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성경의 거울로 본 흥망성쇠의 사계절
급변하고 불확실성이 높은 오늘날, 우리 개인과 조직, 그리고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바른 길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시대를 보다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거의 발자취를 비춰주는 ‘역사의 거울’과 변하지 않는 진리를 담은 ‘성경의 거울’을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과 조직, 그리고 국가의 역사를 돌아보면 영원한 융성도, 영원한 쇠락도 없었습니다. 대자연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있듯, 우리의 삶과 역사에도 어김없이 흥망성쇠의 계절이 순환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언제 흥하고, 언제 망하는 것일까요?
역사의 거울, 그중에서도 천년 제국 로마의 역사는 이 흥망성쇠의 사계절을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로마가 이탈리아반도의 작은 도시국가에서 지중해의 패자로 성장하던 융성의 ‘봄과 여름’ 시기에 그들은 결핍 속에서 절박했고, 외부의 도전에 직면하여 늘 깨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패배한 적국의 사람들에게도 기꺼이 시민권을 부여하는 놀라운 ‘포용력’을 지녔고, 지도층이 솔선수범하며 권력을 분산시키는 공화정이라는 ‘겸손과 절제’의 미덕을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팍스 로마나 (로마의 평화)’라 불리던 가장 찬란한 번영의 정점에 섰을 때, 서서히 타락의 ‘가을’이 시작되었습니다. 거대한 부가 축적되자 빈부격차가 극심해졌고, 지도층은 특권 의식과 사치에 빠졌습니다. 시민들 역시 ‘빵과 서커스 (무상 복지와 오락)’에 취해 국가를 향한 헌신이라는 건강한 미덕을 상실해 갔습니다. ‘로마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오만 속에 국방마저 외부 이민족 용병들에게 의존하게 되면서, 결국 로마는 외부의 침입 이전에 이미 내부의 도덕적 해이와 부패라는 혹독한 ‘겨울’을 맞이하며 쓸쓸히 붕괴하고 말았습니다.
성경의 거울, 그중에서도 특히 구약의 ‘사사기’ 역사는 이 흥망성쇠의 사계절 원리를 가장 구체적이고 뼈아프게 비춰줍니다.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은 놀랍도록 일정한 순환 패턴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과 평안을 누리는 번영의 ‘여름’이 찾아오면, 그들은 어김없이 하나님을 잊고 스스로의 힘을 믿으며 이방의 우상을 숭배하는 ‘가을’ (타락)로 접어들었습니다.
이러한 영적 교만과 나태의 결과로 이방 민족의 압제와 고통이라는 혹독한 ‘겨울'(징계)을 맞이하게 되면, 그제야 비로소 자신들의 한계와 연약함을 깨닫고 절박하게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이 간절한 회개와 부르짖음은 하나님이 세우신 사사를 통해 다시 융성의 ‘봄’ (구원)을 불러왔습니다. 타락, 징계, 회개, 구원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사사기의 역사는, 인간이 흥하는 비결이 ‘절대자에 대한 절박한 의존과 겸손’에 있으며, 망하는 원인이 번영의 때에 찾아오는 ‘자기 의와 교만’에 있음을 명확히 증언합니다.
결국 로마의 역사와 성경의 진리가 공통적으로 말하는 흥망성쇠의 결정적인 기준은 ‘마음의 태도’입니다. 성공의 여름날에 교만이라는 잡초를 뽑아내지 않으면 반드시 상실의 겨울이 찾아옵니다. 반대로, 혹독한 쇠락의 겨울 한가운데서도 자신의 연약함을 자각하고 돌이킨다면, 그것은 새로운 융성의 봄을 준비하는 가장 귀한 씨앗이 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역사의 현장과 성경 (사사기)의 진리라는 두 개의 거울을 통해, 지금 내가 어느 계절을 지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계절에 맞는 겸손과 지혜의 옷을 입고 있는지 끊임없이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잠언 18장 12절)
삶을 지탱하는 세 개의 기둥: IQ, EQ, 그리고 CQ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라는 긴 항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한 가지 능력만 뛰어나다고 해서 순항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 수많은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과정, 그리고 예기치 못한 폭풍우를 만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정이 쉼 없이 교차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삶에서 큰 무리 없이 평온하고도 단단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세 가지 지수의 균형 잡힌 발달이 필수적입니다. 바로 배움과 훈련의 근육인 IQ (지능지수), 관계의 온도를 맞추는 EQ (감성지수), 그리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문제해결 능력인 CQ (갈등지수)입니다. 이 세 가지가 우리 삶에서 어떻게 작동하며, 지금 나의 모습은 어떠한지 조용히 거울을 비추어 보듯 점검해 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기둥: 세상을 배우고 나를 단련하는 힘, IQ (지능지수)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끊임없이 무언가를 배우고 훈련받습니다. 학창 시절의 공부뿐만 아니라, 새로운 직무를 익히고, 변화하는 시대의 기술을 습득하며, 복잡한 정보를 분석해 내 것으로 만드는 모든 과정에는 IQ (인지적 역량)가 필요합니다.
