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한국 ‘상고사(上古史)’ 다시보기 1
(대통령이 소환한 위서 논쟁의 ‘위서’들과 강단사학계가 언급하지 않는 상고사 이야기)
안녕하세요, 여러분. 다시 인사드리니 매우 반갑습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일단 신문 기사 몇 개 보고 가시겠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2일 정부 부처 업무보고에서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 “환빠’ (환단고기 추종자) 논쟁이 있지 않느냐”며 “환단고기를 주장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을 비하해서 환빠라고 하지 않나. 고대 역사 연구를 놓고 다툼이 벌어지는 것이지 않나”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박 이사장이 “재야사학자 얘기인 것 같은데 전문 연구자들의 의견이 더 설득력 있다”고 답했고, 이 대통령은 “근거가 없는 건 역사가 아니다? 환단고기는 문헌 아니냐”고 반문했습니다.” (경향신문, 점선면 2025.12.18)
“이재명 대통령이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에서 언급한 『환단고기 (桓檀古記)』와 ‘환빠 논쟁’에 역사학계가 들끓고 있다. 주류 학계는 대통령의 언급을 계기로 합동 성명까지 내며 이른바 ‘유사역사학’ 타도에 뭉치는
모양새다.” (출처: 중앙일보)
李 대통령 “환빠 논쟁 모르나”… 업무보고에 등장한 ‘환단고기’ (출처: 조선일보)
대통령실 “이 대통령, 환단고기 동의하거나 연구 지시한 것 아냐” (출처: 한겨레)
한국 주요 언론에서도 며칠간 다룰 정도로 화제가 되었을 만큼 이재명 대통령의 ‘환단고기’ 언급은 파급력이 있었습니다. 다수의 대중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할 ‘환단고기’가 무엇이길래 대통령이 언급하고 역사학계는 왜 이토록 들끓었을까요? ‘환빠’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이해하려면 더 큰 맥락을 짚어봐야 합니다. 그 맥락은 바로 한국 상고사에 있습니다. 오늘과 다음 강연을 통해 여러분과 함께 한국 상고사를 살펴보려 합니다. 저는 역사가 학부 전공이긴 하지만, 상고사를 전공하지는 않았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한반도와 그 주변에 살아왔던 사람들 (현재의 국민국가 영역과 민족 개념을 뛰어넘는)의 ‘상고사’는 존재하며, 이는 여러 문헌과 유적으로 확인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강단사학계’는 이를 연구하기는커녕 ‘위서’라 칭하거나 언급을 회피하고, 새롭게 발견되는 유적들에도 거의 아무런 연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론을 말씀드리기 위해, 먼저 이번 시간에는 자주 언급되는 용어들의 개념을 살펴보겠습니다. 또한 ‘위서 논쟁 (僞書論爭)’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한국 상고사와 관련되어 언급되는 대표적인 ‘위서’들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아울러 위서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환단고기]에서 주장하는 몇 가지 내용도 살펴보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다른 나라의 문서들과 학술지 논문들을 살펴보며, 이번 시간에 다룬 상고사의 내용 및 연구들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이를 통해 ‘위서’들에서 주장하는 상고사를 다른 각도에서 한 번 조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용어 정리와 사관의 중요성
상고사는 한국 고대사 이전 시기의 역사, 즉 고대국가 (신라, 백제, 고구려 등) 이전의 역사입니다. 제가 공부할 때는 고대국가 이전의 한반도에는 체계를 갖춘 국가나 문명이 없었다고 배웠습니다. 물론 과학이 발달하고 새로운 유적과 유물이 나오면서, 고대국가 이전에도 사람들이 계속 살아왔다는 쪽으로 시대 구분이 조정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단군 이야기는 신화로 치부되며, 기원전 한반도와 만주를 아우르는 곳에 문명이라 불릴 만한 나라 혹은 연방체가 있었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지난번 중국사 시간에 보신 것처럼 중국은 나름의 노력을 통해 역사를 수정하고 새로운 교과서를 썼지만, 한국은 별다른 대응이 없으며 고대사 연구는 재야사학자들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방치되어 있습니다.
상고사는 삼국 혹은 사국 시대 이전에 한민족의 기원과 연관된 문명과 나라가 존재했으며, 그와 관련된 역사를 포괄적으로 고대사 이전의 역사로 묶어 지칭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국어사전에서는 ‘위서’를 ‘위조하여 만든 책, 거짓으로 꾸민 문서’라고 정의합니다.
