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년 2월 2일, 알라리쿠스 2세 (Alaric Ⅱ, ?~507)가 ‘알라리크의 적요’ (摘要, ‘서고트 로마 법전’) 발포
알리리크 2세 (Alaric Ⅱ, ? ~ 507년)는 서고트의 왕 (재위 484 ~ 507년)이다.
아키텐, 프로방스 지방을 영유하고, 부친 에우리크(Euric)의 가톨릭 박해 정책을 완화하였으며, 국내의 로마계 백성만을 위한 로마 법원 (法源)을 편찬했다.

– 알라리쿠스 2세 (Alaric Ⅱ)
.출생: ?, 서고트 왕국
.사망: AD 507년 8월, 프랑스 부이예
.조부모: 테오도리크 1세
.부모: Euric / Ragnagild
.배우자: Theodegotha
.자녀: 아말라리크, Gesalec
.업적: 서고트의 로마 법전 ‘알라리크의 적요’ (摘要) 발포
*서고트의 왕
.재위: 484년 ~ 507년
알리리크 2세 (Alaric Ⅱ)는 서고트 왕으로, 아키텐 · 프로방스 지방을 영유하고, 부친 에우리크의 가톨릭 박해 정책을 완화하였다.
국내의 로마계 백성만을 위한 로마 법원(法源)을 편찬, 506년 2월 2일, ‘알라리크의 적요(摘要)’ 즉 ‘서고트 로마 법전’을 발포하였다.
법전의 편찬 목적은 서고트족의 지배를 받던 갈리아 및 히스파니아 지역의 로마계 주민들을 유화하고, 복잡한 로마법을 명확히 정리하여 재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구성 내용은 테오도시우스 법전 (Codex Theodosianus)을 중심으로 가이우스의 법학입문, 바울루스의 판결집 등 기존 로마 법원 (法源)들을 발췌·요약하여 구성했다.
‘알라리크의 적요(摘要)’ 즉 ‘서고트 로마 법전’은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서유럽에서 로마법의 전통을 보존하고 전승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이 보급되기 전까지 중세 초기 서유럽 로마법의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이 법전은 서고트족 귀족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았으며, 오직 피정복민인 로마인들에게만 적용되는 속인법적 성격을 띠었다.
한편 알리리크 2세 (Alaric Ⅱ)는 507년 아리우스파 신앙을 구실로 한 클로비스 휘하의 프랑크군의 침입을 초래하여 패주하던 중 살해되었다.

○ 생애 및 활동
알리리크 2세 (Alaric Ⅱ)는 서고트 왕국 8대 왕 에우리크와 라그나길드 왕비의 아들로 그의 출생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시도니우스 아폴리나리스에 따르면, 라그나길드는 라틴어를 할 수 있었으며 시인과 예술가들을 후원했다고 한다. 그가 로마인들에게 온건한 정책을 취한 것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데 기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484년 12월 28일 아버지가 사망한 뒤 서고트 왕국의 새 군주로 등극했다.
그가 집권한 시기, 서고트 왕국의 입지는 탄탄했다. 에우리크의 정복 전쟁으로 히스파니아 대부분과 남부 갈리아를 석권했으며, 로마 제국이 건재하던 시기 우수한 밀 생산지로 정평났던 프로방스 일대는 서고트 왕국의 영역으로 귀속된 후에도 여전한 생산력을 보여 국가 재정에 큰 보탬이 되었다. 또한 로마 가도는 이 시기에도 건재하여 원활한 물자 운송을 가능케 해주었기에 활발한 상업 활동과 대외무역이 이뤄졌다. 시오도니우스 아폴리나리스등 여러 연대기 작가들은 서고트 왕국이 지극히 부유했으며 자원이 풍부했다고 서술했다.
그는 이러한 왕국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 힘을 기울였다. 피레네 산맥의 통행을 보장하고 히스파니아 일대를 통제하기 위해 에흐-슈흐-라두흐 (Aire-sur-l’Adour)에 별도로 궁전을 세웠으며, 오도아케르를 꺾고 이탈리아 전역을 장악한 뒤 강성해지고 있는 동고트 왕국의 테오도리크 대왕과 동맹을 맺기 위해 대왕의 딸 테오데고타와 결혼하여 아들 아말라리크를 낳았다. 이와 별도로 알려지지 않은 여인에게서 게살레크를 낳았지만 사생아로 취급되었기에 왕위 계승권은 아말라리크에게 돌아갔다.
한편, 그는 아버지 에우리크와 대다수 서고트 귀족들처럼 아리우스파였지만, 정교 신자들에 대한 에우리크의 박해 정책을 중단하고 시게리우스가 아를의 주교로 선임되는 것을 인정했다. 또한 로마인과 고트인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한 법전을 만들고자 아니아누스가 이끄는 법전 편찬 위원회를 설립해 로마법과 고트법의 장단점을 분석하여 장점을 취하고 단점은 배제한 신법을 제정하도록 했다. 이리하여 506년 2월 2일에 반포된 법전은 <브레비아리움 알라리키아눔 (알라리크의 서약서)>로 명명되었다.
그러나 갈리아 북부에서 프랑크 왕국의 세력이 급격히 신장하면서 평온했던 왕국에 전운이 감돌았다. 481년 왕위에 오른 프랑크 왕 클로비스 1세는 486년 수아송 전투에서 로마계 군벌 시아그리우스를 격파했다. 시아그리우스는 전장에서 탈출한 뒤 알라리크 2세에게 귀순했다. 이에 클로비스 1세가 시아그리우스를 내놓지 않으면 공격하겠다고 위협하자, 전쟁을 피하고 싶었던 그는 시아그리우스를 프랑크 왕국에 넘겨줬고, 시아그리우스는 곧바로 처형되었다. 클로비스 1세는 뒤이어 갈리아 북동부에 있는 튀링겐족을 제압하고, 라인 강 상부와 중부에 부르군트족과 알란족을 제압했다. 그러던 중 랭스에서 부하 3천 명과 함께 정통파 교회로 개종하면서, 로마 교회와 갈리아 현지민들의 지지를 받고 가톨릭 주교들로부터 ‘아우구스투스’의 칭호를 받았다.

