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인문학교실
한국 ‘상고사 (上古史)’ 다시보기 2
(대통령이 소환한 위서 논쟁의 ‘위서’들과 강단사학계가 언급하지 않는 상고사 이야기)
안녕하세요. 한 달 만에 뵙습니다. 그럼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대로 이번 시간에는 다른 나라의 문서와 기록들 그리고 논문들을 살펴보며 ‘위서’들에서 주장된 내용들과 관련지어서 우리가 현재 한국이라고 부르는 곳의 상고사를 다른 각도로 조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기록의 수난사: 조선의 ‘수서령 (收書令)’과 정보 통제
조선왕조의 정통사서인 <조선왕조실록>을 지난 시간에 잠깐 언급했는 데 기억 나시는 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수서령’ (收書令)이란 기록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수서령은 정부에서 금서의 목록을 정해 놓고 그러한 정보를 수거해 삭제한 것이라고 현대적으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만 이런 정책이 시행되었다기 보다는 진시황제의 ‘분서갱유’나 로마제국 아우구스투스의 ‘분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파괴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 정부의 정책 혹은 전 왕조 혹은 정부, 사회, 종교와 관련된 내용을 완전삭제하는 행위를 역사에서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왜 《환단고기》 같은 책을 놓고 ‘위서’ 논쟁을 벌이는가 생각해보면, 관련된 기록과 사서의 원본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선왕조 이전에도 정권의 입맛에 맞지않는 기록들을 삭제하는 일이 있을 수 있지만, 조선왕조의 기록만 보아도 고조선이나 그 이전에 있던 사실과 관련된 서적들을 수거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諭八道觀察使曰:”《古朝鮮秘詞》、《大辯說》、《朝代記》、《周南逸士記》、《誌公記》、《表訓三聖密記》、《安含老元董仲三聖記》、《道證記》、《智異聖母河沙良訓》、文泰山ㆍ王居仁ㆍ薛業等三人記錄《修撰企所》一百餘卷、《動天錄》、《磨蝨錄》、《通天錄》、《壺中錄》、《地華錄》、《道詵漢都讖記》等文書, 不宜藏於私處, 如有藏者, 許令進上,以自願書冊回賜, 其廣諭公私及寺社” ([조선왕조 실록, 태백산사고본, 3책 7권 39장 B면] 파란색으로 강조한 <고조선비사>라는 서책의 제목이 첫머리에 수거해야 할 대상으로 언급이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조선보다 전에 있었다는 의미로 옛 고자를 섰지만, 단군이 지배했던 조선을 언급하는 것으로 짐작됩니다. 정말 재미 있는 것은 노란색으로 언급된 부분인데 읽어보면 <안함로원동중삼성기> 입니다. 이를 두고 재야사학계와 강단사학계는 해석이 완전히 갈립니다. 전자는 안함로, 원동중의 삼성기이다라고 해석하고, 강단사학계는 안함, 원로, 동중이라는 장소들의 삼성기다고 해석합니다. 그런 이유로 삼성기란 제목이 같다고 해도 환단고기에서 이야기하는 삼성기와 다를 수 있고, 나중에 이런 기록을 잘못 해석해 위서를 진서로 둔갑시키는 데 사용했다고 주장합니다. 어느 쪽의 해석이 더 일리 있는 지는 다른 삼성기와 관련된 자료나 원본이 나와야 판가름이 나겠지만, 내용확인과 상관없이 <고조선비사>란 제목의 서책을 수거하라는 내용으로부터 고조선이 있었고 이와 관련된 비밀스러운 내용도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18세기 프랑스 지식인이 쓴 고조선, 고구려의 역사>
신빙성 제고를 위해 조선시대와 동시대에 저술된 다른 기록에 나온 고조선이야기를 봐 볼까요? Jean Baptiste Regis (1663 ~ 1738)라는 이름을 들어보신 분 계실까요? 지리학자이자 예수회 선교사였습니다. 청나라 강희제의 명을 받아 다른 신부들과 함께 황여전람도 (皇輿全覽圖)란 지도를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럽에 조선의 지도도 제작해 알린 것으로도 확인되었죠.

