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초대석
주니어 탁구 Top 10, No 1의 주인공 Alex Lee(이용훈) 학생
호주 2015년 15세 이하 전국 쥬니어 탁구대회 단체전 우승, 개인전 준우승
Alex Lee(이용훈)는 탁구를 포기하고 다른 인생을 찾고자 고국인 한국땅을 떠나 호주로 와서 제2의 탁구 인생, 아니 어쩌면 본격적인 탁구 인생을 시작하고 있는 탁구 꿈나무의 주인공이다. Alex Lee의 삶과 근황을 나눠본다.
2001년 5월 29일 대한민국 수원에서 태어난 Alex의 탁구 인생은 어쩌면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다. 한국 실업팀의 탁구 선수 출신인 어머니가 은퇴후 코치생활을 하면서 지역체육대회에 출전한 적이 있는데 이때 어머니의 배속에 Alex가 이미 숨쉬고 있었다.
임신초기라 주변사람들의 우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Alex의 어머니는 시합 출전을 강행했고, 시합 내내 Alex는 건강하게 버티어 준 것이다. 아마도 이때부터 Alex는 어머니의 탁구 스텝에 맞추어 호흡하고, 탁구공의 소리에 맞춰 몸을 움직이며 자연스럽게 탁구 태교를 하면서 탁구인의 삶은 시작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태어난 Alex는 언제 배우고, 언제 시작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라켓을 쥐고 태어난 것처럼) 탁구 라켓을 가지고 놀면서 자랐으며 자연스럽게 초등학교 1학년 입학과 동시에 본격적인 선수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6학년 때 전국초등학교 회장배 대회 단식우승, 호프스 국가대표로 발탁
Alex는 탁구 테이블 앞에 서면 눈빛이 달라지는 아이였다. 특히 시합장에 들어
서면 긴장감보다는 흥분과 의욕에 눈빛이 밝아지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2학년 시절에 대회를 앞두고 발가락뼈에 금이 가서 시합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닥쳤는데, 코치 선생님께 “시합에 뛰고 싶다”, “할 수 있다”, “자신 있다”고 사정해서, 한쪽 발은 운동화를 신고, 다른 한쪽 발은 기부스를 한 채 출전하였다.
한쪽 발로 뛰면서 점수를 획득할 때 마다 “화이팅”이라고 외치면서 체육관을 뛰어다녀 상대편 선수의 부모들과 코칭 선생님들도 함께 박수를 쳐 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탁구와 함께 생활하고 탁구와 함께 성장하던 Alex는 각종 대회에서 계속 우수한 성적을 내고 초등학교 3학년때 서울 장충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대한민국의 전국에서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어린 선수들, 장차 국가대표를 꿈꾸는 최고의 어린 선수들이 모여서 탁구 선수의 꿈을 키우고 훈련하는 최고의 탁구 실력을 자랑하는 초등학교이다.
최고의 선수들만 모인 팀에서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고 경쟁하며, 최고의 코치 선생님들에게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훈련을 받으며 탁구 인생의 부푼 꿈을 설계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체계적인 훈련을 받으면서 초등학교 6학년 때 전국초등학교 회장배 대회에서 단식 우승과 호프스 국가대표로 발탁되며 승승장구 하다가 최대의 슬럼프를 맞게 된다.
혹독한 훈련과 과도한 성적부담으로 탁구 포기와 호주이민
개인의 사고와 가치가 형성되기 전인 유년시절부터 군대식과 같은 혹독한 훈련, 오로지 점수와 순위로 평가 받고 대우 받으며, 1등 밖에 인정받지 않는 한국 선수 생활에 대한 심적 부담감, 탁구 선수의 선배이자 어머니의 교과서적이고 원칙적인 가르침과 Alex에 대한 기대감 등에 의하여 어릴적 부터 축적된 부담감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린 것이었다.
심적 부담감에 의해 운동이 힘들어지고, 또래의 다른 아이들처럼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싶고, 전국의 가장 우수한 선수들과 경쟁하면서 성적도 부진해 지면서 정신적 여유와 육체적 휴식이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위의 기대와 강압적 교육(훈련) 환경에 의해 할 수 없이 무거운 발걸음을 연습장으로 향하는 생활의 반복이 된 것이다.
