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2년 10월 22일, 안티오크 외곽에 있는 다프네의 아폴로 신전 (Temple of Apollo)이 의문의 화재로 소실
안티오크 (안디옥)는 로마제국 내에서 로마, 알렉산드리아에 이어 큰 도시로 종교적으로는 유대종교 외에도 밀의 종교, 아폴로신전 등 희랍사람들의 예배장소가 있었고, 로마시대에는 황제숭배도 강요되었다.
313년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시대에 기독교가 공식적으로 채택됐고, 362년 2월 4일 로마의 율리아누스 (Flavius Claudius Iulianus, 331년 8월 7일 ~ 363년 6월 26일) 황제는 모든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포고령을 발표한다.
이 포고령에서 모든 종교는 법앞에서 평등하며 모든 로마의 영토에서 로마 제국이 특정종교를 강요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이는 기독교를 공인한 밀라노 칙령 이후 특정종교를 박해하던 정책을 멈추고 로마가 가진 본래의 종교적 관용정신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해 10월 22일 안티오크 외곽에 위치한 아폴로 신전에서 의문의 불이 났고 건물의 지붕과 신의 동상들이 전소됐다. 이런 과정에 기독교인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의심으로 안디옥의 교회를 폐쇄하라고 명령한다.
화재의 원인에 대해 John Chrysostom은 번개가 아폴로 신전을 불태웠다고 주장했다.
아폴론 신전(Temple of Apollo)은 지중해의 여러 곳에 세워졌었으며, 역사적으로 문헌을 통해 유명한 것은 그리스 델포이이지만 델로스섬이나 고대 리키아의 크산토스, 로마 폼페이, 코린토스, 안티오크 등지에도 아폴론 신전들이 세워졌다. 특히 그리스 델포이 파르나소스산 동쪽에 위치한 아폴론 신전은 1987년 유네스코에 의해 델포이 고고유적지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특히 델포이의 아폴로신전은 신탁소로 유명했다. BC 8세기부터 AD 393년까지의 신탁 중 기록물로서 가치있는 신탁의 내용이 일부 전해지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기록된 신탁은 AD 393년에 있었는데,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의 명령에 따라 신전은 폐쇄되었고 결코 재개되지 않았다.
○ 성경의 안티오크 (안디옥)
안티오크는 BC 300년에 알렉산더의 후계자 셀류커스 1세 (SeleucusⅠ)가 시리아 셀류커스 왕조의 수도로 삼고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안티오키아 (Antyokya)라고 불렀다. 지금은 안타키야 (Antakya)라고 부르며, 성경에서는 안디옥 (Antioch)이라 기록하고 있다.
거주지와 도시가 형성되고부터 안디옥에는 동쪽으로 이어지는 대상로 (隊商路)가 있어 통상 (通商)의 요지로서 다양한 사람과 문화가 공존했다. 또 ‘동방의 여왕’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로도 유명했다.
BC 64년 로마시대에는 로마의 속주 (屬州)인 시리아의 수도가 됐고, 로마,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3대 도시로 이름을 날렸다.
안디옥은 화려 신상들이 많았고 웅장한 신전이 있었으며 아폴로 신전에서 열리는 제의 (祭儀)와 경기는 다채로웠다고 한다.
BC 2세기에는 혼합인종들이 50만 명 정도 거주했으며, 그중 유대인 공동체도 일부 포함돼 있었다. 그 후 예루살렘에서 기독교 박해가 심해졌고, 스데반 집사가 순교한 후 흩어진 기독교인들은 안디옥으로 피신해 와서 초대교회를 형성했다.
성경은 “바나바가 사울 (바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행 11:25~26)”고 기록하고 있다.
안디옥교회는 초대교회 중에서도 복음 선교의 중요성을 가장 먼저 인식하였고, 덕분에 세계 선교의 기지이자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 거점이 됐다.
안디옥에는 초기 기독교 핍박 때에도 교회가 여럿 세워졌다. 하지만 로마 디오클레시안 황제 (284 ~ 305년) 때에 파괴됐다. 그 후 콘스탄틴 황제 때에 재건했으며, 아시아 총 대주교 소재지로 종교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