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색채론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민음사 / 2026.8.30
“색채 심리론의 바탕을 마련한 저술!”
색채 심리론의 바탕을 마련한 예술 고전 『색채론』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색채론』은 근대 과학의 결정론적, 기계론적 사고를 극복하고, 인간의 감각과 대상의 유기적 관계에 집중함으로써 도구적 이성이 초래한 무한 경쟁 시스템의 자기 파괴적 성장의 대안으로 새롭게 조명받은 과학자 괴테의 독창적인 탐구다.
“괴테의 『색채론』은 인간의 눈과 뇌에서 색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관한 생리적 지각, 색상의 대비나 보색 관계를 통해 나타나는 색의 작용, 그리고 특정한 색이 불러일으키는 느낌을 다루었기 때문에 색채 심리론의 바탕을 마련한 저술이다.” -박상순(시인/미술평론가)
예술과 과학 분야 모두에서 불멸의 고전이 된 『색채론』은 한국에서도 2003년에 민음사 ‘괴테 전집’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20여 년간 이 책을 꾸준히 찾는 독자를 위해, 예술과 과학을 모두 아우르는 민음사 인문교양 고전 시리즈 ‘인문학 클래식’ 11번으로 재출간되었다.
– 목차
옮긴이 서문: 「색채론」의 구조와 그 현대적 의미-7
색채론
원리편
색채론 개요
1 생리색
2 물리색
3 화학색
4 색의 속성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
5 인접 분야들과의 관계
6 색채의 감각적, 정서적 영향
보론: 색채론에 대한 공고와 그 개요
추천의 글: 색채 심리론의 바탕(박상순)
– 저자소개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
고전파의 대표자이자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독일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1749년 8월 28일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법학을 공부한 황실 고문관이었던 아버지 요한 카스파르 괴테와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이었던 어머니 카타리나 엘리자베트 사이에서 부족할 것 없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라틴어 등 어학에 뛰어났으며 독서량도 많았다. 어렸을 때 라틴어와 그리스어, 불어와 이탈리아어 그리고 영어와 히브리어를 배웠고, 미술과 종교 수업뿐만 아니라 피아노와 첼로 그리고 승마와 사교춤도 배웠다. 괴테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2000권에 달하는 법률 서적을 비롯한 각종 문학 서적을 거의 다 읽었다고 한다.
괴테는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1765년부터 1768년까지 당시 “작은 파리”라고 부르던 유행의 도시 라이프치히에서 법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전공인 법학 강의보다 문학 강의를 더 열심히 들었다. 1770년 독일 질풍노도 운동의 실질적 선도자인 고트프리트 헤르더를 만나 독일 민속과 정신에 대한 깨우침을 얻었다. 슈트라스부르크에서 법학 공부를 마친 후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프랑크푸르트에서 작은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에 더 사로잡혀 있었다.
이때 쓴 작품은 ‘질풍노도’ 시대를 여는 작품으로 『괴츠 폰 베를리힝겐』과 『초고 파우스트』와 같은 드라마와, 문학의 전통적인 규범을 뛰어넘는 찬가들을 쓰게 된다. ‘질풍노도’ 시대를 여는 작품인 『괴츠 폰 베를리힝겐』이 1773년 발표되자 독일에서는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는데, 독일에서 드라마의 전통적인 규범으로 여기고 있던 프랑스 고전주의 극을 따르지 않고 최초로 영국의 셰익스피어 극을 모방했기 때문이었다. 프로이센의 왕까지 가세한 이 논쟁으로 인해 괴테는 독일에서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1768년 건강상의 이유로 요양 생활을 했는데, 그 무렵 신비주의와 중세의 연금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770년 스트라스부르에서 법학 공부를 위해 머물다가 헤르더를 알게 되면서 셰익스피어 문학에도 심취했다. 변호사가 된 그는 1772년 제국 고등법원의 실습생으로서 몇 달 동안 베츨러에 머물렀다. 이때 이미 약혼자가 있는 샤를로테 부프를 사랑하게 되는 아픔을 겪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44)을 써, 문단에 이름을 떨쳤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때의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주인공 베르테르의 옷차림이 유행하고 모방 자살까지 일어나는 등 유럽 전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774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발표되자 괴테는 일약 유럽에서 유명 작가가 되었다.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젊은 작가를 만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몰려들었다. ‘슈투름 운트 드랑'(질풍노도시대, 문예의 혁명 운동)의 대표작으로서 전 독일 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 알려졌다. 1775년 제2의 고향이 되는 바이마르로 가서 공작의 고문이 되고 1782년에는 귀족 반열에 들었다. 1786년의 이탈리아 여행은 괴테의 생애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는데, 이 여행을 통해 그는 고전주의를 지향하게 되었다. 1794년부터 실러가 기획한 잡지에 협력하여 우정을 맺은 괴테는 이후 실러의 격려와 이해에 용기를 얻어 많은 작품을 완성했다.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파우스트』에 다시 손을 댄 것도 이 시점이다.