다소 애매한 정의입니다. 한국 역사학계에서는 사료로서의 ‘시간적·공간적 출처’를 사칭하거나 위조한 문헌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처녀가 임신하여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후에 인류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가 나중에 다시 구원하러 온다는 이야기가 실린 책을 위서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종교와 역사라는 분야가 달라서 그렇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기존의 위서 정의는 선택적으로 적용되는 면이 있습니다.
소위, 정사 (正史)라고 불리는 책들도 출처를 밝히지 않거나 원전이 확실하지 않고, 후대의 가필이나 편집 흔적이 있어도 전면적인 위서로 폐기하지 않습니다. 대신 ‘적층형 문헌’ 혹은 ‘전승 문헌’이라 부르며 위서와는 다르게 취급합니다.
한자로 쓰인 사료 중에는 《죽서기년》, 《목천자전》, 《산해경》, 《관자》 등 이런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상서》 같은 경우 청나라 학자에 의해 후대의 편집으로 고증되었으나, 아직도 유교 경전의 하나로 인정받아 추앙받고 있습니다.
참 편리한 기준이지요?
‘위서 논쟁’을 이해하려면 해석의 ‘폐쇄성’과 ‘억압성’을 지닌 ‘식민사학계’라는 표현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중화사대주의적’ 한문 서지학 해석을 학문의 전부인 양 여기는 강단사학계와 평생직장이 보장된 이들의 기득권 지키기 카르텔이 작용한 결과라고 저는 봅니다.
이와 비교해 주로 쓰이는 표현 중 하나가 ‘재야사학계’ 그리고 ‘시민사학계’입니다. 문자 그대로 주류 사학계 밖에서 연구를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시민사학계 역시 비슷한 맥락인데, 재야사학계의 한계를 비판하며 시민들이 직접 참여한다는 의미를 부여한 것입니다.
이 대통령의 언급으로 유명해진 표현인 ‘환빠’의 뜻은 무엇일까요? [환단고기]를 역사적 사실로 믿는 사람들을 ‘환단고기빠’라고 부르고, 이를 줄여 ‘환빠’라 칭하는 것입니다. 내용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이라기보다는, 이 책의 어떤 부분이라도 사실로 인정하면 비하하려는 목적으로 쓰이는 속칭입니다.
역사에서는 사관 (史觀)이 중요합니다. 저의 사관은 현실주의와 사실주의에 입각하여 문헌과 유적을 함께 보려는 관점입니다. 그리고 역사 해석은 같은 자료를 가지고도 다를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을 지향하며, 기본적으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유전자는 흔히 크게 북방계와 남방계 아시아 인종이 섞여 있다고 합니다. 남방계가 70%, 북방계가 30%입니다. 그런데 역사책들은 대부분 북방계 민족의 역사만을 다룹니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고대 국가들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모두 북방계가 세운 나라들의 역사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남방계 사람들이 세운 나라의 역사 기록이 있었다 하더라도, 북방에서 내려온 사람들에게 패하면서 그들의 기록이 북방인들의 기록으로 대체되었고, 그 이후 북방계 중심으로 역사가 쓰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강단사학계가 위서로 분류한 책들
‘환단고기’
[환단고기]의 한자는 桓檀古記입니다. 환인 (桓因), 환웅 (桓雄), 단군 (檀君)의 오래된 기록이란 뜻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한단고기’라는 명칭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1911 년 계연수가 한국 상고사를 서술한 역사서이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Figure 1 환단고기 책 표지 안경전 석주 / Figure 2 한단고기 책표지 임승국 번역
이에 대한 강단사학계의 입장은 다음 서술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환단고기』는 1979년에 출판된 한국의 대표적인 위서이다. 1986년 임승국이 한글 번역본을 냈다. …… 『환단고기』는 오랜 세월 축적된 국수주의 역사관의 결집체이다. …… 유사역사학이 주장해 온 국수주의 역사관은 영향력을 확산해가고 있다.” (이문영, 『환단고기』의 성립 배경과 기원)
[환단고기]를 역사서로 옹호하는 입장도 확인해 보시죠.“[환단고기]는 안함로의 삼성기, 원동중의 삼성기, 행촌 이암의 [단군세기], 복애 범장의 [북부여기], 일십당 이맥의 [태백일사]를 모아 엮은 기념비적 사서이다. … 천 년 세월에 걸쳐서 다섯 사람이 저술한 하나의 책으로 집대성된 것이다.” (안경전, [환단고기] 해제)
1979년 이유립이 계연수가 남긴 책을 보관하고 있다가 출간하여 세상에 다시 알려졌고, 세간에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1980년대 중반 카지마 노보루 (鹿島昇)가 찬술한 일본어 번역본을 임승국이 다시 한글로 번역한 [한단고기]가 출판되면서부터입니다.