IQ는 삶의 기본적인 ‘도구’를 다루는 능력입니다.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원인과 결과를 추론하며, 기억을 조합해 지식을 쌓는 이 힘이 뒷받침될 때 우리는 세상의 규칙을 빠르게 이해하고 유능한 개인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날카로운 칼이 훌륭한 요리를 보장하지 않듯, IQ만으로는 온전한 삶을 살아낼 수 없습니다.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기둥: 사람의 마음을 잇고 보듬는 힘, EQ (감성지수)
훈련을 마치고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그곳에는 정답이 없는 수많은 ‘인간관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머리의 영역이 아닌 마음의 영역, 즉 EQ (정서적 역량)가 삶의 질을 결정짓습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불안과 분노를 스스로 알아차리고 다스리는 일, 타인의 표정 너머에 있는 아픔과 기쁨에 깊이 공감하는 일은 모두 EQ의 몫입니다. 아무리 지식이 뛰어나고 일 처리가 완벽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감정에 휘둘려 주변을 얼어붙게 만들거나 타인의 아픔에 무감각하다면 결국 고립될 수밖에 없습니다. EQ는 내 삶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내 곁에 좋은 사람들이 머물게 하는 가장 강력한 관계의 자석입니다.
세 번째 기둥: 폭풍우 속에서 길을 찾아내는 힘, CQ (갈등지수)
그렇다면 머리가 똑똑하고 (IQ), 평소 마음씨가 따뜻하다 (EQ)고 해서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요?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삶은 필연적으로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는 ‘갈등과 위기’의 순간을 마주하게 만듭니다. 이때 필요한 결정적인 역량이 바로 CQ (실천적 문제해결 및 갈등관리 역량)입니다.
평소에는 온화하고 합리적이던 사람도, 자신의 이익이 침해당하거나 부당한 비난을 받는 날 선 갈등 상황에서는 쉽게 방어적이거나 공격적으로 변하곤 합니다. 또한,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문제를 덮고 피하기만 하면 곪아 터지기 마련입니다. CQ는 이 불편한 갈등의 한복판에서 감정의 방아쇠를 통제하고, 상대의 날 선 주장 이면에 숨겨진 진짜 욕구를 읽어내며, 마침내 양측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제3의 대안’을 만들어내는 실전 해결 능력입니다. 즉, IQ의 냉철한 분석력과 EQ의 따뜻한 공감 능력을 위기 상황에서 행동으로 통합해 내는 최상위의 지혜라 할 수 있습니다.
삼각대의 법칙: 나는 지금 어느 다리가 짧을까?
카메라를 받치는 삼각대는 세 개의 다리가 모두 튼튼하고 길이가 같아야만 흔들리지 않고 수평을 유지합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IQ와 EQ는 높지만 CQ가 부족한 사람은, 평소에는 능력 있고 좋은 사람이라는 평을 듣지만 결정적인 갈등 앞에서는 문제를 회피하거나 속으로만 앓다가 관계를 그르치기 쉽습니다.
IQ와 CQ는 높지만 EQ가 부족한 사람은, 문제는 칼같이 해결하고 성과는 낼지 몰라도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어 결국 외로운 섬이 되곤 합니다.
EQ와 CQ는 높지만 IQ (훈련과 학습)를 게을리하는 사람은, 사람 좋고 원만하지만 정작 자신의 전문성이나 삶의 실질적인 기반을 다지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가 고루 발달한 사람은 어떤 환경에 놓이더라도 빠르게 배우고 (IQ), 사람들과 깊이 연대하며 (EQ), 갈등과 위기가 찾아와도 지혜롭게 매듭을 풀어나가기에 (CQ) 인생에 큰 무리 없이 평온한 항해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자기 점검 노트] 나를 돌아보는 세 가지 질문
오늘 잠시 시간을 내어, 내 삶의 삼각대 중 어느 쪽 다리를 조금 더 보강해야 할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요?
나의 IQ (훈련과 배움) 점검하기:
“나는 새로운 지식이나 낯선 환경을 만났을 때, 두려워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파악하며 배우려는 유연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가?”
나의 EQ (인간관계와 정서) 점검하기:
“나는 내 감정의 변화를 잘 살피고 있으며,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말 못 할 감정과 입장을 있는 그대로 따뜻하게 경청하고 있는가?”
나의 CQ (갈등과 문제해결) 점검하기:
“누군가와 의견이 부딪히거나 불편한 상황이 생겼을 때, 나는 무조건 피하거나 이기려 들지 않고, 대화의 식탁에 앉아 서로가 살 수 있는 대안을 끝까지 찾아내는가?”