이제 프랑크 왕국의 영향력은 서고트 왕국과 국경을 마주할 정도로 강성해졌고, 서고트 왕국 내의 정교 신자들은 클로비우스에게 귀순하기를 희망했다. 비록 알라리크 2세가 그들에게 온건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서고트 왕국 수립 이래 수십 년간 천대받았고 에우리크 치세 때 가혹한 박해를 당했던 그들이 그 정도로 회유될 리 없었고, 각지에서 서고트 왕국의 지배에 반항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이에 위협을 느낀 그는 506년 루아르 강 중류의 한 섬에서 클로비스 1세와 만나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
조약의 내용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낭트, 앙제, 투르, 오를레앙을 프랑크 왕국에 넘겨준 것으로 보인다. 이 도시들은 루아르 강 하류에 위치한 주요 도시였는데, 주민들은 아리우스파를 신봉하는 서고트 족에게 지극히 적대적이었다. 알라리크 2세는 아마도 통제가 안 되는 이 땅을 프랑크 왕국에게 넘겨주면서 전쟁을 모면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클로비스 1세는 불가침 조약을 지킬 생각이 없었다. 그는 부르군트 왕국의 군주 군도바트와 군사 동맹을 주선했다. 이는 테오도리크 대왕이 사위인 알라리크 2세를 지원하기 위해 달려오는 걸 사전에 차단하는 역할을 부르군트 왕국에 맡기려는 계획으로 추정된다.
이후 507년 2월이나 3월 초에 프랑크 왕국 전역에 군대 동원 명령을 내렸고, 이른 봄에 루아르 강을 건너 아키텐으로 진격했다. 알라리크 2세는 프랑크군이 조약을 깨고 남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푸아티에에 군대를 집결했다. 양군은 507년 8월 부이예 평원에서 결전을 치렀다.
부이예 전투는 서고트 왕국의 재앙이었다. 고트군은 프랑크군의 압도적인 전투력에 밀려 섬멸되었고, 알라리크 2세는 전사했다. 프랑크군은 여세를 몰아 보르도를 포함한 아키텐 전역을 휩쓸었고, 서고트 왕국의 수도인 툴루즈도 함락하여 왕실의 숱한 보물을 노획했다. 한편, 클로비스와 연합한 부르군트 왕국군도 나르본을 공략했다. 클로도베쿠스 1세는 내친 김에 서고트 왕국 전체를 정복하려 했지만, 테오도리크 대왕이 사절을 보내 그러지 말라고 권하자, 아키텐만 얻는 선에서 마무리지었다.
서고트 귀족들은 왕이 죽자 게살레크를 새 왕으로 추대했다. 그러나 이탈리아로 망명한 아말라리크를 보호한 테오도리크 대왕은 게살레크를 찬탈자로 규탄했고, 511년 게살레크를 폐위한 뒤 아말라리크가 성인 되어 나라를 통치할 수 있을 때까지 대신 맡겠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서고트 왕국의 ‘섭정왕’으로 등극했다. 아말라리크는 테오도리크 대왕이 사망한 526년이 되어서야 정식으로 등극했다.