이러한 생활이 반복되다가 결국 Alex는 포기서언을 했다. “엄마! 난 최고들 중의 최고는 안되는 것 같아요. 아무리 해도 더 이상은 안될 것 같아요. 엄마 죄송해요”라고 힘없이 작은 목소리로 내뱉고는 펑펑 우는 순간 “아이가 이렇게 힘들어 하는데, 나의 욕심과 어설픈 전문가로의 일방적인 생각이 Alex를 이렇게 힘들게 했구나 생각하는 순간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과 아이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정신적 공황이 왔어요” 라고 어머니 김소연씨는 회상한다. 
Alex가 부담감과 어머니 기대에 못 미치는 죄송함으로 힘들어 할 때 어머니인 김소연 씨 역시 한국 장애인 국가대표 코치로서 해외 훈련과 시합으로 Alex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하고 Alex의 시합 성적에 기뻐하며 ‘화이팅’이라는 말만 피상적으로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Alex의 고백과 힘들었던 시간들을 가슴 아프게 받아들인 가족들은 중대한 결정을 한다. 아무 걱정과 어려움 없이 오로지 부모들의 사랑과 관심속에 어리광을 부리면서 자라야 할 유년기 시절부터 초등학교 6학년까지의 군대식 혹독한 반복 훈련과 성적에 대한 부담감으로부터 고생한 Alex를 벗어나게 해 주기로 한 것이다. “당시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것은 용훈(Alex의 한국 이름)이의 휴식이었어요.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고 제 자신이 부끄러워서 아무 것도 생각하지 못했어요”라고 어머니인 김소연씨는 회상한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 환경은 어릴 적부터 명문대학 입학이라는 목표를 향해 공교육은 물론 사교육을 받으며 빠르게 진행된다. 어릴 적부터 운동만 해온 Alex에게 탁구 라켓을 놓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에 한국의 교육환경에는 너무 늦어버린 감이 있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유학이었다.
호주에서 즐기며 다시 시작한 탁구, NSW에서 주최하는 각종 대회 우승해
다행히도 어머니인 김소연씨의 탁구 코치로서의 이력(런던 장애인 올림픽 은메달, 청각 소피아 올림픽 동메달 등)과 호주 한인탁구협회 회장님의 도움으로 호주 영주권을 받아 2014년 8월 1일에 호주 공항에 새로운 삶의 첫 발걸음을 시작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학교생활을 시작한 Alex는 새로운 친구들과 사귀며 새로운 공부를 하고, 순조롭게 적응을 잘하며 생활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축구, 농구 등의 취미 생활로 운동을 하며, 학교 대표선수로 뽑혀서 마라톤 시합을 나가기도 했다.
Alex는 천상 탁구를 쳐야만 하는 아이인지, 아니면 본인이 미련을 놓지 못하는 것인지 호주로 온지 약간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 다시 탁구를 치기 시작했다. 강압식 훈련과 성적을 강요하는 환경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취미 생활 비슷하게 편한 분위기에서 다시 탁구를 시작한 것이다. 정확히 얘기하면 다른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탁구라는 취미를 즐기기 시작한 것이다.
취미로 즐기기 시작한 탁구는 NSW에서 주최하는 각종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서 다시 주변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강압식 훈련과 성적에 집착하는 선수 생활이 아닌 취미로서의 탁구를 편하게 즐기게 된 것이다.
2014년 E.L.L.T.E Table Tennis Club Under 15 우승
2015 할레루야배 쥬니어부 우승
2015 이에리사배 Under 15우승, Under 18 준우승
2015 NSW Closed Junior Division Competition Under 15 우승
2015 National Junior Championships Under 15 (team) 우승
2015 National Junior Championships Under 15 (singles) 준우승
2015 National Junior Championships Under 15 Top 10 No. 1 Alex Lee
장애인 봉사활동도 하며 2018년 청소년 올림픽 출전 위해 준비
즐기는 탁구로서 제 2의 탁구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고 있는 Alex는 탁구를 그만두려고 호주에 와서 본격적인 탁구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버터플라이에서 2016년부터 스폰서를 약속했으며, 2015년 전국대회의 출전 경비 전액을 호주 PCY에서 지원해 주었다.
오로지 훈련에만 몰입하지 않고, 학교 공부도 하면서 즐기는 탁구를 시작한 Alex의 꿈은 2018년 청소년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다.
현재 NSW 장애인 헤드코치로 활동하고 있는 어머니와 함께 일주일에 두번 장애인 봉사 활동도 꾸준히 하면서 한발한발 진정한 의미의 체육인으로 삶을 꾸려 나가고 있다.
Alex의 꿈과 인생에 주님의 인도하심과 스포츠 꿈나무를 향한 호주와 교민사회의 격려를 기도한다.
인터뷰어 = 임운규 목사(본지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