일본인이 먼저 번역했다는 점은 재야사학계 내에서도 비판적으로 보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 책이 유행을 타면서 아류작들이 많이 출판되었는데, 저도 중학생 때 소설 [환단고기]를 읽으며 ‘단군들의 재위 기간이 이렇게 길어서야 사람이 어떻게 오래 살 수 있나’ 하고 의아해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Figure 3 일본어 번역본 표지 카지마 노보루 역
일반적으로 역사학계의 위서 논쟁은 1977년 국민대 국사학과 송찬식 교수가 《월간중앙》 9월호에 〈위서변 (僞書辨)〉이라는 글을 기고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글에서 송 교수는 [규원사화 (揆園史話)]라는 문서의 위작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구체적인 논쟁 내용은 시간 관계상 생략하겠지만, 위키백과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조선 숙종 1년인 1675 년에 북애자 (北崖子)가 저술하였다는 역사서 형식의 사화 (史話)로, 상고시대와 단군조선의 임금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소장하고 있는데, 내용의 일부를 잠시 소개해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나라 (동쪽) 말에 박달나무를 일러 박달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백달이라고 했고, 임금을 일러 임검이라 했다. 당시에는 한자가 없었던 고로 다만 백달임검이라 일컬었는데 후세에 역사를 쓰는 자들이 번역하여 단군이라 한 것이고, 다시 후세에 전해 이르렀으니 즉 다만 단군이란 글자만을 기록하고 단군이 백달임검의 번역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으니 이것은 저자의 공과 죄가 서로 반반이 되는 것이다.” (규원사화, 민영순 옮김)

Figure 4 규원사화 책 표지, 민영순 번역 / Figure 5 규원사화 책 표지 고동영 번역
강단사학자들을 비롯한 ‘실증사학자’들은 근대적 어휘가 근대 이전 시기의 문서에 사용되었다는 점을 들어, 후대에 저술되었음에도 시기를 조작한 증거로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 [규원사화]에 나오는 문화 (文化), 문명 (文明), 원시국가 (原始國家), 남녀평권 (男女平權) 등과 같은 어휘들은 명백한 근대 용어라는 주장입니다.
이 외에도 발해를 세운 대조영의 동생 대야발이 지었다고 전하는 [단기고사 (檀奇古史)]와 신라의 충신 박제상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부도지 (符都誌)]가 있습니다. [부도지]는 환인, 환웅, 단군보다도 더 오래된 인류의 시조 ‘마고’와 이상향인 마고성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약간 결이 다른 ‘위서’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저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지면 관계상 한 부분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Figure 6 단기고사 책 표지 / Figure 7 부도지 책 표지, 박재상 지음
“선천시대에 마고대성은 실달성 위에 허달성과 나란히 있었다. 처음에는 햇볕만이 따뜻하게 내려쬐일 뿐 눈에 보이는 물체라고는 없었다. 오직 8려의 음만이 하늘에서 들려오니 실달성과 허달성이 모두 이 음에서 나왔으며, 마고대성과 마고 또한 이 음에서 나왔다. 이것이 짐세이다.” (부도지, 김은수 번역)
[부도지]는 1950년대에 박제상의 후손인 박금이 자신이 과거에 보았던 책인 《징심록》의 내용을 기억해 내어 복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류 역사학계는 이 책에 대해 논문이나 비평조차 내지 않을 정도로 무시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단기고사]는 발해 대조영의 아우 대야발이 8세기경 편찬한 것으로, 원래는 발해문이었으나 300년 뒤 황조복이라는 인물이 한문으로 번역한 고조선·기자조선 연대기입니다. 역사학계는 이를 구한말 대종교 계열의 민족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조작된 대표적인 위서로 분류합니다.
