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목사의 특별기고

열등감 콤플렉스
어떤 한 분은 자신이 너무나 뛰어난 존재라고 믿는다. 그런데, 상황이 잘 펼쳐지질 않아서 나이 60이 되어도 아직도 삶이 이모양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얼마나 배려하지 않으며, 사람들을 통제하며 조정하며 상처를 주고 있는 지를 알지 못한 채, 좀 더 좋은 학위가 있다면 좀 더 좋은 곳에서 일을 한다면 자신이 달라질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 사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조금만 그 사람과 지내고 나면 그 사람을 싫어하게 되는 데도 말이다. 이사람은 자신의 삶의 성공의 비결을 내면에서 찾기 보다는 외부에서만 찾고 있는 사람이다.
어떤 한 사람은 자신이 너무나 부족하다고 믿는다. 외모도 괜찮고 지능지수도 높고 전문 직장에 다니며 인정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사람들과 관계를 잘 맺지 못하고 삶에서 실패하며 부족한 것 투성이라고 늘 생각을 한다. 주위에서 당신은 “괜찮은 멋진 사람입니다.” 라고 말을 해도 그것이 진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사람들에게 더 다가가지 못하고 상당히 고립적으로 살아간다. 이 사람은 자신의 관계적 문제가 삶에 있어 성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고 바라본다.
위의 두 가지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아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실제로는 뿌리가 같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뿌리가 있을 까? 이들의 깊은 내면 속에는 “열등감 콤플렉스”가, 다른 말로 하면 “낮은 자존감”의 문제가 삶의 어려움을 일으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열등감의 모습이 서로 반대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첫 번째 사람은 내면 깊은 곳에서 들리는 “나는 열등한 사람이야” 라고 하는 메시지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사람이다.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억압하고 인정하지 않으며 반대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열등함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자존심’을 많이 앞세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 자신이 하는 일, 자신의 학위등을 타인에게 자랑하고 싶어하고 자신의 연약함은 전혀 보지도 않고 드러내지 않으며 자신의 특별함만을 앞세우고 자랑한다. 그리고 타인이 자신보다 못한 부분들을 보일 때 쉽게 판단하며 무시하고 자신의 하수인처럼 부리고 조정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이 사람을 통해 배울 것이 많겠다고 처음 생각했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 사람을 떠나게 된다. 그래서 이 사람은 외로운 사람이 된다.
두 번째 사람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자랑하는 모습과는 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열등감’ (나는 타인과 다른 무엇인가 부족하고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보는 시각)을 진리라고 생각하고 깊이 받아들이고 느낀다. 일어난 많은 일들에 대해서 자신을 탓하고 세상과 타인을 너무나 큰 대상으로 바라보아서 그 세상에서 용감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연민과 분노로 인해서 괴로와 한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는 것을 피하고 세상에 도전하는 것을 피하며 세상을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어떻게 보면 이 사람은 착한 사람일 수 있는데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안전 지대 속에서만 머물러 있는다. 그 속에서 있는 안전함을 추구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세상 가운데 들어가고 싶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은 마음들이 많이 있다. 그는 그 사이에서 갈등하며 슬퍼하며 자신을 자책하여 연민 속에 빠진다. 그것이 깊어지면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함 가운데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이 사람도 외로운 사람이 되었다.

