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청년 루터
에릭 에릭슨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00.10.31
이 책은 생명력 없는 하나의 영웅을 조작해 내기 위한 종교적 위인전기가 아니라 루터라는 한 인간의 아이덴티티가 갈등과 혁명과 반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그 하락과정을 보였는지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근거하여 적나라하게 분석한 정신분석 역사연구서이다.
○ 목차
사례와 역사적 사건
성가대석에서의 발작
복종 – 누구에게?
전부냐 무냐?
첫 미사와 막다른 종점
개혁을 위한 준비
믿음과 분노
후기
○ 저자소개 : 에릭 에릭슨
에릭 에릭슨은 독일 출신 미국 심리학자, 정신분석가. 1902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생부가 확실하지 않은 가운데 유대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세 살 때 어머니가 유대인 소아과 의사와 재혼하면서 성이 홈부르거로 바뀌었으며, 유대인의 특징을 발견할 수 없는 외모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정체성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중등 교육을 마친 후 미술을 공부하려다 포기하고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독서와 사색에 몰두했다.
비엔나의 정신분석학연구소에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딸 안나 프로이트의 도움으로 1927년부터 6년간 정신분석을 연구했으며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아동 정신분석 분야에서 명성을 쌓았다.
공식적인 학위가 없었음에도 UC 버클리에서 종신교수직을 제안 받았고 1960년부터 은퇴할 때까지 하버드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이밖에도 여러 대학과 병원, 연구소에서 임상 치료와 연구를 병행했으며 『간디의 진실』로 1969년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첫 저서인 『유년기와 사회』 이후에도 그는 『청년 루터』, 『정체성: 청년과 위기』, 『생애 주기의 완성』 등 수많은 저서와 논문을 남겼다.
심리학의 관심을 인간의 심리성적 발달에서 심리사회적 발달로 돌리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으며, 심리학을 문화인류학과 역사학에 접목시키는 시도로 이후 심리학의 연구방법에 큰 영향을 끼쳤다.
현대 발달심리학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그는 1994년 사망했다.
퓰리처상과 전국도서상 수상자인 저자 에릭 햄버거 에릭슨은 정신 분석과 인간발전론 분야 중에서도 특히 아이덴티티 연구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 정신북석학자이다. 캘리포니아대학의 아동복지협회, 피츠버그의 의과대학의 웨스턴 정신병연구소, 매사추세츠주의 오스틴 리그스 센터 등에서 젊은 환자들의 정신분열상태를 임상학적으로 연구했고 하버드대학교에서 인간발전론과 정신병학을 강의하기도 했다.
– 역자: 최연석
전라남도 광주 태생으로 광주제일고등학교와 한국신학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 책 속으로
루터에 관한 그리고 루터가 쓴 문헌은 그 분량이 엄청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루터의 아동기와 청년기에 관해 그다지 믿을만한 자료를 보태지 못한다. 역사상의 그의 역할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성격은 방대한 분량이 불분명한 채 남아 있다. 성실한 학자와 능력을 인정받은 학자들에 의해 루터는 매도되기도 했고 신성시되기도 했다.
이 학자들은 자기 일생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상당한 시기를 정리 안된 자료들에서 루터를 재구성하는데 보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의 공식으로 루터를 포괄하면서 숨쉬거나 말하고 움직이는 <인간 루터>가 아닌 하나느이 <로보트>를 창조했을 뿐이다. 이 책을 쓰면서 과연 내가 그보다 나은 것을 쓸 수 있을까 두려움이 앞선다. — p.13
새로운 임상적 경험은 다른 이론의 발전에 도움을 주고 또 그것으로부터 지원을 받는다.
이 책은 자아의 <방어기능> 뿐만 아니라 <적응기능>에 관한 최근의 이론들도 참고할 것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기념비적 저서는 이러한 탐구와 진보의 받침돌이 된다.
