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광현 목사의 성경인물 이야기
조국의 멸망을 예언한 반역자 예레미야
반성할 줄 모르는 나라, 일본
개인적으로 만나는 일본 사람은 참 유순하고 친절하다. 타인에 대한 배려의 태도도 섬세하다. 말머리마다 ‘실례합니다’를 달고 다닐 만큼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지녔다. 이방인이 길을 물으면 아예 목적지까지 손수 안내해주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나 국가로서의 일본, 민족으로서의 일본은 매우 두려운 존재다. 도무지 반성할 줄을 모르는 것 같다. 일본은 한일합방을 ‘대동아공영권’의 이상으로 정당화했고 중국 침략과 아시아·태평양 열도 등에서 벌인 전쟁들 역시 그 이상으로 정당화했다. 일본의 침략과 전쟁은 당하는 민족과 국가의 입장에서는 가혹한 고통이었다. 그러나 현재 아베 총리로 대표되는 일본 정부는 걸핏하면 침략과 지배를 ‘공영’과 ‘해방’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하며 지금도 꺾이지 않는 야욕을 드러낸다. 일부 정치인이나 관료들의 망언이라기보다는 국가로서의 일본, 민족으로서의 일본이 아시아 여러 민족과 국가들에게 보여주는 속내이다. 도대체 일본은 어째서 그렇게 반성할 줄 모를까? 이런 일본의 태도는 철저하게 과거를 청산하고 반성한 제2차 세계대전의 같은 패전국 독일과 곧잘 대비된다. 패전의 상황은 자의든 타의든 반성의 기회를 제공하는 법이다. 사람은 절망의 나락에 떨어져봐야 비로소 제대로 자신을 돌아본다. 민족이나 국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실 일본은 건국 이래 최초의 패전 상황을 맞은 셈이며 따라서 치음으로 국가적 존재 또는 민족적 존재로서 자신의 지위를 돌아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그러나 절묘하게도 그 기회는 사라지고 말았다. 전후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은 일본을 보호하고 안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전쟁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했지만, 그것은 형식상의 절차로 끝나고 일본의 안정을 도모하는 데 전후 치리의 강조점을 두었다. 미국은 일본의 국민정서를 감안해 사실상 최고의 전쟁범죄자인 천황에게 전쟁의 책임을 문지 않고 천황제를 존속시켰다. 일본의 국체를 보존시킨 것이다. 그 결과 일본은 사실상 패전국으로서 단절된 과거의 역사와 교묘하게 다시 봉합되는 경험을 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자신들의 과거를 제대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 것이다. 사실 일본에게는 위기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적어도 7세기 이후 ‘일본(日本)’이라는 구호가 등장한 이래로 말이다. 일본에게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단 한 번의 기회가 있었다면 그것은 13세기에 몽골의 침략을 받았을 때였다. 당시 일본 고승 니치렌(日蓮)은 일본의 위기를 역설했다. 진리를 보려고 하지 않는 일본 사람들은 벌을 받아, 몽골에 패배하고 유린당해 도탄의 괴로움에 빠지고 나서야 비로소 눈을 뜰 것이라고 역설한 것이다. 그러나 천우신조였던가? 니치렌이 기대했던 결과는 빗나가고 말았다. 여·몽 연합군이 두 차례에 걸쳐 일본 본토를 침략했지만 두차례 모두 일본은 강력한 태풍 덕으로 국가 위기를 면할 수 있었다. 그때 불었던 바람을 일본 사람들은 ‘가미가제(神風)’라 부른다. 그 사건은 일본 사람들에게 신의 나라 일본은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구출된다는 믿음을 강화시켜주었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특공대의 이름이 바로 ‘가미가제’였다. 가미가제의 자폭 공격은 무모한 듯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이 지키려 했던 천황과 국체는 보존했으니 다시 한 번 신의 도움을 받은 셈일까? 이렇게 일본은 불패 신화를 믿으며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까닭에 계속해서 주변국들에게 두려운 존재로 남아있다. 일본의 근대 사상가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가 니치렌을 높이 평가하고 일본의 승리를 오히려 크게 우려했던 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수없는 외침에 시달리며 고난을 겪었건만 또 다시 풍전등화의 위기 앞에 있는 유다를 향해 예언자 예레미야는 멸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선포한다. 니치렌의 예언과 달리 예레미야의 예언은 적중했다. 유다는 멸망했고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은 치욕스러운 바벨론 포로기를 경험해야 했다. 어째서 예레미야는 자기 민족이 멸망하기를 바랐던 것일까? 그리고 그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눈물의 예언자 VS 민족의 반역자