보신 바와 같이 공교롭게도 단군조선과 그 이전의 역사를 깊이 다루면 위서로 분류되는 현실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역사를 해석할 수 있는 권한, 즉 어떠한 사료에 권위를 부여하고 학계의 공식 입장을 결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권력의 문제’가 위서 논쟁의 핵심이 아닐까 합니다.
환단고기의 핵심 주장들
1. 단군 이전, 환인이 다스리던 거대 제국 ‘환국’이 있었다.
吾桓建國最古 (우리학족이 나라를 세운 것이 가장 오래되었다.) – <삼성기 상>
1만 년 전에 남북 5만 리, 동서 2만 리에 걸친 거대 국가가 존재했다는 주장입니다.
이는 단군보다 훨씬 이전의 나라로, 중국의 삼황오제보다도 앞서며 동북아시아와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시원이라는 내용입니다. 세워진 시기뿐만 아니라 영토의 범위 역시 매우 논쟁적입니다. 지도에서 보듯 만주, 연해주, 시베리아, 중앙아시아에 걸쳐 환국이 존재했다는 주장입니다.

Figure 8 환국지도, 안경전 <환단고기>에서 퍼옴
더 나아가 인류의 모든 문명이 바로 이 환국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강단사학계는 당연히 황당무계한 주장으로 보고 있으며, 일부 재야사학자들조차 최근에는 환국을 한국만의 조상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시원 문명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경향이 강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인류가 대홍수를 피해 환국 지도에 표시된 ‘천산’ 지역으로 이동한 것이 아닐까 하는 주장에 흥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 부근에는 ‘지구의 지붕’이라 불리는 파미르 고원이 있고, 앞서 언급한 [부도지]의 마고대성 역시 이 파미르 고원에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시기적으로는 약 12,000년 전의 일인데, 이 부분은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2. 18명의 환웅이 1,565년 동안 다스렸던 ‘배달국’이 단군조선 이전에 있었다.
“환웅께서 동방을 개척할 당시 기이한 술법을 좋아하던 반고라는 인물이 있었다. 반고가 개척의 길을 따로 나누어 가기를 청하므로 환인께서 이를 허락하셨다.
그리하여 반고는 많은 재화와 보물을 싣고 십간십이지의 신장을 거느리고 공공·유소·유묘·유수와 함께 삼위산 납림 동굴에 이르러 임금으로 즉위하였다. 이들을 제견이라 하고, 반고를 반고가한이라 불렀다. 이때 환웅께서는 무리 3,000명을 이끌고 태백산 마루, 신단수 아래에 내려오시어 이곳을 신시라 하시니, 이분이 바로 환웅천황이시다. … 인간 세상을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여 세상을 신교의 진리로써 다스려 깨우쳐서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셨다.” (삼성기 하, 안경전 해제)
반고는 중국 신화에 나오는 천지창조 거인의 이름입니다. 중국 사서 어디에도 반고를 역사적 인물로 설명한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환단고기]에서는 이 반고마저 환국에서 갈라져 나가 나라를 세운 인물로 묘사합니다. 현재 중국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극단적인 ‘한국국뽕’으로 보일 수 있는 대목입니다.
태극기의 원형 (팔괘)을 고안한 것으로 알려진 태호 복희씨는 태우의 환웅의 막내아들로 등장하며, 치우천왕으로 잘 알려진 자오지 천왕 역시 배달국의 환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흔히 치우는 한국의 조상, 황제 헌원은 중국의 조상으로 대립 구도를 이룬다고 알려져 있지만, 저는 두 세력 모두 무력에 능했던 유목민족이며 한반도에 정착한 세력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고 봅니다. 황제 헌원의 후손이 ‘소호금천’인데, [삼국사기] 등에서 신라 김씨와 가야인들이 자신들을 소호금천씨의 후손이라 칭하며 ‘김 (金)’을 성씨로 삼았다는 기록을 보면, 고대 한국인과 황제 헌원 가문 사이에 깊은 연결고리가 있었을 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3. 단군은 직책명이며, 47명의 단군이 삼한관경제에 바탕을 둔 연방국가를 다스렸다.

