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오 박사의 또박또박 준비하고 가는 유학과 해외체험(26)
앞으로 여러 회에 나뉘어 나가는 이 연재는 옆 이름의 책 (도서출판 엠-에드, 2006)에서 저자의 양해를 얻어 발췌한 것입니다. 저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편집자 주
제5장 해외유학 공부, 어떻게 할 것인가 – 공부충격
2. 달달 외우는 것만으로는 안 돼
빌라드는 공부 방식의 차이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더 구체화시키기 위하여 세 가지 다른 발전적 공부 단계의 모델을 제시한다. 첫째가 지식의 재생산, 둘째가 분석, 셋째가 탐구다. 좀 지루할지 모르지만 아래에서 하나하나 필자의 의견과 해설을 붙여 설명해 보는 이유는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공부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학문이란 무엇인가? 두 가지 대답이 가능하다. 하나는 지식을 습득, [보존/conserve]하는 활동이고, 다른 하나는 그 단계를 넘어 [확장,발전/extend]시키는 활동이다. 지식을 습득, 보존하는 것은 그것을 수동적으로 수용하고 유지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지식 전달 중심의 학습과 교육이 그것이다. 아시아 문화권에서 하던 공부가 전형적이다.
영미문화권 학생들은 사물과 현상에 대한 기존 지식의 이해와 습득과 전달에 만족하지 않고 이것을 확대, 발전시켜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공부방식은 언제나 기존의 지식에 대한 회의와 도전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과제는 [무엇/what]이 아니고 [왜why], [어떻게/how]이다. 그래야 기존의 것에 변화와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 이 또한 무엇을 공부의 대상으로 하느냐의 문제이며, 그에 따른 세 가지 다른 가르침과 배움의 방식 또는 접근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다.
첫째는 지식의 [재생산/reproduction]이다. 기존의 지식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전달한다는 뜻에서 재생산이다. 이때 공부방법은 [암기/rote learning]와 모방 위주다. 여기서는 학생의 점수와 그에 따른 석차는 기억의 결과이며, 그 점수는 학생이 달달 외우는 데 얼만 큼 시간과 노력을 쏟았느냐를 측정한데 지나지 않는다. 그를 위한 시험은 [선다형/multiple choice] 질문지나 짧게 묻고 답을 써내게 하는 [단답형/short answer] 시험지로 하게 된다.
당연히 공부는 주입식이 되어 교사의 역할이 커진다. 교사는 학생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서 사표(師表)가 된다. 학생은 교사의 지시에 따라 지식을 전수 받는 제자이며, 지식의 전수, 지도, 평가 등 모든 단계에서 학생은 교사에게 수동적으로 의지하게 된다.
한국에서의 각급 학교 진학시험과 학기말 고사는 대개 그런 공부 방식에 따른 지식의 습득 여부를 평가하는 것이다. 각종 고시, 회계사 시험, 기업의 입사시험, 각종 면허 취득을 위한 필기와 실기시험의 내용이 대부분 그렇다. 이것을 학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둘째는 [분석적/analytical] 방법이다. 여기서 학생은 지식을 습득하는데 그치지 않고 분석하고 해석하며 비판한다. 따라서 사실의 나열과 종합보다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여기서는 비판 능력이 더 중요하다. 무엇이 아니라 ‘왜’와 ‘어떻게’를 묻는다.
교사는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학생으로 하여금 건전한 의문을 갖도록 자극해야 한다. 교사의 역할은 조정자이며 평가의 기준은 지식의 습득 여부보다 분석력과 문제해결 능력에 대한 측정이다. 영미 학교에서는 오래 전부터, 그리고 한국에서는 과거와는 달리 근래, 시험 중에 사전과 전자계산기, 다른 참고 자료 등의 활용을 허용하는 관례가 생겼다. 이것은 평가의 대상이 지식습득이 아니라 응용과 문제해결이란 증거다.
이 단계에서도 물론 창의력과 [독창성/originality]이 중요하지만 다음 세 번째 단계만큼은 아니다.
인문학의 재인식
셋째로 [탐구적/speculative] 방법은 기존의 지식을 토대로 어떤 과제를 능동적으로 연구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는 분석의 수준을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이론 모델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것이 특징이다. 지식의 재생산과 분석에 그치지 않고 확장 또는 확대 재생산이다.
탐구적 공부는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창출이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는 교사보다 학생의 역할이 더 커져야 한다. 학생의 능동적 참여와 창의력 발휘 없이는 그런 결과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교사는 경험이 많은 학문 동료이면서 협력자이다. 그는 학생에게 독창적이며 창의적인 연구 결과를 위한 비판과 자문을 하고 자극을 준다. 그는 학생들 자신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토의와 의견교환 과정을 거쳐 이론 개발을 위한 좋은 연구과제가 나오도록 유도한다.
세계적 석학이라고 불리는 학자들의 새로운 사상, 철학, 이론 모델은 이런 연구 환경과 과정의 결과 나온 것들이다. 여러 가지 기발한 [가정/hypothesis]을 세워놓고 이를 검증하는 실증적 연구의 결과로서 세계적인 학술지에 보고되는 유가 그런 예다. 학문적 기여란 그런 뜻이다.
필자는 여러 사람들로부터 지금 한국의 학생들이 얼마나 똑똑하고 공부에 열의가 있는가에 대하여 잘 듣고 있다. 그러나 열심히 하는 공부라는 게 대개 취업이라는 단기 목적을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의 몇몇 현직 교수들이 신문에 기고한 글만 봐도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한 결 같이 대학에서 일고 있는 고시와 취직시험 열풍에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지금은 모든 분야에서 국가간 경쟁의 시대다. 그 경쟁력의 기초는 [지력/知力]이고 지력의 기초는 창의적인 학문에 있다. 창의적인 이론과 아이디어가 국부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학문은 응용을 위한 것과 순수 이론을 위한 것으로 나눠지지만 순수 이론(과학의 경우 기초과학)이 앞서지 않고는 응용 이론도 앞설 수 없으며, 국제경쟁력도 뒤진다.
국력 또는 국가경쟁력 하면 곧 과학. 기술, 경제, 정치, 군사력 등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힘의 원천으로 얼른 눈에 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힘의 바탕과 그 힘을 올바르게 쓰기 위한 사회의 방향설정(길을 밝히는 기능)을 말한다면 창의적인 인문 지식을 빼놓을 수 없다. 요즘 ‘인문학의 위기‘가 새롭게 거론되는 이유다.
직업 전망이 어두운 교육으로 실업자를 양산할 수 없어 직업교육이 중요시되지만, 적어도 대학의 권위를 말한다면 원칙적으로 탐구적인 학문과 연구가 먼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창의력 없는 공부와 창의력 없는 인재 양성으로는 국제경쟁에서 이길 수도 없고 삶의 질을 높일 수도 없다.<다음호에 계속>
김삼오 박사(커뮤니케이션학 박사)
고려대학교 정외과 졸업 (MA)
컬럼비아대학교 언론대학원 졸업 (MS)
매콰리대학교 박사과정 졸업 (PhD)
전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서울특파원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E-mail: karckim@optusnet.com.au
Blog: blog.daum.net/samokim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