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년 1월 10일,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BC 3 ~ AD 69)가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리키니아누스 (Lucius Calpurnius Piso Licinianus, BC 48 ~ AD 32)를 양자삼고 후계자로 선포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기원전 3년 12월 24일 ~ 69년 1월 15일)는 네로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 빈덱스에 의해 반란의 주모자로 추대되었다.
빈덱스는 군대에 의해 진압당했지만 68년 6월 8일 원로원에 의해 황제로 선포된다.
10월에 로마로 돌아왔는데 로마에 돌아와 그가 국정에 관하여 내린 조치는 실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중 하나가 네로의 선물을 몰수한 것으로 이 조치는 재정을 다시 확보하려고 그런 것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수많은 비판을 받았다.
거기다 수하들까지 탐욕적으로 재물을 긁어모아 갈바에 대한 사람들의 신임은 더욱 실추되기 시작한다.
69년 1월 2일에는 라인 강 방위군이 갈바가 황제가 된 데에 불만을 품고 비텔리우스를 황제로 추대하였다.
1월 10일에는 루키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프루기 리키니아누스 (Lucius Calpurnius Piso Licinianus, BC 48 ~ AD 32)를 입양하여 자신의 후계자임을 세상에 알렸는데 이는 자신이 갈바의 후계자라고 생각하고 있던 오토를 분노케하여 오토의 쿠데타를 초래하는 결과를 낳았다.
오토는 1월 15일에 황제를 수행하던 중 일행에서 빠져나와 근위대에 접근하여 황제로 추대되었다. 갈바는 이에 당황하여 반란군과 대항하려 했으나 오토 측의 기병에 공격을 받고 죽음을 당하였다. 갈바의 나이 72세였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