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근 목사 칼럼
몸이 보내는 경고 신호
지난 20년 동안 매주 30km를 달리며 누적 거리 3만 km를 넘어섰다. 이 길고 꾸준한 달리기의 시작은 건강을 위한 단순한 선택이 아니었다. 20년 전 목회 현장에서 무리하다 찾아온 구안와사는 얼굴의 감각을 앗아갔고, 밥을 씹고 말을 하는 당연한 일상조차 힘겨운 고통으로 만들었다. 온갖 치료에도 차도가 없던 그때, 신경에 좋은 운동이라는 지인의 권유로 시작한 달리기는 기적처럼 나를 회복시켰고 지난 세월 동안 약 한 첩 없이 건강을 유지하게 해 준 고마운 동반자였다.
그런데 최근 오른쪽 무릎 주위에 통증이 찾아왔다. 뼈나 관절의 큰 이상이 아니라 인대 손상으로 인한 염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돌이켜보면 내 다리의 근육은 늘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고 때때로 뻐근함을 호소했지만, 나는 그저 달리는 데만 집중했을 뿐 단 한 번도 다리를 위해 마사지를 하거나 근육을 세심하게 풀어준 적이 없었다. 그저 앞만 보고 내달리며 몸을 혹사시킨 무지함이 결국 몸이 견디다 못해 보내는 통증이라는 호소로 나타난 것이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편 119:71)
시편의 고백처럼 이 통증은 원망스럽기보다는 도리어 깊은 유익과 감사로 다가온다. 과거 구안와사라는 질병이 나를 달리기의 세계로 이끌어 더 건강한 삶을 살게 했듯, 이번 무릎의 염증은 내 인생의 다음 20년 건강을 어떻게 설계하고 관리해야 할지 일깨워주는 소중한 성찰의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방치하지 않고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우리는 더 건강해질 수 있지만, 이를 외면하면 결국 더 큰 무너짐을 겪게 된다는 평범하고도 묵직한 진리를 다시 한번 배운다.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향후 나의 건강 관리와 달리기 여정에는 분명한 변화를 주려고 한다. 내게 생명력을 불어넣어 준 달리기는 앞으로도 계속하되, 이제는 속도와 거리를 줄여 다리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지혜롭게 조율할 것이다. 또한 예전처럼 다리의 근육을 쓰는 데만 그치지 않고, 달리고 난 뒤에는 반드시 다리를 포함한 전신 근육을 꼼꼼하게 풀어주고 마사지하는 회복의 시간을 철저히 가질 계획이다.
통증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성전인 내 몸이 나에게 말을 건네는 정직한 대화의 시작이다. 아픔을 호소해 준 무릎에게 진심 어린 고마움을 전하며, 이제는 혹사가 아닌 돌봄으로 내 몸과 동행하는 지혜로운 새로운 20년의 여정을 기쁜 마음으로 시작한다.
준비된 인생은 아름답다
꽃이 달콤한 꿀을 머금고 있으면, 굳이 부르지 않아도 아름다운 나비들이 자연스레 그 향기를 좇아 모여든다. 꿀을 준비한 꽃에게 나비가 찾아오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이치다. 이처럼 우리의 일상도 무언가를 내면에 채우고 준비하는 과정의 연속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인 우리는 과연 내면을 무엇으로 준비하고 채워야 하는가?
과거 호주 타스메니아를 여행할 때의 일이다. 섬의 중앙부를 지나며,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척박하고 깊은 계곡에 조그마한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의아한 마음에 살펴보니, 그곳에 사람들이 모여든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광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배고픈 사람이 먹을 것이 있는 곳으로 자연히 모이듯, 사람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생명줄과 자원이 있는 곳이라면 아무리 험한 골짜기라도 기꺼이 찾아든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도처에는 참된 복음이 없어 영적으로 굶주린 영혼들이 수없이 깔려 있다. 타스메니아의 외딴 골짜기에 광산이 있어 사람들이 모였던 것처럼, 우리가 십자가의 복음과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워져 있다면 구원받아야 할 갈급한 영혼들은 끊임없이 우리를 찾아오게 될 것이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그의 저서 《그리스도를 본받아》에서 진정으로 준비된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다. 그는 세상의 헛된 지식이나 외면의 화려함을 좇는 것을 경계하며, 내면의 자아를 철저히 비워내고 그 자리를 온전히 그리스도의 은혜로 채우는 삶을 역설했다. 내가 가진 알량한 지식과 세상의 것으로 나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사랑으로 내면을 가득 채우는 것만이 영혼을 살리는 참된 준비라는 것이다.
이는 사도 바울의 위대한 고백과도 맞닿아 있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이라.” 바울은 더 나아가 우리의 정체성을 이렇게 선포했다.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고린도후서 2:15).
내가 죽고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가득 채워질 때, 비로소 우리 내면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생명의 꿀과 그리스도의 향기가 뿜어져 나온다.
스스로에게 진지한 질문을 던져보는 아침이다. ‘오늘 나는 과연 복음으로 채워져 있는가?’,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이 내 안에 흐르고 있는가?’, ‘날마다 부활의 승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텅 빈 내면으로는 누구의 갈증도 채워줄 수 없다. 오직 꿀을 품고 향기로 준비된 인생만이 아름다운 생명을 품는다. 오늘 하루도 오직 예수로 가득 채워져, 내게 다가오는 수많은 영혼들에게 생명의 꿀을 기꺼이 나누어주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김병근 목사
엠마오상담대학 학장, 시드니성시화운동 직전대표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