○ 부록 : 서고트족의 열왕들
파간 (게르만 토속 종교) 시대 왕들 (Pagan kings)
아타나리크(Athanaric) 369~381
로데스테우스(Rotesteus) 제후왕
윈그리크(Winguric) 제후왕
[왕 밑에 제후왕이 있는 형태. 서 아시아에서도 있었던 체제임.]
봉기 지도자들(Rebel leaders)
알라비부스(Alvavius) 376경
프리티게른(Fritigern) 376경~380경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에서 로마군을 크게 깨뜨림.
로마 말기 즉 서로마 시대에 오늘날의 프랑스, 에스파냐 등지를 점령한 서고트 (혹은 비스 고트)의 왕들은 다음과 같다.

*발티왕조-아리우스파(기독교 이단) 왕들(Balti dynasty – Arian kings)
1. 알라리크 1세 (Alaric I, 370?~410 / 재위 395~410):
로마의 용병대장 출신이자 고트족의 부족장으로 게르만 족 일파 중에서는 최초로 로마 시를 함락시킨 지도자. 북 아프리카 원정을 계획하던 중 사망함.
2. 아타울프 (Ataulf, ?~415 / 재위 410~415 일명 아타울푸스[Ataulphus]):
알라리크 1세를 이어 서고트 왕국의 왕 자리에 오름. 서기 414년에는 서로마의 공주인 갈라 플라키디아와 결혼함. 아타울프는 (필요에 의해서기는 했지만) 죽을 때까지 로마에 우호적이었다.
3. 지게리크 (Sigeric 415)
*발티왕조-아리우스파 툴루즈 왕국(Balti dynasty – Arian Kingdom of Toulouse)
4. 발리아 (Wallia, 415~419):
암살된 아타울프를 이어 서고트 왕국의 왕에 오름. 서로마의 공주 갈라 플라키디아를 서로마의 호노리우스에게 돌려 주는 조건으로 아키텐(프랑스 남부지역) 을 획득했다. 서기 418년에는 서로마의 요청으로 에스파냐를 침공해 반달족을 몰아내기도 했다.
5. 테오도리크 (Theodoric, 419~451):
서고트 왕국의 건국왕인 알라리크 1세의 서자. 그의 치하에서 서고트 왕국은 에스파냐와 남부 프랑스로 그 영역을 확장했다. 테오도리크는 로마와 우호적으로 지내던 선대왕들과는 달리 로마 중앙 정부에 적대했다. 하지만 서기 451년 로마인 장군 아이티우스와 함께 아틸라가 이끄는 훈족의 군대에 맞서 싸우다 전사함.
6. 토리스문트 (Thorismund, 451~453):
테오도리크의 아들로 부왕이 서기 451년의 샬롱 전투 (로마 연합군이 훈족을 남부 프랑스에서 막아낸 전투)에서 사망하자 그 뒤를 이어 서고트 왕에 오름.
7. 테오도리크 2세 (Theodric II , 453~466):
프랑스 방면으로 세력을 확장시킨 서고트의 왕
8. 에우리크(유릭, 유리크: Euric, 420~484 / 재위: 466~484):
서로마를 멸망시킨 게르만 족의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와 서로마를 분할한 서고트 왕. 프랑스 방면에서 쳐들어 온 켈트 족을 정벌하고, 기타 서고트의 부족장과의 전쟁에서 완전히 승리해 최초로 서고트 왕국을 통일한 왕이었다. 전대 서고트 왕들은 서로마의 관념적 권위를 일정부분 인정했으나, 에우리크는 서고트 왕 중에서는 최초로 로마의 권위를 부정했다.