Figure 9 단군 이미지 나무위키에서 퍼옴
우리가 교과서에서 보았던 단군 영정이나 곰과 호랑이가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잘 아실 겁니다. 이를 ‘신화’라고 배우는데, 신화라는 것은 곧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사실이 아니라면 왜 역사 시간에 배워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단군 (檀君)이라는 명칭은 몽골과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하늘신’을 뜻하는 ‘Tengri (또는 Tanri)’를 한자로 음차한 ‘단(檀)’과, 정치·군사적 수장을 뜻하는 ‘Khan (칸)’을 음차한 ‘군 (君)’이 합쳐진 제정일치 사회의 수장 명칭이라는 견해에 저 역시 동의하는 편입니다.
부족들을 무력으로 통합한 강력한 군주였을 것이며, 징기스칸의 정복 과정처럼 소문을 듣고 자발적으로 투항해 온 부족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넓은 영토를 가진 고대 국가 체제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왜 상상조차 하지 않는 것일까요? 꼭 현재의 대한민국과 억지로 연결 짓지 않더라도, 열린 시각으로 상상해 볼 수는 있지 않을까요?
한사군이 한반도 내부에 설치되었다는 주장의 지도는 흔히 볼 수 있지만, 대륙을 아우르는 단군조선에 대한 지도는 위서에나 나오는 이야기로 취급받는 것이 학계의 현실입니다. 주류 학계의 시대 구분 체계는 [환단고기]를 지지하는 이들에게 거센 비판의 대상이 됩니다. [환단고기]에서는 이를 9,000년의 국통맥 (國統脈)을 바로 세우는 일이라 주장하지만, 이 역시 지나친 국수주의라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Figure 9 강단사학계에서 주장하는 한사군의 위치

Figure 10 한국사 체계 비교, 안경전 환단고기에어 퍼옴
이렇게 표로 보시면 어떻게 다른 지가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이렇게 보시니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느끼시나요? 제가 이 표에 나와 있는 시대구분에 100% 동의 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목요연하게 차이를 보여주는 것 같아 보여드렸습니다.
맺음말: 위서 논쟁이 남긴 의미
이러한 위서 논쟁이 남긴 긍정적인 면을 말씀드리면서 이 번 시간을 정리하겠습니다. 서로의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 국내외 고금의 문헌들을 샅샅이 추적하는 과정에서, 단군조선에 관한 새로운 사료들과 유적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세조·예종·성종 년간에 걸쳐 세 차례 반포되었던 수서령 (收書令)을 통해서 수거된 책제목을 할게 된 점입니다. 서적의 제목들도 심상치 않습니다.
고조선비사 (古朝鮮秘詞), 조대기 (朝代記), 대변설 (大辯說), 안함노원동중삼성기 (安含老元董仲三聖記), 동천록 (動天錄), 통천록 (通天錄), 표훈삼성밀기 (表訓三聖密記), 표훈천사 (表訓天詞)입니다.
무엇인가 제목만으로도 어디선가 발견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조선의 왕조에게는 무엇인가 거슬리는 내용이라도 적혀있던 것 일까요? 제출하지 않거나 반발하면 참하라고 했으니 꽁꽁숨기던지 아니면 자발적으로 폐기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또한, 천문학적 관측 기록을 통한 역사 검증 시도도 이루어졌습니다. 세종 대의 천문학자 이순지가 편찬한 국가 공인 천문서 《천문류초》에는 고대 오성 결집 현상이 기록되어 있어 고대 천문학 수준을 보여주는 공신력 있는 사료로 평가받습니다.
오성결집이란 목성, 화성, 토성, 수성, 금성이 태양과 달 사이에 정렬하는 특이한 천문현상으로 육안으로 관찰이 가능했었다고 합니다. 이와 비교하여 《환단고기》에 기록된 기원전 1733년의 ‘오성취루 (다섯 행성이 루성에 모임)’ 현상 역시 1990년대 천문학자들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역계산을 통해 실제 사실에 가깝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다음 시간에 더 자세하게 다루어 보겠습니다.
비록 《환단고기》 자체는 위서 논란 중심에 서서 무시당하기도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천문 기록만큼은 현대 과학을 통해 엄밀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 흥미로운 차이점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시간에는 학술 논문과 해외 기록들을 참조하여 상고시대 거대 연방국가의 존재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내용들을 살펴보겠습니다.
긴 시간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질문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김대근 (명리학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