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말씀
순종과 경외함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오늘 본문의 내용은 여러분도 잘 아시는 아브라함이 그의 외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릴 때 천사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광야로 불러내시고, 25년간의 오랜 역경을 하나님께서 주실 복을 기대하는 소망으로 자식도 없이 견디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었을 때, 드디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민족을 이루게 될 씨인 이삭을 주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아브라함의 생애를 보면, 우리들 일반인들의 생애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혹독한 과정을 겪었던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미래를 알 수 없는 방랑길을 나이가 지긋이 들었을 때(75세), 형제, 친지를 떠나 나서야 했고, 가뭄으로 먹을 것이 없을 때는 애굽에 들어가 아내를 볼모로 잡히고 목숨을 부지하여야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세상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하나님께 순종하였던 그였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종은 그런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이삭이 꽤 성장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갑자기 아브라함에게 외아들 이삭을 하나님께서 지정하시는 곳에 가서 불로 태워 바치라고 하십니다. 상상하건데,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는 한 잠도 자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별 궁리를 다했을 것입니다. 전에 그들이 자식이 없을 때,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들의 생각대로 여종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아 자손을 이어가려고 했을 때, 13년간 아브라함에게 노하시어 나타나지 않고 침묵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였을 것입니다. 방랑길로 나서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13년간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으니, 타향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듯이 느껴진 그 13년은 너무나 길고, 두려운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는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명령을 마음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결론에 두 부부가 이견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가정이 아브라함을 떠나 세상에 휩쓸려 살다가 당한 참변을 기억하고는, 하나님께서는 무서운 징계를 하신다는 것도 염려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어길 생각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더 이상 하나님의 명을 피할 수 있는 어떠한 변명거리도 찾지 못한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다음 날 아침 일찍이 번제드릴 때 쓸 나무를 준비하고, 이삭을 데리고 종들과 함께 번제를 드리러 3일 길을 나섭니다. 그리고 이삭을 번제단 나무위에 올려놓고 막 이삭을 죽여 피를 흘리려는 순간, 천사가 나타나 오늘 본문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 22:12)
그동안에 여러 가지 사건으로 아브라함을 시험, 단련하셨던 하나님께서 드디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한다는 것을 인정하십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브라함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하여 우리들이 품은 숨겨진 본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아담으로부터 전해지는 불순종의 본성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전에 하나님의 명령에 순응하여 방랑길을 나섰었지만, 여종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을 정도로 하나님의 약속을 전적으로 믿지 않았던 본성이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말 그대로 살고 있지 못함을 깨닫게 됩니다. 현실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전적으로 순종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 일면 실망스러운 우리의 자아상이지만, 아브라함의 경우처럼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과정을 통하여 우리들을 권고하시고 연단하셔서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순종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의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두 번씩이나 자신의 아내를 누이동생이라고 하여, 애굽의 바로와 그랄의 아미멜렉에게 아내를 내어 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도 그러한 연단의 과정을 통하여 그를 순종하는 사람으로 만드셨듯이 우리들도 그런 하나님의 배려와 사랑을 받게 되어 있다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인생길에서 만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하나님께서 연단하시는 사랑으로 이해해야 하며, 그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아담의 불순종의 역사로 시작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순종의 사람으로 바뀌는 인류역사의 과정에 대하여 풀이해 놓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즉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의 제사로 말미암아 아담과 같이 불순종의 본성을 지닌 우리 인류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리고 경외함으로 인하여 순종하는 본성을 지닌 새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으로 마감되어야 하는 필연성에 대하여 우리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순종
우리는 종종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순종이라는 것을 가볍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일대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는 순종의 수준은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을 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읽어 드리면,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 22:12)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수준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순종의 수준임을 창세기 26장 5절을 통하여 재삼 밝히고 계십니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에게도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이 그대로 지켜 질 것이라고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 (창 26:5)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이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삭에게도 주어지게 될 타당성은 아브라함이 순종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브라함의 순종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경외하는 수준이었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착하다, 올바르다는 수준이 아니라 당신을 경외하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하셨음을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알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 현실에 비추어 보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순종한다는 것은, 우리들의 지식과 경험으로 판단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부합되었을 때, 즉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이 우리가 이해가 되었을 때, 우리 사정이 허락되었을 때 그 일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종이 아니라는 것을 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을 그리고 우리의 형편이 전혀 감당하지 못할 지경일 때, 하나님께서 분명한 sign을 보여주시면서 명령하셨을 때, 그것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진정한 순종의 의미인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바라시는 순종의 수준입니다. 이 말씀을 듣는 성도님들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십니까? 그 뜻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도 하나님께서 바치라고 했을 때 기꺼이 바칠 수 있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나타나는 순종입니다.
불순종의 예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왕은 아브라함과는 달리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 같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던 인물로 꼽힙니다. 그는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선출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같이 하심으로 이스라엘민족의 지도자로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던 증거로 성경은 다음과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아니하고 가치 없고 낮은 것은 진멸하니라’ (삼상 15:9)
이 기록의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울왕과 이스라엘백성들이 아멜렉과의 전쟁에서 크게 이겼을 때, 그들은 아멜렉의 왕인 아각과 노획물 중에서 좋은 것들을 남겨두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은 전쟁에서 노획한 사람이든 육축이든 모두 진멸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명령을 사울왕은 어겼던 것입니다. 그것이 결정적으로 사울왕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왕권이 다윗에게로 넘어가는 이유가 됩니다. 사울은 한편 좋은 육축을 하나님께 바치려 했다는 변명을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셨고, 더 이상 그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과는 매우 대조적인 상황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정말 아끼는 독자라도 하나님께서 명하셨을 때, 번제로 드리려고 하였지만, 사울왕은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바를 철저히 지키지 않고 자신의 욕심을 따라 행하고 변명하였던 것입니다.
성도의 결단
우리는 이런 역사적 사실에서 깨닫는 바가 큽니다. 우리들도 일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 할 때, 우리 일신에 피해가 있을 것 같고, 또는 손해를 보는 것 같거나 심지어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주저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선 하나님의 계명들을 생각하고, 그 계명을 어기는 쪽으로 결정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처럼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금전적, 물질적인 손해가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할 때가 많은데, 그런 상황에 닥치더라도 과감하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우리 모든 것을 바쳐 헌신, 봉사하여, 사랑을 실천하는 길을 택하여야 하겠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저와 여러분은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순종에 이를 때까지, 우리가 이제까지는 다소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수준의 순종을 하지 못하고 살아왔더라도, 낙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하나님 나라에서 쫓겨날 지도 모른다는 긴박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내게 맡기신 모든 것, 내게 주신 모든 재능을 투자하여 이웃을 더욱 사랑하여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게 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변화된 삶을 사실 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고 장차 도래할 새 하늘 새 땅에서 더 큰 복을 받아 누리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손창건 전도자(시드니가정공동체교회)
