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 박사의 또박또박 준비하고 가는 유학과 해외체험(22)
앞으로 여러 회에 나누어 연재될 이 글은 ‘김삼오 박사의 또박또박 준비하고 가는 유학과 해외체험’에서 저자의 양해를 얻어 일부 업데이트하고 전재한 것입니다.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편집자 주
제4장 주거와 문화체험
1. 교포사회에 안 섞이겠다고?
요즘 한국 사람들이 영미국가에 와서 경험하는 문화충격은 1950, 60년대와 비해 훨씬 덜할 것 같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그간 한국사회에서 급속히 진전된 [서양화 / Westernization] 과정으로 한국인에게 서구문화가 과거만큼 이질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질문화 면에서라면 한국과 영미국가간 차이는 거의 없다. 요즘 한국인이 영미 어느 나라에서든 자동차와 교통, 주거, 식생활, 쇼핑, 레스토랑, 은행 이용 등 새로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다른 하나는 영미지역의 주요 도시에는 웬만한 크기의 한인사회가 형성되어 있어 외국이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한인 인구가 100만에 육박한 미국의 LA와 뉴욕(맨해튼)과 근교 뉴저지 주 주택가는 물론, 워싱턴, 시카고, 휴스턴, 캐나다의 트론토와 밴쿠버, 호주의 시드니,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등 각 도시에는 각각 3~10만명의 한인이 살고 있다.
이들 지역에는 차이나타운 규모는 아니나 우리대로 코리아타운이라고 부르는 한인 상가 와 밀집지역이 있다. 뉴욕의 풀러싱과 브로드웨이 32가 일원, LA의 올림픽 불러바드 일원, 밴쿠버의 롬손 스트라세, 시카고의 로렌스와 링컨 애비뉴 일원, 런던의 뉴멀든, 시드니의 스트라스필드와 이스트우드가 그런 곳이다. 이들 가운데 몇 군데에는 유학생들이 뿌리는 돈으로 특수를 누리는 유학생 거리가 있다. 거기에는 한국식당, 식품점, 미용실, 비디오숍, PC방, 만화방, 카페, 게임방, 당구장, 노래방 (가라오케)은 기본이고 그 밖에 한국에 있는 상품과 유흥업 서비스가 대부분 있다. 한국에서 보다 더 좋은 쌀과 배추와 김치를 구할 수 있다. 거리가 한국어 간판으로 차있고, 한국어만 써도 살 수 있다.
유학을 말하면서 해외 한인사회에 대하여 말하는 이유가 있다. 요즘 영미지역으로 오는 한인은 이민, 유학, 취업, 일반 방문 어느 경우든, 또 나와서 무엇을 하고자 하든 50, 60년대와는 다른 중요한 한 가지 상황 변수를 고려하게 되고 그 영향으로부터 자유스러울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하여서다. 모든 일에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기 마련인데, 동포사회의 존재 또한 기회인 동시에 함정이다.
유학생은 공부하러 해외에 나온다. 그러므로 그(또는 그녀)가 주로 해야 할 일은 공부다. 그러나 공부를 하기 위하여 숙식을 먼저 해결해야하고, 집에서 학비 전액을 대주지 않는 한 취업도 해야 한다. 또 유학생도 사람이다. 남는 시간을 다른 사람들과 섞여 외로움을 달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것들 하나하나가 동포사회의 상황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교회는 친교의 장
한국전쟁 직후 미국으로 간 한국 남자 유학생이 한국에서 여학생이 새로 왔다는 소식을 듣고 500마일 길을 달려갔다든가 김치를 먹지 못해 고생했다는 얘기는 이미 전설과 같이 들린다. 2000년대의 유학환경은 전혀 다르다. 학자들이 말하는바 이러한 외국 사회에서 재현 또는 [재구성/reconstruction]된 한국적 환경에서 한인들은 선택하기에 따라서는 옛 생활을 그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 유학생들에게 이러한 동족 사회집단은 달팽이의 집과 같다. 먼저 그 속에 몸을 의지하고, 그 다음 서서히 바깥인 주류사회로 진출을 하는 게 낫다. 너무나 다른 문화 속에 갑자기 던져진다면 유학생들은 큰 충격에 적응을 시도하기도 전에 좌절할 수 있다. 그러기에 이민학자들은 그 사회를 적국의 해안에 상륙하는 부대가 먼저 구축해놓은 [진지/beachhead]에 비유하기도 한다.
