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한국의 토종으로 자리 잡은 호박 이야기
토종 식물 (native plant)
호박은 한국인의 정서로 보면 한국의 토종 (土種; 토종 식물, native plant) 농작물 처럼 느껴지는 식물이다. “호박이 넝쿨째로 굴러 떨어졌다”, “호박에 말뚝 박기” 등 호박과 관련된 속담이 부지기수 (不知其數)인 것만 봐도 호박은 한국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농작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호박은 한국의 토종 식물이 아니다. “호박”이라는 명사자체도 호 (胡) 자가 붙었던 자체가 외래종임을 직감 하게 된다. 호박의 ”호 (胡)”라는 말은 흉노족 (북방인족)을 이르는 말이다. 진시황은 북방 민족의 ‘호 (胡)’ 나라가 나라를 위협한다는 말을 듣고 나라가 위험할 것으로 여겨 만리장성을 쌓았다고 한다. 일본을 흔히 “왜 (倭)”라 지칭하는데 왜자가 붙은 명사도 많다. 왜초 (倭草, 담배), 왜겨자 (고추), 왜귤 (감귤) 등이 있으며 작물명 이외에도 왜간장, 왜구, 왜포 (광목천), 왜지 등 우리 민족의 한 (限)이 맺힌 이름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인류의 이동과 함께 동식물도 원산지를 떠나 세계 각지로 흩어지면서 정착지의 토종화 된 것이 많다. 호박의 원산지는 멕시코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한반도에 정착한 농작물이 된 것이다.
호박의 유래 및 기원과 호박의 역사
자료를 검색해보면 중앙아메리카의 인디언들이 9,000년 전부터 재배를 하여 식용으로 사용한 식물이다. 할로윈 데이를 대표하는 작물이기도하다. 호주에서 매년 10월 31일, 서양의 큰 축제(?) 중 하나인 할로윈 (Halloween) 데이 행사를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마을에 어린이들이 이상한 복장을 하고 가가호호 방문하며 초코렛 등을 담아 논 선물들을 수거하며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였으나 할로윈 행사의 의미를 알고 난후 익숙해 졌다. 할로윈은 주로 미국에서 매년 10월 31일 즐기던 축제인데 최근에는 호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연중 행사로 자리 잡은 것 같다. 고대 켈트족이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0월 31일에 음식을 마련해 죽음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죽은 자의 혼을 위로하고 악령을 쫓았다고 하는데 이 때 악령들이 자신들에게 해를 끼칠까 두려워 악령으로 분장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사윈 (Samhain)이라는 불리는 고대 켈트족들의 축제가 그것이고 오늘날 할로윈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호박의 기원

호박은 박과의 덩굴성 한해살이 풀인 식물이다. 호박의 원산지는 중아 아메리카 및 남아메리카 지역이다. 호박의 야생종은 신대륙에만 분포하고 있으며 분포가 가장 많은 지역은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지역이다.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에는 총 11종의 야생종이 있으며 1,500m 이상의 안데스 산맥에서 부터 해안 저지대까지 분포하고 있다. 호박은 아메리카의 대륙의 원주민들이 약 9,000년 전부터 재배를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멕시코에서는 BC 5,000년, 페루에서는 BC 3,000년경의 유적지에서 종자가 발견되었다. 호박이 전 세계로 전파된 것은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후 1518년 코르테스의 멕시코 정복 이후로 유럽으로 전파 되었다고 한다. 대항해 시대에 아시아 (인도, 동남아)는 유럽으로부터 호박이 전파되었다. 일본과 중국은 16세기 중엽 (1553년)에 포르투갈 무역선이 일본에 호박을 전파하였고 중국도 비슷한 시기에 동일한 경로에 의해 전파 되었다. 미국은 1600년대 초 유럽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에 의해 역수입된 것이라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 초기 이주민들이 1,623년 추수 감사 파티를 열어 다양한 호박 파이를 먹으며 축제를 지낸 것이 오늘날 추수감사절의 시작이었다. 미국의 추수 감사절에 호박이 없으면 안 될 정도로 중요한 작물이다.