Figure1 18세기 프랑스 지식인이 쓴 고조선, 고구려의 역사 책 표지
주목해 봐야 할 것은 이 레지스 신부는 청나라 황실 서고의 사료들을 연구하여 조선의 기원, 문화, 역사를 정리한 보고서를 프랑스로 보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동료 신부 장 바티스트 뒤 알드 (Jean-Baptiste duHalde)가 편집한 <중국지> (Description de la Chine)에 수록이 되어 유럽에 펴졌습니다. 고조선과 단군 관련된 부분을 발췌해 동양사학을 전공한 유정희와 사학전공자인 정은우가 해제해 출판한 것이 바로 위 제목의 책입니다. 부제는 ‘300년전 프랑스 레지 신부가 쓴 고조선, 고구려의 역사’ 입니다. 초판 1쇄가 2018년도에 발했되었고 저는 2021년도에 출판한 개정판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부분 한 부분을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 (Coree)에는 본래 여러 갈래의 사람들이 거주했었다. 그 주요한 종족을 보면 맥 (Me)과 고구려 (KaoKili), 그리고 한 (Hun, 韓)이다. 한은 후에 마한 (Ma han), 변한 (Pien han), 진한 (tschin han)이 되었다. 그들은 여러 왕국들을 세웠는데, 가령 조선 (Tschassien), 고려 (Kaoli)가 그것이다. 여기 고려 (Kaoli)를 잘못된 방식으로 발음하면서 우리가 부르는 코리아 (Coree)라는 말이 유래되었다. 이것은 후에 지금 현재 이 (李)씨가 통치하고 있는 조선 (Tchaossien)이라는 이름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공식적으로 조선이라 불리고 있지만, 일상적으로 과거의 이름들이 여전히 쓰이기도 한다. 만주족은 조선을 ‘솔 호코우론 (Solho kouron)’ 도는 솔호 (Solho)’ 왕국이라 부른다. (같은 책, 64-65쪽)
조선 (단군조선)이란 곳이 존재했고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 지를 저자는 어떤 문헌을 보고 이렇게 적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 문서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어째든 조선을 다룬 사서가 있어서 저자는 참조한 것이라고 봐야죠. 게다가 조선 구성의 한 부분이 삼한이란 것도 시선이 가는데 <한단고기>에 나오는 삼한관체제와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980년대 초반 한국의 사학계가 단군조선을 연구를 소홀히 한 시절, 단군조선을 연구한 러시아 학자도 있습니다. 러시아의 경제학자이자 후에 역사학자가 된 유리 미하일로비치 부틴 (한국에서는 유 엠 부틴으로더 잘 알려진)입니다. 그는 1982년에 ‘고조선’에 대한 학술 서적을 출간했습니다.
물론 제가 이 시각에 다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 문헌과 유물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연구해 본인 의견을 밝힌 책입니다.

Figure2 고조선 연구 책 표지
고조선 주민의 뼈대를 이루는 인종 계통은 예 (濊)족과 맥 (貃)족이었다. 그 밖에 고조선 인들의 인종적 기원에는 숙신 (肅愼). 부여. 삼한 (三韓). 옥저 (沃沮) 등이 포함되어 있다. 숙신 (뒷날의 읍루) 족은 좀 더 오래된 고 (古) 아시아 인과 이주민인 퉁구스-만주 종족의 후예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책, 400–401 쪽)
3.정역 중국정사 조선.동이전
실은, 이미 이웃나라의 역사책에 고조선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실려 있습니다. 한국 사람이 잘 아는 중국의 역사책 <사기>에도 조선열전 부분이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은 강단사학자들이 부분적으로 인용하고 해석해 고착시킨 부분들이 기자조선 혹은 위만조선으로 중 고등학교 시간에 배우게 된 것이죠. 이런 식의 해석의 가장 큰 오류중의 하나가 한사군을 한반도로 ‘비정’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난 시간에 지도로 보셨는데 아직도 한반도에 한사군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어찌되었던, 복잡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 아래의 지도를 보시죠. 같은 중국사에 기록된 조선관련 내용을 읽고서도 아래와 같은 지도를 그리는 것이 가능합니다.

Figure3 정역 중국 정사 표지
즉, 단군조선의 위치는 현재 중국의 동북삼성이 위치하는 곳에 있던 것이라고 비정할 수 있는 것이죠. 참고로, 연나라는 예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한족 (漢族)’의 나라가 아닙니다. 동이족이 세운 나라이죠.