위의 두 사람의 열등감은 어디로 부터 온 것일까?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이들의 근본적인 열등감은 자신이 태어난 원가정 (Family of origin)에서 온 것처럼 보인다. 첫 번째 사람과 두 번째 사람은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두 사람 모두 자신이 태어난 가정 안에 한국에서 가장 좋다는 대학을 들어간 가족 구성원 (Family member)이 있었다는 점이다. 자신도 모르게 그 가족 안에서 그와 다른 자신을 보면서 첫 번째 사람은 자신은 그 사람을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믿고 싶었고 그래서 그런 사람인 것처럼 살았다. 그 모습이 다른 사람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에비해 두 번째 사람은 그 가족 구성원을 싫어하지만 그 구성원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 그 사람이 아닌 자신을 원망하면서 살면서 삶에서는 회피형의 모습으로 사회적인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생각 외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듯이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고 자신을 과장되게 해석하거나 때로는 과소평가하는 우를 범한다. 바로 깊은 내면 속에 있는 ‘열등감 컴플렉스’라고 하는 부정적 감정이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
개인 심리학의 알프레드 아들러는 어린 시절에 원가정에서 형성된 개개인의 ‘열등감’은 우월성으로 극복할 수 있는데 이것의 한 가지 방법으로 사회적 관심 즉 다른 말로 하면 ‘사회에 봉사’를 하면서 극복이 될 수 있다고 설명을 한다. 위의 두 예에서 나타난 사람들은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여전히 힘들어 하는 것이 어쩌면 사회적 참여가 없는 외로운 삶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열등감이 사회적인 고립을 가져다 주었을 수도 있고 반대로 사회적인 참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열등감이 심화되어질 수도 있는 지도 모른다. 사회에 관심을 갖는 것은 여러가지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봉사 활동을 하게 되면 내가 무엇인가에 기여할 수 있다고 하는 자기 효능감을 느끼게 하며 자기 가치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법을 배우게 되면서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그 안에서 아픔을 경험하게 될 수 있다. 나의 연약한 점을 바라볼 수 있게 나를 자극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결국은 나를 성장시키게 하는 좋은 도구가 되기 때문에 사회에 참여한다는 것은 나의 깊은 열등감을 해소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열등감에 벗어나기 위해서 도움이 되는 것은 나의 열등감을 탐색해 보고 인정하는 것이다. 누군가 나의 연약한 점에 대해서 지적했을 때 그것을 개인적인 상처로 받아들이기 보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하면 내 안에서는 이런 반응이 일어나는구나!’, ‘내 안에 이런 반응이 나타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이런 필요가 채워지지 않아서 그렇구나! 그래서 내가 슬프고 화가 나는 구나!’ 라고 나의 연약한 감정을 그대로 존중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열등감을 자극시키지 않게 하고 나의 감정과 생각을 존중하게 함으로 열등감을 벗어나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내 감정이 힘들고 어려울 때 그 감정과 그 감정과 관련된 생각 속에 빠져들지 않고 관찰해 보려고 하는 것이 나의 열등감을 이해하고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열등감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외적인 것에서 성공을 찾지 않고 내적인 가치를 찾고 그것에 접촉하는 삶을 매일 매일 살아가는 것이다. ‘어떤 직업인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라고 말한 어느 추기경의 말처럼 ‘부, 명예, 쾌락’에 가치를 두지 않고 ‘사랑, 봉사, 이해, 도전’과 같은 아름 다운 가치를 삶의 목표로 추구한다면 누구나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작은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열등감’은 우리를 사회적으로 고립되게 하고 피해의식으로 나와 이웃을 힘들게 하는 부정적 감정이다. 그러므로 열등감으로 나를 속이고 나를 병들게 하지 말고 내 속에 있는 열등감을 인정하고 돌아보아 성숙과 사회적 관계 확장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관계 속에서의 역할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어서 집을 비우곤 했습니다. 시드니 로부터 시작해서 멜번, 브리즈번에서 세미나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새로운 학기가 이제 잘 시작되었구나 라고 느끼며 일상 생활로 다시 복귀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Covid19로 인해서 모든 학교의 세미나 과정을 온라인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지난 주일 (항상 세미나를 위해 떠나는 날) 오후에 이번에는 엄마가 세미나로 떠나지 않는다고 하자 아이들은 박수를 치면서 좋아했습니다. 특히, 그 중에 기뻐한 사람은 4째 아이인데 이유는 필자가 집을 비울 때 자신이 동생들의 엄마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미리 동생들에게 도시락을 싸게 하고 시간을 맞추어 일찍 일어나 동생들을 깨우고 동생들이 해야 할 일도 알려주는 역할을 하면서 이 아이는 힘이 들었던 것입니다. 