 분리주의였다. 바로 이런 상황 속에서 치프리아누스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하면서 이들 교회를 떠나려고 하는 분파주의자들, 배타주의자들에게 준엄하게 경고를 했다. <어떠한 이유를 붙여서라도 절대로 교회를 떠나서는 않됩니다. 우리들 중에 완전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한 때의 배교자라 할지라도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은 받아주고 함께 교회의 일치와 하나됨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교회를 떠나는 것도 배교 못지 않게 큰 죄입니다. 교회 밖에는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치프리아누스의 이 이론은, 교회란 믿음의 공동체이지만 동시에 관용과 이해, 사랑과 용서의 공동체 임을 분명히 한 선언이었다. 그가 여기에서 말한 교회란 눈에 보이는 건물이나 공동체로써의 외형적 집단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관용, 너그러움, 용서, 사랑, 일치, 하나됨을 힘써 지키는 것을 포기해서는 않되는 자리가 바로 그리스도의 교회임을 선언한 것이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명제를 텍스트만 놓고 보면 교회의 배타주의적 성격을 드러낸 명제 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좀 더 깊이 그 콘텍스트를 들여다 보게 되면 거기에는 교회의 본질인 용서, 사랑, 일치, 하나됨을 포함하는 포용주의적 성격을 발견하게 된다는 말이다.
모든 인문학적 명제, 종교적 교리, 문학, 예술, 음악, 미술, 더 나아가 심지어는 수학 및 과학적 지식 까지도 콘테스트 속에서 만들어지고, 그려지고, 노래하고, 실험해 본 결과들이다. 원근법이란 자신이 지금 서서 쳐다보는 자리에 따라 빛과 어두움, 큰것과 작은 것, 먼 것과 가까운 것이 그려지는 법이다. 우리는 그 때 거기에서 보고, 듣고, 말하고, 쓰고, 그린 것들은 그 때 그 자리로 돌아가서 살펴보아야 오해 없이 본래의 의미를 깨달을수 있게 된다.
“아, 이제 듣고 보니 그 땐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말씀하셨군요. 미안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아서 미쳐 알아듣질 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끝)*홍길복 (2026.8.10)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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