호박의 유래
우리나라에 호박이 들어온 시기는 1600년대 초로 추정하고 있어나 정확한 도입 시기나 경로는 명확하지 않으며 포르투갈의 상선을 통해 호막이 일본이나 중국을 걸쳐 1505~1609년 사이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호박의 전파의 두 가시 설이 있는데 일본 도입설과 중국 도입설이다. 일본 유래설은 임진왜란 당시 우리나라에 전해졌다는 설이고, 중국 설은 병자호란 (丙子胡亂) 당시에 다른 작물들과 함께 전해졌다는 설이다. 중국에서 유래한 작물들에 붙여진 “호 (胡)”라는 명칭 때문에 중국설이 보다 유력한 것이다. 1644년 명나라의 멸망 이후 청에 억류되어 있던 사신들을 석방하는 과정에서 함께 전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호박 관련 상식 정보
전 세계적으로 호박은 30여종 있으며 크게 동양계, 서양계, 페포계의 3종으로 나누며 가장 널리 재배가 이루어지고 있는 호박들이다. 동양계 호박은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적응한 호박으로 청과 (靑瓜)나 숙과 (熟瓜)로 이용되며 서양계에 비해 당도가 낮은 편이다. 서양계 호박은 서양에서 숙과 (늙은 호박)로 이용되며 겨울 호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당도가 높다. 북미 내륙 북부의 춥고 , 비구름이 불규칙한 기후에 적응되어 노지재배에 적합하며 세계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호박들은 서양계 품종들이다. 폐포계 호박은 형태와 색깔이 가장 다양한 종으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먹는 주키니 호박도 여기에 포함된다, 주로 북미 대륙 북부의 춥고 비, 구름이 불규칙한 기후에 적응되어 노지재에 적합하다. 그 외의 호박 종은 녹조종, 흑종, 종간 잡종 등이 있는데 녹조종은 동양계 호박종과 비슷하며 재배를 하지 않아 현재는 멸종이 진행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흑종은 생김새는 박과 비슷하며 종간 잡종은 5개의 주요 호박군간의 인위적인 교배로 태어난 품종들이다. 대부분 관상용이나 상업용 품종이며 애호박이나 풋호박이 교잡을 통하여 관리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탄생한 교잡종이다. 2010년 기준 호박을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는 스페인이며 스페인은 전 세계 수출품에 43%를 차지하며 호박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는 미국, 프랑스. 일본 등이 있는데 상위 3개국의 수입량이 전 세계의 70%를 차지한다고 한다.

호박은 영어로 펌킨 (pumpkin)이라 불리는데 어원은 그리스어 페폰 (pepon)으로 커다란 멜론이라는 뜻이다. 호박 파이를 가장 크게 만든 것은 지름이 1.5m로 만드는데 6시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늙은 호박 속에는 한 컵 정도의 씨가 들어있고 호박은 사람들이 먹는 열매 가운데 가장 큰 열매다. 특히 자이언트 펌킨이라는 종은 1톤이 넘는 거대한 열매를 맺는 호박도 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호박은 벨기에에서 재배된 1,190kg짜리의 C.maxima 호박이 기록적이다. 미국은 해마다 23개 주 83개 도시에서 호박 축제가 열리고 캘리포니아주의 포모나 호박 축제가 가장 유명하다. 또한 한해 가장 크고 무거운 호박을 키워내는가를 경쟁하는 대형 호박 콘테스트는 150년 이상이나 행해져 온 호박 축제의 이벤트이기도 하다. 독일은 루트비히스부르크 호박 축제에서 다양한 호박 모양 배 경주와 동물 모양 호박 장식물 전시가 열리며, 이탈리아 벤존의 호박 축제는 마늘을 동화처럼 꾸미고, 전통 복장의 주민들이 방문자들과 음식과 술을 나눈다고 한다.
호박의 유효 성분
대표적인 녹황색 채소인 애호박은 꼭지부터 씨까지 버릴 게 없습니다. 당질과 비타민A, 비타민C가 풍부해 피로 회복 및 노화 방지 효과가 탁월합니다. <본초강목>에서는 애호박의 효능에 대해 ‘보중익기 (補中益氣)’라고 설명했다. 소화기 계통 (위 · 비장 등)을 보호하고 기운을 더해준다는 뜻이다. 애호박 씨에 들어 있는 레시틴은 치매 예방 및 두뇌 계발에 좋고, 양질의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하다. 영양 만점 애호박은 조직이 연해 전으로 부쳐 먹거나 얇게 채를 썰어 다른 채소와 함께 볶아 먹는 등 가볍게 조리해 먹는 것이 좋다. 단호박, 늙은 호박과 같이 속이 진한 노란 빛을 띠는 호박에는 미네랄과 전분, 비타민이 풍부하다. 다양한 효능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세포를 강화시켜주는 베타카로틴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신체 기능을 향상시켜 주고 암세포 증식을 막는다. 실제로 미국 국립 암연구소 (NCI)가 흡연 경력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호박의 베타카로틴이 발암의 원인인 활성 산소를 무독화 시켜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타민B와 비타민C도 풍부해 면역력 증진에도 효과적이다. 단호박과 늙은호박은 전자레인지나 솥을 이용해 찌거나 죽, 수프 형태로 요리해 섭취하면 맛과 영양을 모두 지킬 수 있다.
