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곤주 목사의 원문중심 성경강해 시리즈
제2강 바울의 인사에 담긴 교훈(2) 롬 1:1-7
1.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4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6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7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롬 1:1-7]
신약 27권의 책 가운데 복음의 진수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책은 로마서 입니다. 어거스틴은 주후 386년 로마서 13장 13-14절을 읽고 회심했고,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사제(신부)요 신학자로서 시편과 로마서를 가르치다가 로마서 1 장17절 (시 31:1과 비교)을 통해서 급격한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1738년 런던에서 있었던 메노나이트 집회에서는 설교자가 오지 않아서 루터가 기록한 로마서 서론을 읽었는데, 그때 이 모임에 참석한 요한 웨슬리는 이 말씀을 들은 후에 놀라운 영적 회심을 경험했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에 의해 기록된 로마서는 복음에 대하여 가장 논리적으로 기록한 책인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친 책입니다.
사도 바울이 기록한 이 로마서 서신은 대략 55-58년 도에 고린도 지역에서 기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서신을 받은 로마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니었고, 또 바울이 이전에 한 번도 방문해 보지 않은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에 대한 소개와 함께 긴 안부 인사를 하면서 당시의 편지 형식을 따라 먼저 자신을”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 이라고1절에서 소개 한 뒤에, 마지막 7절에게 가서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라는 인사말로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또 이러한 이유로 로마서 1~7절 까지의 내용은 헬라어 원문에서 하나의 긴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지난 시간에 말씀 드렸습니다.
이러한 문안 인사를 하면서, 사도 바울은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1:2)고 1장 2절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이렇게 소개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은 구약 성경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바리새파의 율법 학자였습니다. 그러한 사도 바울이 시리아의 수도인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자, 구약의 메시야 예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임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메시야 예언들을 간단히 살펴보면, 창세기 3장에서 장차 사단의 권세를 멸한 메시야,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받게 될 메시야, 시편 16편에서 ‘썩음을 당치 않을 거룩한 자’로 오실 메시야의 예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 되었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또 이사야 선지가가 11장에 예언한 ‘이새의 줄기에서 난 싹’, 7장의 ‘임마누엘,’ 53장의 ‘고난받는 종,’ 그리고 49장에 나오는 ‘땅끝까지 구원을 베푸는 이방의 빛’ 등, 구약의 수많은 예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하여 이루어졌음을 알수 있습니다.
특별히 그 메시야는 구약의 예언대로 다윗의 후손 (삼하 7:12-14; 사11:1)으로 오셨기에, 사도 바울은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라고 3절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나서,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 고 1장4절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성결의 영으로 부활하셨다’라는 표현에 대해, 몇가지 다른 해석들이 있습니다. 이 점을 간단히 소개해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성결의 영으로’ 라는 표현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타 프뉴마 하기오쉬네스” (κατὰ πνεῦμα ἁγιωσύνης)가 다양한 번역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서, ‘성결의 영’ 혹은 ‘거룩의 영’을 ‘성령’으로 이해하는 견해와 인간의 영으로 이해하는 두 다른 해석이 있고, 그 앞에 있는 전치사 ‘카타’ (κατὰ)를 번역하는데 있어서도 다양한 의미의 번역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NIV 성경은 ‘거룩한 하나님의 성령을 통하여’ (“through the Spirit of holiness”)라고 번역하고 있으나, KJV 성경은 ‘거룩(성결)의 영을 따라서’ (“according to the spirit of holiness”)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로 해석상 논쟁이 되는 것은 ‘성결의 영’이라는 표현이 육신의 예수님이 부활의 순간에 하나님의 아들로 받은 아들여졌다는 양자론 (adoptionism)으로 이해하는 해석입니다. 다시말해서, 예수님은 인간이었는데 부활해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었다고 주장하는 해석이 있었고 일부에서는 지금도 그런 주장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육신적으로는 다윗의 혈통으로 이 땅에 오신분이요 동시에 그분은 본래부터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에서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셋째는 1 장 3-4절의 말씀이 예수님의 두 본성을 대조하고 있다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사도 바울이 성령 (혹은 ‘영’)과 육체(혹은 ‘육’) 자주 대조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큰 설득력이 없습니다 (예, 롬 7:5-6; 8:2-13; 갈 3:3; 4:29; 5:16-18…등등). 그러므로 이 구절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된 것이 아니라 다윗의 혈통을 따라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성령의 능력안에서 부활하심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하게 확증하였다고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 합니다 (cf.빌 2:6-11).
이렇게 성령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신 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1장4절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눈 구절 안에 나오는 ‘주’ 는 헬라어로 ‘퀴리오스’ (κυρίος) 라고 하는데, 이 말은 당시에 세가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첫째는 종과 주인과의 관계에서 주인을 의미하고, 둘째는 상대방을 높여부르는 존칭으로 sir 와 같이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는 오직 유일한 생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 혹은 당시의 절대 주권자인 황제를 칭하는 말로 사용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차원에서 예수님으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그리고 동시에 예수님은 유일한 생명의 주권자이시고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다음으로 5절 말씀을 보면 “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라고 사도 바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믿어 순종하게 되었다’는 말씀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마치 믿음을 갖고 나서 그 다음 단계로서 순종하게 만든다(“obedience to the faith”:KJV)는 의미로 오해하기 쉬우나, 이 말의 본래 의미는 ‘진정한 믿음이란 순종을 동반한다’ (“faith that consists of obedience”: NIV)는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음으로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복음을 전하는데 힘쓰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통하여 철저하게 믿음을 강조하지만, 그 믿음은 순종의 행위를 동반하는 믿음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표현이 로마서 16장 26 절에서 다시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믿음은 순종이 따르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이점에 대해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16-18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또 야고보는 야고보서 2장 에서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그러므로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이요 죽은 믿음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행함이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요 생명이 없는 신앙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자 하는 순종의 행위를 동반하고 그래서 순종의 행위로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기쁘고 복된 소식을 듣고, 믿음으로 그 복음을 받고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답게 순종이 따르는 참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하고 거룩함에 이르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김곤주 목사(시드니새언약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