부족한 부분이 보인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특히 EQ와 CQ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약한 부분을 정확히 ‘인식’하는 순간부터 평생에 걸쳐 얼마든지 단련하고 키울 수 있는 근육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돌아보며 어느 쪽이 약한지 점검해 보려는 그 마음 자체가, 이미 가장 지혜롭고 단단한 삶을 향한 첫걸음입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눅 2:52).
호주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
최근에 호주 연방국회에서는 65세 이상 노년층의 민간 건강 보험 보조금를 삭감하려던 노동당의 법안이 녹색당 등의 반대로 의회에서 부결되었습니다. 이 뉴스를 대하면서 저자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습니다. 소수당인 녹색당의 힘으로 어떻게 이런 법안을 막아 낼수 있었을까? 참으로 만주주의가 잘 되어 가는 나라이구나. 따라서 호주 정치적 제도에 대하여 한번 이해하면서 한국에서의 집권당의 독주를 펼치는 모습과 자못 비교가 될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호주 상하원 제도의 정교한 균형과 타협의 예술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을 만들고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과정은 결코 단순할 수 없고, 또 단순해서도 안 됩니다. 권력이 한곳으로 집중되거나 다수의 횡포로 소수의 목소리가 묵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로를 견제하는 튼튼한 구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호주 연방 의회(Australian Parliament)가 채택하고 있는 정교한 양원제 시스템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호주의 국회의사당 내부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색깔의 차이입니다. 하나는 초록색 카펫이 깔린 방이고, 다른 하나는 붉은색 카펫이 깔린 방입니다. 이 두 개의 방은 각각 하원(House of Representatives)과 상원(Senate)을 상징하며, 이들의 역할과 선출 방식은 호주 민주주의가 어떻게 균형을 잡고 있는지를 완벽하게 보여줍니다.
초록의 방, 하원: 다수의 원칙과 정부의 탄생
영국 웨스트민스터 시스템의 전통을 따른 하원은 인구수에 비례하여 선출된 151명의 의원으로 구성됩니다. 인구가 많은 지역일수록 더 많은 대표를 배출하는 ‘다수결의 원칙’이 철저히 적용되는 곳입니다. 하원에서 과반수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비로소 정부를 구성하고 총리를 배출하게 됩니다. 국가의 예산을 다루고 새로운 법안을 앞장서서 발의하는 역동적인 국정 운영의 엔진과도 같은 곳이 바로 이 초록의 방입니다.
붉은 방, 상원: 소수의 보호와 권력의 제어
그러나 인구 비례로만 정치를 한다면, 인구가 적은 지역이나 소수의 목소리는 영원히 외면받을 위험이 있습니다. 이 거대한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바로 붉은 방, 상원입니다. 미국식 연방주의를 차용한 호주 상원은 인구수와 상관없이 모든 6개 주(State)에서 똑같이 12명씩의 의원을 선출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상원의 기능입니다. 상원은 ‘검토의 집(House of Review)’으로 불립니다. 집권당이 하원에서 아무리 다수결로 법안을 밀어붙여 통과시켰다 하더라도, 붉은 방의 문턱을 넘지 못하면 그 법안은 휴지조각이 됩니다. 특히 상원 선거는 비례대표제적 성격이 강해 집권당이 단독으로 과반을 차지하기가 구조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결국 집권당은 녹색당이나 무소속 같은 소수 정당 의원들을 끝까지 설득하고 협상해야만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습니다.
독단이 불가능한 타협의 건축물
어떤 법안이든 예외 없이 이 두 방(하원과 상원)을 모두 통과해야만 공식적인 법률이 됩니다. 이 과정은 몹시 느리고 때로는 답답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교한 교착 상태야말로 호주 민주주의가 의도한 가장 완벽한 ‘안전장치’입니다.
선거에서 이겼다고 해서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고 마음대로 국가의 방향을 트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합니다. 극단적인 정책은 상원의 필터링 과정에서 걸러지고, 다양한 계층의 요구가 반영된 수정안으로 둥글게 다듬어집니다.
절대적인 기준이 흔들리고 양극화가 극심해지는 오늘날, 호주의 의회 제도는 민주주의가 나아가야 할 훌륭한 나침반을 보여줍니다. 권력의 독주를 막고 타협을 강제하는 이 튼튼한 시스템이 존재하는 한, 호주의 민주주의는 쉽게 벼랑 끝으로 내몰리지 않을 것입니다. 초록과 붉은색이 만들어내는 이 치열한 화음이야말로, 건강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제도를 설계해야 하는지를 증명하는 살아있는 교과서입니다.
김병근 목사
엠마오상담대학 학장, 시드니성시화운동 직전대표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