굳이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았는데 심리적 부담감으로 자연스럽게 그 일을 하고 그리고 나서 돌아온 부모님의 칭찬을 듣는 아이는 힘들면서도 그 일을 감당하는 것에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어릴 때 책임감을 많이 가지고 있던 착한 아이들이 커서 결혼을 해서 새로운 가정을 만들어서 이제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데도 자신의 가정에서도 비슷한 모습으로 책임감을 많이 가지고 많은 기능을 감당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그러면서 자신이 배우자의 역할까지 전부 다 감당하는 것이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배우자는 공주처럼 모시고 또는 왕자 님처럼 모시고 자신이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살아갑니다. 그것이 사람을 사랑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해서 관계가 시작되었지만 자신은 늘 희생하고 봉사해도 배우자가 알아주지 못하는 것 같으면 자신도 모르게 섭섭함이 찾아옵니다. 자신의 수고와 희생이 인정을 받으면 고생을 해도 거기에서 의미를 발견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음으로 거기에서 실망과 섭섭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한 엄마는 싱글 맘으로 살아가면서 자녀를 위해 온갖 희생을 마다 않고 수고했지만 전혀 그것을 알아주지 못하는 아들 때문에 힘들어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희생이 자신이 선택한 삶의 방식이라 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의 노력과 희생을 몰라주는 아들만 원망합니다. 이 엄마도 선한 마음으로 아이를 위해 희생을 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인정과 보상을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모양은 다르게 사랑을 표현하는데 사람의 사랑에는 조건이 많이 붙습니다. 처음 시작점은 그렇지 않았을 지 모르나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한 쪽이 일방적으로 희생을 하면 그래서 나중에는 관계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관계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한 쪽에서 너무 과기능을 하는 일은 변화되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적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일방적으로 한 쪽은 주기만 하고 한 쪽은 받기만 하는 것은 관계를 역기능적 (dysfunctional)이게 합니다.
항상 희생적이기만 한 엄마가 아들에게 경계선을 긋고 아들에게 무조건적인 지지의 행동을 멈추고 아들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과 기능하는 것을 멈추었을 때 앞에서 언급한 그 가정에는 변화가 왔습니다. 아들은 엄마에게 무조건 기대하기 보다는 엄마가 해 주는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받는 것이 아니었던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부부 관계에서 과 기능을 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자신이 과기능을 함으로 배우자가 해야 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의존적으로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어쩌면 배우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계속 유지시켜 나가는 부정적 역할을 내가 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배우자가 성장할 수 있도록, 또는 식구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어쩌면 내가 조금만 간섭을 줄이고, 덜 애쓰고, 덜 일을 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가족 치료 (family Therapy)에서 ‘역할 (roles)’은 중요한 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가정의 한 사람이 전통적인 성역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때 역할이 경직될 수가 많습니다. 남자이기 때문에 해야 한다는 것과 남자이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 아주 분명합니다. 이러한 전통적 성 역할 뿐 아니라 개인의 삶의 경험과 사고가 역할에 대해서 자신도 모르게 특정한 형태로 형성이 되어 있다면 그 역할로 인해 나는 나도 모르게 삶이 조정되게 됩니다.
가족치료에서 역기능 가정일수록 역할이 경직되고 바꾸어 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가족 중에 한 사람은 ‘영웅’의 역할을 하고 한 사람은 ‘문제아’의 역할을 하고 한 사람은 ‘희생양’ 또는 ‘마스코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가족의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감당함으로 가정을 지탱해 나가게 됩니다. 어린시절에 형성된 나만의 ‘역할’은 어린 시절에는 나의 삶을 유지하는 좋은 전략이 되었는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도 그 역할만을 감당하려고 하고 나와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이 나의 역할에 맞추기 위해 또 다른 역할을 강하게 행사해야 한다면 그 가정은 경직된 또 다른 건강하지 못한 역기능적 가정이 되어갈 수 있습니다.
건강하기 위해서는 역할에서도, 기능에서도 ‘융통성’이 필요합니다. 과기능을 하고 있는 사람은 때로는 조금 덜 기능하면서 대신 자신을 스스로 돌보는 일을 하고 저 기능하는 사람은 일을 조금 더 하여서 자신의 자리와 역할을 가족 안에서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늘 우리가 적절한 양만큼의 기능만 하면서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아파서 돌봄이 필요할 때 우리는 때로 과기능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융통성입니다. 서로가 필요할 때 서로의 역할이 조정되어질 수 있고 그것이 소통이 되어질 때 가정은 건강하게 세월이 흐르면서 함께 성장해 갈 수 있게 됩니다.

김훈 박사 (호주기독교대학 학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