Figure4 전국시대 연나라의 실제 크기 추정지도
4.흠정만주원류고 (欽定滿洲源流考)
들어보신 적이 있을까요? 제목에 적은 책 이름을. 여진족 혹은 만주족이 세운 나라 청나라의 건륭제의 명에 따라 1778년에 완성된 청나라의 공식 역사서입니다. 흠정이란 말은 황제가 직접 관여하여 편찬했다는 뜻이며, 본인들의 뿌리와 정체성에 바탕을 둔 관점에서 고대에서부터 당대까지 정리해 집대성한 역사서입니다. 한국에서는 남주성이란 분이 완역본 상. 하권으로 2010년도에 출간했습니다. 이 분은 역사가가 아니라 감사원 공무원으로 틈틈히 번역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한국의 역사가들은 관심조차 오랜 세월동안 주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목차도 흥미롭고 내용은 더 흥미롭습니다. 소개해 드리고 싶은 많은 부분들 가운데 시간관계상 제가 줄 그은 두 부분만 인용해 보겠습니다.

Figure5 흠정만주원류고 표지
무릇 삼한 (三韓)의 이름이 진한 (辰韓). 마한 (馬韓). 변한 (弁韓)으로 열거되어 있으나 그 뜻이 자세하지 않다. 당시 삼국에는 반드시 세 한 (汗)이 있어서 각기 그 하나를 다스렸을 것이다. 사가들은 한 (汗)이 군장 (君長)의 호칭인 것을 모르고 마침내 발음만 같은 것으로 잘못 번역한 것이다. 또한 평범하고 속된 자들은 심지어 한 (韓)을 성씨로 잘못 알았으니 한번 웃어 넘길 가치도 없다. 내가 일찍이 [삼한정류 (三韓訂謬)]라는 글을 썼으나,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읽어 깨우치도록 하지 못하였다. 당나라 때에 계림 (鷄林: jilin)이란 이름은 곧 지금의 길림 (吉林: jilin)이 변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라와 백제 등의 나라도 또한 그 부근의 땅에 있었다. (같은책 상권, 29쪽) 첫
“[북사] 주몽 (朱蒙)이란 그 나라 말로 활을 잘 쏜다 (善射)는 뜻이라고 하였다. <지금의 만주어로 활을 잘 쏘는 사람을 탁림망아 (卓琳莽阿)라고 부르는데, 탁 (卓)과 주 (朱)는 발음이 서로 비슷하다. 림 (琳)은 이와 혀 사이에서 빠져나오는 소리이고, 망아 (莽阿) 두 자를 빠르게 소리내면 몽 (蒙)과 발음이 비슷하게 된다. 전하여 오면서 비록 글자를 다르게 써 왔지만 그 발음을 나누어 보면 여전히 고찰할 수 있다.
>>부여왕이 사냥터에서 사냥을 할 때에 주몽은 활을 잘 쏜다는 이유로 화살 한 대만 주었는데, 주몽은 한 대의 화살로 잡은 짐승이 매우 많았다. 부여의 신하들이 주몽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다. 주몽은 이에 언위 등 두 사람과 같이 달아나서 홀승골성에 이르러 살면서 이름을 고구려라고 하였다. (같은 책, 69 쪽)
첫 인용부분에 삼한이 또 나옵니다. 친절하게 한은 다양한 한자를 사용하더라도 군장의 의미 즉 몽골어칸 (khan)이란 의미라고 일러주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뒷 부분에는 신라 (계림)가 만주지역에 있었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길림이란 이름은 지금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의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죠. 두 번째 인용된 부분을 보면서 Google Earth로 지도를 찾아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결과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 현재 러시아 바이칼호가 있는 부리야트 공화국이 있는 지역에 부여가 있었고 이 부여에서 주몽이 도망친 곳이 현재 몽골의 홉스굴 (Khövsgöl)이 아닐까 추측을 해 보았습니다.

