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 교회 박사, 성서학자 히에로니무스 (Eusebius Hieronymus, Jerome, 347년경 ~ 420년)
교부, 교회 박사, 성서학자. 달마티아의 스트리돈 부유한 그리스도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로마에서 공부하고 세례를 받았으며 트리어에서 수도 생활 방식으로 전향하고 사제 서품을 받았다. 382년 교황 다마수스 1세 Damasus I의 비서이자, 귀족 계급의 여성 금욕 동아리의 영적 스승으로 활동했다. 386년 파울라와 그녀의 딸 에우스토키움과 함께 팔레스티나와 이집트를 순례하였으며, 그 뒤 베들레헴에 순례자 숙소가 있는 수도원을 세웠다. 이후 수도원의 지도자로 41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수도자와 학자의 삶을 살았다.

그레고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암브로시우스와 함께 서방 교회 4대 교회 박사 가운데 한 명으로 공경받는다. 가장 위대한 업적은 히브리어, 그리스어 원전에서 성서를 직접 라틴어로 번역한 것인데, 기존 라틴어 번역들보다 훨씬 정확한 번역을 완성했다. 이 번역본은 8세기까지 서방 교회 전체에서 표준 라틴어 성서로 자리잡아 ‘불가타’ Vulgata (공통의 · 보편적인)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1546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의 공식 라틴어 성서가 되었다. 구약, 신약 거의 전권에 걸친 성서 주해를 남겼으며 오리게네스의 주해들을 라틴어로 번역하여 그리스 교부들의 성서 해석을 서방에 소개하기도 했다 (다만 교의학자로서의 오리게네스는 미심쩍어 했으며 성서주석가 오리게네스와 교의학자 오리게네스를 구분하기를 바랐다).
또한 그리스도교 저술가들의 저서 목록인 『명인록』 De Viris Illustribus (아카넷)은 초기 그리스도교 문헌의 역사를 정리한 중요한 자료로 꼽히며 수도자들에 관해 그가 쓴 소설들은 이후 라틴 성인전의 토대가 되었다. 탁월한 고전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그리스도교 문화를 일구고 꽃피우는 데 오롯이 일생을 바친 까닭에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의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외에도 「유대인 문제에 대한 주석」 Commentarii in Prophetas 및 다수의 서간, 「이집트 수도자들의 생애」 Vitae Patrum 등 다양한 저술을 남겼다.
라틴어 원문은 『라틴 교부 전집』 Patrologia Latina (PL) 22~30권에 수록되어 있으며 영어 번역본은 『니케아 및 니케아 이후 교부 전집』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NPNF) 제2시리즈 6권에 서신집과 주요 저작들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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