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호 목사의 컬쳐 스테이지(Culture Stage)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
한국의 메르스 사태를 바라보며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사태가 대한민국의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메르스 발생 26일째인 15일 오전 현재, 감염 확진자가 5명 증가한 150명, 사망자도 2명 늘어 16명으로 치명률 10.7%를 기록했고 격리자도 5216명으로 급증했으며 1만명까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우려했던 4차 감염자가 발생해 지역사회 감염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초기 대처에 미급했으며 진원지인 삼성서울병원의 역학조사에도 지지부진하며 사태를 악화시킨 사실이 확인되면서 국민들의 분노가 커져만 가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을 몸으로 실천하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어서 안타깝습니다. 여기에 극심한 가뭄마저 전국을 강타하며 한국의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은 지금 초기 대응 실패로 한국 여행을 자제할 것을 권고하는 국가들이 늘면서 국제사회로부터도 고립되는 분위기입니다. 호주에 사시는 지인 한 분이 친지 결혼식으로 한국을 방문하려고 했더니 장소를 쉐어하는 일터에서는 만약 한국에 가면 더 이상 장소를 빌려 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합니다. 서부 퍼스에서는 한국발 항공기의 착륙을 불허했다는 소문도 들려 옵니다. 여기에 메르스 확산에 따른 경제적 충격이 세월호 참사 때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모건스탠리’는 메르스가 홍콩사스 사태처럼 3개월간 지속될 경우 올 한국의 성장률이 0.8% 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으며 ‘한국경제연구원’도 8월말까지 사태가 지속되면 사회적 비용이 20조원 이상 소요될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메르스 공포가 확산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정보 공개에 미급했던 정부에 대한 불신일 것입니다. 공포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막고 있던 정보들은 국민들을 더 큰 위험에 빠뜨렸으며 메르스 감염이라는 이유는 아버지의 마지막 길도 배웅하지 못하는 원통함을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터나 다름없는 최일선의 의료진들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메르스와의 전쟁을 진행중입니다.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무거운 복장을 하고 환자들을 돌보는 의료진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과중한 업무에 지쳐가고 있습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늘 착각의 늪에서 하우적 대는것 같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역사적인 ‘천연두 박멸’을 선언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WHO는 “수천 년간 인류를 괴롭혔던 천연두 바이러스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발표했습니다. 페스트·콜레라와 함께 최악의 전염병으로 꼽히던 천연두는 한국에선 ‘마마’ ‘두창’으로 불렸습지다. 이 지독한 병은 20세기에만 3억~5억 명의 생명을 빼앗갔습니다. 인간은 이런 역병을 퇴치하면서 더 큰 자만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언젠가 모든 전염병을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윌리엄 스튜어드’ 미국 공공보건국(PHSCC) 국장은 “이제 전염병 책을 덮을 때가 됐다”고 자만했습니다.
그러나, 터무니없는 착각이었습니다. 소아마비·볼거리 등이 줄긴 했지만 신종 전염병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80년대 초부터 3900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AIDS 를 시작으로 2002년 사스, 2009년 신종플루, 지난해 에볼라에 이르기까지 치명적인 전염병들이 세계를 휩쓸었습니다. 지난해 발표된 미 브라운대 조사에 따르면 1980년 이래 전염병 발생 건수는 큰 폭으로 늘어 80~85년 사이 1000건 미만이던 게 2005~2010년 동안 3000건을 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전염병이 만연해진 세상이 된 결정적 원인이 바로 지구온난화입니다. 70년대 말 출현한 뒤 요즘 들어 또다시 각광받는 ‘가이아 이론(Gaia theory)’이란 게 있습니다. 가이아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으로 지구를 뜻합니다. 영국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에 의해 주창된 이 이론은 지구를 단순한 돌과 흙덩어리로 보지 않습니다. 지구는 땅 위에서 살고 있는 동식물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하는 생명체 같은 존재라는 것이 이론의 핵심입니다. 