Figure6 부리야트 공화국과 몽골 접경 구역 구글 지도 캡쳐
지도 위쪽의 한 가운데의 하늘색으로 보이는 곳이 바이칼 호수입니다. 그 가까운 곳에 있는 하늘색 부분이 홉스굴입니다. 홉스굴과 홀승골은 발음이 매우 유사합니다. 부리야트라는 명칭도 러시아어가 아니고 몽골어 계통의 언어로 트는 집단이나 복수형을 만들 때 사용합니다. 그러니 부리야족, 부리야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부리야도 한자로 음차하면 웬지 부여, 비리, 불휘와도 유사하단 생각이 듭니다. 흥미롭게도,부족을 다루는 부분에서 만주, 숙신, 부여, 읍루, 삼한, 물길, 백제, 신라, 말갈, 발해, 완안, 건주까지 다루는데 고구려에 대한 이야기만 누락이 되어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에는 고구려는 몽골족의 일부였고 징기스 칸의 공격으로 멸망하게 된 금나라의 후손이 청이니 고구려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지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인터넷에 제목을 치면 PDF 파일로 다운로드 받는 것이 가능하니 직접 읽어보시기를 권장드립니다.
5. <고조선 연구>
강단에 서는 분 중에도 ‘고조선’에 대한 연구를 한 분들이 있어 언급을 하고 가겠습니다. 윤내현이란 이름을 들어 본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단국대에서 갑골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하바드 대학교 옌칭도서관에서 연구 중에 북한 학자 리지린이 연구한 <고조선 연구>를 읽고 한국사 연구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강단에 근무한 학자가 고조선이 대륙에 있었다는 주장을 1980년 초반에 한 것 강단사학계가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당연했을 지도 모릅니다. 제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윤내현은 고조선의 강역이 요동지역을 넘어 현재 중국의 하북성 난하 유역까지라는 주장을 처음 한 강단의 학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박사학위를 갑골문 연구로 받았기에 중국측 고대 기록을 연구하고 유물들을 증거로 제시했기에 강단사학도 반발로 일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고 나중에는 타협안으로 고조선 이동설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합니다. 본인 고조선 연구의 집대성을 2015년 2권의 책으로 출판합니다. 그것이 바로 <고조선 연구 상.하> 입니다. 아래의 지도는 윤내현이 주장한 한사군의 위치를 비정한 곳을 나타내는 지도입니다. 고조선의 영역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Figure7 고조선 연구 책 표지 / Figure8 윤내현이 주장한 한사군의 위치
항공대의 우실하 교수도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회학과 교수로 2000년대에 요녕대학에 한국학과 교수로 가 있으면서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요하문명>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 이후 2014 ~ 2015년도 “홍산문화 연구의 중심지인 내몽고 적봉시 적봉학원 홍산문화연구원 방문교수를 하면서”라고 덧붙였습니다. “새롭게 발견된 요하문명의 각 유적과 발굴 유물들은, 필자가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와 발달된 단계를 보이는 것이었다. 글자 그대로 새로운 고대문명이 이 지역에 있었다는 것을 확인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특히나 ‘요하문명의 꽃’으로 불리는 홍산문화의 유적과 유물들은 필자에게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당시에는 한국학계의 관련 연구는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예를 들면, 2000년 당시에 ‘요하문명’이나 ‘홍산문화’를 키워드로 검색되는 국내의 논문이 단 한 편도 없었고, 2017년 현재에도 몇몇 연구자의 논문만이 검색된다.” (6쪽) “요하문명 지역은 우리의 상고사와 떼어 놓을 수 없는 곳이다. 고조선, 예맥, 부여, 고구려 등은 바로 이 지역과 직.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 중국학계는 이를 본격적으로 연구하여 그들의 상고사를 완전히 재편하고 있는데, 이 지역이 고조선의 강역 / 영향권 / 문화권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7쪽)

Figure9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요하문명> 책 표지
상고사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하는 것으로 보이는 또 다른 학자는 윤내현 교수의 제자인 복기대 교수입니다. <한국 상고문화 기원연구>라는 책에 기고한 글에 보면 맥족과 고조선의 상관성을 ‘요하문명’과 관련지어 연구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책에 실린 또 다른 흥미로운 연구는 ‘광물 이름의 비교연구를 통한 알타이 어족의 분화시기 연구’라는 글입니다. 흙, 돌, 쇠, 은, 금 등과 같은 광물 이름들을 한국어, 몽골어, 만주어, 에벤키어 등의 저자가 생각하기에 알타이어족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언어들과 비교 연구해 연관성을 논하는 글인데 꽤 흥미롭습니다. 관심있는 분은 일독을 권합니다. ‘渤海 유역의 역사문화와 동아시아 세계의 이해 – ‘터 (場, field) 이론’의 적용을 통해서 -’라는 글을 기고한 윤명철 교수도 본인의 독특한 ‘해륙사관과 문명권’이라는 이론으로 고조선의 영역과 요하문명 지역에서 드러난 고고학적 발굴성과 등을 관련지어 논합니다. 이 분은 고조선이란 명칭의 한계를 극복하자고 하면서 ‘원 (原) 조선’이란 표현으로 규정합니다.