자신의 장래에 대해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던 괴테를 18세에 불과했던 바이마르(Weimar)의 카를 아우구스트(Karl August, 1757∼1828) 공작이 초청했다. 처음에는 잠시 체류하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고 아버지의 권유대로 이탈리아로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었다. 그러나 괴테는 이미 유럽에 널리 알려진 유명 작가로 그곳에서 극진한 환대를 받았고, 빌란트(Wieland)를 비롯해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 있는 바이마르의 예술적 분위기와 첫눈에 반해 버린 슈타인 부인의 영향으로 그곳에 머무르게 된다. 괴테에 대한 공작의 신임은 두터웠고 공국의 많은 일들을 그에게 떠맡기게 되었다.
여러 해에 걸친 국정 수행으로 인한 피로와 중압감으로 심신이 지친 괴테는 작가로서의 침체기를 극복하기 위해 바이마르 궁정을 벗어나 이탈리아로 여행을 감행했다. 1년 9개월 동안 이탈리아에 체류하면서 괴테가 느꼈던 고대 예술에 대한 감동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얻게 된 고대 미술의 조화와 균형, 그리고 절도와 절제의 정신을 자기 문학을 조절하는 규범으로 삼아 자신의 고전주의(Klassik)를 열 수 있었던 것이다.
독일 문학사에서는 괴테가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1788년부터 실러가 죽은 1805년까지를 독일 문학의 최고 전성기인 “고전주의”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 괴테와 실러는 바이마르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고전주의 이상을 실현하는 활동을 했는데,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유형(類型)”을 통해 “유형적인 개성”으로 고양(高揚)되는 과정을 추구했던 것이다. 괴테와 실러의 상이한 창작 방식은 상대의 부족한 면을 보충해 주어 결과적으로 위대한 성과를 올릴 수 있게 해 주었다. 실러의 격려와 자극으로 괴테는 소설『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를 1796년에 완성하고, 프랑스 혁명을 피해 떠나온 피난민들을 소재로 한『헤르만과 도로테아』를 1797년에 발표해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미완성 상태의 『파우스트』작업도 계속 진행해 1808년에 드디어 1부를 완성하게 된다.
실러는 지나친 의욕과 격무로 인해 1805년 5월 46세의 나이로 쓰러지는데, 실러의 죽음은 괴테에게도 커다란 충격이었다. 1815년 나폴레옹이 권좌에서 물러나자 바이마르 공국은 영토가 크게 확장되어 대공국이 되었다. 괴테는 수상의 자리에 앉게 되지만 여전히 문화와 예술 분야만을 관장했다. 1823년『마리엔바트의 비가』를 쓴 이후로 괴테는 대외 활동을 자제하고 저술과 자연연구에 몰두해 대작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1829)와『파우스트 2부』(1831)를 집필하게 된다. 서사시와 서정시, 산문과 시극, 비평과 수기, 4편의 소설과 1만여 통의 편지를 남긴 괴테는 독일민족이라는 정체성의 태동기에 독일문화와 독일어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1832년 3월 22일 낮 1시 반, 괴테는 심장 발작으로 사망한다. 그는 죽을 때 “더 많은 빛을(Mehr Licht)” 하고 말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3월 26일 바이마르의 카를 아우구스트 공작이 누워 있는 왕릉에 나란히 안치되었다.
