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단상
건전지가 될 것인가, 인간이 될 것인가
자신의 이익에 눈먼 사람들은 흔히 다른 인간들을 ‘건전지’로 여긴다. 물론 일회용 소모품만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적당히 충전시켜주면 다시 에너지를 토해내는 에너자이저 충전용 건전지들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노예처럼 부리는 악덕 자본가나 탐욕스러운 권력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보다 이익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수많은 인간 군상들이 다른 인간들을 조작 가능한 대상, 자신들의 이익창출 시스템에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존재들로 취급한다. 거기에서 사소한 악도 싹트고, 거대한 악도 또아리를 튼다.
오늘날 시장과 정부를 좌지우지하는 거대기업들은 노동자들을 수탈하는 무식한 방법을 쓰지 않는다. 조중동이 기자들을 충분히 대우해주면서 자체 이익 시스템의 한 부속품으로 만들어 충성하게 만들듯이, 거대 기업일수록 세련된 방식으로 에너지를 재창출한다. 그 에너지 창출 시스템에는 당연히 소비자들도 포함된다. 독자들을 조작 가능한 대상으로 여기는 언론매체에게는 독자들 또한 건전지들인 셈이다.
거대 자본의 입장에서는 사실 노동자보다 소비자들이 더 매력적인 에너지원일 것이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에게는 세상의 모든 인간들이 이익창출 시스템의 잠재적 에너지원이다. 그들의 마케팅 전략은 임신이나 정상적인 노화과정도 질병으로 여기게 해서는 약물에 의존하게 만든다. 에너지가 넘쳐 감당하기 어려운 아이도 환자로 만들어져서는 약물치료 대상으로, 다시 말해 건전지로 만들어버린다. 전문가라는 권위에 흔들리기 쉬운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제약회사와 같은 거대자본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건전지로 전락한다.
‘악’은 결코 괴물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그들은 때로 목자의 탈을 쓰고, 때로는 전문가의 가운을 입고서, 때로는 광고모델의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찾아온다. 그들은 세련된 매너와 친절한 얼굴로 인사를 건넨다. “뭘 도와드릴까요?” 그리고 말한다. 십일조만 내면 천국이 보장되고, 저 물건만 구입하면 행복해지고, 알약만 먹으면 문제가 사라진다고. 이들의 교묘한 마케팅 전략에 휘둘리게 되면 그들이 제공하는 색안경을 쓰고 왜곡된 현실을 보게 되고, 그들이 제시하는 해결책에 고마워하면서 돈과 자신의 미래를 갖다 바치게 된다.
이런 세상에서 다른 존재를 건전지로 취급하지 않고, 또 스스로 건전지가 아닌 인간으로 살 수 있으려면 세상을 읽는 눈을 키우고, 자신을 성찰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교육은 그걸 도와주는 것이다. 노동자와 소비자를 건전지로 취급하지 않는 회사, 아내와 남편을 건전지로 여기지 않는 가정, 아이들을 건전지로 취급하지 않는 학교와 학원, 환자를 건전지로 바라보지 않는 병원, 국민을 건전지로 여기지 않는 국가, 우리가 원하는 세상은 이런 세상이 아닐까. 이런 세상이 먼저 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꿈꾼 세상일 것이다.
그가 말했듯이,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은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지극히 상식적인 꿈이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앞에 펼쳐지지는 않을 게다. 아주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갈 것이다. 한 구석에서는 여전히 요원한 꿈으로 남아 있을지라도 좌절할 일은 아니다. 거기에 도전함으로써 우리는 스스로 인간의 길을 선택할 수 있다. 그렇게 삶은 우리에게 매 순간순간 결단을 요구한다. 인간의 길과 비인간의 길 사이에서.
현병호(민들레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