예레미야 하면 떠오르는 이름, 그것은 ‘눈물의 예언자’라는 별명이다. 슬픔의 노래, 눈물의 노래 ‘애가’가 예레미야서 뒤에 붙어 ‘예레미야 애가’로 불리게 된 것도 그만한 사연이 있다. 그것은 결코 예레미야 한 사람의 노래가 아니다. 민족의 멸망으로 탄식했던 모든 이스라엘 민중의 슬픈 노래였다. 민족의 슬픈 운명 앞에서 끊임없이 탄식하며 하나님의 뜻을 전해야 했던 예레미야의 이름과 함께 그 노래들을 기억했던 탓에 ‘예레미야 애가’로 불렸던 것이다. 예레미야의 활동은 크게 네 시기로 구분된다. 요시야 왕 시기에 예레미야는 이 왕을 높이 평가했으나, 이 시기 활동 기록은 많지 않다. 요시야의 개혁이 무효로 되돌아간 시기인 여호야김 왕 시기에 예레미야는 불의한 자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세 번째 시기에 해당하는 시드기야 왕 시기에, 예레미야는 유다의 멸망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선포했다. 아울러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며 바벨론에 대한 저항을 반대했다. 이 때문에 그는 반역죄로 투옥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이 멸망한 후 스스로 예루살렘에 머물며 하나님의 채찍을 받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으나 망명파들에 의해 이집트로 끌려가 죽음에 이른다, 이렇게 예레미야 개인의 운명은 유다 멸망이라는 역사적 비극의 대미를 장식한다. 수차례의 암살 위협을 겪으면서 온몸으로 메시지를 전했던 예레미야의 삶의 과정 전체가 하나의 강력한 상징이요 메시지였던 것이다.
가라앉는 배 위의 예레미야
꺼져가는 민족의 운명과 함께했던 예레미야의 복잡한 삶과 메시지는 우리에게 실로 많은 과제를 제기한다. 그의 메시지의 초점은, 유다의 멸망이 사필귀정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데 있었다. 예레미야가 어찌 민족의 멸망을 그대로 용인하고 싶었을까? 그는 눈물로 호소하며 자기 민족이 심판받아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전혀 돌이킬 가망성이 없는 민족에게, 다가올 심판이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전해야만 했다. 그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민중의 희망을 짓뭉개버린 국가에 대한 심판이었다. 민중을 동원 대상으로만 간주하는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의 함정, 그 이데올로기로 무장된 국가주의의 허구, 예레미야의 심판의 초점은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굳이 망해야만 한다고 외쳤던 사연은 무엇일까? 그것은 지금까지 유지해온 체제와 그 안에서의 삶의 방식이 철저히 부정되지 않고서는 개선의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쓸모없게 되어버린 허리띠, 깨어진 항아리, 그것이 바로 유다의 실상이었다. 그 쓸모없는 것들을 붙잡고 있어봐야 아무런 희망도 기대할 수 없었다. 예레미야는 아무리 마음이 아프다 해도 잘못된 것은 포기하라고 외친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이 어느 누구에겐들 쉬운 일일까? 옳든 그르든 지금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해온 체제와 삶의 방식을 포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일에는 외부의 충격 이외에는 달리 방법 이 없는 경우가 많다. 예레미야가 바벨론의 왕을 ‘하나님의 종’으로 선포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것은 바벨론 왕의 정당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외부의 강력한 힘 앞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운명을 알아차린 유다를 향한 질책으로서 그 정당성을 갖는 선포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에게는 지극히 상식적인 기대감이 있다. 힘없는 이가 힘자랑하는 놈의 콧대를 보기 좋게 꺾어주었으면 하는 기대감과, 강자와 대결하는 약자가 무력하게 무너지지 않았으면 하는 기대감이다. 예레미야는 그 기대감이 허망한 희망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한다. 예레미야라고 해서 그 기대감이 없었을 턱이 없지만, 그것은 더욱 극심한 민중의 고통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근본적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울부짖는다. 