– 역자 : 장희창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동 대학원 독어독문과를 졸업했다. 현재 동의대학교 독어독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괴테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독일 고전 번역과 고전 연구에 종사하고 있으며 괴테의 『파우스트』와 『색채론』,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 『양파껍질을 벗기며』, 『게걸음으로』, 『암살이야기』, 요한 페터 에커만의 『괴테와의 대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안나 제거스의 『약자들의 힘』, 레마르크의 『개선문』, 『사랑할 때와 죽을 때』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저서로 『춘향이는 그래도 운이 좋았다』, 『장희창의 고전다시읽기』, 『고전잡담』이 있다.
– 출판사 서평
.화가, 심리학자, 과학자, 모두를 위한 색채론!
괴테는 특히 6장에서 “색채의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영향을 규정하려고” 노력했는데, 그럼으로써 그의 이론을 “예술적 효과에 원용하려고” 시도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색에서 기쁨을 느낀다. (……) 경험이 가르치는 바에 의하면 각각의 색은 특별한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괴테는 색깔마다 일으키는 정서를 기록하는데, 예를 들어 “양(陽)의 영역에 속하는 색은 황색, 주황색(오렌지색), 주홍색(朱紅, 연단)이다. 이것들은 활기차고, 생동하며, 추구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황색은 순수하고 밝은 상태에서 안락하고 즐거운 느낌을 주며, 최대한으로 강해진 상태에서는 그 어떤 명랑하고 고귀한 것을 드러낸다. 이와 반대로 황색은 얼룩이 지거나 어느 정도 음(陰)의 방향으로 이끌려 가는 경우 극단적으로 예민한 인상을 주며 매우 불쾌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녹색을 띠고 있는 유황색은 어떤 불쾌한 느낌을 자아낸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색채론』에서
음(陰)의 영역에 속하는 색에서는 특히 청색이 “무어라 말하기 어려운 특별한 영향을” 미치는데, 그것은 “불안하고, 연약하며 갈망하는 듯한 느낌”이다. 또한 적색의 느낌도 “그 본성만큼이나 희귀”하다.
“청색은 색으로서는 하나의 에너지이다. 하지만 이것은 수동적인 영역에 속하며 가장 순수한 상태에서는 말하자면 자극을 가진 무(無)와 같다. 이 색에서 우리는 자극이자 휴식이라는 그 어떤 모순적인 것을 본다. 높은 하늘과 멀리 있는 산들이 청색으로 보이듯이, 청색의 표면도 우리 눈앞에서 뒤로 물러나는 것처럼 보인다. 호감 가는 대상이 우리 앞에서 달아날 때 기꺼이 쫓아가듯이, 우리는 청색을 기꺼이 바라본다. 그것이 우리 쪽으로 밀쳐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색채론』에서
“이 색은 진지함과 위엄뿐 아니라 호의와 우아함이라는 인상도 준다. 전자의 느낌은 이 색이 어둡고 짙어진 상태에서, 후자의 느낌은 밝고 옅어진 상태에서 주어진다. 그러므로 노년기의 위엄과 청년기의 사랑스러움이 하나의 색의 옷을 입고 나타날 수 있는 셈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색채론』에서
괴테는 또한 선호하는 색을 통해 상황마다 집단마다 서로 달라지는 특징들을 설명하기도 한다. “예컨대 프랑스인들은 상승된 색, 특히 능동의 영역에서 상승된 색을 좋아한다. 차분한 민족성을 가진 영국인과 독일인들은 짚색이나 가죽색, 또한 짙은 청색을 선호한다. 위엄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 이탈리아인들과 스페인 사람들은 수동의 영역 쪽으로 기우는 붉은색 외투를 즐겨 입는다.”