언급을 안하고 가면 서운할 분이 아마 한가람 연구소 소장 이덕일 박사입니다. 소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다시 찾는 7000년 우리역사’입니다. <환단고기>에 나온 환웅이 지배했다고 알려진 ‘배달국’을 포함해도 7000년이 될까말까 합니다. “흥륭와문화에서 보이는 빗살무늬토기, 적석총, 비파형 동검 등은 한족들의 문명인 황하문명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시베리아남단 > 몽골초원 > 한반도 > 일본열도’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북방계통 문화와 연결되는 동이족 문화이다. 이 지역의 유적중에서 특이한 것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제천 유적들인데, 그 형태가 둥근 원형과 네모난방형으로 되어 있다.” (같은 책, 39-40쪽) 소위 ‘천원지방’이란 한자 표현으로 소시적에 배우시고 들어본 적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흥륭와 문화는 ‘요하문명’의 유적지 중에 하나로 기원전 6200년 경부터 기원전 5400년 경까지 중국내몽골 자치구와 랴오닝성 등 랴오허 (요하) 유역에서 꽃 피운 신석기 시대의 초기 문화입니다. 동시대 최상급 옥기들의 발견으로 집단 생활과 초기형태의 국가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짐작케 합니다. 이 지역들이 바로 환국이 존재했을 것으로 표시된 지역들입니다. 중국사에서는 동북공정 이전에는 만리장성 밖으로 ‘오랑캐’들이 사는 지역들 중 하나로 묘사되는 곳 입니다.

개인적으로 이기훈 박사를 꼭 언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 그 이유는 이분은 학부에서 갑골문을 연구하고, 북경어언대학교 대학원에서 북경대 사학과 출신의 정룡 (程龍)이라는 지도교수의 지도하에 중국 24사의 동이전을 번역해 한국 측 사서와 비교하고 새롭게 고대사를 썼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즉, 기존의 강단 사학자들이 사료로 썼던 사서들을 읽고서 그들과는 매우 다른 해석과 자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어서 들어가서 보시면 새로운 내용들을 많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기존에 사료들을 다시 해석해 동이족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담아낸 것이 저에게는 매우 신선했습니다. <동이한국사>는 매우 신선한 시각으로 한국 고대사를 다루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일독을 권하면서 넘어가 보겠습니다.
6.과학이 입증한 진실: 박창범 교수의 ‘오성취루 (五星聚婁)’
단군조선 혹은 그 이전의 역사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려 한 시도를 한 학자들도 있습니다. 바로 <환단고기>의 기록된 천문현상을 컴퓨터로 역산해 그러한 현상이 실제로 발생했는 지를 확인해보고 이를 논문으로 제출해 세간과 학계에 나름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Figure10 박창범 라대일의 논문 초록 이미지 캡쳐
라대일 박사는 안타깝게도 젊은 나이에 암으로 돌아가셨고 박창범 교수는 위서를 인용했다는 강단사학자들의 반발에, 그럼 위서가 아닌 정사에 있는 내용으로 한 번 천문기록을 검증해 보겠다해서 <삼국사기>의 천문기록과 자연 현상 기록을 추려서 검증해 책으로 출판합니다. 그 책이 바로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입니다. 정말 인용하고 공유하고 싶은 부분들이 넘치지만 고대 ‘환국’의 영토지도와 비교해 볼 수 있는 부분만 언급하고 가겠습니다. <삼국사기>의 편찬자인 김부식 등이 고도의 천체 역학적 계산을 통해 중국 일식 기록을 선별한 다음, 북위도로 지나가는 일식은 ‘고구려 본기’에, 저위도로 지나가는 것은 ‘신라본기’에 그 사이의 것은 ‘백제본기’에 나누어서 삽입하는 등 주도면밀한 편집을 했을리 만무하다. 이 정도의 계산을 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천체 역학적 지식과 첨단의 컴퓨터를 이용한 방대한 수치 계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 일식기록은 각각 서로 다른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관측하여 나온 자료하고 결론 지을 수 있다. … 이들의 일식기록은 우연히 최적 관측지가 중국 대륙 동부로 나온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실측한 기록인 것이다. 요컨대 삼국의 일식 관측지를 살펴보면 <삼국사기>의 일식 기록이 중국측 기록을 베낀 것이라는 기존의 결론이 잘못된 판단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늘에 새긴 우리역사, 57쪽)