러브록의 주장에 따르면 ‘가이아’라고 부르는 지구는 자신의 변화에 대응해 생명체가 잘 살 수 있도록 균형을 찾아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온실가스등으로 온난화가 극심해지면 지구는 회복 능력을 잃게 되었고 이로인해 생태계 균형은 깨지고 대규모 홍수와 극심한 가뭄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태계 균형이 망가지면 희한한 전염병들이 번성하기 마련이고 기온 상승으로 환경이 바뀌면서 희귀했던 생물이 늘기도 하며 번성했던 동식물이 멸종하기도 합니다. 각 생명체가 거들떠보지 않던 먹잇감을 섭취하거나 기후에 맞춰 자신의 몸을 변화시키는 현상도 일어나며 이 과정에서 이들의 체내에 새로운 병균과 바이러스가 생겨나고 이게 사람에게 옮으면서 ‘신종 전염병’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 만든 환경 파괴가 도리어 인간을 파괴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메르스처럼 동물과 사람 모두에게 옮는 병을 ‘인수공통감염병(zoonosis)’라고 합니다. 주목할 사실은 최근에 나타난 신종 전염병의 75% 이상이 인수공통감염병이란 점이고 에이즈(침팬지), 에볼라(박쥐), 메르스(낙타) 모두 여기에 해당합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난다’고 했습니다. 모든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존재합니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시작된 메르스가 3년도 넘은 시간을 지나서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WTO 가 말하는 전염경로를 무시한채 막을 수 없을 정도로 무참히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정부와 국민은 비밀과 원망으로 서로를 항한 불신만 키우고 있습니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전염병은 하나님의 저주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일어나는 동성애 축제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어떤 목사님은 자신의 기도로 강남에서 시작된 메르스가 강북으로 올라오지 못한다며 본인이 메르스를 제압하는 영적인 권위가 있다고 합니다. 몇몇 기독교인들의 부적절한 말이 더 답답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김하중 대사의 <하나님의 대사> 라는 책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2002년 중국의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당시 중국 주재 대사로 있었던 시기가 가장 힘들었다고 합니다. 대사관 내에 ‘사스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교민 철수 등 특단의 조치를 검토하였고 우리 기업들은 대사관의 철수 결정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김 대사는 한국인은 중국의 사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신뢰를 보여야 한다고 판단합니다. 중국과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한국이 사스가 무서워 떠난다면 중국의 사스 위험성이 더 크게 부각될 것이고 개인적으로도 어려울 때 친구를 놔두고 가버린다면 나중에 그 친구를 어떻게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인가를 걱정했다고 합니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라는 서양 격언처럼 김 대사는 우리가 중국의 진정한 친구라면 어려움에 처한 중국인과 고난을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철수 이야기를 더 이상 꺼내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한국인이 사스에 강한 것은 김치를 먹기 때문이라면서 김치를 컨테이너로 수입하여 중국 정부에 선물하여 큰 호응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대사관 직원들과 부인회를 통해 사스로 고생하는 베이징 시민을 위한 모금을 하여 베이징 시 위생국에 전달하였으며 정부에 건의하여 대통령과 국무총리로 하여금 위로 전문 발송과 함께 상징적으로 성금 10만 불을 지원하여 중국의 사스 퇴치에 보탬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김 대사의 이러한 노력은 출범(2003.3.15) 직후 사스 공격에 휘둘리고 있는 후진타오(胡錦濤)-원자바오(溫家寶)의 제4세대 지도부에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일들로 인하여 며칠 전 중국의 권력 서열 3위인 ‘장더장(張德江)’ 전인대 상무위원장(국회의장)이 방한하였습니다. 한국의 메르스 감염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중국내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장더장 위원장은 도움을 받았던 그 때를 기억하며 한국을 방문하여 위로를 전하였습니다.
메르스 사태로 인하여 교회는 물론이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발길이 끊겼다고 합니다. 자택격리를 받은 사람들 가운대 생계가 막막한 사람들이 나타나고 무료급식소가 문을 닫아 극빈층 노인들은 더 이상 식사를 해결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어쩌면 이러한 때가 교회가 움직일 시기가 아닐까요? 문둥병자와 함께 먹고 마시시던 예수님의 담대함과 용기가 ‘예수인’으로 사는 우리 가운대에도 있기를 소원합니다.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마태복음 26: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