이런 정서적 영향들로부터 이제 예술가를 위한 심미적 영역이 파생되어 나온다. “예술가가 자신의 느낌에 따르는 순간 즉시 어떤 색채가 나타난다. 예컨대 검은색이 푸르스름한 색조를 띠자마자 황색에 대한 요구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면 예술가는 본능적으로 황색을 배치시킨다.” 괴테는 색이 “특정한 감각적, 정서적, 심미적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추론한다. 예를 들면, 우리의 눈은 녹색에서 “진정한 만족”을 느낀다.
“황색과 청색이 엄밀하게 균형을 이루면서 혼합되어 하나의 색이 다른 하나의 색보다 더 두드러지지 않을 정도가 되면, 우리의 눈과 감정은 이 혼합색을 마치 단일색인 것처럼 본다. 더 이상 요구하려고도 하지 않고, 더 이상 요구할 수도 없는 상태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상주하는 방의 벽지는 대개 녹색으로 선택된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색채론』에서
.생리색에서 화학색까지, 과학자 괴테의 독창적인 탐구!
괴테는 색채의 영역을 시각 작용과 주로 연관된 생리색, 매개 물질이나 굴절을 통해 생겨나는 보다 객관적인 성격을 지니는 물리색, 그리고 가장 고정적인 성격을 가지는 화학색, 세 가지로 나눠 관찰하고 기록하는데, 전체적으로 볼 때 생리색=〉 반사색=〉 테두리색=〉 굴절색=〉 표면색=〉 화학색으로 갈수록 색의 속성은 점차로 객관화된다. 가령 괴테는 빛의 굴절에 따른 색의 생성, ‘색수차’ 현상, 빛이 물체의 테두리로부터 비쳐 들어올 때 생기는 테두리색 실험, 산화 작용에 의한 색의 변화, 천연염료의 색소 활용, 색소와 밀도의 관계, 반사광이 그림자와 결합할 때의 효과, 탈색에 영향을 주는 빛, 공기, 물의 관계, 탈색과 내구성의 관계, 색과 온도의 관계 등 다양한 실험의 결과들을 색채론의 영역에 포함하여 소개한다.
그뿐만 아니라, 동식물의 색깔 변화와 관련해서도 맨눈으로 끈질기게 관찰하여 그 결과를 이론으로 정립하였다. 예를 들자면, “어떤 생물이 보다 더 귀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모든 질료적인 것이 그만큼 더 많이 그 내부에서 가공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표면이 내부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을수록 그 표면에서는 원색이 더욱 적게 나타난다.” 또 평소 일상에서 우리가 자연의 빛에 대해 궁금해했던 현상들도 자세히 설명해 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색채론』은 오늘날 “자연을 조작과 지배의 대상으로 보면서, 결국은 자기 파괴라는 이기를 초래한 현대의 기술 문명과 자연과학에 대한 대안”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자연과 인간의 유기적 총체성에 대한 직관으로부터 오는 신비한 경험이나 시적인 감수성”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예컨대 원현상에 대한 경탄의 장면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은 『파우스트』 1부에서 파우스트가 대지의 영(Erdgeist)과 맞닥뜨리는 부분일 것이다. (…) 시적 사유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경외심의 바탕에는 어떠한 인공적인 조작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세계의 근원적인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에 대한 본능적인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 요컨대 생태론적 직관주의라고 규정할 수 있는 괴테의 이러한 자세는, 세계를 물질과 에너지의 우발적인 작용에 따라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로 보는 도구적 합리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그리고 그의 『색채론』은 외적 성장으로 치달으면서 안과 밖의 균형 감각을 상실하고 있는 현대 산업 문명에 대한 비판서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 장희창, 『색채론』 해설에서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