Figure11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 책 표지
선이 둥그렇게 연결된 부분이 최적 관측지입니다. 놀랍게도 한반도가 중심지로 나오는 것은 하대신라 이미지 뿐입니다. 예를 들면 고구려 일식 최적 관측지는 현재 몽골과 러시아 접경 지역입니다. 이미지에 보이는 작은 칼같은 부분이 바로 바이칼 호수입니다.
12환국의 지도에서 ‘환국’의 중심부와 일치하는 것 같지 않은가요? 더욱 놀라운 것은 상대신라 일식의 최적 관측지입니다. 양자강 하류 유역에 신라의 최적 관측지가 있습니다. 하대신라가 되면 경주지역과 관측지가 일치하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Figure12 최적 관측지 (등고선 중심)을 나타낸 도표
7.지도로 보는 유라시아대륙에 보이는 거대한 제국들

Figure13 안경전의 <환단고기>에 나오는 환국지도 / Figure14 김정민 박사 강연 중 12 한국과 북방민족 명칭 관련

Figure15 12세기 몽골 초원의 부족 연합지도, 위키피디아에서 퍼옴
부족들이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나이만, 오이라드, 케레이드, 옹구드, 투메드 등등 다양한 부족들의 연합인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한 집단이 모여 살면서 울타리를 치고 그 곳을 한자어로 표현하면 나라국 (國) 자를 사용해 표현합니다. 12환국도 그런 것이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이 같은 지역을 위구르 족들이 차지한 적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도 한 부족중의 하나였기 때문 아닐까요? 현재 키르기즈스탄 사람들의 조상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입니다. 아래 지도에 나오는 이름들도흥미롭습니다. 정말로 키막이란 사람들은 구막한국의 구막이란 사람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을까요?

Figure16 위구르 제국 지도

Figure17 몽골제국의 최대영토 지도
이러한 위구르 제국보다 훌씬 더 큰 어떻게 보면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 건설은 중세시절에 징기스칸에 의해서 건설이 됩니다. 어떻게 보면 진정한 ‘환국건설’이라고 봐도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Figure18 프랑스의 지리학자 장 팔레레 (Jean Palairet)가 1754년에 제작한 아시아 지도, 박스 안의 내용은 음모론적으로 후에 첨가된 것으로 추정됨
이러한 사실(史實)에 힘입어서 인지 몰라도 서세동점 (西勢東漸)이 시작된 근세 이후에 서양에는 유라시아 대륙에 거대한 제국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집니다. 위의 지도는 보신 분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아래의 지도도 그러한 것의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Figure19 제임스 처치워드 책에 나오는 고대 위구르 제국의 지도
한반도를 포함시킨 것이 신기하다.

Figure20 김정민 박사 고조선과 카자흐스탄 주스의 공통점 유튜부 동영상 이미지 캡쳐
신기하게도 카자크스탄의 국정교과서에도 본인들이 동서로 넓게 퍼졌고 한반도에까지 진출했다고 본인들과 연결시켜 역사를 보고 있다는 점은 정말 신선했습니다. 지도들의 공통점은 북방계 유목민족들은 근대 이전에 끊임없이 영토 정복 전쟁을 해서 유라시아 대륙의 동서로 다양한 제국을 만들어 온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그 영토를 확장했던 것이 저는 청제국을 건설한 만주족이라고 생각합니다. 무기가 있었던 상고사 시절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이상한 것일까요?