초보 농부도 쉽게 기를 수 있는 호박
호박은 다른 채소보다 기후에 잘 적응하고 병에도 강하다. 초보 농부도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작물이다. 그중에서도 애호박은 뿌리가 강건하고 넓게 퍼져서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며 뙤약볕에서도 말라 죽지 않을 정도로 강한 채소다. 더위에는 애호박보다 쥬키니호박이, 쥬키니호박보다 맷돌호박이 더 강하다. 일반적으로 호박은 한국 기준으로 3월 하순이나 4월부터 7월 사이에 파종해 7월과 11월 사이에 수확한다. 물론, 재배 지역과 환경 등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온도와 일조량이 받쳐주면 12월까지도 수확할 수 있다. 호박의 발아 최저 온도는 15℃이고, 최적 온도는 25∼28℃입니다. 30℃ 이상이 되면 발아가 억제되므로 고온에 유의해야 한다. 수확 시기를 놓치면 맛이 떨어지니 제때 수확하는 것이 좋다.
호박 요리
한국 사람들은 유난히 호박을 좋아 하는 것 같다. 일본이나 중국과 비교해도 호박 요리가 많다. 호박으로 만드는 음식도 다양해 애호박은 애호박대로, 늙은 호박은 늙은 호박대로 음식을 만드는데 호박볶음, 호박전, 호박조림, 호박찌개, 호박나물, 호박죽, 호박고지, 호박떡, 호박엿 등 언뜻 생각나는 것만도 손가락으로 꼽기 힘들 정도다. 호박을 직접 먹는 것 외에도 된장찌개에 호박줄기를 넣고 끓이면 맛이 더 산뜻하고 호박잎을 쪄서 싸 먹는 호박쌈 또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별미다. 이렇듯 한국인 대부분이 즐겨 먹는 호박이지만 호박을 먹은 역사를 살펴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을 많이 발견된다. 호박은 처음에 양반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채소였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먹던 채소다. 평민도 먹기는 했지만 즐겨 먹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절간에서 ‘중이나 먹는 채소’라고 했다. 이 때문에 조선 시대 호박의 별명은 승려들이 먹는 채소라는 뜻의 승소 (僧蔬)였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규경이 19세기 중반에 쓴 오주연문장전산고 (五洲衍文長箋散稿)에 자세한 이야기가 나온다. 처음에는 절에서 승려들이 먹거나 평민이 먹었는데 이후에는 점점 호박 먹는 것이 유행하면서 지금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먹는 채소가 됐다고 적고 있다. 심지어 산해진미와도 견줄 수 있는 음식이라고 까지 했으니 호박의 위상이 확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호박 관련 정보
이규경보다 약 100년을 앞서 살았던 실학자 이익도 성호사설 (星湖僿說)에 비슷한 기록을 남겼다. 주로 절에서 승려들이 재배하거나 농부들이 텃밭에 심었는데 점차 재배하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채소 중에 호과 (胡瓜)라는 것이 있는데 푸른빛에 생긴 모양은 둥글며 익으면 색이 누렇게 바뀐다. 큰 것은 길이가 한 자쯤 되는데 잎은 박처럼 생겼고 꽃은 누런 데다 맛은 약간 달콤하다. 옛날에는 우리나라에 없었는데 지금은 있다. 농가와 절에서 주로 심는데 열매가 많이 열리기 때문이다.” 또 이익은 “남과라는 호박이 전해진 지도 100년 가까이 되었는데 아직 호남 지방에는 미치지 못하였다”는 기록도 남겼다. 1763년에 사망한 이익의 생애로 계산해 보면 18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전국적으로 고르게 호박을 재배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초창기에는 가난한 농부나 절간의 승려 외에는 별로 관심도 기울이지 않고 재배도 하지 않던 호박이 19세기 중엽, 그러니까 헌종과 철종 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소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는 채소가 된 것이다. 원산지가 중남미인 호박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임진왜란이 끝난 이후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한자로는 남과 (南瓜)인데 우리말로는 호박 (胡朴)이라고 부른다면서 고추와 함께 선조 때인 임진왜란 이후에 전해졌다고 했다. 남만 (南蠻)에서 자라는 채소인데 중국과 왜국을 통해 세 종류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명나라 의학서인 본초강목 (本草綱目)에 고추는 보이지 않지만 호박에 관한 기록은 있다고 했으니 중국에는 진작 호박이 전해졌던 모양이다. 본초강목에는 호박이 약재로 적혀 있다. 건강에 도움이 되는 데다 기운을 북돋아 주는 식물이라고 했다. 그러니 무더위로 입맛을 잃기 쉽고 코로나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 줄 수 는데 어울리는 식품이라 할 수 있다.

박광하 (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38khpark@hanmail.net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 (북랩)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