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신학자이자 성서학자, 사제 오리게네스 (Origen of Alexandria, 185년경 ~ 254년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신학자이자 성서학자, 사제. 185년경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도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레오니데스는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박해 (202 ~ 203) 중 순교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문법 교사로 일했으며 신플라톤주의자 암모니우스 사카스 아래 플라톤 철학을 공부했으며 히브리어 성서를 연구하기 위해 유대인 개종자에게 히브리어를 배웠다. 18세에 알렉산드리아 주교 데메트리우스의 요청으로 교리 학교 교사가 되었다.

215년 박해를 피해 팔레스타인 카이사리아로 피신했으며 이곳에서 주교들의 요청으로 설교했다. 귀국 후 데메트리우스와의 갈등이 깊어졌으며 231년경 카이사리아에서 팔레스타인 주교들에 의해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이것이 데메트리우스를 격분시켜 231~232년 두 차례 정죄, 파문당했으나 동방 교회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카이사리아에서 신학교를 열어 신학을 가르쳤으며 방대한 저술 작업을 이어갔다. 데키우스 Decius 황제의 박해(250~251) 중 투옥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았으며 이 후유증으로 253~254년경 세상을 떠났다.
초기 그리스도교 사상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가이자 신학자로 평가받는다. 『원리론』 De Principiis (아카넷)는 하느님, 그리스도, 성령, 세계, 인간, 성서 해석을 체계적으로 기술한 그리스도교 역사상 최초의 조직신학 저작으로 평가받는다. 성서 비평과 주해와 관련해 『육중역본』 Hexapla는 구약성서의 히브리어 원문, 히브리어 음역, 아퀼라·심마쿠스·칠십인역·테오도티온 번역을 여섯 열로 나란히 배열하여 비교한 방대한 비평 작업으로 현대 성서 비평학의 선구로 평가받는다. 또한 요한 복음서, 마태오 복음서,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비롯한 신약 대부분과 구약 여러 권에 걸친 방대한 주해서를 남겼으며 성서 본문이 몸·혼·영에 대응하는 세 층위의 의미, 즉 문자적·도덕적·영적 의미를 가진다는 우의 해석학을 체계화했다. 이 방법론은 이후 암브로시우스, 히에로니무스, 아우구스티누스의 성서 해석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으며 중세 성서 해석의 표준이 된 사중 의미론 quadriga의 선구가 되었다. 영혼 선재, 만유의 회복, 영의 부활과 같은 입장은 사후 큰 논쟁을 야기했으며 553년 제2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서 공식 정죄되었다. 그러나 그의 성서 주해, 변증, 삼위일체 신학, 영성 신학은 동방과 서방 모두에 계속 영향을 미쳤으며 20세기 들어 신학 유산이 광범위하게 재평가받고 있다.
주요 저술로 『원리론』 De Principiis, 『육중역본』 Hexapla, 『켈수스 반박』 Contra Celsum (분도출판사), 『기도론』 De Oratione (새물결플러스), 『요한 복음서 주해』 Commentarii in Evangelium Joannis 등이 있다. 그리스어·라틴어 원문은 『그리스 교부 전집』 Patrologia Graeca (PG) 11~17권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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