Figure21 청제국 최대영토 지도
8.외국 논문과 흥미로운 자료
그럼 한국학자들과 한문 자료들 말고 다른 자료들을 특히 최근 관련 지역 연구 논문을 보면서 단군조선과그 이전 시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일단 제가 자료를 찾던 가운데 흥미롭게 읽었던 책이 있어 먼저 소개를 드리고 싶습니다. 점성학과도 관련이 있어 매우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John Michell 과 Christine Rhone이 공동으로 저술한 <Twelve-Tribe Nations : Sacred Number andthe Golden Age>입니다. 책의 골자는 고대인들은 하늘의 질서를 지상에서 그대로 투영하려 했고 그것이 제대로 실현된 시기가 이상적인 사회였고 그러한 시기를 인류의 황금기라 할 수 있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익숙한 표현으로 해보면 홍익인간 (弘益人間), 재세이화 (在世理化) 입니다. ‘고조선’의 통치 이념으로 널리 알려져 있죠. 인간에게 널리 이로움을 더하고 하늘의 참된 이치로써 세상을 이끈다는 뜻입니다. 영어로표현해 보면 ‘As above so below’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Figure22 저자의 유튜브 강연 동영상 이미지 캡쳐
이 책에 보면 12개의 지역으로 나누어진 나라들 혹은 공동체는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존재했고 이는 유라시아 대륙 전체에서 공통으로 발견된다 라고 저자는 책에서 주장합니다. 다음은 네이쳐지에 실린 학술논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언젠가 간략하게 소개한 적이 있는데 오늘은 내용도 함께 보시죠. 내용을 요약하면 한국어, 일본어, 퉁구스어, 몽골어, 튀르크어를 포함하는 ‘트랜스유라시아어족’의 뿌리가 약 9000년 전 서요하 유역에서 기장을 재배하던 신석기 농민들이다 입니다. 독일 맥스플랑크인류사학연구소 마르틴 로비츠 (Martine Robbeets) 교수 연구팀이 2021년 네이쳐 (nature) 지에 발표한 논문입니다. 연구팀은 역사언어학, 고고학, 고대유전생물학을 연구하는 전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등 세계의 학자들입니다.

Figure23 논문 온라인 캡쳐 이미지

Figure24 논문의 지도 캡쳐 이미지
지도에서 기원전 7000년 전으로 되어 있는 곳이 바로 요하문명의 중심 유적지 홍산문화가 발견된 곳입니다. 흥륭와문화 유적지에서 발견된 유물들이 탄소연대 측정법으로 기원전 8000년 전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곳에 기장문화가 먼저 나오고 동북아의 전역으로 퍼저 나간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sino-tibetan과의 연관성은 없다는 점입니다.

Figure25 논문 초록 이미지 캡쳐
2020년에 [Archaeological Research in Asia] 라는 저널에 발표된 또 다른 논문 보실까요? 제목을 번역해서 보면 ‘중국동북구에서 러시아 극동 지역으로 확산된 기장 농업: 고고학, 유전학, 언어학의 통합적 고찰’ 입니다. 단순화를 무릅쓰고 말씀드려보면 지금 현재 중국의 내몽고자치구와 요녕성이 (요하문명 그리고 그 안의 홍산문화가 있는 곳이죠.) 있는 곳의 기장문화를 가지고 있는 퉁구스어 계통의 사람들이 기원전 3500년경에서 3000년 사이에 연해주 지역에 도달했고 한반도로 퍼져나갔다 입니다. 논문의 내용으로 설명드리면 골치 아플 수도 있으나, 논문에 실린 지도로 보시면 느낌이 확 오실겁니다.

Figure26 신석기 시대 유적지 목록 지도
현재 요하강이라고 불리는 지역의 유적지에서 만주를 지나 연해주 지역으로 퍼지고 한반도로도 내려 온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아래의 지도를 보면 더 이해가 쉽게 됩니다. 이들은 신석기인들이기도 합니다만 발견되는 유적에는 옥기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전설이라고 배웠던 단기 2333년 이전에도, 즉 고조선 이전 시기에도 문명이라고 볼 수 있는 유적지들이 많이 발견되었고, 문헌의 기록들도 있고 유적지들이 발견된 곳의 연대는 기원전 9000년 까지도 거슬러 올라가고 그들은 이동 경로를 보면 만주와 한반도 그리고 일본 열도로 이어진다 라고 위에서 보는 모든 사료들은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시기에 그 지역에 나라가 존재했다고 주장하는 역사책은 아직 까지는 <환단고기>가 유일합니다. 그러니 최소한 그럼 다양한 각도에서 연구를 해볼 가치는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긴 시간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대근 (명리학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