1970년대초 필자가 뉴욕에 도착하여 처음 맨하탄에서 보낸 10여 일간의 엄청난 맘고생이 생각난다. 지금 같았으면 동포의 하숙집을 찾아가 일단 여장을 풀고 정신을 가다듬고 뭘 하든 천천히 할 수 있었으면 상황은 크게 달랐을 것이다.
이민자와 유학생들에게 가장 접근하기 쉽고 도움을 줄 수 있어 멀리할 수 없는 곳이 한인교회이다. 해외 한인사회에는 고국에 비하여도 인구 당 더 많은 교회가 있다. 동포가 몇 명만 모이면 교회를 만든다. 그 이유는 교회가 해외 한인들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생각하면 분명해진다. 교회는 이들에게 신앙뿐만 아니라 [친교/socializing]와 정보 센터 역할을 한다.
해외 한인사회엔 우리대로의 사회적 기능을 수행할 전문기능이 없어서 교회의 역할이 더 돋보이는 것이다. 새로 온 유학생은 교회에 나와 주일 예배와 각종 모임을 통해 오래된 교포를 사귀게 되며 주택매입, 융자, 자동차 구입, 의료 및 복지 혜택 등에 대한 급한 생활정보를 얻는다. 또 유학생은 언제나 따뜻하게 환영해 주는 교회의 [친교망/social network, friendship network] 속에 흡수되고, 또래의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고, 원한다면 일요일은 한식 점심 한끼를 거기에서 해결할 수 있다.
유학생 대부분이 말이 잘 통하는 동포사회에서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찾게 된다. 워킹 홀리데이나 산업인력공단의 인턴 프로그램으로 오는 청소년들도 마찬가지다. 자연히 언어가 통하고 익숙한 동포사회에서 일하고 거기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 돌아가게 된다. 또 유학이나 영어연수로 온 학생들 가운데 성가대, 연극, 선교 등 청소년 활동에 참여하다가 배우자를 만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그때는 님도 따고 뽕도 따는 사례가 된다. 한국에서는 요즘 영미지역에 영어를 배우러 나가봤자 한국말만 하다가 오게 된다거나 유학을 나가도 동포 등쌀에 공부하기도 어렵다는 등 동포를 비하하는 발언을 듣게 되지만, 알고 보면 그렇게 말할 일이 아니다.
물론 부정적인 면이 많다. 유학생은 학업과 함께 거주국 사회에 섞이고 그 문화를 체험하고 돌아오는 것이 바람직하다면, 동족사회 집단의 존재는 이에 장애가 될 수 있다. 특히 이민자나 유학생이 해외에 나와서도 자기 사회와 문화에만 집착한다면 말이다.
유학생 부모들은 자녀를 유학 보내면서 될 수록 한인사회에서만 지내다가 돌아오라고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 이 문제는 유학이 아니라 이민으로 와 사는 같은 연령대의 이른바 1.5세들에게 더 심각하다. 아직 젊지만 영어를 잘하기에는 너무 늦은 이들은 동족 사회를 은신처로 정하고 주류사회를 기피함으로써 외국에 나왔지만 그야말로 국제 미아가 되기 쉬운 것이다.
또 한 가지는 홀로 오는 유학생들의 거처로서 현지 외국인 가정 하숙과 교민 가정 하숙 중 어느 쪽이 더 좋을까하는 문제다. 홈스테이는 유학생들이 외국인 가정에서 같이 지나며 숙식을 해결함으로써 현지 문화와 생생한 외국어를 배우는 이점이 있다며 유학생을 많이 받는 어학학교들이 권장한다. 그런데 실제 사례는 그렇지 못하다. 이에 대하여 바로 뒤에서 자세히 다룬다.
조기유학생들은 대개 부모와 친척의 사전 소개나 현지에 사는 한국인 가족과 알게 된다. 또 교회말도고 학교에서 교포 친구들을 사귀게 된다. 이들은 같은 세대이며 외모도 비슷하지만 언제나 서로 잘 융화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 서로 반목하고 따로 노는 경우도 많은데, 이는 이들이 자란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 이미 언급한대로 학비 부담 면에서 서로 다른 처지(108쪽 참조), 조그마한 연(緣)이라도 있으면 그것을 중심으로 편을 가르는 부모로부터 배운 행태 등을 이유로 들 수 있다.
해외의 한인들은 한 도시에 거리를 두고 흩어져 살지만 서로 밀착하여 지내는 것이 보통이다. 서로 긴밀히 교류하고 접촉하게 되면 외로움을 덜할 수 있으나 자칫 반목하는 일도 생긴다. 학생들도 이런 한인사회의 갈등에 휘말리는 것이 보통이다.<다음호에 계속>
김삼오 박사(커뮤니케이션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