9. 알라리크 2세 (Alaric II, ?~507 / 재위: 484~507):
에우리크의 아들. 로마의 법 제도를 차용하여 서고트 왕국을 정비한 왕. 프랑크의 왕 클로도베크(클로비스)에게 패배해 사망함.
*발티왕조(Balti dynasty)
10. 게살레크 (Gesalec, 507~511):
알라리크 2세의 서자. 프랑크 왕국에게 셉티마니아를 제외한 갈리아 전역과 수도 툴롱을 빼았기고, 프랑스 지역의 패권을 상실했다. 511년 이바스에게 왕을 빼았기고, 결국 이바스의 군대에게 패배해 사망했다.
*동고트 왕국 테오도리크 대왕(Theodoric the Great)의 통치 511~526
11. 아말라리크 (Amalaric, 526~531):
알라리크 2세의 아들. 동고트 테오도리크 대왕의 손자. 동고트의 왕 테오도리크 대왕의 도움으로 왕에 올랐으나, 프랑크 왕국과의 전투 중 사망.
*후기(에스파냐 시대) 왕들(Later kings)
12. 테우디스 (Theudis, 531~548) 동고트 테오도리크 대왕의 휘하 장군
13. 테우디기셀(Theudigisel) 혹은 테우디기스쿨루스 (Theudigisculus, 548~549)
14. 아길라(Agila, 549~554): 아타나길드의 반란과 동로마 유스티니아누스의 개입, 반도 남부에 동로마 령 점령지구 수립.
*후기 왕들 – 아리우스파 톨레도 왕국(Later kings – Arian Kingdom of Toledo)
15. 아타나길드(Atanagild) 554~567
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의 도움으로 전왕 아길라를 물리치고 왕위에 오름. 동로마의 공세에 남부 에스파냐를 빼앗기고, 프랑크, 바스크, 수에비 족의 침공을 받았다. 톨레도를 새로운 수도로 건설했다.
16. 리우바 1세 (Liuva I, 567~568):
17. 레오비글리드 (Leoviglid, 569~586) 혹은 리우비길드(Liuvigild) 568~586
독자 화폐 주조, 동로마 제국령을 해안으로 내몰고 수에비 왕국을 정복하여 사실상 이베리아 반도 통일.
동로마, 프랑크 왕국의 침공 등으로 분열된 서고트 왕국을 다시 재통일한 왕. 서고트 사상 최초로 로마식의 화폐 제도를 버리고 새 화폐를 주조함.
*후기 왕들-카톨릭 톨레도 왕국(Later kings – Catholic kingdom of Toledo)
18. 레카레드 (Reccared, 586~601):
레오비글라드의 둘째 아들. 서고트 족들이 계속 믿어오던 아리우스파 기독교(예수의 신성을 부정한 기독교 일파)를 버리고 카톨릭교로 개종했다.
19. 리우바 (Liuva, 601~603)

20. 비테리크 (Witteric, 603~610)
21. 군데마르 (Gundemar, 610~612)
22. 시세부트 (Sisebut, 612~621)
23. 수인틸라 (Suintila, 621~631)
24. 시세난드 (Sisenand, 631~636)
25. 친틸라 (Chintila, 636~640)
26. 툴가 (Tuilga, 640~641)
27. 친다스윈드 (Chindaswinth, 641~649)
28. 레카스윈드 (Reccaswinth, 649~672) 혹은 레케스윈드(Reccesuinth) 649~672
서고트족 법 편찬 – 13세기경까지 에스파냐에서 통용됨. 로마계 주민과 고트족의 법적인 구별 철폐.
29. 왐바 (Wamba, 672~680)
30. 에르비그 (Erwig, 680~687)
31. 에기카 (Egica, 687~701) 혹은 에르지카(Ergica)
톨레도에 산 페드로 성당을 지음. 그와 종교가 다른 이들을 박해한 왕으로 동성애자의 성기를 잘라내고, 유대인들을 박해했다. 특히 도둑을 엄히 다스려서 도둑질을 하다 잡힌자는 물에 끓이게 했다.
32. 비티자 (Witiza, 701~710) 혹은 위티자(Wittiza) 701~710 사후 내전 시작
33. 로데리크 (Roderic, 710~711):
그의 치하에서 서고트 왕국은 북상해 온 이슬람 군대에게 멸망했다.
이슬람군에게 구아달레테 전투에서 패사함, 사실상 서고트 왕국 최후의 왕.
아길라 2세(Agila II) 711~713 로데리크 입장에서는 참칭자로 로데리크의 경쟁자.
아르도(Ardo) 713~721 서고트 왕국 최후 보루인 나르본이 이슬람군에 의해 함락됨.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