안나 프로이트는 자아에 관한 저서로 연구를 위한 상당히 새로운 이론적 영역을 열었고, 아우구스트 아이히호른은 젊은이들에 관한 저서에서 미개척 치료분야를 열었다.
그것들과 하인츠 하르트만의 저서들 및 데이비드 라파포트와의 최근의 공동 연구로부터 배운 것을, 나는 처음에는 예비 논문에서, 그리고 이제는 이 새 책에서 새로운 관찰 결과에 맞추어 확대해 가려고 노력했다. — 저자의 말 중에서
○ 출판사 서평
청년기의 마르틴 루터에 관한 이 연구는 청년기 후반과 성년기 초반에 일어나는 정서적 위치에 관한 책 가운데 한 장으로 계획되었다.
그렇지만 루터는 한 장 만으로 다루어지기에는 너무 거대한 인물이었다.
그의 청년기는 그때까지 그가 구성하고 있던 것, 또 그를 구성하고 있던 것은 전부 다 파괴되어 버렸거나 재생되었던 시기였다.
○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 (Martin Luther, 1483 ~ 1546)
마르틴 루터 (Martin Luther, 1483년 11월 10일 ~ 1546년 2월 18일)는 독일의 종교개혁가이다. 당시 비텐베르크 대학교의 교수였으며, 훗날 종교개혁을 일으킨 역사적인 인물이다. 본래 아우구스티노회 수사였던 루터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면죄부 판매가 회개가 없는 용서, 거짓 평안 (예레미야 예언자의 가르침을 인용함)이라고 비판했으며, 믿음을 통해 의롭다함을 얻는 (der Rechtfertigung durch den Glauben) 이신칭의를 주장했다. 칭의를 통한 개인 구원의 새 시대를 열어주었다. 면죄부 판매를 비판한 루터는 1517년 95개 논제를 게시함으로써 당시 면죄부를 대량 판매하던 도미니코회 수사이자 설교자 요한 테첼에 맞섰다. 1520년 교황 레오 10세로부터 모든 주장을 철회하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오직 성경의 권위를 앞세우면서 성서에 어긋나는 가르침들을 거부하였다. 1521년 보름스 회의에서도 마찬가지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카를 5세로부터 같은 요구를 받았으나 거부함으로써 결국 교황 레오 10세가 칙서 ‘로마 교황의 선언’을 반포 후 루터는 파문당했다.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대학교 교회 문에 95개 논제를 게시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것이 종교 개혁의 시작이 되었다. 루터의 종교 개혁은 당시 종교와 사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 마르틴 루터 (Martin Luther)
*직위: 신성 로마 제국 추밀원 예하 기독교보좌관
.임기: 1514년 12월 1일 ~ 1515년 2월 1일
.군주: 막시밀리안 1세
.출생: 1483년 11월 10일, 독일 작센안할트주 아이슬레벤
.사망: 1546년 2월 18일 (62세), 독일 작센안할트주 아이슬레벤
.경력: 기독교 신학자 출신, 독일 비텐베르크 대학교 교수
마르틴 루터는 로마 가톨릭교회에 부패와 잘못된 교황의 권위에 항거하여,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리를 논박하고, 성서가 지니고 있는 기독교 신앙에서의 최고의 권위와 그리스도에 대한 오직 믿음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통한 구원을 강조했다. 루터의 주장은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Sola scriptura, Sola fide, Sola Gratia, Solus Christus, Soli Deo Gloria)이라는 표현으로 함축할 수 있다. (다섯 솔라) 루터 본인은 자신이 ‘종교 개혁’을 일으켰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종교 개혁이 하나님에게 이끌림을 받아, 할 수 없이 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복음주의자’로서 복음을 전파하기를 원했고, 자신이 설교자, 박사, 교수라고 불리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의 삶 가운데 그가 행했던 일들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개신교가 태동했을 뿐 아니라, 성서 번역, 많은 저작 활동, 작곡과 설교를 통해 사회와 역사가 크게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기독교 한국 루터회에서는 루터를 마틴 루터라고 칭한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