차라리 값비싼 통한의 기회로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외친다. 바로 그 지점에서 바벨론의 군대는 심판하는 ‘하나님의 철퇴’요, ‘하나님의 무기’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바벨론이 정의의 편이라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니다. 사실 예레미야가 선포하는 심판의 초점은 바벨론에 있다. 힘을 자랑하고 약소국을 유린하는 바벨론이야말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 예레미야 메시지의 진정한 초점이다. 유다 왕권의 붕괴는 바로 그 바벨론 붕괴의 아류로서 맞게 되는 운명이다. 예레미야의 눈물은 바로 그 현실에서 쏟아낼 수밖에 없었던 절망의 탄식이다. 강대국 바벨론의 힘 앞에서 유린당하는 ‘네(유다)’가 가엽지만 ‘내(하나님)’가 ‘너’를 옹호할 수 없는 그 현실, 민중들의 소망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너희들(유다와 바벨론)’ 모두를 하나님이 심판하기 원하는 그 현실이 안타까운 것이다. 유다의 멸망은 그 심판의 한 국면일 뿐이었다.
위기를 기회로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었던 유다는 예레미야가 예언한 대로 멸망했다. 그 지도자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고,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나라 잃은 민족의 한을 안고 세계 곳곳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디아스포라(흩어진 유대인의 기원이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잃었으며 모든 것을 부정당했다. 그러나 그것은 유대인들에게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의미했다. 세계 역사에서 유대인들을 기억하게 된 것은 바로 그 계기를 통해서였다. 그들은 비로소 자신들의 정체성을 제대로 묻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물려받았던 신앙의 위대함을 비로소 자각했다. 그들은 타국 땅에서 자신들의 종교를 다시 세웠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구약성경이 형성된 것도 바로 그 포로지에서였다. 이전부터 전해오던 신앙의 전승들, 단편적인 성경기록들이 집대성되었다. 이로 인해 유대인들은 나라와 민족이 해체된 바로 그 상황에서 비로소 진정한 하나의 민족으로 거듭났던 것이다. 철저하게 자신들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대신에 유야무야 연명하는 세월을 보냈더라면 어찌되었을까? 아마도 유대인들은 그저 중동 변방 작은 민족의 하나로만 기억되었을지 모른다. 아니면 그렇게 저렇게 연명하다 사라져 그 존재조차 잊혀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과 그 신앙을 인류사에 남김으로써, 하나의 작은 민족으로 그치지 않고 세계사에 빛을 밝히는 존재로 우뚝 서게 되었다. 결코 예전의 영화를 다시 회복할 수는 없었지만, 세계사에 존재했던 그 어떤 강력한 나라와 민족보다도 더 강력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가 타의에 의해 부정된 비극을 잘못된 과오를 씻고 거듭나는 기회로 만들었다. 나라가 멸망하기를 바랐던 예레미야 예언의 뜻이 결과적으로 적중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바로 그 예언을 마음에 새겨두었기에 그들은 절망의 상황을 희망의 상황으로 뒤바꿀 수 있었다. 위기는 곧 기회다 위기를 불러일으킨 원인을 진단하고 곧바로 적절한 대책을 세우면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위기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위기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탕 속의 개구리 비유가 있다. 물을 갑자기 데우면 개구리는 감지를 하고 곧바로 뛰쳐나온다. 그러나 물을 서서히 데우면 전혀 감지를 못한 채 있다가 어느 순간 숨을 거두고 만다. 잘못된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미련 없이 버리면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잘못된 것을 알고도 미적거리면 더 이상 새로운 기회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 타의로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도 있지만 스스로 새로운 기회를 누릴 수 있다면 더더욱 값지지 않을까?
한광현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